[질라라비/202402] 새로운 인생을 디자인하는 여수산단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 김성호

by 철폐연대 posted Feb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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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1)

 

 

새로운 인생을 디자인하는

여수산단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성호 • 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 지부장

 

 

 

여수국가산업단지는 1967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57년간 석유화학산업단지를 조성하였다. 현재 300여 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고용인원은 2만 5,000여 명, 한 해 75조(2021년 기준)를 초과하는 생산액을 기록하고 있는 국내 3대(울산, 대산, 여수) 석유화학산업단지이다. 

 

이곳에는 GS,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 DL케미칼, 삼남석유화학, 여천NCC, 한화솔루션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1997년 IMF 이전까지는 출퇴근 버스 운전노동자, 식당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분들까지 전부가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었으나 신자유주의 도입과 더불어 외주화로 전환되어 파견노동자가 되었다. 또 교묘하게 법망을 이용하여 직접생산에 관여하고 원청의 직접지시를 받는 생산직 노동자들까지 사내하도급(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하였고, 그 대부분은 작업공정이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3D공정이었다. 

 

처음 외주화를 하면서 정부는 원청의 80% 정도의 임금과 복리후생을 맞춰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이는 어디로 사라지고 27년이 지난 지금 현재 노동조합이 조직되기 이전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리후생은 30% 수준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러한 원청 노동자와의 심각한 차별, 노동조건, 원청 노동자와 같은 지위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으로 분류되어 권리마저 박탈당한 부당함에 맞서 권리찾기를 시작한 것이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설립 배경이다.

 

처음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설립한 곳은 2008년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한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이다. 대부분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사업장의 노동조건이 그러하듯 근로기준법이 정한 노동시간과 연장근로를 훨씬 상회하는 월 100~200시간의 시간외 근로를 하여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조건과 거기에 맞는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과 안전의 위험에 노출되어 근무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 등, 아주 기본적인 노동자들의 요구들이 노조 설립의 이유였다. 하지만 하도급업체들은 원청과의 관계에서 노사갈등으로 인한 계약해지 등으로 협박하고 또 이는 현실로 나타나 급기야는 하도급업체 변경 시 최저입찰제를 통해 임금과 노동조건은 더욱더 열악해졌다. 또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집단해고하는 노동탄압을 통해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까지 행하였기에 노동조합은 옥쇄투쟁과 최저입찰제 폐지 투쟁을 통해 고용과 노동조건을 보장받아야 했다. 

 

이러한 과정 중에 2016년 8월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으로 상부단체를 변경하고 2018년 10월 근로자 지위확인소송을 통해 스스로의 권리찾기 투쟁을 진행했고 그 결과 2023년 9월 14일 대법원의 확정선고로 그들의 지위를 확인받았다. 두 번의 집단해고와 강제휴직, 지회장을 포함한 임원들의 해고와 징계를 버텨낸 조합원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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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8.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 근로자지위확인소송 2심 승소 기자회견.

[출처: 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 

 

 

이후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설립은 2018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기폭제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2016년 삼성SDI가 롯데첨단소재로 지분 매각되었다. 1년여의 매각과정에 현장 안정화를 위해 롯데는 원청사 롯데첨단소재 전 직원에게 6,500여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5만 원 상당의 햄 선물세트만을 지급하면서 예전부터 원청사 직원들에게 무시당해 오고 차별받던 분노가 극에 달하며 사내하청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되는 도화선에 불이 붙기 시작하였고, 2018년 2월 26일 드디어 롯데첨단소재 사내하청지회가 설립되게 되었다. 

 

설립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각 공정별로 사내하도급업체를 4개 사로 분리 운영하고 있었고, 회사별로 각자 다른 이해관계들이 혼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로 모아가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착취당하고 차별당하는 현실은 오늘보다 더 최악인 내일은 없다는 생각을 모아 4개 업체 중 2개 업체가 2018년 2월 26일 먼저 설립하고, 이후에 2개 업체의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형태로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측과 원청사의 방해로 복수노조 설립, 노조 가입 반대의 인원들이 생겨나고 결국 1개 업체는 복수노조로 교섭권을 가져오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해 가는 과정 또한 여러 어려움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의 사내하청업체의 사장들이 대개 원청사의 퇴직자나 관련자들이고, 그러지 않은 경우는 경력이나 자본력이 없는 바지사장들이기 때문에 원청사의 지시를 거부한다거나 혹은 노사관계 개선을 위해 해결을 하려고 해도 원청의 한계선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교섭을 통한 자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계점이 그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난관도 투쟁과 교섭을 통해서 2018년 10월에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이후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통해 권리찾기를 진행하였고 현재는 자회사로 전환되어 하나된 조직으로 우뚝 서 있다. 

 

이러한 투쟁을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명백한 부당함과 차별들을 개선하기 위해 하나둘 노동조합의 아주 낮지만 높다고 생각하는 문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DL케미칼사내하청지회이다. 마찬가지로 고용불안, 열악한 작업환경, 노동강도에 비해 거의 전무한 복리후생, 원청과의 차별대우, 사측의 인사권 남용 등 또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임금체계 개악을 통한 임금의 하향평준화 등을 개선해 우리의 권리를 되찾겠다라는 배경으로 2019년 5월 설립되었다. 원만한 교섭을 통해서 단체협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도 하청업체의 도급업체 해지로 전 조합원에게 해고예고 통지서를 보내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에게 고용불안을 느끼게 만들어 노조를 약화시키고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하나 된 조직의 힘인 투쟁으로 돌파할 것을 사측에 예고하여 큰 무리 없이 포괄적 고용승계가 이루어지는 역사를 만들었다. 

 

같은 해인 2019년 대한민국의 5대 재벌 대기업인 LG그룹의 중추적인 기업 LG화학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동안의 착취와 차별철폐를 내걸고 노동조합의 깃발을 올렸다. LG화학은 매년 수조에서 수천의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고 원청 노동자는 성과급과 임금인상을 통해 돈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을 방어한다는 이유로 지급하던 상여금까지 기본급에 산입하여 실질임금이 줄어드는 상황, 또한 원청 정규직 대비 30~40%의 임금수준으로 100~150시간의 초과근로를 하지 않으면 생계마저 위협받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사측은 하도급업체와의 계약해지, 손배가압류 등 노동조합을 인정하기보다는 무력화시키려는 협박들로 일관했고, 하도급업체의 대표들 또한 롯데첨단소재와 크게 다르지 않아 원청의 퇴직자나 관련자들로서 비약해서 말하자면 원청이 배후에서 직접 지시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자주적 교섭이 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 사측이 주도하는 복수노조 설립을 통해 교섭권 분쟁과 노노갈등을 유도하였으나 이 또한 이전의 어려움을 극복했던 사내하청 조직들의 투쟁의 모습을 교훈 삼아 이제는 안정된 사내하청 조직들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같은 이유로 2020년 설립된 롯데케미칼사내하청지회의 경우는 설립 초기에 원청에서 하도급업체를 변경하여 노사 간의 대립양상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그간의 사내하청 투쟁을 인식한 원청과 변경된 하도급업체의 빠른 노동조합 인정으로 쟁의조정까지 진행하긴 하였지만 비교적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2023년도에 설립된 롯데케미칼사내하청여수지회 역시 큰 갈등 없이 단체협약의 체결이 이루어졌다. 

 

여수국가산업단지 사내하청 노동자 중에 가장 열악한 환경과 노동조건 또 가장 많은 시간외 근로, 10년 차의 최저시급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2022년 3월에 노조를 설립하였다. 비를라카본코리아사내하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합의 깃발을 세운 것이다. 카본이라는 미세분말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10분만 공장 내에 있어도 온몸과 옷 그리고 신발까지 시커먼 카본으로 오염되는 회사이지만 작업복은 차치하고라도 방진 마스크, 방진복, 일회용 장갑까지도 턱없이 부족하게 지급되어 심각한 오염에 노출되어 작업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이었다. 계획되지 않는 작업 상황으로 퇴근하다가도 불려 나가야 되는, 그래서 가정에서 회사 다녀오겠다는 인사가 아닌 동료들에게 집에 잠깐 다녀온다는 인사를 하는 회사이고, 10년 차 노동자의 하루 일급이 7만 원밖에 되지 않아 원청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노동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깃발을 올린 것이다. 그동안 지배당하고 착취당했던 행태들을 알아가고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라는 것을 교섭을 통해 요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은 사측과 총파업투쟁으로 맞서 싸워 끝내는 승리를 만들었다. 이러한 비를라카본코리아사내하청지회의 투쟁을 통해 동종사의 오라이온코리아사내하청지회가 2023년 12월에 또 다른 투쟁의 의지를 담아 노동조합의 깃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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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비를라카본코리아사내하청지회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

[출처: 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

 

 

현재 여수국가산업단지 내에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에 가입된 사내하청비정규직지회는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 롯데첨단소재사내하청지회, DL케미칼사내하청지회, LG화학사내하청지회, 롯데케미칼사내하청지회, 비를라카본코리아사내하청지회, 롯데케미칼사내하청여수지회, 오라이온코리아사내하청지회 등 8개 지회가 설립되어 있고, 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에 별도로 사내하청비정규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를 제외하고는 2018년부터 시작해서 차별받는 신세에 대한 한탄을 하는 것이 아닌 노동자의 힘으로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구조를 스스로 극복하자라는 그들 스스로의 권리찾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각 지회의 대표자들은 ‘노동조합이 없었으면 우리가 사람새끼였겠습니까?’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수없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새로운 인생을 디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목표가 있다. 여수국가산단의 모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파견법을 없애고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의 차별적인 노동계급을 없애고 같은 노동자,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민주노총과 모든 노동세력이 힘을 모아 그것을 위한 노력들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