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3] ‘국민가게 다이소’ 물류센터 현장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깃발을 올리다 / 이재철

by 철폐연대 posted Mar 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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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국민가게 다이소’ 물류센터 현장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깃발을 올리다

 

 

이재철 •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다이소물류센터지회 지회장

 

 

 

시작하자!

 

2022년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다이소 용인남사 물류센터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첫 번째 쉬는 시간에 함께 일하는 동생이 말을 던졌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당신, 재계약이 언제지?”

“내년 1월이에요.”

“몇 개월 안 남았네?”

“네”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들어 마신 후 내뿜으며 나는 얘기했다.

 

“시작하자!!”

“알겠어요. 마침 아는 사람이 그쪽에 있어서 연락해 보겠습니다.”

 

노동조합 설립 관련 현장 논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시초는 이랬다.

 

다이소물류센터 현장은 부족한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몇 개월간의 과중한 업무가 계속 이어졌다. 모두가 지치다 못해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노동자들은 크고 작은 부상은 모두 달고 일했다. 고된 작업으로 인해 한 노동자는 아킬레스건 염증으로 치료차 병가를 요구했으나 연차로 처리됐고 병원비 또한 자비로 충당했다.

 

물류센터 야간 노동자들의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 몸 때문에 며칠을 쉬면 수입이 줄기에 쉴 수가 없는 게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가정, 가족을 위해 벌이의 유일한 밑천인 자신의 몸은 그냥 외면한다. 아프고 힘들어 쓰러지기 전까지 죽도록 일만 한다.

 

얼마 전에 현장 노동자 한 분이 중량물을 처리하다 팔꿈치 인대에 손상이 생겼다. 자신의 부상 사실을 사무실에 알리고 처리방안을 요구했으나 관리자들의 대응책은 ‘역시나’였다. 알려 준다던 처리방안은 답이 없었고 궁금함에 전화를 하면 귀찮다는 듯 응대를 하는 회사의 태도가 결국 동생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그 동생은 고용노동부 관할지청 근로감독관과 함께 회사를 방문하여 현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물류센터 오픈 이후 노동시간에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던 물류시스템을 2시간이나 정지시킨 후에야 회사는 제대로 된 방안을 내놓았다. 또한 아킬레스 염증으로 고생한 노동자에게도 정중한 사과를 했다.

 

노동자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전부터 하나둘 쌓여 있던 모든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었다. 업무의 과중함, 현장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사무직 노동자의 갑질, 현장 일에 현장 사원의 의견 무시, 안전사고에 대한 무책임한 대응 태도 등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여러 문제를 개선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자 근무가 끝나는 이른 아침에 노동조합 설립 준비를 했다. 이때 우리에게 손 내밀어 준 곳이 바로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였다. 지부 간부들과 함께 격주로 모임을 진행하면서 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교육도 함께 받았다. 다 함께 “힘들어요. 하지만 한번 해 봅시다”라는 말을 하면서 4개월 동안 달렸다.

 

시기와 준비가 부족하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조 설립을 위해 매달렸다. 누군가는 ‘무모하다’라고까지 했다. 우리는 현장에 산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조가 만들어질 환경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노조를 만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멘토 역할을 기꺼이 맡아 주신 쿠팡물류센터지회 동지들께 감사드린다.

 

 

3. 본문사진.jpg

2023.01.14.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다이소물류센터지회 창립 총회.

[출처: 다이소물류센터지회]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노조를 만들 거라며 동료들에게 얘기를 하고 많은 수의 동료들에게 지지를 얻었지만 쉽지 않았다. 노조 설립 예정이라는 정보를 알게 된 회사는 전체 물류센터 노동자에 대한 일대일 면담을 했다. 그중 노조 설립의 핵심에 내가 있는 것을 파악한 회사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노조 설립에 힘이 되었던 동료 2명이 급하게 팀장급으로 발탁되어 곁을 떠났고, 나와 함께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하던 동료 1명도 재계약이 되지 않아 어려움이 존재했다. 나를 좋아하고 따르던 동생들이 슬금슬금 나를 피하고, 함께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걸 보면서 현장 노동자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하면서도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고 공론화하는 것을 시작했다. 회사 측에서도 일대일 면담을 통해서 노조 설립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면담이 거듭되고 회사와 대화를 하면서 노조에 대한 주체들의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막연했던 노조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으며, 일종의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함께하기로 결심해 준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무척 소중했으며, 내 일처럼 적극적으로 일하는 동지들이 자랑스러웠다. 내세우진 못하더라도 뒤에서 나를 응원한다는 현장 동료들의 말은 엄청난 힘이 되었다.

 

결국 많은 현장 노동자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노조는 결성되었고,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숨 가쁘게 달려와 드디어 노동조합 깃발을 올리는 총회를 진행했다. 설립 총회 이후 출근 첫날에 동료와 나는 웃으며 얘기했다. 힘들었지만 해냈다고. 힘들겠지만 재미있게 해 보자고 임원/조합원들과 다짐도 나눴다.

 

노조가 결성되기에도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듯 노조를 유지하는 것 또한 혼자만의 잘난 멋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동료 없는 노조는 있을 수 없고, 투쟁과 활동 없이 노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다이소물류센터 현장에 더 많은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 지금도 현장을 발로 뛰고 돌아다니고 있다.

 

다이소물류센터는 주6일 40시간 근무이다. 그리고 현장에 여러 노동안전보건 문제와 휴게 공간 및 복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다이소물류센터에 노조가 생김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을 투쟁해서 바꿔 나갈 것이다.

 

끝으로 ‘천 원을 경영해야 3조를 경영할 수 있다’는 다이소의 성공 신화를 이룩한 박정부 회장에게 덧붙인다. 천 원 경영에 가려졌던 다이소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힘찬 걸음을 디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