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2] 노동자의 힘으로 다시 써야 할 노조법 / 엄진령

by 철폐연대 posted Feb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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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노동자의 힘으로 다시 써야 할 노조법

 

 

엄진령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노조법 다시 쓰기가 필요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의 실현을 구체화하기 위한 법률이다. 노동3권이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말한다. 단결권은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즉 노동조합으로 단결할 권리이다. 단체교섭권은 그 결사를 통해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며, 단체행동권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파업을 비롯한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다. 그리고 노동3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곧 이 권리 행사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할 상대방에게 그 수인의 의무를 지운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3권의 보장으로부터 도출되는 사용자의 의무다.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 혹은 사용자단체로서 자본의 집단, 혹은 정부일 수도 있다. 노동조건 및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노동자의 주장에 대해 권한이 있는 자가 바로 사용자이며, 이들에게 그 의무가 부여된다. 노동자가 단결하여 교섭을 요구할 때 그를 회피하거나 탄압해서는 안 되며,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정작 현실의 노조법은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노조법 2·3조 개정이 요구되는 배경을 보아도 그렇다. 불안정 노동이 확산되면서 불분명해진 노동관계는 과거와 달리 노동자, 사용자를 명확하게 가려내기 어렵다. 노동자이지만 사업자의 외양을 가지거나, 프리랜서와 같이 특정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노동들이 늘어난다.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그리고 문화예술 노동자 등 수많은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그렇다. 사용자라는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분명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이윤을 얻고 그 권리실태에 영향을 미치지만 원청 사업주는 직접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에서 벗어나고, 종종 사용자가 아닌 거래 상대방, 서비스 이용자 혹은 중개자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해 노동관계를 은폐하기도 한다. 이러한 은폐를 걷어 내는 것이 노조법의 역할이지만 노조법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지 오래다. 오히려 현재의 노조법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대부분 불법으로 만들어 버리고, 기업은 이 불법이라는 법적 판단에 기대어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조선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원청인 대우조선이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에서 보듯이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원청 사업주는 책임을 비껴가면서 손해배상의 청구를 마치 정당한 자기 권리인 양 행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노조법의 한계는 다만 2조, 3조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의 권리 행사를 제약하고 압박하는 요소요소의 악법 조항들과 노동3권 행사를 좁히고 불법으로 만드는 노동3권 보장의 구조 자체에서 기인하는 한계들이 크다. 이 한계들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때로는 완화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럴 때 노동조합의 활동은 다소나마 원활해지고 노동자들의 목소리 내기가 조금은 수월하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의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노동자들의 투쟁은 불온시 되어 왔고, 노동조합에 대한 엄혹한 감시와 통제가 시도되기도 했다. 정권의 성격에 따른 편차와 무관하게 노동자들의 투쟁에는 언제든 불법의 딱지가 붙여질 수 있고, 노조법이 종종 그 도구로 활용된다. 노동3권 보장이라는 취지와 달리 오히려 노동자들의 투쟁을 불법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되고 있는 셈이다. 노조법 전반의 다시 쓰기가 필요하다.

 

노동3권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노조법의 실상

 

설립신고제도의 문제

“노동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바로 헌법 제33조 제1항의 내용이다. 노동3권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는 점을 되새길 때, 현행 노조법에 존재하는 ‘이 법에 의하여 설립된 노동조합’,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등의 표현을 담은 조항은 노동3권을 제한하는 문제적 규정이다. 예를 들어 제7조(노동조합의 보호요건) 제3항은 “이 법에 의하여 설립된 노동조합이 아니면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라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에 의해’ 노동조합을 설립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노동조합의 설립신고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설립신고증을 교부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결권 자체를 가로막았던 역사가 우리에게 있다. 실제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나 공무원 노동자 등에게 노동조합이 인정되지 않았던 시절,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근거로 작용했었다. 심지어 위반 시 처벌규정을 두고 있어 언제든 자주적으로 결성된 노동조합을 탄압할 수 있는 규정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이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면서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로 조직된 노동조합들의 설립신고를 받아들였고 그로써 설립신고제도가 노동3권을 제한하지 않는 양하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워 등장하는 건설기계 노동자, 화물운송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이러한 단결권 침해의 역사와 같은 맥락 속에 있다.

 

노조 운영의 자주성을 해치는 조항들

사실 문제는 ‘이 법에 의한’이라는 표현보다 이하 상세 규정들이다. ‘이 법’에서는 노동조합의 설립 절차, 요건, 각종 신고, 노조 운영, 단체교섭의 절차, 쟁의행위의 절차, 교섭 및 쟁의행위의 내용 등에 대해 매우 상세히 규정하고 있는데, 벌칙을 포함해 총 96개 조항, 법률로서는 많지 않은 조문의 수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설립과 활동, 교섭 및 쟁의행위 등에 대해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상세한 규정은 대부분 노동3권의 발현을 제한하는 틀로 작동한다. 노동조합의 자주적 민주적 운영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 쓰여 있지만, 노동조합의 운영과 임원선출 등에 대한 상세한 법률 규정은 오히려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친다. 임원의 선출 및 임기 등에 대한 상세 규정, 임원의 자격(기업별 노조의 경우 해고자의 임원 자격이 문제 된다), 노동조합의 규약에 대한 행정관청의 시정명령, 운영상황 제출 요구 등 노동조합 운영에 대한 행정관청의 개입, 노동조합 활동 시간(근로시간 면제 제도)에 대한 법적 제한 등이 모두 그렇다.

 

단체교섭권을 사용자에게 넘기는 창구단일화제도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에 대한 제한은 더욱 심각하다. 노동조합은 기업별이든 산업별이든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고, 교섭의 단위나 형태 등 역시도 자유롭게 선택하고 요구할 수 있다. 결국 그것이 이루어지느냐는 노사 간의 힘의 문제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현행 노조법은 복수의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경우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소수인 노동조합은 교섭의 권리를 침해당한다. 사용자가 응하는 경우에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있지만(자율교섭), 이러한 가능성은 오히려 사용자에게로 그 실현 여부를 넘겨 버린다. 교섭에 응해야 할 의무를 진 사용자가 오히려 교섭권의 실현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교섭 요구에서부터 창구단일화 절차의 참여 방법, 과반수 노조 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합원 수 산정의 기준 등 세부적인 사항들을 모두 법률로 정하면서 행정관청의 과도한 개입이 이루어지는 문제 또한 당연히 존재한다. ILO 기본협약 비준 이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을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에 따른 단체교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노조법 제30조 제3항)는 규정을 덧붙였지만, 창구단일화 절차 자체가 사업장 단위별 교섭을 강제하고, 다양한 교섭의 가능성 자체를 사용자의 선택에 내맡기고 있다는 점에서 무의미하다.

 

노사의 자율적인 교섭을 침해하는 행정관청의 시정명령

이 같은 권리 제한은 단체협약과 관련한 부분에서도 이어진다.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행정관청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고, 행정관청은 위법한 내용에 대해 시정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법한 내용에 대한 시정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이 과정은 주로 후퇴한 법제도를 현장의 단체협약 내에 통용시키는 행정관청의 개입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교섭창구단일화 절차 도입 이후 많은 노조에서 가지고 있던 ‘유일 교섭단체 조항’이 문제가 되었고,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노동개악을 추진하면서 정부의 정책을 기준으로 대대적인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정부의 의지대로 노사관계를 주무를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처럼 제도의 운용이 문제이지만, 그 이전에 행정관청이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시정명령을 통해 개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율교섭의 원칙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노동조합의 자주성, 민주성을 해치는 조항들

그 외에도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해치는 노조법상의 내용은 다분하다. 일례로 제29조(교섭 및 체결권한) 제1항에서는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그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을 위하여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고 정하고 있는데, 지금은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이 조항은 사실 1997년에 기존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두 개로 운영되던 법률을 현재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으로 통합 제정하면서 개악된 조항이다. 구 노동조합법에서는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는 그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을 위하여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와 단체협약의 체결 기타의 사항에 관하여 교섭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를 ‘노동조합의 대표자’에게 ‘단체협약 체결’의 권한을 명시하는 것으로 변경함으로써 노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대표적 도구로서 총회인준조항(교섭된 사항에 대해 조합원의 총의를 물어 협약체결을 결정하도록 하는 노동조합의 규약)을 무력화시킨 조항이다. 최근의 판결에서 해당 규약의 효력 자체는 인정하고 있지만, 그렇게 직권 조인된 단체협약 자체는 여전히 제29조 제1항에 의해 효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조항에 속한다.

 

쟁의행위를 억제하는 조정전치주의

또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에 대해서도 법으로 정하고 있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구 노동조합법에서는 단체협약의 효력 기간을 1년을 초과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었으나, 1997년 노조법 제정 시 이를 2년으로 확대했고, 2021년 1월 개정 시 다시 3년으로 확대했다. 이는 단체행동의 절차와 목적 등에 대한 상세규정과 함께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규정 중 하나이다. 단체행동을 법의 기준에 따라 적법하게 행하는 것은 사실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우리나라는 단체행동에 앞서 조정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조정전치주의). 노동조합의 기획에 따라 파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노동위원회의 쟁의조정절차를 거친 후에야 파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 여기에서만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단체행동권을 가로막는 노조법의 구조적 문제

첫째, 노동위원회의 쟁의조정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이 법에 의한’ 노동조합이어야 한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더라도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지 못하면 노동위원회의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적법한 틀 내에서의 쟁의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때로 노동자들은 단결된 힘으로 이를 돌파하기도 한다. 화물연대의 투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힘이 없는 노조라면 법 테두리 내에서 보호받는 파업은 애초 불가능하다. 둘째,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서 교섭대표노조가 되면 교섭권과 교섭결렬시 파업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일단 열린다고 볼 수 있지만, 소수노조의 경우에는 불가능하다. 교섭대표노조가 합의한 사항에 불복한다고 하더라도 소수노조가 독자적으로 적법한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쟁의가 발생하고, 그에 대한 조정절차를 거쳐 쟁의행위에 적법하게 돌입할 수 있는데, 교섭권이 없는 소수노조로서는 그 모든 게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공정대표의무’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이의 판단은 노동위원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또다시 행정관청의 개입이 이루어지고, 소수노조의 노동3권은 철저히 배제된다. 셋째, ‘노동쟁의’가 발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노사 어느 일방은 상대방에게 이를 통보하고 노동위원회 조정절차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노동쟁의에 대한 노조법 제2조(정의) 제5호의 규정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이다. 이는 단체협약 체결의 과정, 즉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장의 불일치로 제한된다. 이때에만 적법한 단체행동을 할 수 있다는 요건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단체협약을 사측이 이행하지 않는 경우, 그 이행을 촉구하는 단체행동 역시 법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1년에서 2년, 다시 3년으로 확대하는 과정은 법의 틀 내에서의 단체행동의 가능성을 그만큼 축소하는 법 개악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임금 등에 관한 사항으로 단체행동의 목적을 제한

노동쟁의에 대한 정의 조항에서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으로 단체교섭 사항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정책이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후퇴시키는 경우, 연금제도의 개악,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이나 민영화, 노동법의 개악 등 수많은 정부의 제도 개악에 맞서 노동자들은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파업을 할 수 없다. 다른 노동자의 투쟁을 함께하는 연대파업도 당연히 불법이 된다. 오로지 자신이 속한 기업 내에서, 임금 등에 대한 사항만을 목적으로 할 때에만 적법한 것으로 보는 법 규정은 노동조합의 시야를 좁히는 원인이다. 법을 지키면 이기적인 노동조합이 되고, 그 틀을 벗어나면 불법으로 처벌당하는 것이 법이 야기한 현실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민주노총 등이 했던 수많은 대정부 집회는 무엇이었을까? 그 대부분은 각각의 사업장에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을 가지고 단체교섭을 하고, 노동쟁의 상태가 발생하고, 노동위원회 조정절차를 거쳐, 마지막으로 쟁의권이 확보되는 그 시기를 힘들게 맞추고 맞추어서 함께 거리로 나오는 과정인 것이다. 아니면 연차를 쓰고 집회에 나오거나. 그렇지 않은 대정부 투쟁의 경우 후폭풍은 각 노조, 각 노동자에게 징계와 손배, 대표자의 구속 등으로 쏟아지게 된다. 역대 수많은 정권들이 그렇게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구속시켰다.

 

단체행동권 제약으로부터 야기되는 손배와 형사처벌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이 자율적으로 모여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라는 연대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이 연대체를 운영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구속의 위협과 벌금에 노출되고 있다. 정권이 붙이는 죄목은 노조법 위반이 아닐 수 있겠지만, 이 노동자들을 구속의 위협으로 내모는 본질은 이 같은 노조법의 노동3권 제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개정이 요구되고 있는 노조법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해당 조항은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특히 제약하는 규정으로 문제가 되지만, 누구라도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를 제대로 행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할 노조법이 적법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길을 극도로 좁혀 두었기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요구하는 내용에서는 ‘이 법에 의한’이라는 단서를 삭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외 노동3권을 침해하는 수많은 조항들

그 외에도 노동조합이 주도하지 않은 파업을 불법시하는 조항, 필수유지업무 범위를 광범위하게 규정하여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조항, 쟁의행위의 수단이나 구체적 방법 등에 대한 제한 규정 등이 모두 노동3권을 훼손하는 조항이며, 결정적으로 불법으로 규정되는 쟁의행위에 대해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파업이 불거지면 정부는 일단 ‘불법’이라는 낙인부터 찍고 본다. 그 낙인 자체가 노동자들의 권리 행사를 위축시키고,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이다. 적법한 쟁의행위의 가능성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데, 그를 벗어나면 형사처벌이 되고, 노조법 위반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업무방해죄가 씌워지고, 사용자는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현실. 그 시작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의 구체적 실현이라는 법의 취지를 망각하고 오히려 권리의 제약과 파괴를 의도하는 노조법의 악법성에 있다. 다만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조항이 노동3권 침해행위를 방어하는 조항이지만, 최근 정부는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를 규정해야 한다는 개념도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3권 보장을 위해 노동자의 힘으로 다시 써야 할 노조법

 

1953년 근로기준법과 함께 제정된 노조법은 구 노동조합법과 쟁의조정법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을 포함해 7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시간 동안 걷어 낸 악법도 있지만, 여전히 노동자 투쟁에 대한 통제 기조는 면면히 살아남아 최근 보수정권하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존재했던 업무감사권 규정이나, 1990년 전노협에 가입한 160개 노조에 대해 시도된 업무조사권 발동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개혁을 외치며 낡은 법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하지만 진짜 개혁되어야 할 낡은 것은 노동자를 비롯한 권리주체의 투쟁을 불온한 것으로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이다. 자본이 기업의 운영을 통해 이익을 쌓는 것은 애초 노동자의 협력 없이는 발생할 수 없다. 사회의 운영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의 구성원인 노동자들이 당연히 목소리를 내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파업을 통해 자본의 이윤추구를 중단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은 자본과 대등한 교섭력을 갖추게 된다. 일손을 멈추고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노동자들은 사회의 일주체로서 세상에 등장하며, 사회의 운영에 참가한다. 정부는 조직된 노동조합을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강자로 규정하지만, 노동조합을 통해 그제야 획득된 최소한의 균형일 뿐이다.

 

권리 주체가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사회는 균형을 유지할 수도 정의를 구현할 수도 없다. 자기 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결집과 행동이 보장되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논쟁과 충돌, 대화와 투쟁이 권리로서 보장될 때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정의’와 ‘평등’, ‘인권’에 대한 지향을 놓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노동관계에 관한 법과 제도가 노동자를 통제하고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는 법률로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동관계법제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노동권을 온전한 노동자의 권리로 만들고, 단결의 주체를 확장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헌법의 정신에 따라 노동관계에 대한 일반적 원칙을 세워 내고, 그에 따라 세부 규율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2015년 철폐연대 법률위원회와 민주노총 법률원이 공동으로 연구했던 결과물에서 제시한 노조법 전면 재개정의 방향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노조법 다시 쓰기’가 제도적 투쟁만이 아닌 노동자 투쟁 면면에서 구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노조법 전면 재개정의 방향

 

1. 개별 노동자의 노동인권으로서 파업권과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며, 각각의 권리는 고유한 자유의 발현을 목적으로 한다.

2. 노동조합은 시민사회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증진하는 결사체로서 국가는 노동조합의 설립과 가입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차별 없이 지원하여야 한다.

3. 노동자 개념을 축소하여 단결의 자유를 제한하여서는 아니 되며, 행정관청에 의한 사전적인 노동조합 설립신고에 대한 통제는 허용되지 않는다.

4. 산업민주주의와 국가에 대한 정치적 자유로서 정치파업과 연대파업을 할 권리를 보장한다.

5. 파업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여야 하며, 파업권 행사는 폭력행위가 아닌 한 정당한 행위로서 형사책임을 지울 수 없다.

6. 파업권의 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위법행위 없이 특정 노동자에 대한 선별적인 징계나 손해배상·가압류를 할 수 없다.

7. 단체교섭권의 주체와 대상의 결정은 교섭권 고유의 자유의 영역으로 사전적인 제한을 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8. 단체교섭의 상대방은 노동자들의 파업권의 행사를 통해 하나 이상의 기업 및 국가를 사용자로 구체화된다.

9. 노동조합의 운영은 원칙적으로 일반시민법적 민주성을 준수하고 조합규약에 따른 민주적 절차를 적용받으면 족하고 노조법에 의한 별도의 통제와 제한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10. 근로계약상의 사용자가 아니라도 단결침해행위를 하는 자는 누구든지 부당노동행위로서 처벌될 수 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철폐연대 법률위원회와 민주노총 법률원의 법률 활동가들이

<다시 쓰는 노조법 - 노동3권의 온전한 실현을 위한 노조법 재구성의 방향>이라는

공동연구 작업을 진행했고, 2015년 관련 자료들을 모아 연구모음집을 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