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2]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을 위한 정책 방향 / 장귀연

by 철폐연대 posted Feb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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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포커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을 위한 정책 방향

 

장귀연 • 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 소장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플랫폼 종사자 법안」)이 발의되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장철민 의원이 대표발의했으나 사실상 정부의 입법안이다. 2021년 11월호 <질라라비> 법률포커스에서는 「플랫폼 종사자 법안」이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을 노동자로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존하는 노동법의 적용에서 배제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내외에서는 이미, 플랫폼 노동자들도 사용자에게 종속된 노동자이므로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동법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공식적으로 제출되고 있다. 2021년 12월 9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입법지침(안)」(이하 「유럽연합 플랫폼 노동 입법지침안」)을 발표했다. 12월 28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플랫폼 종사자 법안」에 대한 보완·수정 의견을 국회에 전달하였다(이하 「국가인권위 의견 표명」). 이번 호 정책포커스에서는 최근 나온 이 두 가지 제안을 소개하면서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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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5. 배달, 대리운전, 택시, 웹툰 작가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플랫폼종사자법 입법 추진 중단 및 플랫폼 노동에 노동법 전면 적용을 주장하는 국회 앞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플랫폼 당사자 및 시민사회 기자회견 주최 단위]

 

유럽연합(EU)의 플랫폼 노동 입법지침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연합의 행정부 격인 기구로서 정책을 제일 처음 발의하고 수립하며 집행을 감독하는 곳이다. 집행위원회가 발의한 입법지침이 유럽연합 의회를 통과하면 회원국들은 지침에 맞게 국내 법과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

이번 「유럽연합 플랫폼 노동 입법지침안」은 우선,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이 자유로운 개인사업자인지 종속된 노동자인지 가려낼 기준을 제시하였다. 계약 형식과 상관없이(즉 고용계약이 아니더라도), 다음 다섯 가지 지표 중 두 개 이상을 충족하면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에 종속된 노동자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 가지 지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플랫폼이 노동자가 받는 보수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보수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경우 △둘째, 플랫폼에서 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복장 등 외관, 고객 응대 방식 등 포함)을 제시하고 노동자들이 일할 때 이를 따르도록 하는 경우 △셋째, 위치추적 장치, 앱 알고리즘 등을 통해서 노동과정을 감독하거나 일의 결과를 평가하는 경우 △넷째,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이나 일감 수락 여부를 선택하는 등의 자율성을 제한하거나 이와 관련한 제재가 있는 경우 △다섯째, 노동자가 플랫폼을 통해 받는 일 외에 독자적으로 자기 사업을 할 여지가 사실상 제한되는 경우이다.

사실 지금 플랫폼 노동이라고 간주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해서 따져 보면, 이 다섯 가지 지표 중 두 가지 이상 해당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플랫폼을 통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플랫폼 기업에 종속된 노동자로 간주할 수 있으며, 만약 이 다섯 가지 사항에 모두 해당하지 않거나 한 개밖에 해당하지 않아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하려면 플랫폼 기업 측이 소송 등의 절차를 통해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지점은 노동자가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대해 알 권리를 적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플랫폼은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적으로 일감 배정, 보수, 노동시간, 평가, 제재, 차단 등을 결정하지만, 노동자들이 이 과정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플랫폼 노동 입법지침안에서는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에 사용되는 변수에 대한 정보를 노동자와 노동자 대표에게 제공할 의무를 얘기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같은 날 「플랫폼 노동 입법지침안」과 함께 「1인 자영업자의 단체협약을 위한 가이드라인(안)」도 발표하였다. 설사 고용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기업이나 대자본과의 계약에 의존해 일하는 자영노동자들에게는 노동3권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플랫폼 종사자 법에 대한 의견 표명

 

국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 계류 중인 플랫폼 종사자 법에 대한 의견 표명을 전원위원회 결정으로 발표하고 국회에 전달하였다. 국회인권위원회는 여기서 다음 다섯 가지의 주문을 하였다.

첫 번째는 “‘일의 배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종사자’의 경우 「근로기준법」 등에 따른 근로자로 추정하고 그 반대의 입증 책임은 플랫폼 운영자에게 있음을 명시”하라는 것이다. 「플랫폼 종사자 법안」에서는 플랫폼 종사자가 근로기준법 등에 규정된 근로자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노동법을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플랫폼 노동자의 대다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공식적인 고용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개인 프리랜서로 일한다. 물론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노동자라고 소송을 할 수는 있다. 한국에서 거의 이십 년 동안 특수고용 노동자의 근로자 지위 인정 소송이 종종 있었고, 결과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판결도 있었고 패소한 경우들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설사 노동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박탈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할지라도 그 중에서 실제로 소송까지 할 만한 시간과 비용과 노력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매우 극소수이다. 따라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일단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밑져야 본전 격이 된다. 그러므로 국가인권위원회 의견 표명도 표현하고 있듯이 “현실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하려면, 기본적으로 일단 노동자로 간주하여 노동법의 적용 대상으로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를 기업이 입증해야 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거나 불이익 조치 등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의 연대 책임을 명시할 것을 주문하였다. 많은 경우 플랫폼 노동은 중층적인 구조로 이루어진다. 노동자가 직접 플랫폼에 가입하여 일하기도 하지만 중간에 관리업체가 존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대리운전이나 음식 배달을 보면, 대리운전기사나 배달라이더들은 ‘카카오드라이버’, ‘쿠팡이츠’ 같은 플랫폼에 직접 가입하기도 하고 지역 업체에 소속되어 업체가 사용하는 대리운전이나 배달 앱을 받아 일하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 플랫폼 방식이 많이 확산되고 있는 가사나 돌봄, 인터넷상에서 마케팅, 문서 작성 등의 직종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리하여 플랫폼 노동에서는 누가 사용자인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플랫폼 종사자 법안」에서는 플랫폼 운영자, 플랫폼 사업자 등등을 가려 책임을 규정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복잡하게 중층화되어 있어 법망을 빠져나갈 여지도 있다. 「국가인권위 의견 표명」은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주들은 다 사용주로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노동자의 정보 요청권도 이 부분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플랫폼 종사자 법안」에서 플랫폼 운영자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정보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둠으로써 사실상 정보 접근권의 실효성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세 번째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등 집단적 노동권 보장을 명시하라고 요청했다. ILO 협약 등을 근거로 하여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는 단지 고용계약을 맺은 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영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권리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넷째는 수수료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마련하라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괴롭힘 금지의 수범자 범위를 “플랫폼 이용 사업자”1)에서 “누구나”로 넓힐 것을 요청하였다.

사실 근본적으로 보면 「플랫폼 종사자 법안」 발의 자체가 문제이다. 즉 ‘근로자’가 아닌 플랫폼 ‘종사자’라고 칭하면서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떼어 내어 특별법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가급적 노동자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셈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법을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보편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고 기업들이 제대로 사용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국가인권위 의견 표명」은 「플랫폼 종사자 법안」이 플랫폼을 통해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 「플랫폼 종사자 법안」에서 이는 플랫폼 노동자를 직접 관리하는 관리업체를 말한다.

플랫폼 노동자 권리를 위한 핵심 정책

 

플랫폼 노동은 넉넉히 잡아도 근래 10년 사이에 성행하게 된 새로운 노동 형태다. 일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주로 플랫폼 노동으로 수행되는 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일감이 전자적 매체인 플랫폼을 통해서 노동자들에게 분배된다는 방식이 새로운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하다면 단순한 방식 변화로 기업들은 전통적인 고용과 노동의 방식에 기반하고 있던 노동권을 침해할 수 있었다. 사용자나 사용자를 대리하는 관리자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일을 시키거나 감시하거나 제재와 보상을 결정할 필요가 없어지고, 컴퓨터 프로그램이 알고리즘에 따라 이 모든 것을 알아서 결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플랫폼 기업들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이윤을 얻으면서도 이 노동자들에 대해서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플랫폼 노동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나타난 초기에는 이론적으로든 정책적으로든 다소 혼란스러웠다. 플랫폼 노동의 성격이 무엇인지,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설왕설래가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을 경과하며 연구들이 쌓임에 따라, 앞에서 살펴본 최근 국내외 공식적 견해에서 나타나듯이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에 대해 이제는 대략 윤곽이 잡히는 듯 보인다. 「유럽연합 입법지침안」이나 「국가인권위원회 의견 표명」에서 중요하게 얘기된 정책들을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계약 형식에 상관없이 기업이 제시하는 일을 하여 보수를 받는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임금근로자로 추정해야 하고, 역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사업을 영위하고 이익을 얻는 기업들은 이 노동자들의 사용자로 간주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뿐 아니라 더 넓게는 이른바 특수고용 방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업을 위해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는데 단지 계약 형식이 근로계약이 아니라고 해서 사용자가 아닌 것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오직 계약 형식의 차이만은 아니기는 하다.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사용자나 이를 대리하는 관리자의 직접적인 지시와 통제 없이도 자동적으로 노동자들이 일을 하게 만들고 그 과정을 감시하고 상벌이 정해지기도 한다. 플랫폼 노동이 바로 이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에서 보면, 예를 들어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등 노동자들의 자율성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 기술상의 변화일 뿐 노동자가 기업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법도 현대 기술에 맞추어 이른바 사용-종속 관계를 재규정해야 하는데, 미국의 ABC 테스트나 「유럽연합 입법지침안」의 5가지 지표 등이 바로 이를 위한 것들이다. 플랫폼 노동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노동자의 보호와 권리를 부여할 근거가 무엇인지 혼란도 있었지만, 현재는 플랫폼 노동자 역시 근본적으로 사용-종속 관계에 있는 노동자라는 견해가 점점 더 근거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고용계약 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노동자로 간주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 입증을 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의 근로자 지위 인정 소송은 고용계약이 아니어서 근로자로 간주되지 않지만 사실상 사용-종속 관계에 있는 노동자라는 점을 주장하는 방식인데, 이를 반대로 뒤집는 것이다. 「국가인권위 의견 표명」에서 지적한 것처럼, 개인인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입증하기 위해 소송 등의 절차를 밟기란 지극히 어렵기 때문에, 노동자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절차의 입증 책임은 기업이 맡도록 해야 현실적인 것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에게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갖게 해야 한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따라 일감 분배, 보수, 평가, 제재까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노동자가 이에 대해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어떤 기준에 따라 더 많은 일감과 더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지 정확히 모르면, 불안한 마음에 플랫폼의 지시에 무조건 순응하거나 노동강도를 자발적으로(?)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해고에 해당하는 퇴출을 당했는데도 노동자는 그것을 모르고 왜 일감이 안 들어오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플랫폼 노동에서 알고리즘에 투입되는 요소와 과정을 알려 주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취업규칙을 공개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당수의 플랫폼 기업들은 기업 비밀이라고 하여 알고리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취업규칙을 알려야 할 의무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에 대해서 노동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알고리즘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집단교섭도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단지 더 빨리 많은 일을 하도록 하게끔 알고리즘을 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도 고려하는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구성하도록 교섭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교섭하기 위해서는 먼저 알고리즘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국가인권위 의견 표명」에서 인용한 ILO 협약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는 단지 고용된 노동자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용-종속 관계에 대한 기준을 재설정하는 것과는 별도로, 고용된 노동자로 간주하든 자영노동자로 분류되든 기업의 일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기업 앞에서 개인으로서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란 이러한 힘의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상쇄하기 위해 수립된 사회적 제도라는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