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11] 또 다른 출발을 앞두고, 카카오모빌리티 교섭 합의에 대하여 / 김주환

by 철폐연대 posted Nov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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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또 다른 출발을 앞두고,

카카오모빌리티 교섭 합의에 대하여

 

 

김주환 •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

 

 

 

200만 플랫폼노동의 시대,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정부 조사 결과 직접 플랫폼을 통하여 일감을 받아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22만 명이나 직간접적으로 플랫폼을 이용하는 종사자는 179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최근 플랫폼, 특고, 프리랜서 등을 합치면 2016년 기준으로 515만 명에서 2020년에는 704만 명으로 189만 명 이상 늘었다. 분명한 것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노동기본권이 박탈된 채 하루하루 생존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플랫폼노동자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과 대책이 한국 사회의 주요의제가 되었다. 대리운전노동자들은 특수고용, 플랫폼노동자인데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카오에 사용자 책임 요구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10여 년을 줄기차게 싸워 왔다. 지난 2020년 7월 17일, 노조설립 신고 428일 만에 노조신고 필증을 쟁취하였다. 노조법상 3일이면 해결될 일이 1,000일이 걸려야만 했다. 그리고 대표적인 플랫폼기업인 카카오모빌리티에 교섭을 요구하였으나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신들이 사용자인지는 모르겠다며 교섭을 거부하였다.

 

지노위와 중노위의 교섭해태에 대한 시정명령에도 불구하고 카카오모빌리티는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법적·사회적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당사의 교섭의무 존부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와 판단이 필요하다”라는 핑계를 대며 시간 끌기로 일관하였다. 노동조합은 노조의 사할을 걸고 단체교섭 쟁취투쟁을 벌여 나갔고, 작년 10월 플랫폼기업의 독점적 전횡이 사회적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상황에서 장철민 의원실의 중재로 성실교섭에 합의하였다.

 

성실교섭에는 합의하였으나 순탄한 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창구단일화 절차부터 쉽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카카오모빌리티에 교섭개시공고를 대리운전기사들이 사용하는 웹에 공지할 것을 요구하였고, 최초로 플랫폼에 공지가 되었다. 그리고 교섭참가 신청을 한 노동조합이 5곳이나 되었는데, 화섬노조 카카오지회, 한국노총 전국연대노동조합, 지역노조 2곳이었는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이 대표교섭단체로 확정되었다.

 

협상테이블에 앉은 카카노모빌리티의 태도는 온화하였으나 자신이 사용자인지는 모르겠다는 태도는 완강하였다. 노동조합은 사측이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을 부정한다면 교섭을 해태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결국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은 인정하되 근기법상 의무와 관련해서는 교섭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으로 하고 교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교섭 속도를 내려는 즈음 카카오가 카카오모빌리티를 투기자본 MBK에 매각하는 협상을 한다고 공지하였다. 노동조합은 카카오모빌리티가 투기자본에 매각된다면 사회공공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으며 교섭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교섭을 중단하고 매각철회 투쟁에 돌입하였다.

 

크루유니온(카카오지회)과 논의를 거쳐 매각철회 공동투쟁을 벌여나가기로 하고 기자회견 등 사회여론화 투쟁을 전개하였는데, MBK 앞 규탄대회 직전 카카오는 매각을 잠정 유보한다고 발표하였다. 노동조합은 유보가 아닌 완전철회와 카카오의 사회적 책임의 핵심인 사용자 책임으로서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카카오그룹사들이 모여 있는 판교역 광장에서 농성투쟁에 돌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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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8. 플랫폼노동자대회. ‘플랫폼 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출처: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카카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조금 돌아가 보자. 카카오톡 이용자 수 4,600만, 카카오T 가입자 수 2,800만, 카카오뱅크 이용자 수 1,671만 명, 택시기사 90%와 대리운전기사 70% 카카오앱 이용, 카카오가 플랫폼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 만의 현주소이다. 카카오는 소비 편의성을 제공하였고 대중들은 이에 열광(?)하였다. 플랫폼 경제의 선두주자를 자임한 카카오는 몸집을 키워 왔고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목을 맨 정부도 카카오의 후견인이 되어 샌드박스 제도 등을 통하여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19라는 재난이 터졌고 전 세계가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지쳐 있었지만, 비대면(untact) 경제의 활성화는 카카오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카카오는 플랫폼 영향력을 바탕으로 모빌리티 산업을 주도하면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제 막 출범한 카카오뱅크는 수십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대표적 은행인 국민은행의 시가 총액을 가뿐히 넘어섰고, 김범수 의장은 한국 사회 부자의 상징인 삼성 이재용을 제쳐 버렸다. 흙수저 출신의 벤처사업가가 일군 IT 기업이 재벌을 이긴 사건은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영화 매드맥스(Mad Max: Fury Road, 2015)를 패러디한 머드맥스(Mud Max)라는 홍보영상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매드맥스에서 생명의 근원인 물을 통제하는 시타델의 독재자 임모탄에 맞선 한 무리 여성들의 목숨을 건 사막의 질주에 환호하였고, 갯벌의 경운기로 재현된 질주는 코로나19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쾌감을 주었다. 코로나19라는 어둠 속에서도 카카오는 홀연 천상을 향한 질주로 미래로 가는 길목을 장악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잘나가던 카카오, 한국 경제의 미래먹거리로 21세기에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유령을 다시 불러낸 IT·플랫폼 산업의 선두주자는 순식간에 사회악의 화신(?)이 되어 여론의 몰매를 맞고 도마 위에 올라와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매드맥스에서 독재세력을 몰아내고 지배자가 된 프리오사는 임모탄이 독점하던 물을 군중들에 나누어 주는 것으로 질주는 아름답게 끝난다. 그런데 끊임없는 사업 확장의 질주로 플랫폼을 장악한 카카오는 프리오사가 아니었다. 카카오는 시장을 장악하자마자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에게 수수료 폭탄을 부가하는 수금본색을 드러낸 진격의 거인이었을 뿐이고, 그들의 질주에 환호한 것은 자본시장과 부유하는 언론뿐이었다. 일거리와 먹거리를 빼앗긴 자영업자들은 카카오의 횡포에 분노가 쌓여 갔고 코로나19로 인한 생존위기 속에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어 언론은 카카오의 문제들을 파헤치고 있으며 정부와 정치권도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에 의한 횡포로부터 자영업자를 보호하자는 명분하에 카카오 규제에 너도나도 나서고 있다. 이대로 가면 뭔가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이제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자.

 

카카오가 통제를 넘는 과속을 하게 된 요인 중의 하나는 자본구조에 있는데, 카카오모빌리티는 시장 장악력을 확대하기 위한 자원 대부분을 외부에서 조달하였다. 사모투자펀드(PEF) TPG와 칼라일 그룹, LG 등으로부터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하였다. 투자된 자본의 이윤보장과 기업자금의 순환을 위하여 기업공개를 앞둔 수익성 개선을 조급하게 서두르는 과정에서 이 상황을 초래하였다. 따라서 카카오 차원의 획기적인 전환이 없다면 카카오모빌리티의 선택의 여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자구책 ‘사회적 책임 강화 방안’으로 확인되었다.

 

한편 카카오가 사회적 비난 여론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코로나19로 생존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분노가 주요 계기가 되었겠으나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경쟁이 아닌 독점을 통하여 경제적 효율성이 높아지는 플랫폼 산업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는 모빌리티 산업에서 자본 간의 주도권 경쟁은 불가피하다. 기존 재벌들도 이미 핵심 주도 산업이 될 모빌리티 산업에 발을 담그고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던 터에 작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하고 나아가 부추겼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상황이 더 나아가 카카오가 몇몇 직종에서 철수하는 것이 아닌 모빌리티 산업에서 이윤구조를 축소하고 플랫폼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나아간다면 작금 상황을 즐기고 있는 재벌들도 태도가 돌변할 것이다. 정부는 다시 ‘4차 혁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호 속에 자본의 보호자가 될 것이고 부유하는 언론은 ‘규제 완화’를 외칠 것이다. 그러면 대중들은 누려온 편의성과 정당성 사이에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일부 언론은 과도한 규제를 외치고 카카오 주식을 소유한 주주의 볼멘 목소리가 언론에 실리고 있다. 윤석렬 정부는 플랫폼 산업 관련 자율규제를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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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8. 판교에서 대리운전노동자 투쟁 문화제. [출처: 대리운전노조]

 

 

플랫폼 기업과 대리운전기사 간 첫 단체협약 체결

 

카카오가 매각을 철회하고 다시 시작된 교섭, 그런데 다른 장벽에 맞서야 했다. 앞에서 언급한 사모펀드 TPG가 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플랫폼노동의 노사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고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는데, 합의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그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교섭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결국 노동조합은 투쟁의 수위를 올리고 폭을 넓히고자 하였고, 판교 광장을 넘어 국감을 앞두고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이 벌어지는 한복판 국회 앞으로 투쟁을 확장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지부장들의 집단삭발로 시작될 끝장투쟁을 앞두고 잠정합의에 이르렀다.

 

이번 교섭의 핵심의제는 프로서비스 유료화 폐지였다. 플랫폼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하여 일감경쟁인 ‘자발적 착취’ 구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카카오모빌리티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 공정해야 할 경쟁수단을 우선배차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고 팔고 있었는데, 이는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구체적인 경영정책 관련해서는 노동조합과 합의할 수 없다고 버티는 사측에 맞서 내년 상반기 내에 프로서비스 유료화를 폐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주요의제인 배차정책(알고리즘), 대리운전요금, 수수료 등 임금성에 대하여서는 방향과 관련하여 선언적 수준에서 합의하였다. 임금성과 관련은 합의 대상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측에 맞서 교섭대상임을 확인하였고, 이를 내년 상반기에 추가 협상을 통하여 구체화하기로 한 것이다. 그 밖에 고충처리위원회와 산업안전위원회 설치와 이를 위한 노조전임활동 보장, 노조사무실 제공 등 노조활동 보장, 현장대리운전기사에 대한 선물비 지급 등에 합의하였다.

 

잠정합의에 이르자 사측은 모빌리티 기업 관련 세계 최초 사례라고 자평하였는데, 진실과 과장이 섞여 있다. 현장기사에 대한 선물 지급의 경우 사측은 주로 카카오를 통하여 일을 하는 대리기사(전속성)를 중심으로 하자고 제안하였고, 노조는 적용 범위를 타당한 범위로 확장하자고 요구하였고 관철시켰다. 우리가 산재법의 ‘전속성 폐지’를 걸고 서울고용노동청에서 89일간 투쟁을 벌였고,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폐지가 맞다라는 답을 얻어 냈는데, 그 전속성은 아직 유령이 아닌 현실로서 살아 있는 것이다.

 

이번 잠정합의안은 성과와 아울러 한계도 분명한데, 프로서비스 유료화 폐지 관련 시기를 서면으로 명시하지 못하였고, 임금성과 관련 구체화는 추가 협상과제로 남겨 두었다. 그럼에도 잠정합의안에 조합원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한 것은 그 한계를 넘기 위한 조직과 투쟁과제가 앞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조직과 투쟁을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의 장에서 시작하려 한다.

 

MBK 매각철회 투쟁에서 교섭이 마무리될 때까지 크루유니온은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를 같이하고 있는 플랫폼 당사자 조직들도 고민을 함께하며 방향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조언과 격려를 해 주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동지들도 관심과 아울러 연대에 앞장섰고 많은 시민사회가 함께해 주셨다. 이번 교섭투쟁과 관련해 함께 고민하고 연대한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