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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지극히도 개인적인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의 의미

 

정성용 •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센터분회 분회장

 

 

 

쿠팡의 아이콘인 로켓배송과 새벽배송, 또는 쿠팡맨(현 쿠팡친구, 쿠팡 택배노동자)보다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로 쿠팡을 먼저 알게 됐다. 2019년부터 쿠팡 동탄센터, 부천1센터, 인천4센터를 일용직으로 전전하다가 작년 7월 쿠팡 인천4메가물류센터에 계약직으로 입사해 지금까지 12개월째 일하고 있다. 물류센터에 보관 중인 상품 종류와 개수를 파악하고 문제를 처리하는 재고조사(ICQA)공정에서 일하고 있다. 3개월 계약을 무사히 넘기고 9개월 계약직으로 재계약했다. 올해 7월이면 계약만료라 12개월 재계약을 해야 한다. 운이 좋아서 12개월 계약직이 된다면 2022년 7월에 비로소 무기계약직이 될 자격을 얻는다. 이 과정을 나만 거치는 건 아니다. 함께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일용직 노동자(68%)이거나 계약직 노동자(25%)이고, 계약직 노동자는 모두 3/9/12개월 쪼개기 계약을 거쳐야만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다.

얌전히 성실하게 일해야 재계약이 될까 말까 한 6월에 나는 겁도 없이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 출범식에 인천센터모임 대표로 참여했다. 노동조합 출범 이후에는 지회 인천센터분회 분회장으로서 대놓고 현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 노조 가입원서도 뿌리고 명함도 뿌리고 다닌다. 주변 동료들이 많이들 물어본다. “노조 활동하면 너에게 무슨 이득이 된다고 그러니?” “12개월 계약직으로 재계약이 되고 하지 그랬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왜 나는 쿠팡 물류센터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인 나에게 노동조합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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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9. 수원역 인근 셔틀버스 정거장 앞에서 쿠팡물류센터 노동조합 가입 홍보 선전전을 진행 중인 공공운수노조와 쿠팡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의 모습. [출처: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1. 화장실이 아닌 휴게실에서 당당하게 쉬고 싶다

 

쿠팡 물류센터에는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점심시간 1시간 외에는 휴게시간이 없다. 오전 4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못하고, 오후에는 고정 연장시간 1시간까지 포함해서 5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한다. 물류센터 노동은 모두 고되다. 계속 서서 일하거나 걸어 다녀야 하고, 무거운 물건, 박스 등을 들고 날라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실시간으로 통제하는 UPH(Unit Per Hour, 시간 당 작업량) 압박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3개월 뒤, 9개월 뒤, 12개월 뒤에 찾아오는 재계약 때문에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여야 한다. 그런 현장에 휴게시간이 단 1분도 없다.

유일한 생존법은 화장실에서 쉬는 것이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눈을 감으면 기분은 참 더럽지만 휴식은 참 달콤하다. 관리자 눈치를 안 보고 앉아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과도한 개인용품 통제로 현장에 들고 들어오지 못하는 간식을 몰래 까먹어도 뭐라 할 사람 없다. 변기 옆 칸에서 간식 까먹는 소리가 들린다. 몸이 피곤한 날에는 잠깐 눈감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자다가 혼자 놀라서 깨면 5분 정도 시간이 지나 있다. 잠 때문에 피곤함이 더 잘 느껴져 힘들긴 해도 5분 잠도 잠이라고 금방 에너지를 회복한다. 너무 힘들어 나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잠들었다가 깨면 화장실에서 과로사로 돌아가신 분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작년에는 화장실 출발 시간과 현장 복귀 시간도 기록했는데 이제는 사라졌다. 출발 시간은 1분 늦게, 도착 시간은 1분 빠르게 적던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텼나 모르겠다.

 

2. 사실관계확인서(반성문) 없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

 

지금까지 사실관계확인서를 두 번 썼다. 세 번 쓰면 재계약에 부정적 영향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사실관계확인서는 업무상 실수 때문에 작성해야 했는데 관리자 재교육만으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두 번째 사실관계확인서를 쓴 건 좀 억울하다. 쿠팡 물류센터는 출퇴근 때 출퇴근 카드가 아닌 쿠펀치(휴대폰 앱)를 찍는다. 이걸 세 번 누락하면 사실관계확인서를 써야 한다. 노동조합 설립 후에 센터 앞에서 노동조합 홍보 선전전에 참여하다가 쿠펀치 찍는 것을 잊어버렸다. 쿠펀치를 뒤늦게 찍었더니 바로 다음 날 “쿠펀치 오기로 사실관계확인서를 써야 한다”고 관리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부당노동행위라면 당당히 맞서 싸울 텐데 나의 실수로 인한 사실관계확인서는 거부하기 어려웠다. 1년 계약직으로 재계약하려면 지금보다 나를 더 성실하게 옥죄어야 한다. 사실관계확인서를 한 번 더 쓰면 회사에 계약해지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다.

사실관계확인서 강요 외에도 쿠팡 물류센터에는 여러 인권침해가 만연하다. 직장내괴롭힘(따돌림), 직장내성희롱, 휴대폰 반입 금지를 비롯한 과도한 개인 물건 통제 등. 사실관계확인서와 함께 사라져야 할 것들이 현장에는 너무 많다.

 

3. 재계약과 UPH 때문에 노예처럼 살고 싶지 않다

 

6월 18일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로 수도권에서 가장 큰 쿠팡 물류센터가 사라졌다. 덕평센터에서 일하던 일용직은 다른 센터로 출근할 수 있게 됐고 계약직은 다른 센터로 전환배치 중이다. 쿠팡은 출퇴근 등의 문제로 전환배치를 희망하지 않는 노동자에게 사직서 작성을 강요하고 있다. 기존의 일터로 다시 출근할 수 있을 때까지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마땅한 상황인데 말이다. 덕평 계약직 노동자 중 일부가 인천4센터로 전환배치 온다고 한다. 당장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 나의 재계약이다. 덕평센터 화재 전까지 인천4센터 재고조사 공정은 계약직 신규채용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필요해서 더 뽑는 마당에 설마 나를 자르겠어? 하지만 하루아침에 상황은 달라졌다. 덕평센터 노동자들의 고통과 시련에 공감해야 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나는 재계약만 걱정하고 있었다.

쿠팡의 쪼개기 계약 시스템은 나를 재계약의 노예, UPH의 노예로 만들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할 때 모든 가치판단의 핵심 기준은 재계약이었다. 그리고 시시각각 내 행동의 준거는 UPH 수치였다. 동료들과 말을 섞는 것도 관리자 눈치가 보여서, UPH 수치가 떨어질까봐 어떻게든 짧게 끝내려고 했다. 쿠팡 물류센터의 UPH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지자 쿠팡은 UPH 수치가 개인 PDA에 안 뜨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자신의 UPH 수치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관리자는 여전히 수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불안감만 커졌다. 내 UPH 수치가 낮아서 재계약이 안 되는 것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도 알 길이 없다.

 

4. 식염포도당을 먹어가면서 찜통 더위 속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는 여름만 오지 않기를, 그리고 여름에는 여름만 빨리 가기를 기다린다. 여름에는 물류센터 내부가 거대한 찜통이 된다. 인천4센터는 도난을 핑계로 창문까지 모두 잠갔기 때문에 더욱 뜨거운 찜통이 된다. 심지어 물류센터는 온통 박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는 더 높아진다. 더워서 어지러울 경우 비치해 둔 식염포도당을 먹으라는 관리자의 지시를 처음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더워서 어지러울 정도면 당연히 시원한 곳에서 쉬어야 하는데…. 애초에 더위 먹으면서 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선풍기나 에어컨 등의 냉방 장비/장치를 설치해 줘야 한다. 그런데 약을 먹으면서 계속 일하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식염포도당 얘기를 들을 때마다 노동자들이 철야노동하면서 먹었다는 잠 안 오는 약 ‘타이밍’이 떠오른다. 사람이 아니라 제품을 위해 냉동·냉장시스템이 되어있는 신선센터의 존재는 더위에 고생하는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5. 야간노동/연장노동/주말노동/고강도노동 안 하는 내가 철부지?

 

1년 계약직이 되면 시급이 9,200원에서 9,440원으로 오른다. 월급이 대략 5만 원 정도 오르는 것이다. 쿠팡 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의 유일한 임금인상 기회이다. 이 임금은 무기계약직까지 동일하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 200만 원으로는 개인이 생활하거나 가족을 부양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연장근무나 주말근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달 내내 주 6일 일해도 한 달 월급은 240만 원이다. 그래서 이것도 부족한 사람들은 야간수당이 나오는 오후조(야간조)로 가거나, 상하차 노동이라서 시급이 조금 더 높은 허브 공정에서 일한다. 그렇게 야간노동/연장노동/주말노동/고강도노동 등으로 부족한 임금을 충당한다. 몸이 갈려 나가고 개인 시간이 사라져도 다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말 이틀 쉬는 거로도 부족하다고 얘기하고, 매일 고정 연장 1시간도 안 하고 싶다고 얘기하면 다들 나를 철부지처럼 바라본다. 나도 당연히 임금이 더 높았으면 좋겠다. 올해 최저임금이 8,720원으로 결정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다. 쿠팡이 시급을 정할 때 유일하게 고려하는 것이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임금인상률 그 자체이다. 어떤 양반들이 내 임금을 결정하는가! 분노했고 미래가 캄캄했다. 노동조합이 생겼으니 이제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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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7.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가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물류센터 노동조합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모습. [출처: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너의 의미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은 내게 이런 의미이다. 아쉽게도 아직은 ‘의미’에 그치고 있지만 조만간 쿠팡물류센터지회의 5대 요구안 ▲유급휴게시간/공간 보장 ▲쪼개기 계약 철폐 ▲냉난방장비/장치 지급 및 설치 ▲인권침해 근절 ▲생활임금 쟁취를 위해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뭉친다면 ‘의미’는 ‘현실’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이 성장하여 현장에서 힘을 갖추게 된다면 나뿐만 아니라 계약직, 그리고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일용직, 외주업체 노동자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거창한 의미 부여도 많이 하고 있다. 불안정노동과 최첨단 IT기술의 결합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에 균열을 내보겠다는 것. 무노조 영역이었던 물류(센터)산업에서 노동조합 운동을 시작해보겠다는 것. 대기업, 공기업 2030들이 공정이라는 깃발 아래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할 때 쿠팡의 쪼개기 계약, 과도한 통제와 인권침해,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으로 신음하는 청년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사회에 들리게 하는 것 등.

갈 길이 멀다.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제안하면 노사협의회와 차이를 잘 몰라서, 노동조합 가입하면 당장 혜택은 없고 조합비만 내야 해서, 회사가 조합원 신분 알아내서 재계약 때 불이익을 줄까봐 다들 망설인다. 노동조합 설립 소식을 기다리며 선전전을 목 빠지게 기다린 노동자도 있지만, 아직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전국 30여 개 도시, 100여 개가 넘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5만~6만 명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함께할 때,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른 물류센터 노동자들도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로 함께할 때 노동조합의 의미는 더 풍부해질 것이다. 새로운 의미들이 생기고, 그 의미를 실현해나갈 주체들이 등장할 것이다. 너무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리는 것일 수도 있으나 시작부터 비관할 순 없지 않은가.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 넌 우리에게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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