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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불법파견 설움을 걷어찬 금복주 노동자들은 자랑스런 금속노조 조합원입니다

최일영 (금속노조 대구지부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

 

 

대구시 달서구 일대에 위치한 성서공단은 5만 명(2019년 1분기 기준) 이상의 노동자들이 대부분 중소영세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역 최대의 제조업 공장이 밀집한 공단이다. 업체 수만 2,900여 개가 넘는다. 100인 이상 사업장은 3%에 그치고 있으며 50인 미만의 사업장이 90% 넘게 차지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밀집 지역이다. 이 가운데 4인 이하 사업장의 개수는 600개 이상, 비율로는 25%에 육박한다. 그야말로 영세사업장의 비중이 압도적인 공단이다. 이로 인해 성서공단은 민주노조의 불모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서공단은 비교적 규모가 큰 사업장 대부분이 한국노총에 가입한 상황이다. 반면 민주노조 설립 움직임은 2000년대 초반부터 줄기차게 진행되었으나 공단 내 자본의 결탁과 치밀한 탄압, 직장폐쇄 등으로 만들고 깨지기를 숱하게 반복하며 민주노조 분위기를 뿌리 내리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던 지역이다.

 

그런데 와중에 지난 2016년 비교적 규모가 큰 한국OSG(전체 직원 300여 명 규모)에 금속노조가 설립되면서 민주노조의 불모지였던 성서공단에도 민주노조 설립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2018년 5월 설립된 금속노조 금복주분회는 노조 설립과 함께 불법파견 비정규직을 끝장내고 전원이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큰 성과를 남긴 사업장이다.

 

금복주는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적인 주류 생산 업체로, 대표적인 브랜드인 ‘참소주’는 대구경북 지역 소주 판매량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구경북 사람은 참소주를 마셔야 한다”는 기형적인 지역주의에 편승해 고도 성장을 일궈온 기업이다. 매년 당기순이익이 300억 원가량 될 정도로 회사의 경영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금복주는 금속노조 설립 이전에도 지역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세간에 자주 오르내렸다. 축적된 회사의 갑질 문화가 여과 없이 폭로되었고, 여성 직원에 대한 상상을 초월한 차별(임신하면 해고) 등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기업 이미지가 심각하게 타격을 받은 터였다. 그러던 중 외부로 알려진 기업의 실태보다 더 심각한 회사 내부 노동자들의 현실이 금속노조를 통해 확인되었다.

 

노조 가입을 위해 2018년 4월경 금속노조 대구지부를 찾아온 금복주 노동자들을 통해 전해들은 공장의 실태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소주를 직접 제조하는 전체 노동자들은 100여 명이 되는데 똑같은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생산직 노동자 가운데 대부분인 80여 명은 소위 불법파견 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는 20여 명에 그쳤다.

금복주 노동자들의 현실은 불법파견뿐만 아니라 차별과 멸시로 인간의 존엄 자체를 송두리째 흔드는 지경이었다. 회장 일가의 묘소를 정비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시 동원되었고, 업무와 무관한 일에 동원되는 일도 비일비재한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이었다.

 

금속노조 가입을 위해 첫 방문을 했던, 검게 그을린 얼굴의 두 노동자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한 명은 2019년에 정년을 맞는 정규직 노동자였고, 현재 분회장인 또 다른 한 명은 본인이 불법파견이라는 사실도 그때까지는 모르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금복주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매년 엄청난 수익을 남기면서도 회장 일가가 주식 배당으로 다 챙겨가고, 정작 노동자들의 상여금은 삭감시키면서 매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현실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숫자도 정규직보다 훨씬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차별을 받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노조의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첫 상담을 하던 날 민주노총은 산업별노조를 지향하기 때문에 화학식품 쪽으로 조직을 편제해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상담을 왔던 당시 노동자들은 펄쩍 뛰면서 무조건 금속노조에 가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인즉 금복주라는 회사가 돈도 많고, 지역에 영향력도 크기 때문에 금속노조와 같은 강성노조라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더 말릴 수 없는 그들의 말에 싫지 않은 웃음을 지으며 반드시 승리하자는 결의를 다졌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2명이 시작한 노조 설립은 1개월여 만에 현장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 전원이 노조에 가입하는 성과를 남겼고, 5월 중순 사측에 노조 설립 통보와 교섭 요구를 진행하면서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되었다. 생산 현장 정규직이 가입된 한국노총이 있었기에 교섭이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더 물러설 곳이 없었던 노동자들의 각오는 너무나 확고했다.

 

우리는 노조 설립과 함께 처음 진행된 임·단협 교섭의 핵심 요구로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원 정규직화와 불법파견 기간의 차별임금 지급을 내걸었다. 우리는 이미 노조 설립을 준비하면서 불법파견 문제를 핵심에 놓았다. 혹시 있을지 모를 사측의 증거 조작과 은폐, 회유 시도에 대해서 철저하게 준비하면서 사측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를 수집해나갔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노조 설립과 함께 빛을 발했다.

 

1개월여의 준비 기간 동안 사측에게 충분히 노조 설립 움직임이 드러날 수도 있었지만 노조 설립 통보를 하는 날까지 사측은 전혀 예상하거나 대비하지를 못했다. 그만큼 조합원들간의 신뢰와 단결력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노조 설립을 통보하기 하루 전날 한 조합원이 지부 사무실로 찾아와 “회사에 사무직으로 있는 친척의 추천으로 입사했는데 내가 노조를 한다고 하면 그 친척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서 탈퇴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시고 노조가 자리를 잡으면 다시 가입하시라고 전했다. 그 노동자는 친척에게 노조 설립 사실을 끝까지 비밀에 붙였고, 노조가 자리잡자 다시 가입했다.

그리고 불법파견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내민 증거자료를 반박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본격적인 교섭이 시작되기 전, 2018년 7월 1일자로 금복주 소속의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원 정규직을 쟁취했다. 그리고 조합원 전체 80여명이 9억여 원에 이르는 차별임금도 받았다.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설움을 흔들림 없는 단결로 쟁취한 자신감은 그해 교섭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파업출정식을 진행하고 파업에 돌입하기 전날 밤늦게 사측은 결국 분회 요구 대부분을 수용하면서 임·단협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지부집단교섭 참여, 조합 활동시간 보장 등 금속노조의 모범단협에 근접하는 단협을 쟁취했고, 상여금은 150% 인상시켰다. 기본급 인상률은 2018년 금속노조 전체 사업장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인상률로 쟁취했다.

 

2018년 임·단협 마무리와 함께 금복주분회 조합원들은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설움을 금속노조로 단결해 끝장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조합 안정화에 주력하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런 자신감은 2019년 초반 성과급 지급과 관련한 노사협의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매년 회사가 주는 대로 받았던 성과급 또한 회사의 수익과 성장 규모에 맞게 당당하게 요구하고 나섰고, 결국 역대 최대 규모의 성과급 지급도 이끌어내었다.

 

금속노조 설립 후 영업직 사원들이 한국노총에 가입해 복수노조 사업장의 어려운 조건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지만 우리는 이를 대비해 이미 개별교섭권을 쟁취해 놓은 상태고, 생산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금복주분회 조합원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분회는 앞으로 연령대가 높은 조합의 특성상 회사가 적정한 인력을 꾸준히 채용할 수 있도록 단협을 통해 보장해 갈 것이다. 아울러, 최근 지역 주류업계가 메이저 기업들의 독점으로 경영상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조건에서 예상되는 사측의 고용 압박 등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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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자]

 

 

금복주분회 설립과 함께 대영현장위원회, 조양현장위원회, 한국댓와일러분회 등 성서공단에만 벌써 3개의 신규사업장이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등 2018~2019년에 걸쳐 금속노조 가입 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의 대표 기업인 금복주에도 금속노조가 생겨서 이제 노동자들이 어깨 펴고 회사 다닌다고 하는 소문이 퍼져나갈수록 금속노조의 식구는 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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