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8]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

by 철폐연대 posted Aug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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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

 

 

“방송스태프도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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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남당’ 제작 현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한 스태프들은 해고를 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드라마 스태프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근로기준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제작사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변화와 드라마 스태프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철폐연대를 비롯한 여러 노동법률단체들은 방송스태프지부와 함께 공동행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만난 ‘미남당’ 투쟁은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현장의 스태프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었기에 가능한 투쟁이라서 반갑다. 그만큼 이 투쟁을 통해 현장의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책임 역시 무겁다. 모두 함께 짊어진 무게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가장 어깨가 무거운 김기영 방송스태프지부장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파편화된 방송노동자, 턴키계약과 장시간 노동 

 

안(철폐연대 집행위원) : 방송노동자들의 고용형태, 계약의 형태는 어떠한가요?

 

김(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 : 방송노동자들은 굉장히 파편화돼 있습니다. 조각조각 나 있어서 일하는 파트도 다 다르고, 일하는 환경도 다 다르고, 일하는 내용도 다 다릅니다.

방송사 내에서 방송사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제작국과 계약을 맺는 사람도 있습니다. 파견업체를 통해 파견직으로 와서 일하는 경우도 있고요. 방송사 외부에서 일하는 교양 PD나 외주 작가들은 제작사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는데, 계약서 자체가 없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대부분 구두계약으로 알음알음 편당 얼마에 맞춰 일합니다. 예전에는 제작사에서 직접고용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퇴직금 주고 다 내보낸 뒤 프리랜서로 다시 계약해 버린 거죠.

드라마 스태프들은 제작사와 계약을 맺습니다. 드라마 한 편이 끝날 때까지 일하는데, 턴키계약을 많이 합니다. 감독급이 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알아서 장비와 스태프들을 데리고 와서 자기가 받은 돈에서 떼 주는 형식이에요. 그런데 최근 노조와 현장 스태프들이 개별 계약을 요구하면서 턴키계약과 크게 바뀌지는 않았는데 각 스태프들이 제작사와 개별적으로 용역계약이나 위탁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 방송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꽤 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방송 쪽은 아직도 일하는 시간이 24시간입니다. 방송 스케줄이 정해지면 하루 8시간, 휴식시간, 그런 거 상관없이 24시간을 풀로 투자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습니다. 그래도 드라마 쪽은 많이 줄어들었는데, 교양이나 예능 쪽은 여전합니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지켜지지도 않고,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 그렇다면 방송노동자 노동시간 문제를 얘기할 때, 주로 언급되는 건 드라마 제작 현장인 거겠군요.

 

: 네, 주 52시간이라든지 연장근로 12시간 등 그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얘기할 때는 드라마 스태프들입니다.

 

: 드라마 스태프들의 노동시간은 노조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에는 많이 줄어든 거죠?

 

: 네,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드라마 스태프들도 예전에는 디졸브 노동에 시달렸으니까요. 찜질방에서 한 시간 쉬고 다시 촬영을 간다거나, 일당제라서 하루 27시간, 34시간 촬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장시간 노동이라고 해도 15시간, 16시간 정도입니다. 그렇게 현장이 변한 데에는 제도적인 변화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드라마 스태프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고, 방송이 근로시간 특례 업종에서 빠지기도 했거든요. 그러고 나서 드라마 제작 현장의 개선을 위해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표준인건비 책정을 위한 지상파 3사와 드라마제작사협회가 같이하는 협의체가 만들어진 거죠.

 

: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공동협의체’(이하 4자협의체)에서의 쟁점은 노동시간과 임금의 문제였던 거죠?

 

: 네, 그런데 임금은 아예 얘기도 못 꺼내 봤어요. 이동시간 문제로 첨예하게 싸우느라고요. 방송사 스튜디오 세트장들은 대부분 한 시간 반 거리예요. 그러니까 한 시간 반까지 이동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거였어요. 왕복으로 따지면 하루 3시간을 말이죠. 저희는 최소한 영화노조 기준에 따라 한 시간까지는 인정하겠다고 했고요. 한 시간을 넘어가면 노동시간으로 인정해라 하는 걸 가지고 많이 싸웠죠.

또 촬영 시작이 오전 10시라고 하면, 드라마 스태프들은 보통 새벽 5시나 6시에 집에서 나와야 합니다. 대부분이 여의도나 상암동에서 제작사가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게 됩니다. 촬영지에 도착하면 장비를 세팅하는 등 촬영 준비를 해야 합니다. 촬영을 마치고도 장비를 철거하는 등의 시간이 소요되고요. 그리고 다시 차량에 탑승해서 출발지로 복귀를 하고, 거기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을 제작사에서는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제작사에서는 최대한 촬영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동시간을 빼고 계산하기 시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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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제작 현장에서. [출처: 방송스태프지부]

 

 

4자협의체의 파행, 공동행동 활동 시작

 

: 4자협의체는 방송스태프지부, 언론노조, 지상파 3사(MBC/KBS/SBS),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이렇게 구성되어 있잖아요. 방송스태프의 사용자를 방송사와 제작사로 볼 수 있는 거죠?

 

: 네, 대부분 드라마 현장에서 사용자는 방송사와 제작사, 두 곳입니다. 제작사는 제작 일반에 대해 관리하고, 방송사 직원이 총괄 피디로 와서 제작비를 틀어쥐고 관리·감독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자협의체에 제작사와 방송사가 같이 나와 논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사들이 하나하나 드라마 자회사들을 만들면서 4자협의체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SBS는 초반에 빠졌고, MBC도 중간에 나가 버리고, KBS만 남아 있던 상황에서 CJ의 스튜디오드래곤이 드라마제작사협회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드라마제작사협회의 지분이 굉장히 커져 버렸고, 발언권이 세지면서 표준계약서 자체를 못 받겠다고 주장해 버립니다. 결국 4자협의체는 파행으로 치달았고, KBS와 스튜디오드래곤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게 된 거죠.

 

: 방송스태프지부와 노동법률단체가 함께하는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의 활동이 시작된 거죠?

 

: 네, 그렇습니다. 공동행동에서 목표하는 건 드라마 제작 현장에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하고, 근로기준법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그것만 지켜져도 굉장히 많은 문제가 해결되는 거거든요.

 

: 방송사가 여럿 있는데, KBS를 타깃으로 한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은데요.

 

: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인 까닭도 있고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가장 열악한 데가 KBS라서입니다. 왜냐하면 제작비가 제일 짜거든요. 제작비를 적게 주니까 제작사에서도 스태프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고, 노동시간을 길게 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방송, 특히 드라마 쪽은 일당제로 페이를 주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돈을 주더라도 더 오래 찍으면 제작사에는 이득이 되는 거지요. 이 시스템도 바꿔야 합니다.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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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0. KBS 앞에서 진행한

“불법제작 KBS 드라마 ‘미남당’ 규탄! 시민 촛불 문화제”에서. [출처: 공동행동]

 

 

 

TV로 보는 모든 방송은 대부분 착취로 이뤄져 있다

 

: 공동행동의 활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미남당’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 처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쪽으로 연락이 왔어요. 주로 영화 쪽 일을 하던 스태프들인데 드라마 제작 환경이 너무도 열악한 거예요. 처음엔 자기들 나름대로 목소리를 모아 제작사와 협의를 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던 거죠. 그래서 한빛센터로 요청을 했고, 한빛센터에서는 노조와 얘기해 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저희한테로 다시 연락이 온 거죠.

이 스태프들이 노조에 가입했고, 노사협의를 요청하자고 판단했습니다. 5월 말까지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재계약을 조건으로 걸고 교섭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주장하셨어요. 요구는 1일 최대 12시간, 1주 최대 52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 연장은 1주 12시간까지를 지켜 달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식사시간을 제대로 지키라는 것, 이거였어요. 그런데 제작사에서는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못 받겠다, 그나마 식사시간은 지켜 줄 수 있다, 논의를 계속하겠다면 재계약은 못 해 주겠다 했던 거죠.

 

: ‘미남당’ 투쟁에 대한 현장 반응은 어떤가요?

 

: 터질 게 터졌다는 의견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또 주 52시간, 연장근로 12시간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저희가 “KBS 드라마 ‘미남당’ 은 근로기준법 준수하며 촬영하십시오!”라는 방송/영화 제작현장 스태프 연서명을 받았었는데, 250여 분이 자기가 했던 작품을 걸고 실명으로 참여를 해 주셨어요. 응원의 메시지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 매우 많은 사람들이 ‘미남당’ 사태를 주시하고 있거든요. 때문에 여기에서 어떻게 변화를 끌어내느냐, 어떤 처벌을 받게 하느냐가 앞으로 드라마 현장에서 큰 갈림길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미남당’을 비롯해서 방송스태프지부와 영화노조가 함께 투쟁하고 있잖아요. 드라마와 영화 제작 환경이 비슷해서일까요?

 

: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영화와 드라마의 벽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방송은 꾸역꾸역 만들어졌지만 영화는 제작이 안 되면서 영화스태프들이 방송 쪽으로 많이 넘어왔거든요. 자연스럽게 영화와 방송을 서로 넘나들며 노동환경도 비슷해져 가는 거죠. 영화 쪽 하던 분들이 드라마로 와서 영화 수준의 노동환경을 요구하시게 되니 저희로서도 좋은 거고요. 그래서 영화노조와는 같이 단체교섭에도 나설 생각이 있고,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철폐연대 동지들이나 질라라비 독자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 한국에서 TV로 보는 모든 방송은 대부분 다 착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송을 통해 감동적인 말 한마디라든지 아니면 재미있는 것들을 듣고 보시더라도 그 뒤에 숨어 있는 노동자들을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근로기준법조차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환경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정리 안명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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