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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시화공단 전기전자업종 조직화 사업 시동

김혜인 (금속노조경기지부 조직사업부장)

 

 

반월시화공단, ‘추노’하는 노동자들

 

반월시화공단 산업단지는 중소하청업체가 밀집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전기전자업체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에 납품하는 대형부품 하청업체이다. 사용자들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형태로 노동자들을 고용한다. 임금은 당연히 대부분 최저임금이고,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주야 맞교대에, 연장까지 주 노동시간이 72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2018년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지만 회사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 꼼수로 인해 월급은 그대로다. 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노동조합이 절실하지만 반월시화공단은 거의 무노조 상태이다.

 

반월시화공단은 노동착취의 천국이다. 사내하청뿐 아니라 소싱업체를 통해 파견되는 파견직 노동자의 숫자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강도 높은 노동을 12시간씩 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장근로를 하고, 특근을 뛴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돈을 벌기 위해서 더 일한다. 최저임금으로는 주 40시간 근무만 하면서 월세 내고, 공과금 내고, 핸드폰비 내고, 먹고 살 수가 없다. 일하는 시간이나 시급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터에서 노동권은 거의 존중받지 못한다. 군대식 갑질문화가 만연해 있는 현장 분위기와 텃세에 눌려 며칠 일하지도 못하고 그만두기 일쑤다. 간신히 적응해서 일을 시작하면 여기저기 위험투성이다. 당장 라인을 돌려야 하기 때문에 안전교육은 미비한 채로 장비 조작법만 배운다. 위험물질을 다루면서도 이 물질이 어떤 유해한 성분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본능적으로 코를 찌르는 냄새를 풍기는 약품이 몸에 해롭다고 느낄 뿐이다. 약품을 장비에 쏟다가 튀면 손이고 발이고 상처투성이가 된다. 하지만 그 어떤 안전도구도, 장치도 없다.

 

이번에 공단 노동자들이 취업정보 공유를 위해서 만든 오픈카톡방에서 ‘추노’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원래 추노라 하면 도망 간 노비를 찾아오는 일을 뜻하는데, 이들 사이에서는 일하다가 못 견디고 도망가는 것을 ‘추노’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추노’를 많이 한 사람을 추노꾼이라고 부른다. “오늘만 일하고 추노해야지”가 그들이 하루를 버티게 하는 말이다. 본인들 스스로를 노예라고 지칭하고, 도망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마냥 우습지만은 않았다. 추노의 이유는 다양하다. 밥이 맛이 없어서, 쉬는 시간이 짧아서, 선임이 갑질을 해서, 일이 너무 위험해 보여서, 일이 너무 힘들어서. 한 타임 근무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게 한 번 도망치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해도 똑같다. 회사 이름만 다를 뿐 거짓말같이 똑같은 현장이 기다리고 있다. 계속해서 도망치다 결국 제일 안 좋은 공장에서 버티게 되는 경우도 많다.

 

[출처 웅크린 말들].jpg[출처: <웅크린 말들>(이문영 저)]

 

 

노동조합이 보여준 ‘신세계’

 

처음 전략조직을 맡게 되었을 때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자료들을 보고, ‘추노’를 말하는 노동자들의 대화를 보면서 8년 전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을 때 생각이 났다. 21살 때 집안 사정으로 대학교를 휴학하고 동생이 특례병으로 일하고 있는 공장에 비정규직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공공정에서 주로 기본 부품을 끼우는 작업을 했다. 2주일에 장갑 5켤레가 지급되는데 항상 장갑은 두 겹씩 껴야 했고, 부품을 끼울 때 케이블에 바르는 구리스(고체윤활류) 때문인지 장갑은 금방 헐고, 금세 구멍이 났다. 장갑이 다 떨어져서 새로 장갑을 달라고 하니까 아껴서 쓰라고 호통을 치면서, 더 필요하면 직접 사서 쓰라고 했다. 일하는데 필요한 물품을 왜 내 돈으로 사서 써야 하냐고 따졌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어느 날인가, 아침부터 현장 대청소를 시키더니 갑자기 마스크와 귀마개를 지급하며 착용하라고 했다. 알고 보니 노동부에서 감시를 나온 것이었다.

현장엔 늘 쇳가루가 날렸고, 장비소리는 옆 사람과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시끄러웠다. 마스크와 귀마개, 안전화 모두 당연히 지급되었어야 할 물품이었지만 지급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로 나는 노동조합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다. 회사에 나 혼자서 아무리 항의해 봤자, 무시만 당하고 그럴 거면 다른 데 가라는 말만 듣는 것이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노동조합을 검색해봤지만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동생에게 회사에 이미 노동조합이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노조가 있는데 어떻게 이러냐고 했더니, 아주머니 3명이 이름만 있는 어용노조였다. 당시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절망했고, 버티다가 결국 6개월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하이디스에 입사해서 정직원이 되자마자 노동조합에 가입했는데 나한테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문제나, 노동조건에 대한 문제는 노동조합을 통해 모두 해결되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을 요구할 수 있었고, 회사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었다. 더 이상 무시당하는 일개 직원이 아니라, 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당당한 노동자가 되었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것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진짜 노동조합이구나. 노동조합을 모든 노동자들이 다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이디스 정리해고 투쟁을 하면서 예전의 나처럼, 당연한 노동권을 누리지 못한 많은 동지들을 만났다. 3년의 시간 동안 싸우면서 노동조합의 필요성, 간절함을 더욱더 느끼게 되었다.

 

예전 생각을 하면서 다짐했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에게도 내가 겪었던 ‘노동조합의 신세계’를 느끼게 해주자고.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연장근로와 특근은 안 해도 되는, 쏟아지는 물량에 쫓기며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무슨 약품인지도 모르는 약품을 쏟아 부으면서 다치지 않아도 되는,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한 ‘신세계’. 노동조합과 함께라면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 주고 싶다.

 

 

반월시화공단을 너나없이 노조하는 공단으로 바꾸고 싶은 ‘전기전자 119’

 

반월시화공단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지원사업단 ‘전기전자 119’는 노동조합 불모지인 반월시화공단을 일구고 씨를 뿌려 노동조합이 쑥쑥 자랄 수 있는 옥토를 만들기 위해 모인 사업단이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민주노총 안산지부, 시화노동정책연구소,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 모임 월담, 안산비정규센터, 안산노동안전센터, 시그네틱스지회가 반월시화공단 전기전자업종 전략조직화를 함께하기 위해 사업단을 구성했다. 오랜 시간 동안 반월시화공단 조직화를 위해 노력해온 단위들인 만큼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공단 조직화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전기전자 119는 반월시화공단 전기전자업종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동조합을 조직하는데 힘쓸 것이다. 선전과 상담활동을 통해 노동자들과 대면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공단지도를 그려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혀가고, 오픈 카톡방을 개설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가까이서 들을 것이다. 연고자 찾기 사업을 통해 공단 노동자들의 심층인터뷰도 진행할 예정이다. 먼저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고, 함께 공단을 바꿔나가기 위한 계획들을 세우고 진행할 것이다. 8월 17일, 처음으로 전기전자 119를 소개하는 선전물과, 밴드를 공단 노동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전기전자 119에 많은 노동자들이 불만을 얘기하고 고민을 토로해주기를 기대한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과정들이 노동조합을 향하는 길이 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송곳>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온다. 다음 한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이전에 나는 아마 송곳같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송곳같은 나에게도 노동조합은 뚫기가 너무 어려웠다. 동그란 사람, 네모난 사람 누구나 노동조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든 함께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 꼭 뾰족하게 튀어나온 사람만이 힘들게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노조가 아니라 어느 누구나 가입하기 쉬운 노조를 만들고 싶다.

 

반월시화공단이 추노꾼들이 넘쳐나는 공단이 아닌, 노동조합 깃발 아래, 당당한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공단이 되기를 꿈꾼다.

 

3 2018.8.17. 반월시화공단 선전전 중인 필자 [출처 전기전자 119].jpg

2018.8.17. 반월시화공단 선전전 [출처: 전기전자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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