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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비정규직 20년 투쟁의 성과와 과제

차헌호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

 

2005년 비정규직 조직화를 목표로 현장에 들어갔다. 2015년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아사히 자본은 비정규직 탄압의 매뉴얼대로 계약을 해지하고 하청업체를 폐업했다. 3년을 싸웠다. 비정규직 투쟁을 경험해보니 만만치 않은 것을 실감한다. 비정규직 투쟁을 말하기 전에 민주노조운동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 운동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아보자.

   

1.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운동

 

1) 민주노조운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국지엠 투쟁

한국지엠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구조조정 앞에서 노동조합은 무력화되었다. 정규직은 쫓겨난 비정규직을 외면했다. 정규직은 자신들의 고용을 위해 비정규직을 쫓아내는 인소싱에 합의했다. 같은 정규직끼리도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심리까지 작동했다. 부평과 창원 정규직들은 군산 정규직이 전환배치 오는 것을 꺼려했다. 고용을 놓고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했다. 자본의 의자놀이에 조롱당했다. 한국지엠 비정규직의 ‘함께 살자’는 외침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었다.

한국지엠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을 했던 동지들이다. 노조간부들은 채용비리로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오랫동안 노조간부들은 조합원들을 주체로 세우는 투쟁을 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수동화되었고 노동조합의 힘은 간부에게 집중되었다. 조합원들은 노조간부가 다 알아서 해주기를 기대했다. 노조간부들은 강화된 권한을 가지고 채용비리를 저지르거나 노사상생이라는 이름으로 노사협조주의에 빠졌다. 자본은 노조상층을 포섭해서 노조를 약화시키는 일을 손쉽게 했다. 투쟁을 통해 쟁취하는 것이 사라졌다.

산별노조는 대공장 정규직 중심으로 유지되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끌어안지 못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신분을 다르게 인식했고 활동의 목표도 달랐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생각했다. 정규직 대공장 노동조합은 자신의 공장 안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투쟁도 외면했다.

한편, 2017년에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함께살자 공동투쟁’이 만들어졌다. 원청의 70여 명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지회가 함께 공동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원․하청 공동투쟁의 의미 있는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2) 사건들

최근의 사례를 보자. 채용비리다. 한국지엠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총 6차례 비정규직을 신규 채용했다. 검찰 조사 결과 정규직으로 전환된 부평공장 합격자 346명 가운데 123명(35.5%)이 채용비리 관련자로 확인됐다. 기아차 광주공장 역시 노조 대의원이 정규직 또는 하청업체에 취업을 시켜주겠다며 56명으로부터 18억 원을 가로챈 사건이 벌어져서 구속됐다.

계급적 단결을 위해 건설된 산별노조 안에서조차 비정규직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지엠지부의 인소싱 합의, 기아자동차지부의 비정규직지회 분리, 현대차지부 판매위원회가 전국자동차판매연대의 금속노조 가입을 거부한 행위 등. 하나의 산별에 그치지 않는다. 전교조가 기간제교사들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보여준 태도, 공공기관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드러내는 반발, 보건의료노조의 직무급제 합의 등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뿐 아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에게 탄원서를 쓴 조건준 사건, 금속노조 채용직 상근자가 자신이 담당하는 투쟁사업장 주식을 대량 구매한 금속노조 구미지부 임강순 사건 등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다.

처참하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 심각히 훼손되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상처는 곪아서 터지면 새살이 돋는다. 그러나 운동은 저절로 새살이 돋지 않는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은 곪을 대로 곪았다.

2004년 박일수 열사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현대중공업노조는 열사를 열사라 칭할 수 없다며 장례식장을 무단으로 침탈했다. 금속연맹은 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 수 2만 명의 현대중공업노조를 제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운동의 정신을 훼손하는 사건들이 벌어져도 조직 내에서 두둔하거나 침묵하면서 사건을 제대로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조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에 대한 징계와 반성은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는다.

현재 운동의 상태를 정리하면 관료주의, 노사담합, 교섭만능주의, 실패한 산별노조운동, 패배주의, 투쟁 기피주의 등 다양한 문제들이 연결되어 복합적으로 뒤섞여있다. 어느 한 지역의 문제도 아니고, 어느 한 산별의 문제도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복원시켜야 한다.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에 비정규직 운동이 있다. 앞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전진이 전체 운동의 전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비정규직 운동의 성과와 한계

 

1) 비정규직 운동의 성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했다. 비정규직법이 제도화되면서 20년간 수많은 투쟁들이 있었다. 승리한 투쟁보다 패배한 투쟁이 훨씬 많았다. 한국통신 계약직 투쟁은 생각만 해도 아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부분 패배하고 깨져나갔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깨진 노동자들은 새로운 비정규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결과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깨달았다.

 

2) 비정규직 운동의 한계

 

① 객관적 한계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않는다. 파견법이 있어도 불법파견은 넘쳐난다. 헌법의 단결권은 비정규직의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고용한 회사와 실제 일하는 회사가 다르다. 비정규직을 고용한 하청업체는 대부분 껍데기에 불과하다. 노조를 만들면 하청업체는 폐업하는 일이 벌어진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원청을 위해 일했으나 원청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노조 할 권리가 가로막힌다. 실질적 영향력도 없는 바지사장과 고용관계를 맺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단체협약 하나 맺기 어렵다. 기간제교사나 대리운전기사 들은 노동조합 설립신고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어렵게 노조를 만들어도 원청 자본을 만나려면 정규직노조의 벽을 넘어야 한다. 예전부터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지부를 넘어야 현대자동차 자본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한국지엠에서 벌어지는 정규직지부의 비정규직 우선해고 합의는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자동차에서 있었던 2014년 8.18 합의, 2016년 3.21 합의는 정규직지부의 주도로 진행된 합의다. 기아차에서 벌어진 2016년 10.31 합의는 비정규직 당사자의 동의도 받지 않았다.

 

② 확대되는 불법파견 소송과 자회사 정규직 방식

2010년 현대차가 불법파견 판정을 받으며 정규직 전환의 문이 열렸다. 불법파견 판정이 가져온 힘은 막강했다. 현대차에서 6,800명, 기아차에서 1,087명이 정규직이 되었다. 물론 저절로 굴러온 복이 아니라 비정규직 동지들이 15년간 치열하게 투쟁했기에 가능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이 불법파견 소송에서 승소하자 전국적으로 불법파견 소송이 잇따랐다. 불법파견 소송은 투쟁 없이 정규직으로 가는 신분상승의 수단이 되었다. 불법파견 소송이 비정규직 투쟁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투쟁의 목표가 정규직이 돼버렸다. 나아가 투쟁하지 않고, 소송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정규직이 된다는 막연한 기대치가 생겼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자본은 이미 사내하청 불법파견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마쳤다. 외주화와 촉탁직이라는 방식으로 불법파견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2차, 3차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다.

최근 2년간 민주노총에 비정규직 조합원이 10만 명이나 늘었다. 놀라운 일이다. 촛불 이후 노동조합 가입은 더욱 활발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상시․지속적 업무,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갔다. 이런 일들이 공공부문에서는 노동조합 가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과 다르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지 않았다. 자회사로 전환한 것을 정규직 전환으로 속였다. 자회사는 무늬만 정규직이다. 민간기업도 자회사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민간기업 최초의 정규직 전환 1호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만적인 자회사 전환을 폭로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자회사로 전환한 비정규직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으로 자회사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3) 비정규직 운동의 과제

노동조합을 왜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노동자는 세상을 흔들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언제부턴가 노동조합이 노동자 계급의 총단결을 위해 투쟁하기보다 자신의 처지를 바꾸는 경제적 요구에 머물러 있다. 노동자 계급의 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비정규직은 스스로의 존재조건에서 폭발적인 투쟁의 힘을 가진 존재다. 세상을 바꾸는 민주노총이라고 하듯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계급이 될 수 있다. 노동조합과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자신의 힘을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이다. 노동조합은 계급적 단결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너무나 먼 얘기로 들린다. 지금 중요한 과제는 비정규직이 민주노조운동의 주체로 당당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확대 강화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운동의 주체가 민주노조운동을 주도할 세력으로 성장해야 한다.

 

3. 2018.11.15.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비정규직 그만쓰개 문화제 [출처 철폐연대].jpg

2018.11.15.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비정규직 그만쓰개” 문화제 [출처: 철폐연대]

 

[편집자부] 이 글은 2018년 10월 31일 진행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워크숍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되돌아보기”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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