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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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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이 글은 워커스 24호에 실린 글입니다. 철폐연대는 워커스와 함께 파견법 폐기의 가능성을 열기 위한 기획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기획연재 (3) 공단파견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2013년에 방영된 드라마 ‘직장의 신’을 즐겨보곤 했다. 당시 ‘미스 김’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의 대사가 아직도 생생하다. “회사를 위해서, 동료를 위해서, 상사를 위해서 일하지 마, 오로지 너 자신만을 위해서 일해. 그것이 네가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이야….”드라마 제작진은 ‘미스 김’ 캐릭터를 수당과 자격증으로 무장한 국내 최초 자발적 비정규직으로 설정했고, 그 ‘미스 김’이 드라마 속에서 보여준 통쾌한 활약상은 현실에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직장의 신’에서 본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제조업, 공공부문, 서비스업종 할 것 없이 모든 영역에 걸쳐 이미 간접고용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공단지역 파견노동의 폐해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임에도, 정부는 뿌리산업 강화라는 핑계로 제조업 전반에 걸쳐 파견 확대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공단지역에서 파견노동이 일으키는 문제를 간략히 짚어 보고자 한다.

수시로 바뀌는 사장, 나의 권리는 어디로?

2015년 인천지역 국가산업단지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현 사업장 근무 기간이 2년 미만이고 평균 근속연수는 3.2년으로 고용 유지 기간이 매우 짧고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 그대로 보자면 사업장 이동이 빈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
 

 

  사진/정운 기자

 


대부분의 원청(사용사업체)은 여러 파견회사부터 동시에 인력을 공급받아서 3~6개월 단위로 파견회사를 교체하거나 파견노동자의 소속을 강제로 변경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맞춰 파견회사는 원청과 통상 임금 총액 대비 5% 안팎의 수수료를 받는 파견계약을 체결하지만, 파견노동자와 맺는 개별 근로계약은 최저임금, 4대 보험 미가입, 3~5일 이하 임금 미지급 등 각종 불합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로기준법상 당연한 권리인 연차수당과 퇴직금 등을 못 받는 것은 물론이고, 파견업 허가와 취소를 반복하는 ‘떴다방’ 식 파견회사가 중간에 도망이라도 가는 날이면 임금을 통째로 떼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최저임금, 줄 세우기와 제 살 깎기의 무한 반복

공단 파견노동자의 임금은 십중팔구 최저임금이다.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주는 회사가 가물에 콩 나듯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다 보니 임금 총액은 노동시간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잔업과 특근이 노동자의 ‘선택’(근로기준법 상으로는 당사자 간의 합의사항)이 아니라 조장, 반장 같은 중간 관리자의 ‘간택’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평소 관리자 눈 밖에 난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에서 배제되기 마련이고, 일거리에서 밀려난 노동자는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 공단을 떠도는 부평초 신세가 된다.

줄 세우기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다음 관문은 편 가르기와 제 살 깎아 먹기다. 조장, 반장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은 하나의 무리를 만들고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을 배척한다. 배척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 10명 중 4명이 폭언이나 감시, 왕따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현장에 관행으로 굳어버린 조기 출근, 점심밥 교대, 자투리 잔업 등 무료 노동에 대해서 일언반구조차 하지 못하고 스스로 감내해야만 한다. 그래야 또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런 특혜성 잔업과 특근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흔히 골병이라고 불리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이어지는데, 산업재해 신청은 고사하고 눈치 보고 연차 내서 병원에 다녀야 한다. 물론 이마저 공상처리도 아니고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서 말이다.

이름도 나이도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

요즘 공단지역 파견노동자들은 일거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업장 이동을 반복한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어느 공단, 어느 회사를 가던 최저임금을 받기 매한가지고, 오래 근무한다고 해서 정규직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파견노동자 입장에서는 회사에 희망이나 아쉬움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래서 출근했다가 일이 생각보다 힘들거나 관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나오면 그만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다 보니 인터넷 구직 사이트 알바 경험담에 자주 등장하는 ‘알바추노’ 얘기는 파견노동자들의 필수 공유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의 반복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이상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입사 후 최소 한 달이 지나지 않으면 이름도, 나이도, 그 어떤 것도 묻지 않는다. 그렇게 단절된 관계 속에서 동료애를 기대하기란 언감생심이고, 점심시간 혼밥과 휴식시간에 핸드폰에만 빠져드는 풍경은 일상이 됐다. 사람 장사에 밝은 파견회사들이 구인광고에 임금, 근무시간, 근무장소를 기재하기보다 ‘즉시 입사 가능’, ‘동반 입사 가능’, ‘주급 가능’을 내세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공단에서 노동조합은 가능할까?

흔히들 노조라고 하면 사업장 단위의 노조를 떠올리게 된다. 상처투성이로 일거리를 쫓아 공단을 떠도는 파견노동자들은 과연 사업장 단위의 노조에 들어갈 수 있을까?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사업장 단위로 노조가 존재하는 게 맞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아직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위의 질문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천 부평공단의 같은 회사에 다녔던(!) 파견노동자 23명은 현재 금속노조 인천지부 개별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최장 32개월을 조립부서에서 노예처럼 근무했던 파견노동자들이 휴업수당과 주휴수당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집단 계약해지를 당한 것이 계기가 됐다. 현재 법적으로 불법파견, 차별시정, 부당해고 등을 다투고 있고, 당연히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법원에서 모두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23명의 노동자는 지금 다른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매달 한 번씩 조합원 모임을 통해 다양한 교육과 공동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약 2년간의 조합원 모임은 빼앗겼던 권리 의식을 되찾고 단절됐던 관계를 새롭게 만드는 과정으로 하나하나 채워지고 있다.

파견노동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

파견노동자들이 선호하는 파견회사는 끊임없이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곳, 4대 보험을 떼지 않는 곳, 주급이 가능한 곳이다. 워낙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손에 쥐는 돈이 적으니 어쩌면 당연한 요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제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파견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 절실하다. 파견법은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부정한다. 파견법은 노동자들을 개별화하고, 헌법에 보장된 노조 할 권리마저 가로막고 있다. 이런 만신창이 파견법은 고쳐 쓸 게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그때 비로소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

 

<참세상에서 글보기 >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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