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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의 들꽃 같은 남자들의 묻히지 않은 이야기, 책으로 펴내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2년 투쟁의 기록 <들꽃, 공단에 피다>

손소희 (지역사회노동자운동지지모임, 철폐연대 회원)

 

 

기웅씨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잘 준비를 한다.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켠다. 뉴스가 나온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야기가 전부인 줄 알고 지냈다.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을 읽고 세상을 배웠다. 진실인 줄 알았던 이야기들은 노동조합을 하면서 불편해졌다. 세상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노동조합은 세상이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가진 자들의 편에서 군림하는 세상의 불의와 부당함에 저항하자고 이야기한다. 세상을 움직여나가는 힘이 누구인지 그 비밀을 하나씩 파헤쳐가자고 한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는 노동조합이 없었다. 짬장님(아사히비정규직지회 천막농성장 주방장)은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고 말았다. 회사는 늘 사장님의 것이다. “나는 일하는 사람일 뿐이라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려면 내가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짬장님이 그만두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는 구미공단의 아사히글라스에서 그만두지 않았다. 노동조합에 가입했을 때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컸었다. 그냥 내 발로 떠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노동조합에 희망을 걸고 싸워보고 싶었다. 노동조합을 시작하자마자 해고당했다. 사실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노동자로 일하면서 재계약시점만 되면 가슴 졸이며 그 기간을 넘겨야 했다. 재계약을 해도 원청관리자의 눈 밖에 나거나 하청관리자에게 밉보이면 계약기간 내에 그만둬야 했다. 해고당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노조가 필요했던 이유다.

남달씨는 한때는 이발사로, 작은 영업소를 직접 운영해본 적도 있었다. 공장에서 일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에 속은 편했다. ‘사장님’ 이라고 하지만 영세한 규모의 자영업을 하면서 직원을 두게 되면 하나에서 열까지 다 챙겨야 하니 골치 아픈 일이 많았다. 그래서 사장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하나에서 열까지 챙겨야 할 게 많아도 사장이니까 책임져야 하는 것이 있는 법이다. 아사히글라스 공장에서 경험한 비정규직은 그야 말고 일회용품 취급이었다. 노동조합이라는 배에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노동조합은 새로운 세계로 항해하는 배였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어렵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많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정부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스스로 더 영리해졌다고 자부하게 된다.

 

겨울을 이기고 봄!

두 번의 겨울을 이기고 봄을 맞이하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투쟁 2년을 맞는다. 투쟁한 지 2년이 되는 날에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공단의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나는 들꽃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22명의 조합원이 직접 쓴 글을 엮어만든 책 <들꽃, 공단에 피다>이다.

노동조합은 첫 경험으로 짜릿함이 온몸에 전율로 흐르지만 좌절과 희망을 넘나드는 고뇌를 안겨준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한꺼번에 다 안겨준 심오한 감성을 온몸으로 체득한다. 그래서 늘 새롭다. 힘겨운 시간들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공장에서 문자 한 통으로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의 길은 멀고 험하다.

처음 6개월은 실업급여로 살았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금속노조 가입이 승인되었다. 6개월간의 생계비 지원이 가능해졌다. 1년이라는 시한부 생명을 얻었다. 후회 없이 투쟁하고 끝을 보고 싶다는 조합원들의 바람은 곧 지회장의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매달 생활을 감당해야 할 노동자들에게 잔혹한 시간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어떻게 하면 투쟁을 잘 할까 고민해야 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까 걱정해야 했다. ‘어떻게 생계비를 마련할 수 있을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거리였고, 숙제였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금속노조 생계비 지원이 끝날 시점부터 생계비 cms 후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부분은 생계비 마련을 위한 후원호프와 명절 ‘김&장 판매’ 등 쉼 없는 재정사업으로 메웠다. 투쟁에 생계비 마련에 숨고를 틈도 없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조합원에게 매월 100만 원의 생계비를 챙겨줘야 한다는 짐이 무겁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생계비를 해결하지 못 할 거라고 비관한 적 없었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은 걱정스러웠고, 현실은 각박했다.

“무슨 재정사업을 할까?” 입버릇처럼 흘러나온 말에 “잡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책을 만들어서 팔면 돈을 벌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대화가 있었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계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점점 현실을 옥죄어왔다. “책을 만들어서라도 생계비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함이 애를 태웠다. 결코 실현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좀 더 진지하게 전개되었다.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써보자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투쟁이 끝나고 책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치열하게 싸울 때,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법이니까 말이다. 이 땅의 비정규직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투쟁하는 우리가 결코 화성에서 온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비정규직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조합원 모두가 글을 써야 하는 부담을 안고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누가 이런 책을 읽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이 마음속에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내 한 번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책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나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이하 철폐연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철폐연대 활동가들이 흔쾌히 함께 하기로 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책만들기 프로젝트 ‘별별책’ 편집팀을 구성하고 추진하였다.


조합원들의 글쓰기

처음 조합원들에게 무작정 글을 쓰라고 할 수는 없었다. 1년 6개월가량을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같은 투쟁의 시공간에서 있었던 무수한 사건들을 소재로, 모두가 다함께 글을 쓰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22명의 조합원에게 각각의 사건에 따른 별의별 주제를 안겨주었다. 에세이 초안을 쓰게 했다. 4명의 조합원이 인터뷰를 통해 글쓰기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나머지는 모두 직접 글을 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놀랄 일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쓴 경험도 없을 법한 조합원들이 실제로 글을 쓸 수 있을지 매우 걱정스러웠다.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조합원 모두가 (사실은 지회장 빼고) 1차 원고마감일을 맞춰서 숙제를 했다는 것이다. 아주 훌륭한 성적이다.

“처음엔 책 만드는 데 글을 쓰자는 이야기를 들은 조합원이 맞춤법을 틀리거나 띄어쓰기, 문법이 틀릴 걸 겁내면서 쓰는 걸 무척 힘들어 하더라고요. 국어문법이 좀 어렵잖아요. 겁내지 말라고 했죠. 그런 건 편집하면서 다 고쳐주고 수정해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부담을 줄여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자기가 쓰고 읽고 수정하면서 다시 쓰다보니까 내용은 훨씬 더 나아지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원래 수정할 때 제 개인적인 솔직한 심정을 다 쓰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제 개인적인 거 숨기고 싶은 내용도 많고, 언젠가 용기가 더 생기면 좀 더 솔직한 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별별책에서 지회 소통을 담당했던 수일씨의 말이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진리였다. 초안을 받아든 나는 잠시 망연자실했다. 글을 써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곤욕스런 일이었을 거다.

“투쟁사업장이라고, 우리가 싸운다고 해도 금방 결판은 안 날거고, 더디게 갈 건데 책을 만들면 우리가 좀 더 많이 알려질 거라 생각되었어요. 처음에 글 한 줄 적기가 제일 어려웠죠. 한 줄을 어떻게 적느냐에 따라서 그 한 줄이 마음에 들면 계속 이어져 나가는데, 그 한 줄을 못 적으니까 엄청 애먹었어요. 문장실력도 없고, 재주도 없어서 힘들었어요. 쓰다가 지우고, 수정하면서 또 적고 다 써놓고도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긁적이면서 좀 들여다보고 적어놓고 조금씩 글줄이 늘어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뿌듯해 지더라고요. 문장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뿌듯함이 생겼죠. 완성되는 걸 느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자기만의 글을 완성한 상원씨의 이야기다.

조합원들에게 별별책 편집팀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공약을 걸고 자신이 쓴 글을 손질하여 달라고 부탁했다. 별별책 편집팀은 조합원들의 글이 완성될 수 있도록 지원키로 하고 담당자를 두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았다. 자신의 글을 새로 써보기로 했다. 조합원들은 글쓰기 때문에 골머리가 다 썩는다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원고지에 글을 쓸 때는 손가락에 힘을 주고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정성을 쏟았다.

“조합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담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책은 실제 글 쓰는 사람만이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쓰는 거다. 우리는 묻히는 이야기를 쓴 거다.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거니까.” 차헌호 지회장의 말처럼, 글을 쓰는 것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글을 쓰고 났을 때의 만족감이 크다. 잊혀지고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기억을 더듬다보면 새록새록 떠오르는 서럽고 분노스럽던 일들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자신과 함께 고생했던 동지들의 마음을 글로 들여다본다. 동지를 조금 더 이해해 본다.

22편의 조합원 에세이가 완성된 후, 모두 함께 읽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정말 우리가 책을 만드는 구나.’ 실감이 난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원고를 모아 대구의 작은 출판사 한티재로 넘겼다. 책을 제작하는 과정에도 아사히비정규직지회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광화문으로

그날은 이 땅의 사드를 배치하는 것에 반대하며 밝혔던 성주촛불 300일(5월 8일) 되는 날이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성주 사드배치반대투쟁의 상징인 성주촛불 300일, 축하받을 일도, 자축할 일도 아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드대신 평화협정”을 바랐던 성주촛불은 1,600만 박근혜퇴진과 적폐청산 촛불을 밝히는 도화선이 되었을 법 했다. 성주촛불 300일은 자랑스럽고 눈물겨운 날들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있을 19대 대통령선거에 기대를 한껏 모을 수밖에 없었다.

성주에서 사드배치결사반대 촛불을 밝히는 동안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 자리를 잡고 ‘노동3권 완전쟁취’를 위해 농성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수시로 사드배치결사반대 투쟁에 연대해왔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책을 만들기 위해서 글을 썼던 그 시기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매일같이 “박근혜퇴진과 노동권리 보장”을 외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던 시기였다.

아사히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드가 성주지역에 배치되는 것이 결정되던 2016년 7월부터 성주촛불에 참여해왔다. 이 노동자들의 연대로 성주주민들은 이 사회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일상적인 해고로 고통 받고, 권리가 박탈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또 직장 생활하는 성주주민 자신의 현실이다. 가족과 이웃이 비정규직 문제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노동자의 투쟁은 사드반대투쟁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던 4월 14일 투쟁사업장공동투쟁(이하 공투) 6명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완전보장”을 요구하며 고공단식농성을 올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성주에도 큰 충격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성주촛불님들 사이에서는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온전히 실현할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되었다. 다음 날, 23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한 성주촛불님들은 고공단식농성장에 연대방문 하였다. 하늘 가까이 올라간 노동자들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냈다. 고공단식농성장을 치열하게 사수하는 공투 노동자들의 고생하는 모습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으로 응원했다. 

고공단식농성에 오른 6명의 노동자 중에 별별책을 담당했던 수일씨가 있다. 수일씨에게 언론사 기고하는 글을 요청했을 때 “최선을 다해서 써볼게요.” 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든 책에 고공단식농성을 담기로 했다.

나는 고공단식농성에 들어간 스무 여섯 날이 지나고서야 서울광화문 광고탑을 찾았다. 새벽기차는 아침해의 밝은 빛을 좇아서 달렸다. 내 옆자리엔 어떤 사연을 가진 이가 스쳐지나갔는지 느낄 새도 없이 잠에 취한 기차는 서울역에 도착한다.

공투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공단식농성을 통해서 공동투쟁은 더욱 집중하는 투쟁을 만들어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알려냈다. 전국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후원과 연대를 받았다. 대단한 관심을 느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중요한 대선시기에 투쟁을 하도록 추동해내지 못한 아쉬움과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는 기간이었다. 고공단식농성을 하는 6명 노동자의 뼈와 살을 태워 희생을 강행해서라도 요구했던 목표는 민주노총이 노동기본의제로 사회문제의 중심에 서는 것이었다. 목표는 이뤄지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고공단식으로 몸과 마음이 온전치 못한 노동자들의 심기를 괴롭혔다. 그러나 싸움은 패배하지 않았다.

“이 투쟁하면서 동지애를 느꼈어요. 책임감이 엄청 커진 것 같아요. 8박 9일을 서울상경하면서, 저희 아사히가 후원호프할 때 몇몇은 내려가도 몇몇은 남아서 광고탑을 지켜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 동지들이 자발적으로 지키겠다고 하는 거죠.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거든요. 농성장을 사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누가 더 잘할 것도 없이 엄청 컸어요.” 기웅씨의 이야기다.

고공단식농성을 해제하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날인 5월 10일, 수일씨의 아내 애주씨가 서울로 왔다. 잠시라도 남편의 병상을 지키기 위해서 올라온 그녀는 “남편이 고공에 올라갈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왜 하필 당신이냐고 물었지요. 남편은 자신이 결단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했죠. 남편이 마음을 먹으면 쉽게 바꾸지 않을 거란 걸 잘 아니까 겁은 났지만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이 고공단식하는 27일간 애주씨는 걱정과 한숨으로 말라갔다. 고공에서 내려온 노동자들은 녹색병원으로 옮겨졌다. 광고탑을 지켰던 공투 농성장은 해단하고 정부청사 앞 농성장으로 옮겨갔다. 27일간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이 필요하다.

서울에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을 때, 한티재출판사는 책 편집작업이 치열하다. 별별책의 제목은 도깨비 VS 들꽃의 치열한 경쟁구도를 이뤘지만 <들꽃, 공단에 피다>로 정했다. 노조창립일인 5월 29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투쟁 2년을 맞이하는 날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작업을 서두른 덕분에, 5월 16일 디자인편집이 완료되었고 22일경에 책이 발행됐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책을 세상에 내놓는 조합원들의 소원이다. 상원씨는 “대통령이 읽는 책이면 좋겠어요. 남유진 구미시장이 읽었으면 좋겠고, 아사히글라스 사장이 읽기를 바랍니다. 우리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안 읽어도 다 이해되잖아요. 저런 높은 자리에 앉아만 있는 사람들이 읽고 우리같은 사람 심정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수줍은 소원을 이야기한다.

척박한 구미공단의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들꽃같은 22명의 치열한 투쟁과 삶 이야기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묻어나는 이야기, 끝을 보고 싶다며 지금까지 견뎌온 그들의 다짐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들꽃,공단에피다.jpg

 

 

22명의 들꽃같은남자들의 묻히지않은이야기,책으로펴내다_손소희-질라라비20170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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