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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자신감과 가능성 북돋운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차헌호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

 

 

2018년 9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서울고용노동청을 18일간 점거했다. 서울고용노동청 점거투쟁은 대구, 경기, 창원 고용노동청 점거 투쟁으로 이어졌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동지들은 사업장을 넘어 더 많은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을 고민했다. 한국지엠과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공동투쟁을 논의했다. 그렇게 시작된 공동투쟁은 공공운수노조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동지들과 함께 4박 5일간의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이 되었다.

 

공동투쟁에 참여한 사업장은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모였다. 4박 5일간의 투쟁은 의외로 박진감이 넘쳤다. 신났다. 4박 5일 투쟁의 결과는 놀라웠다. 마지막 날 8개조로 나눠서 조별 평가를 진행했다. 참가한 조합원들의 조별 평가 일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금속과 공공이 함께 투쟁하는 게 가능할까? 의심했는데 오해였다. 공동투쟁이 더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젊은 금속 동지들과 함께 싸우니 든든했고, 잘 싸우는 금속 동지들이 부러웠다.”

“든든한 동지들과 함께 싸우니 자신감이 생겼다.”

“동지들과 함께 싸우니 청와대, 검찰, 국회 같은 싸우기 쉽지 않은 기관과 싸울 수 있어 좋았다.”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언론이 관심을 가지니 너무 좋았다.”

“비정규직 공동투쟁의 필요성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해고되지 않은 조합원들은 월차를 내며 공동투쟁에 결합해 함께 싸우니 좋았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명과 대화합시다

 

4박 5일 공동투쟁은 짧은 시간에 준비된 투쟁이다. 모두가 잘될까 하는 의구심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첫 기자회견에서부터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청와대, 검찰, 국회로 이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거침없는 투쟁을 보면서 언론은 더 집중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명과 대화합시다’는 잘 설정한 요구였다.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에게 1,100만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1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통령을 만나자고 한 요구는 피해갈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다.

 


자신감과 비정규직 투쟁의 질적 도약

 

이 투쟁에 함께한 동지들은 자신감이라는 가장 소중한 성과를 얻었다. 비정규직 개별 단위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사업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업장의 요구를 뛰어넘지도 못했다. 그러나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세상을 뒤흔드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비정규직은 자본과 정권을 위협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4박 5일 투쟁은 첫날부터 청와대 앞에서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기세를 높였다. 집회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경찰들과 싸우며 구급차에 2명의 동지들이 실려 갔다. 우리는 경찰에게 밀리지 않았다. 경찰은 우리 대오를 둘러싸며 집회 장소를 축소하려 했지만 2차선을 잡고 집회를 진행했다. 150여 명의 동지들은 침낭과 비닐 한 장을 덮고 맨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그럼에도 모두들 얼굴이 밝았다.

 

둘째 날 대검찰청 투쟁은 긴장도가 더 높았다. 검찰청 앞에 경찰버스 20여 대가 줄지어 서있었다. 대검찰청 정문은 한 명씩 들어갈 수 있도록 경찰이 막고 있었다. 검찰총장 면담을 요구하는 9명의 우리 동지들은 어떻게 들어갔는지 검찰청 안에 들어가 로비에 눌러 앉았다.

 

검찰은 불법파견에 대해 한결같이 자본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의 행태에 머리 꼭대기까지 분노가 차있었다. 대검찰청 앞에서도 하룻밤 자기 위해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텐트 60여 동을 쳤다. 그 과정에서 한 명의 동지가 구급차에 실려 갔다. 경찰 군홧발에 밟혀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 다리에 깁스를 했다. 청사 안의 동지들도 단호했다. 검찰총장을 대신해 부장검사가 로비에 눌러앉은 동지들을 만나러 왔다. 부장검사는 자신과 대화하자고 했으나 우리 동지들은 검찰총장이 올 때까지 로비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부장검사는 머쓱하게 돌아갔다. 경찰은 검찰청에서 나가지 않으면 18시에 연행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경찰은 19시가 돼도 연행하지 않았다. 결국 20시가 넘어서 연행했다. 연행된 동지들은 다음날 새벽 2시 경찰서에서 풀려났다. 조합원들은 연행된 동지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텐트 한 동에 2명씩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둘째 날 밤이 깊어가는 만큼 동지애도 쌓여갔다.

셋째 날 국회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국회 안과 밖에서 투쟁을 벌였다. 우린 경찰에게 밀리지 않고 텐트를 치고 저녁 문화제까지 국회 앞에서 진행했다.

 

공동투쟁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함께 투쟁하면 훨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우리 스스로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의 힘으로 더 넓은 단결과 더 높은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4박 5일간의 공동투쟁은 질적 도약을 보여준 투쟁이다.

 

 

2 2018.11.13. 비정규직 공동투쟁, 대검찰청 앞 [출처 필자].jpg

 2018.11.13. 비정규직 공동투쟁, 대검찰청 앞 [출처: 필자]

 

 

비정규직 양산하는 구조에 맞선 전선 형성

 

그동안 비정규직 투쟁은 개별이나 산별로 투쟁을 전개했다. 다들 나름 고군분투했지만 총자본과 정권의 비정규직법 개악과 탄압에 대한 전체 전선은 만들지 못했다. 개별로 투쟁하는 것보다 함께 공동의 전선을 만드는 것에 모두 동의하지만 사업장의 처지와 상황으로 인해 함께 싸우지 못했다. 물론 의지의 문제도 있었다. 단일한 요구를 어떻게 만들어 싸울 것인가 하는 고민이 부족했다.

 

4박 5일간 청와대, 검찰, 국회를 상대로 싸웠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권력 구조에 맞서 전선을 펼친 것이다. 자본을 대변하는 저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이번 공동투쟁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가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냥 잘 싸운 4박 5일의 공동투쟁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앞으로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급적 요구를 걸고 어떻게 싸워야 할지 보여준 투쟁이다.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

 

김용균은 고향인 구미공단에서 27번의 면접을 보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태안화력발전소에 입사했다. 그는 죽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손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24살 젊은 노동자는 어렵게 구한 일터에서 몸과 머리가 분리된 비참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용균의 죽음은 1,100만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죽음을 멈춰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에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 떨쳐나서서 싸워야 한다. 1,100만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비정규직 공동투쟁단은 사활을 걸고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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