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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아사히 투쟁 6년, 이제 우리의 시간이 왔다!

 

차헌호 • 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아사히글라스에서 6년 만에 처음으로 연락이 왔다. 가슴이 뛰었다. 원청 사용자인 아사히 자본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집단해고 당한 우리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처음으로 대화의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기뻤지만 긴장했다. 우리는 조합원들과 집단적 토론에 들어갔다. 아사히 자본이 제시할 안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안이라는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받을 수 없는 안이라면 단호하게 집단적으로 거부할 힘이 필요했다. 우리는 여러 경우의 수를 예상하며 집단적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았다.

 

2월 23일 사측을 만났다. 먼저 사측의 안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 다만 지회장은 고용이 어렵다. 고용하지 않는 대신 3억 4천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 신규 채용하는 조합원은 1인당 9천 2백만 원을 지급하겠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 발전기금을 내겠다.”

그럴싸했다. 3억 4천이나 준다고 하니 머릿속에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돈이 그려졌다. 그리고 아사히 노조파괴 범죄자들은 돈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규입사를 하면서도 9천 2백만을 준다고 하니, 속으로 나름 ‘돈질로 끝내려고 작정했구나’ 생각했다.

 

사측의 얘기가 끝이 났다. 우리가 얘기를 시작했다.

“아사히가 6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를 만나자고 한 것은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가장 먼저 사과부터 해야지요. 사과부터 하십시오.”

 

사과를 요구했다. 사측은 그런 것은 보통 합의문에 작성하는 것이 아니냐며 얼버무렸다. 다시 22명 모두 고용이 가능한 것인지 질문했다. 사측은 그건 어렵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22명의 고용이 가능할 때 다시 연락하라며 만남은 중단하자고 얘기했다. 사측의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측은 서로 입장을 나누며 대화를 계속 이어갔으면 한다고 다시 제안했다. 우린 그럴 생각 없다며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이 시원했다. 그동안 당했던 억울함을 담아서 한 방 먹이는 통쾌함을 느꼈다. 그 즉시 사측의 입장을 정리하여 조합원들과 소통했다. 지역 언론에 내용을 공개하고, 연대 동지들에게도 내용을 공개했다. 공개한다는 것에 가슴이 벅찼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1 아사히비정규직 7년 투쟁 이야기01.jpg

 

2019년 어느 날 농성장에서 한 컷. [출처: 아사히비정규직지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주노조운동의 원칙

 

7년째 장기 투쟁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당당하다. 우리를 분열하기 위해 만든 안을 세상에 공개하며 아사히 자본의 비열함을 폭로했다. 마치 승리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장기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힘이 없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한다. 장기 투쟁에서 자본이 안을 던지면 노동자들은 그것을 무조건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본은 베푸는 입장이고, 노동자들은 받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노동자의 자존심을 빼앗길 순 없다.

 

돈질로 감히 어딜! 아사히 자본은 노동자를 짓밟고, 노동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어찌되는지 당해봐야 한다. 우리는 받은 만큼 돌려준다. 다시는 돈질로 우리를 흔들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뜨겁게 한방 먹였으니 1차전은 우리가 승리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우리는 꼭 사과 받고 민주노조를 지켜낼 것이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민주노조의 원칙을 지키며 싸우기 위해 노력한다. 비록 조합원 숫자는 22명에 불과하지만 집단적인 토론을 통해서 결정한다. 투명하게 운영하고 모든 내용을 공개한다. 조합원들이 살아 있는 노조, 연대하는 노조를 만들며 7년째 싸우고 있다. 우리는 자부심이 있다. 우리는 민주노조를 지키며 당당하게 투쟁하는 노동자다.

 

아사히가 낸 안을 거부한 것을 많은 동지들이 훌륭한 결정이고, 어려운 결정이라며 응원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어렵게 결단하지 않았다. 쉽게 결정했고, 당연한 결정이었다. 조합원 22명 모두 똑같은 마음이었다. 함께 싸운 우리가 누구는 고용이 가능하고, 누구는 고용이 안 되는 방식은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아사히 자본은 조합원들이 위로금 몇 억에 흔들릴 것으로 판단했는데, 그건 우리를 너무 얕보고 잔꾀를 부린 것이다. 강철이 끊임없는 망치질을 통해 단련되듯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단련된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달려온 6년의 투쟁은 그렇게 우리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승리한다는 진실을 온몸으로 체득해 왔다. 자본을 향한 조합원들의 눈빛은 여전히 반짝이며 살아있다. 아사히 자본은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노동자, 투쟁하는 노동자라는 것을 아직도 잘 모른다.

 

불법파견 적발해도 검찰은 봐주기 수사, 사법부는 솜방망이 처벌

 

지난 5월 3일 아사히글라스 파견법 위반 형사재판 최종변론이 있었다. 검찰은 아사히 사장 하라노타케시 징역 6개월, 하청 사장 정재윤 징역 4개월, 아사히글라스 법인 벌금 5천만 원, 하청 법인 벌금 5백만 원을 구형했다. 솜방망이 구형이다. 검찰과 사법부는 파견법 위반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다.

 

한국지엠 릭 라일리 사장은 2013년 2월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대법원에서 벌금 7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하청업체 대표 4명도 각각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7년 뒤인 2020년 2월 한국지엠 카허 카젬 사장이 또다시 파견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파견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 불법파견을 이어가는 이유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다.

 

파견법 위반은 파견법 제43조의 규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법원은 한국지엠 릭 라일리 사장에게 고작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혼자 술 먹고 음주운전으로 걸려도 벌금 5백만 원에서 1천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위장도급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달한다. 불법으로 수십, 수백억을 챙겨도 고작 벌금형이고, 그 벌금도 몇 백만 원에 그친다. 대체 어떤 사장이 법을 지키려고 하겠는가?

 

파견법 위반은 범죄다. 정규직을 고용해야 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서 불안정노동을 만든다. 2019년 1월 31일 서울남부지법은 사건번호 2018고단165 파견법 위반 사건에서 세이브존 사측 대표들에게 징역 1년과 징역 10개월을 선고하며, 다만 2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는 징역형을 내렸다. 재판을 진행한 임종효 판사는 “파견법 위반은 열악한 근로환경에 놓이게 하는 범죄로서 우리 사회에도 심각한 해악을 미치게 되어 죄책이 무겁다”라고 판결했다.

 

아사히는 외투기업으로 12만 평의 토지를 무상임대 받고, 국세 지방세 감면의 혜택도 받고 있다. 연평균 매출 1조씩 벌어들인다. 한국지엠이나 아사히 같은 외투기업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한국에서 이 정도의 불법행위는 해도 괜찮다는 삐뚤어진 인식에서 비롯한 일이다. 이처럼 기업의 잘못된 인식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기업의 불법행위를 가볍게 여기거나 눈감아주었기 때문이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1 아사히비정규직 7년 투쟁 이야기02.jpg

 

2019. 8. 23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승소 [출처: 아사히비정규직지회]

 

22명의 복직만이 아니라 모두의 승리를 위해

 

7월 14일 아사히 파견법 위반 형사재판 선고가 있다. 우리는 재판부에 아사히 엄중 처벌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1만 명이 넘는 분들이 엄중 처벌 탄원서에 함께 해주셨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싸우는지에 따라서 법원 판결도 달라진다. 재판이 정의롭지 못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소됐어도 법원에 맡겨둘 수 없다. 우리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예상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싸운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있다. 부모의 병이라도 오랫동안 병간호를 하다 보면 소홀해지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투쟁이 장기화되면 지치고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장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단결력을 유지하며 싸워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지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집중력을 발휘해서 투쟁하며 힘을 유지해왔다. 자본은 시간 끌기를 하며 생활고에 직면한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불리한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유리한 시간이다. 조급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투쟁을 빨리 끝내는 것보다 제대로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용되고 보상받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사과 받고 민주노조를 지켜내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승리로 나아가는 길이다. 아사히 투쟁은 반드시 승리한다. 언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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