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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사회운동, 체제를 넘어 다른 세계를 열자!”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체제가 위기라는 말들이 범람하는 시절이다. 반면, 대안을 탐구하고 모색하는 활동은 사람들의 시야에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가뭄 끝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려 왔다. 지난해 4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체제 내화하는 사회운동 흐름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변혁적 사회운동의 전망을 함께 고민하는 집담회를 제안한 것이다. 초기에는 10여 개 단체들이 모여 내부 워크숍과 집담회를 가졌다. 이 모임을 통해 현안을 넘어서 체제가 야기하는 모순과 사회운동의 현재를 살펴보았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더 많은 사회운동 활동가들과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비슷한 어려움과 고민을 토로했고, 보다 긴 호흡으로 전망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다른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모임>(이하 <길 내는 모임>)이 만들어졌고, 올해는 변혁적 사회운동의 결속을 일궈 낼 열쇠말로 ‘기후위기’, ‘페미니즘’, ‘노동’에 주목해 전망 논의를 지속할 예정이다. 1월 17일, <길 내는 모임>을 제안한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동지를 만나 사회운동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다고 보는지, 또한 앞으로 어떤 길을 누구와 함께 걷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7 현장 속으로_01.JPG

 

2022.01.17.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만난 미류 동지. [출처: 철폐연대]

 

인권운동 혹은 사회운동의 몫

 

‘문제를 발견하고 갈등을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운동이 가진 고유한 역할이라고 미류는 말한다. 사회적 갈등을 도외시하고 무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사회운동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사회운동이 보수적인 기득권 정치에 동조하고 협력해서는 이러한 역할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럴 때 사회운동은 기껏해야 문제 해결을 청원하거나 정책 결정권자로부터 약속을 받아 내는 수준에 머물고 만다.

체제에 포섭되거나 종속되지 않고 대항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이유이다. 그를 위해서는 기존의 배타적 소유관계와 성장 중심의 체제를 ‘갱신’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전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가령 100점 만점짜리 권리 상태가 있고 10점, 50점, 70점 이렇게 채워나가는 게 인권일 수는 없잖아요. <인권운동사랑방> 창립 당시에도 그런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결국 이런 억압과 착취, 혹은 차별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자기 목소리를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인권운동의 본령이라 생각해요. 2013년 <인권운동사랑방> 20주년을 맞이하면서 고민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어요. 대중의 힘을 변혁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지금 인권운동의 절실한 과제가 아니겠냐는 거죠.”

 

<인권운동사랑방>이 20주년을 맞은 2013년 이후 한국 사회는 커다란 전환의 시간을 경과했다. 2014년 4.16세월호참사,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그리고 박근혜퇴진 촛불시위가 그러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사회운동은 기층의 잠재된 분노를 대중적 저항운동으로 이끌어 낼 역량이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이 정도로 충분한가?’ 하는 의문도 동시에 남았다.

 

“몇 가지 장면이 떠올랐어요. 촛불시위로 탄생한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나중으로 미룬다거나, 19대 대선에서 당시 모든 후보들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내걸었는데 뭔가 사회적 논쟁은 이전 시기로 후퇴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이요. 개인적으로는 조국 사태와 박원순 사건이 좀 더 직접적인 계기였는데요. 그러니까 이런 사건들 속에서 각자 다른 전망과 지향을 갖더라도 서로 더 나은 대안을 제출하면서 다퉈 가는 과정이기도 할 텐데, 이렇게 사회운동의 존재감이 없을 수 있는 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싸움들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 사회가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사회운동이 대중에게 대안으로서 인식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그때 받았어요. 그리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위력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사회운동이 제대로 자신의 위치를 잡지 못하면 대중의 힘으로 쌓아 올린 어떤 변화를 거역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미투운동을 촉발케 한 여러 사건의 경험은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함께 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서울시장 위력성폭력과 사망 사건에서는 그러한 운동의 성과들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더불어 이 같은 상황을 목도하면서도 언제까지나 한탄하고 품평하는 태도는 너무 비겁한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 또한 깊어졌다.

 

체제가 할당한 자리에 주저앉고 말 것인가?

 

사회운동이 기성 체제와 분명히 단절하지 못한 원인은 여러 갈래에서 찾을 수 있다. 90년대 초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다른 세계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제약하는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한편, 신자유주의 노선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계승했다는 측면에서 이전 보수 정권과 다를 바 없는 ‘민주당 정부’에 협력ㆍ친화적이었던 사회운동 일각의 경향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처럼 사회운동이 주류 기득권 정치로부터 명확하게 분별 정립하지 못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안사회의 전망을 이야기하는 게 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 같아요.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지향이 그런 전망을 반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87년을 거치며 달라지죠. '민주화'를 넘어서려는 흐름이 91년 5월에 단절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끊기고, 87년 이후 이어진 정권들은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과 시민운동에 대한 지원(이나 배제) 전략을 구사하면서 그 일부를 체제 안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죠. 당시의 열망이 진보정당으로도 이어졌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더 나아가지는 못했고요. 이런 역사를 겪으면서 사회운동 내부에 다양한 가능성이 생성되기보다 주류 정치세력과의 분리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 이르렀고요.”

 

민주당 정부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도드라졌다. 사회운동 일각에서 각종 거버넌스 기구에 참여하거나 정부 정책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모습이 공공연하게 등장했다. 그런 가운데 조직적 운동이 성취한 결과물을 전유하면서 주류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개인들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억압과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이 보다 효과적으로 현실에 개입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기득권 세력에 가담하는 것이 용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된 단절’, 우리는 어떻게 연결돼야 할까

 

그동안 사회운동은 억압과 착취를 강요하는 체제에 맞서 ‘따로’, 또 ‘같이’ 싸워 왔다. 그러나 운동의 전문화, 분절화 경향은 날로 심각해져서 사안별 연대체의 틀을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지만, 서로를 구분 짓는 경계를 허물어 세력화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먼저 개별 운동의 교차점을 형성해 나가면서 흩어져 있는 사회운동의 의제와 주체들을 단단히 엮는 과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개별 운동 간 경계를 허물자거나 당장 한자리에 모이자는 제안은 아니에요. 먼저 체제를 변혁할 수 있는 전망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이야기를 꺼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렇게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아마 공통점보다는 이질적인 것들이 더 많이 확인될 수도 있잖아요. 다만, 그걸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회운동, 체제를 넘어 다른 세계를 열자’1)는 글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 글에서 미류는 사회운동이 처한 곤경을 딛고 넘어서기 위해 우선 ‘출발선에 함께 서자’고 제안했다. 어떤 질서와 전망으로 나아가자고 전제하기보다 오래된 단절을 극복하는 시도부터 해 나가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체제를 변혁하는 힘으로 모일 수 있도록 동료가 되자”는 것, 일단 개별 운동이 처한 문제를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는 제안이다.

 

1) 2021.11.3. <다른세계로 길을 내기 위한 사회운동 토론회> 기조발제문.

https://srhr.kr/materials/?idx=8741796&bmode=view

‘변혁적 사회운동’의 전망 찾기

 

과연 사회운동은 대안사회의 전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념적 좌표를 분명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가 실패했음을 선언하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그래서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지’ 실천의 언어를 획득하지 못하면 단지 공허함만 남을 뿐이다. <길 내는 모임>은 당장 무엇으로부터 시작해 보자고 말하는 걸까?

 

“대안사회의 전망이라는 게 어떤 청사진의 밑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삶을 만들어 간다고 할 때 그것은 사실 사회적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어떤 경험들을 축적해 간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잖아요.

이를테면 김지은님이 <나는 김지은입니다>라는 책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요. 그러니까 여성의 성폭력 피해 경험이 말해질 때 우리 사회는 흔히 가해자에 대한 징벌을 강화해야 한다거나 성폭력 예방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식의 일면적 접근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저는 스스로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로 위치 지었던 김지은님의 목소리를 좀 더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자 김지은’님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기반도 일터였는데, 결국 그 일터에서 나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위치하게 되는지 반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터의 권력관계로부터 파생하는 폭력이나 차별의 경험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고, 또 어떻게 이것을 함께 바꿀 것인지 질문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사회운동이 ‘다른 세계’로 길을 내기 위해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함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결국 세력화의 가능성도 이로부터 찾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지난해 11월 3일 있었던 토론회의 발제문에서 그 의미를 새겨볼 수 있는 대목을 그대로 옮겨 본다.

 

 

각 운동이 현재 처한 고민을 속 깊은 동료가 되어 듣고 나누고 배우는 과정부터 필요하다. 노동운동이 페미니즘을 삶의 무기로 삼은 이들에게 투쟁의 자리를 만들고, 여성운동이 고용형태라는 쟁점을 넘어서 노동자의 권리를 세우기 위한 투쟁의 자리를 만드는 일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부문이나 의제를 통해 보게 되는 현실을 공유할수록 체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꾸준히 함께 갈 수 있는 ‘동료되기’부터

 

그래서 <길 내는 모임>은 변혁적 사회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활동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가려고 한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몇몇 단체들이 함께 모여 두세 차례의 집담회와 워크숍을 열어 각자 의제는 다를지라도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사회운동의 곤경은 무엇인지 짚는 일부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궁리하고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려 서로 머리를 맞댔다. 지난해 11월 3일 개최한 온라인 토론회 역시 그간의 고민과 문제의식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물론, 몇 차례의 워크숍이나 토론회로 해결책이 ‘짠~!’하고 나타날 리 만무하다. 한동안 각자의 부문과 영역에 머물러 있던 시야를 넓게 틔우면서 접점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길 내는 모임>의 지난 활동 속에서 서로 고민이 가닿아 포개어지는 지점은 어디였을까.

 

“어떻게 보면 사회운동이 그냥 수십 년째 같은 의제를 갖고 싸우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잖아요.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는 만큼 그 쟁점이나 맥락도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체제가 자리잡아 가는 과정도 그렇고, 이 시기 등장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사회적 요구들을 왜곡하거나 기각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사회운동의 성취는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고, 십수 년 전 우리가 바랐던 게 과연 이런 거였나 싶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요. 지금 (<길 내는 모임>에) 모여 있는 단체들은 ‘그냥 이대로 기존 목표를 가지고 가도 정말 괜찮은 거냐?’는 의문을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그게 굉장히 도전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동안 각자 운동 속에서 축적해 온 게 있을 텐데, 이걸 근본적으로 되짚어 보면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제는 서로의 도전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관계까지는 된 게 아닐까요?☺”

 

거대양당 구도에 갇혀 혐오와 배제의 말들을 서슴없이 쏟아 내는 최악의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보다도 더 최악은 지금 사회운동이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들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거나 각자가 짊어져야 할 문제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체제를 넘어설 전망을 만들기 위한 <길 내는 모임>의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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