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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우리가 원한다면, 우리가 저항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이용석 •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한 달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 두 차례 큰 세계 대전을 겪고, 베트남전쟁, 한국전쟁 같은 국제전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 국지적으로 일어난 무력 충돌까지 꼽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전투를 하지 않을 때에도 군비경쟁을 하며 차가운 전쟁(냉전)을 이어갔다. 나치가 벌인 홀로코스트,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소,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같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전쟁범죄 앞에서 인류는 거듭 반성했지만, 전쟁도 전쟁범죄도 되풀이되었다. 21세기 벽두에 일어난 이라크 전쟁은 21세기마저 전쟁의 세기가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를 자아내게 했다. 물론 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군부 쿠데타와 내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한 정부의 군사 진압이 있었지만, 국가와 국가가 총력전을 펼치는 전통적인 의미의 전쟁은 한동안 소강상태였는데,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며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 같은 국가 간의 전쟁이, 그것도 유럽 대륙에서 일어났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전 세계의 모든 정치지도자들이 전쟁은 옳지 않다고 말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기까지 세계는 전쟁을 막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유엔은 무기력했고, 강대국들은 자기 잇속만 차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막무가내였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또한 전쟁을 피할 의지는 없었다. 과연 인간은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일일까? 우리는 전쟁이라는 압도적이고 거대한 재앙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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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8.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평화적 해결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 때.

[출처: 전쟁없는세상]

 

 

전쟁에 대한 몇 가지 잘못된 전제들

 

전쟁에 대한 무력감은 전쟁의 가장 좋은 재료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은 사람들이 전쟁을 자연재해처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 하지만 전쟁은 결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심지어 자연재해조차도 그 원인과 피해의 규모에 인간의 행위가 개입한다. 새우 양식장을 위해 산호초를 다 없앴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에서 쓰나미가 재해가 되었고, 후쿠시마의 경우 핵발전소가 없었다면 쓰나미의 피해가 훨씬 줄었을 것이다. 자연재해와 다르게 전쟁은 약간의 우연이 개입할 순 있어도 시작부터 끝까지 인간의 의지가 작동하는 정치행위다. 쓰나미나 산불을 막을 순 없어도 전쟁은 인간이 막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쟁 앞에서 쉽게 무력해진다. 몇 가지의 잘못된 전제가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전쟁이나 폭력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오래된 오해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끊이질 않았으니 이 말은 일면 타당해 보이기도 하다. 과연 그럴까? 인간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반대로 이타적인 모습도 가지고 있다. 전쟁과 비슷한 재난 시기에 사람들은 선뜻 자기를 희생하며 이웃을 돌본다. 20세기 북미 지역에서 일어난 다양한 재난을 연구해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쓴 레베카 솔닛에 따르면, 폭력은 인간의 본성이기보다는 권력의 속성이다. 고위 정치인들이나 군대의 장성들은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평소보다 훨씬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전쟁에서 사람들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놀라운 공동체 의식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민간인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전쟁터에서 군인들의 행동도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장군 출신이자 미국의 군사학자인 새뮤얼 마셜의 연구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군을 조준 사격한 미군의 비율은 15~20%에 불과했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동족을 선뜻 죽이지 못했던 것이다.

 

전쟁과 군대를 둘러싼 또 하나의 뿌리 깊은 오해는 ‘강한 군사력이 평화를 지킨다’는 생각이다. 이 신화는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과 뒤이어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 사회에서는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강한 군사력이 평화에 끼치는 영향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몇 가지 예시로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2020년 초, 코로나의 급격한 확산으로 한국군은 군사훈련과 신병 모집을 중단했다. 하지만 군대가 멈추어도 아무런 안보 공백이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영구적인 중단이 아니라 비상한 시기에 잠깐 멈춘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군사력이 강하지 않으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을 보더라도, 1990년대까지 강력했던 우크라이나 군대가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고 약해졌기 때문에 러시아가 쳐들어온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강한 군사력은 때때로 평화를 지키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군사력 증강이 평화를 위협하기도 한다. 미국이 좋은 예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진 미국인들은 과연 평화롭게 살고 있을까?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911테러가 일어난 뒤, 미국의 공세적인 군사외교 정책이 테러리스트들에게 구실을 제공한다는 비판이 미국 내에서도 일었다. 또한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을 행사하는 동안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간 미국 군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강한 군사력은 국민(군인)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전쟁에서 승리가 국민의 평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평화를 고민한다면, 전쟁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조선의 임금에게는 북쪽의 오랑캐와 남쪽의 왜구로부터 백성을 지키기 위해 강한 군사력으로 국경선을 틀어막는 것이 안 보였을지 몰라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감염병과 산불 같은 자연적인 재해, 세월호 같은 사회적 참사로부터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안보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강한 군사력으로도 지킬 수 없는 평화이고,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돈과 재원을 쏟아부을수록 다른 영역이 부실해져 결국 국민의 평화와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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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3.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서 무기 전시회 규탄 및 무기 거래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출처: 전쟁없는세상]

 

 

전쟁에 대한 마지막 신화는, 절대악을 무찌르기 위해 불가피한 전쟁도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자면 미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파시스트에 맞서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진보적인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지적하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은 전쟁의 시작도, 진행 과정도, 전후 처리도 전혀 정의롭지 않았다. 미국은 진주만 폭격으로 갑작스럽게 전쟁에 휘말리기 전까지 독일, 일본과 나쁜 관계가 아니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도 미국 기업들이 나치 독일에 지사를 두고 나치 정부와 거래하는 것을 미국 정부는 막지 않았다. 만약 미국과 영국이 인권을 고려했다면 전세가 이미 기운 상황에서 1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드레스덴 폭격이나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후 처리에서도 미국과 소련은 패전국들의 식민지였던 곳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것을 돕기보다는 자신의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서게 하는 일에 더 큰 노력을 기울였다. 전쟁에서 ‘절대악’은 정당성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낙인찍는 정치적인 수사일 뿐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전쟁 또한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절대악은 아니다. 물론 전쟁을 시작한 푸틴에게 막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군사적 갈등이 고조된 데는 동진정책을 펼쳐온 나토의 책임과 2014년 민스크 협정을 어긴 우크라이나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전쟁은 절대악과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일어나는 물리적이고 군사적인 충돌이다. 절대악과 싸울 때 부여되는 정치적 정당성은 각자의 주장일 뿐, 사실 어떤 전쟁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전쟁에 대한 무력감은 전쟁의 가장 좋은 재료라는 사실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전쟁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전쟁을 중단시키는 가장 큰 힘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제아무리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반대한다면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현대의 전쟁은 국가의 재원을 쏟아붓는 총력전이기 때문에 군인들만 가지고 전쟁을 치를 수 없다. 군인들이 입고 먹고 쓰는 물건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노동자들이 전쟁에 반대해 파업을 한다면 군인은 전투를 치를 수 없다. 시민들이 전쟁에 반대하면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전쟁을 지속하려는 정부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여론을 조작하고, 적대감을 부추겨 국민들이 전쟁에 찬성하게 만들려고 한다. 히틀러와 나치는 전쟁에 대한 독일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인종 차별을 조장했고, 노동조합을 심각하게 탄압하면서도 전쟁이 장기화되자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법인세를 인상하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센 반전운동이 일어났던 베트남전쟁 때,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반전운동에도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회고록에서는 반전운동을 무시할 경우를 걱정했다는 것을 넌지시 이야기했다. 선전포고를 하는 것은 정치인,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 군인의 일이라면, 잘못된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은 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고, 우리에겐 그만한 힘이 있다. 존 레논은 ‘War is over’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곡 ‘Happy Christmas’에서 “전쟁은 끝납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War is over, if you want it”이라고 노래했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전쟁은 끝날 겁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전쟁에 저항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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