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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산재 전속성과 배달노동자1)

 

 

박정훈 •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3월 30일, 아마도 손님의 휴대폰 화면 속에서는 열심히 달려가던 귀여운 배달 라이더 캐릭터가 갑자기 멈췄을 거다. 손님이 배달을 시키고 실시간으로 배달 라이더를 확인했다면, 배달노동자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쿠팡이츠에 항의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은 라이더는 트럭에 치여 도로 위에서 사망했다. 화면 속 배달노동자는 영정으로 장례식장 단상에 놓여 있었다. 그제야 배달노동자의 이야기가 하나둘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 둘을 홀로 키우기 위해 하루 8만 보씩 배달을 하다 그게 너무 힘들어 전기 자전거로 배달을 시작했다. 이름도 이야기도 없이 죽은 배달노동자들은 더 많다. 3월에만 4명, 4월 11일에도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의식불명에 빠졌다.

 

배달산업은 노동자의 생명을 먹으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도로는 전쟁터로 변했다. 전사자는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살아남은 자는 ‘딸배’가 된다. 죽음조차 존중받지 못해, 배달노동자의 이야기는 ‘감성팔이’라는 모욕을 당한다. 장례식장 쌀밥과 댓글 속 욕을 반복해서 먹다 보면 반박할 기력조차 사라진다. 그렇게 죽음이 익숙해져 버린 내게 한 배달노동자가 죽비를 내리쳤다.

 

4월 1일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규탄 기자회견에서 자전거 배달을 하는 조합원이 외쳤다. “사람이 죽은 날에 쿠팡이츠는 5건 하면 추가 보너스를 주겠다는 알림과 문자를 보냈다. 적어도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이 죽으면 조의를 표하는 게 예의 아니냐!”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배달 앱의 알림에 아무런 분노도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사람 하나 죽었다고 배달산업이 멈출 리 없다. 다른 사람이 배달하면 그만이다. 죽은 이는 데이터에서 삭제될 뿐이다. 배달노동자의 사고와 죽음을 막는 건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면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구멍이 뻥뻥 뚫린 채 방치되고 있다.

 

 

5. 본문사진1.jpg

2020.03.31.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쿠팡이츠는 고인에 대한 책임을 다하십시오.”

쿠팡 본사 앞 현수막. [출처: 라이더유니온]

 

 

산재 전속성이라는 커다란 구멍

 

산재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박재범 씨는 배달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는데도 산재보상을 받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은 하나의 앱에서 월 93시간, 115만 원의 소득을 벌지 못하면 전속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보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전속성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산재 전속성 개념은 산재법상 특수고용노동자 개념이 도입되면서 함께 들어왔다.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가입납부를 클릭하면 산재고용보험 적용특례가 나온다. 그곳에는 산재보장은 해 주는데 특별하게 보장해 주는 사람들이 나온다. 거기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을 클릭하면 근로복지공단이 정의하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가 서술되어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란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아니하여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사람으로서, 아래 요건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

- 노무를 제공함에 있어서 타인을 사용하지 아니할 것

위 요건에 해당하는 보험설계사 등 14개 직종 종사자에 대하여는 노무를 제공하는 시점부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적용 특례에 따라 산재보험의 당연 적용 대상이 됩니다.

 

이 설명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노동은 하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데, 그래도 산재만큼은 보장해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단,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할 수는 없으니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이런 특수한 노동자는 모두 14개 직종이다. 보험설계사, 건설기계자차기사, 학습지교사, 골프장캐디, 택배기사, 전속퀵서비스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모집인, 전속 대리운전기사, 방문강사, 방문판매원, 대여제품방문점검원, 가전제품설치원, 화물차주, 소프트웨어기술자다. 명단을 보면 노동자 앞에 특수가 붙은 이유는 구체적인 근무형태의 차이가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권력의 차이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퀵과 대리운전 앞에는 ‘전속’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로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한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 장관이 임의로 매년 정해 준다. 배달과 대리운전의 전속성 기준은 고용노동부 고시 제2017-21호에서 정한다. 93시간, 115만 원의 기준은 이렇게 탄생됐다.

 

라이더유니온은 2019년 12월 이 같은 전속성 기준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배민커넥터로 일하던 라이더가 사고가 났는데 산재보험료를 꼬박꼬박 냈음에도 근로복지공단이 3개월 이상 승인을 미루고 있었다. 우리가 문제제기하자 얼마 안 있어 주로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산재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었다면 한 건만 했더라도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박재범 조합원의 경우 주로 하나의 사업에서 걸렸다. 그는 배민커넥트와 쿠팡이츠 모두를 했고 둘 중 어느 것도 전속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두 개 이상의 업체에서 배달을 할 경우에는 전속성 기준을 충족시킨 업체에서 일하다 사고가 났을 경우에만 보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전속성 기준 폐지와 산재사고 예방을 위해 뭉친다

 

이 황당한 단어는 정부와 국회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2020년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속성 기준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민주당은 전속성 폐지를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하였지만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약속은 하지만 지키지는 않는 사이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은 박재범 씨는 1,000만 원의 치료비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 3월 30일 사망한 배달노동자는 전속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산재보상이 어려워졌다.

 

라이더유니온은 3월 23일과 4월에 인수위 앞에서 산재 전속성 기준 폐지를 넘어 산재법상 근로자 개념을 노무제공자로 확대하라는 요구를 했다. 이미 산안법에서 노무제공자 개념을 도입했으니 산재보상에서도 가능할 거라 봤다. 인수위원회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4월 14일 임이자 사회문화복지분과 간사와 라이더유니온이 면담을 진행하였고, 이 자리에서 4월 22일 배민, 쿠팡이츠, 부릉, 노동부, 국토부를 불러 라이더보호법 관련 간담회를 진행하자고 약속했다. 전속성 기준은 환노위 야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이 국회로 복귀하는 즉시 민주당과 협의하여 처리하겠다고 했다.

 

 

5. 본문사진2.jpg

2022.03.23. 인수위 앞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 전속성 폐지 요구 기자회견”

[출처: 라이더유니온]

 

 

이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는 배달노동자를 비롯한 특고노동자의 투쟁에 달려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72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의 문제다. 말로는 하겠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더불어민주당을 극복하지 않는 한 국회 내에서 노동 입법은 정치적 수사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쿠팡이츠 배달노동자 유족들은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에 동료들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며 배달 복장으로 운구를 부탁했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은 상복 대신 배달 조끼를 입고 그의 마지막 동료가 되었다.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에게도 동료가 필요하다. 일하다 다치면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산재법상 노동자 개념을 노무제공자로 확대해야 한다. 안전하게 배달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라이더보호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장례를 마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슬픔과 추모를 넘어 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와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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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문제는 산재 전속성이다’(2022.04.05. 경향신문)를 수정보완해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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