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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직업으로서의 작가’라는 건?

 

 

박효미 후원회원 인터뷰

 

 

 

 

8. 본문사진.jpg

2022.04.19. 철폐연대 오랜 후원회원이신 박효미 작가님을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출처: 철폐연대]

 

 

철폐연대 회원·후원회원 분들은 정말 다양한 영역에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3월호에서는 노무사의 일, 4월호에서는 교사의 일을 들여다보았는데, 이번 호에서는 작가의 일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에 철폐연대 사무실과 희망버스 안에서 뵈었던 박효미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여전하신 듯하여 반가웠고, 변화를 위해 계속해 나아가고 있으신 듯하여 기대가 생겼습니다.

 

 

Q. 동화작가이신데요, 어떤 계기로 철폐연대를 후원하시게 되었는지요?

 

A.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더작가)’에서 활동할 때였어요. 비정규직과 관련된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어요. 알고 싶고, 해 보고 싶은 일 중에 하나라고 여겨서 비정규직과 관련한 어린이책을 내자라는 큰 목표를 세웠던 거죠.

그런데 저희가 잘 모르잖아요. 비정규직이라는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누가 비정규직인지, 어떻게 차별받고 있는지, 비정규직 문제라고 하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는 게 너무도 많은 거예요. 그래서 김혜진 동지와 함께 공부를 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철폐연대를 알게 된 거고,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거죠.

 

 

Q.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라는 책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A. 당시 김진숙, 희망버스, 비없세의 활동에 공감을 했고,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싸우는 분들을 지원하는 데 작가들이 할 수 있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우리가 투쟁 현장에 가서 같이 시위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고. 그런데 우리의 직업을 가장 잘 활용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면서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비정규직 책을 써서 비없세에 인세 전액을 후원하자고 했던 거죠.

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인세 기부라는 효과보다 더 컸던 것은 비정규직의 삶을 직접 보게 되고 공부도 하게 되었던 부분이지 싶어요. 비정규직 강의를 이 책을 쓰지 않는 다른 작가들도 많이 참여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외부에 널리 알렸거든요. 이러한 공부 과정에서 책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책의 성격이 독특하다 보니 출판사 편집자도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공부도 같이하고 그랬어요.

 

 

Q. 작가분들의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A. 작가라는 직업도 어떻게 보면 비정규직이잖아요. 큰 틀에서 보면 이 사회가 우리한테 보장해 주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비정규직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삶과의 연장선에 있어서이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형태는 좀 다르기는 하겠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삶의 연장선에 작가도 있다는 거지요.

사람이라면 내가 처한 삶에 대한 어떤 기본적인 관심은 가져야 마땅하니까,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아,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특별한 어떤 분한테 막 감동을 받아서, 뭐 그런 차원이 아니라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니까 자연스럽게 가 닿은 거죠.

 

 

Q. 동화를 쓴다는 것, 작가로 살아나간다는 건 어떤 건가요?

 

A. 제가 책을 내기 시작한 게 2006년이니까 올해로 17년이네요. 책 쓴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계속 글을 쓴다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한두 권 내는 거, 초반에 4, 5년 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이 직업을 유지하면서 현직 작가로 계속 살아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를 실감해요. 왜냐하면 내가 책을 더 이상 못 쓰고 있어도 사람들은 저를 작가라고 할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게 싫은 거예요. 나는 계속 글을 쓰는 작가이고 싶은 거예요.

내가 앞에 이미 썼던 것들을 되풀이하면 사람들은 안 볼 거예요. 사람들은 좀 더 다른 걸 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내 생각이 정체돼 있거나 그러면 직업으로서의 생명도 끝날 수 있을 거예요. 세상은 바뀌고, 바뀐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 보면, 더 이상 책을 낼 곳이 없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제 제 개인적인 목표는 계속 현업에서 활동하는 작가인 거예요. 나이가 더 많이 들 때까지요.

그래서 세상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해요.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 그 변화들이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살피려고 해요. 물론 내 생각이나 가치관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 변화의 흐름을 무시하거나 우리 세대랑 다르다고 해서 단절하고 싶지는 않아요. 세상의 흐름을 알고, 내가 받아들이고,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가는 거죠. 그래서 그 시기 시기마다 특별히 주목했던 것은 당연히 있었어요.

글을 쓰던 초반에는 현실과 환상이 넘나드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비현실적인 걸 통해서 현실에서는 구현하지 못하는 걸 구해 내는 그 세상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동화의 세계로 들어 왔던 거죠. 2010년 이후에는 세상은 너무도 불공평하고 억울한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무렵에 더작가 활동이나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 책 기획을 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블랙아웃>, <고맙습니다 별>을 썼었어요. <블랙아웃>은 재난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이고, <고맙습니다 별>은 해고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예요. 최근에 쓴 책은 차별과 혐오 언어에 대한 <나쁜 말 사전>이에요.

 

 

Q. 작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직업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계신데요?

 

A. 저는 ‘직업인으로서의 작가’라는 말을 되게 좋아해요. 작가라고 하면 사람들이 갖는 환상, 허세 같은 게 있는데요. 작가라고 하면 용납해 주는 부분도 있어요. 조금 이상해도 불성실해도 글 쓰는 사람이니까 하고 봐주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용인해 주는 폭이 크면 클수록 가난해야 더 좋은 글을 쓴다, 좋아하는 일 하고 사는 건데 뭐가 불만이냐는 식의 오해와 편견도 따라 커져요. 어떤 식으로든 보통의 직업인들과는 다르다고 여기는 거죠.

한 사람이 직업을 갖는다는 의미는 뭘까요?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해서 먹고살고, 내 삶을 꾸려 나가는 것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직업으로서의 작가도 계속 글을 쓰고, 그걸로 밥벌이하고, 내 삶을 꾸리고, 나한테 좀 더 가치가 있고, 더불어 주변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작가. 예술, 이런 게 아니고, 그냥 글 쓰는 노동자인 거죠. 실재가 그러하기도 하고요.

출판은 기본적으로 상업적이기 때문에 작가는 무한경쟁에 노출되어 있어요. 책이 세상에 딱 나오잖아요. 저는 어느 순간 책을 보고 있으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해요. 세상이 나를 선택해 주기를 기다리는 거거든요. 선택해 달라고 홍보하고 마케팅하고 그러는 거잖아요. 가치가 있어서든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어서든 어쨌든 책은 굉장한 무한경쟁에 놓여 있어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잘 팔리는 것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다 보면 잘 안 팔리지만 가치 있는 책은 나오기가 힘들어져요. 물론 가치와 판매를 모두 만족시키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고요. 대부분 책이 안 팔릴 가능성이 높으니까 책을 내기조차 쉽지 않은 거죠.

다른 직업의 노동자들은 나가서 일하면 일한 시간에 대해서만큼은 보장을 해 주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아요. 시간을 들여 어마어마하게 노력을 해도 거절당하면 끝이에요. 그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아요. 그다음 어찌어찌해 책으로 나온다고 해도 안 팔리면 끝이에요. 이번 책이 안 됐고, 다음 책도 안 되면, 더는 어려운 거예요. 안 팔리는 작가로 낙인찍혀 버릴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면 이제 글 쓰는 걸 그만둬야 하나 싶어지는 거죠. 아, 그런 거 있잖아요. 여기에 보물이 묻혀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는데 막 파는 기분요. 물이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우물을 파는 생각으로 항상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굉장히 힘들죠. 그래서 이번에 시도했던 것이 예술가들에게도 기본권을 보장해 주는 것, 지역에서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원해 주는 것, 그러면은 조금 더 안정적으로 글을 쓰거나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을까 했던 거죠. 출판사는 회사이기 때문에 작가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아요. 다른 업종에 비해서는 좀 더 정직할 수는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자본을 갖고 움직이는 회사예요. 자본의 논리는 그대로 적용이 돼요. 한 치도 벗어나는 일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출판사에 뭔가를 기대하는 건 어려워요.

 

 

Q. 작가노조에 대한 고민이 있으셨던 걸로 알아요.

 

A.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작가연대)’ 초반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동조합이었어요. 노조라는 건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찾지 못한 권리를 위해서 싸워 가는 거잖아요. 다른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작가들한테도 필요한 게 너무나 많은데 어떤 틀도 없는 거예요. 우리는 어디에 속해야 하느냐, 방법이 없는 거예요. 노조라는 게 되지 않기 때문에 ‘연대’라는 말을 썼던 거거든요.

직업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기본권이 하나도 보장되지 않는 게 작가의 현실이라서 자연스럽게 노조가 필요했던 거지요. 더작가의 경우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연대를 했다면, 작가연대의 출발은 우리의 권리를 찾자는 거였어요. 단지 노조라는 이름을 못 썼을 뿐이에요. 물론 지금은 성격이 조금 달라져서 저작권에 대한 부분이 계속 거론되는데, 그건 작가들의 기본권이 저작권으로 설명이 되고 있어서이기 때문이에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책을 쓰실 계획이신지요?

 

A. 올해 <나쁜 말 사전>이 나오고, 민주주의에 대한 것, 노동에 대한 책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직까진 정리가 안 되어 있지만요. 잘 팔릴지 안 팔릴지를 떠나서 그런 책을 한번 써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를 떠올렸네요.

이 직업은 자기가 아는 것을 밖으로 내놓는 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채워 나가야 해요. 내 그릇이 크면 얼마나 크겠어요. 결국은 채우는 건데,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투쟁 현장에 함께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같이 움직이면서 또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연대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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