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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재택근무, ‘워라밸’에 도움 될까?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코로나19가 일의 세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했다. 생산 및 유통, 고용의 위축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가시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재택근무, 원격근무, 선택근무, 재량근무 등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최근 급격히 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업장에 출근해서 집단적으로 근무하는 전통적 노동방식에서 탈피해 장소와 시간의 맥락에서 유연성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 배경에는 대면 활동의 자제를 요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일부 공공기관과 민간 대기업을 중심으로 유연근무제가 제한적으로 시행돼 왔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코로나19의 확산이 노동방식을 재편하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이는 일의 세계를 주도하는 노동과 자본이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활용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수용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더구나 새로운 제도의 시행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서로 명백히 다르다면, 그로 인한 갈등이나 부작용도 피하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유연근무제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노동력 활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의 재량권을 넓히는 방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유연근무제의 한 형태인 재택근무 또한 마찬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1) ‘일 중독 사회’에서 과연 재택근무는 ‘일과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1) 국미애, <유연근무제와 페미니즘: 노동시간과 일터의 정치>, 푸른사상, 2018.

일과 삶의 불균형

 

한국인들은 매일 ‘칼퇴근’하는 꿈을 꾼다. 직장인 상당수가 정시 출ㆍ퇴근을 눈치 보면서 해야 하고, 야근이나 주말 특근을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시간이 일의 성과(생산성)를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이자 일터 감시와 통제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임을 보여준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재택근무는 ‘저녁이 있는 삶’을 희구하는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환상을 부추긴다. 일과 삶이 균형 잡힌 미래를 그로부터 비로소 찾을 수 있으리라는 환상.

고용노동부가 2017년 12월 발행한 「체계적인 유연근무제 도입ㆍ운영을 위한 매뉴얼」에서는 다음과 같이 유연근무제를 소개하고 있다. “유연근무제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근로시간과 근로장소 등을 선택ㆍ조정하여 일과 생활을 조화롭게 하고, 인력활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이다. 이 대목을 통해 정부가 유연근무제를 추진하면서 어떠한 목적을 표방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서에서도 정부가 유연근무제 도입을 통해 달성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2010년 7월 「유연근무제 운영지침」을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각급기관에 통보하면서 “현재 우리나라는 연 평균 근로시간이 OECD 평균 보다 34%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43%에 불과하며, 출산율(1.15)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있는 등 처해 있는 여건과 상황이 어렵다”며, “생산성 향상, 일자리 창출, 저출산 대응 등 국가적 현안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유연근무제가 좋은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의 두 가지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유연근무제가 이해집단(노동과 자본) 모두에게 이로운 노동방식이라는 정부 인식이다. 그런데, 일과 삶의 균형을 도모한다는 말은 적정한 노동시간과 자유로운 여가시간을 ‘모두’ 보장한다는 말과 같다. OECD가 2011년부터 2년마다 발표하는 ‘더 나은 삶의 지표(BLI; Better Life Index)2)’에 의하면 2020년 발표된 한국의 BLI 지수는 40개 조사대상국 중 30위로 여전히 나쁜 수준이다. 결국 정책과 이론에서 표방하는 기치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2) BLI(Better Life Index)는 개인의 삶의 질을 구성하는 요인으로 시민참여, 교육, 안전, 주거, 소득, 고용, 삶의 만족도, 환경, 건강, 일과 생활의 균형, 공동체 의식 등 11개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OECD는 기존의 GDP 수치로는 각 나라 국민의 행복 정도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BLI 지수를 고안했다.

시간 중심에서 성과 중심으로

 

재택근무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자택’에 업무공간을 마련하고, 업무에 필요한 시설이나 장비를 구축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탄력적이고 유연한 근무 형태를 말한다. 유연근무 개념에는 ‘시차출퇴근제’, ‘선택근무제’, ‘재량근무제’, ‘원격근무제’, ‘재택근무제’ 등 5개 유형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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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연근무제 5개 유형 (고용노동부,「체계적인 유연근무제 도입ㆍ운영을 위한 매뉴얼」, 2017.12.)

 

최근 유연근무 형태 중 시차출퇴근제와 재택근무제를 활용하는 노동자 수는 각각 100만 명을 넘어섰다. 시차출퇴근제 활용자는 2019년(8월 기준) 74만6천 명에서 2020년 90만5천 명, 올해 105만5천 명으로 늘었고, 재택·원격근무제 활용자도 같은 기간 9만5천 명에서 50만3천 명, 114만 명으로 증가했다3). 이 밖에도 기업들이 활용하는 유연근무제 형태는 자율출퇴근제, 시간단축근무제, 집중근무제 등이 있으니 실제 유연근무 형태로 근무하는 노동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기업은 재택근무 확산 움직임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다. 여기에는 재택근무를 통해 기존의 장시간 노동 관행을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가득 담겨 있다. 시간 중심에서 성과 중심으로 인사관리의 초점을 옮긴 것이다. 마르쿠스 알베르스라는 독일의 저명한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저서 <스마트 워킹 Smart Working>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보적인 회사들은 이미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관리자들은 출근이 의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야 하고, 부하직원들은 일과 자유 시간의 구분, 즉 퇴근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 더 이상 책상 앞에서 공허한 시간을 보낼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 책 저자는 성과 중심으로 노동방식을 재편하는 것이 “성공하는 회사들의 비결”이라는 힌트를 남기고 싶었던 듯하다. 재택근무제는 일의 절대량을 줄이는 대신 업무 성과는 높이는 ‘요술방망이’ 같은 걸까?

 

3) 고용노동부,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2021.8.

시간 주권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대립

 

앞에서 유추 가능한 점은 재택근무제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일과 삶의 균형’보다는 ‘일과 삶의 통합’을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선사한다고 하지만, 실은 일과 삶의 경계를 허물어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유연성이 극대화된 시스템을 자본은 원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정된 근무 장소에서 측정 가능한 유급노동시간 범위 안에서 일을 수행했다면, 이제는 온라인을 매개로 시간과 장소를 불문한 “자유로운 일의 수행”이 가능해진 셈이다.

자본 입장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은 재택근무ㆍ원격근무를 비롯한 유연근무가 늘어나면서 일과 삶을 구분짓는 워라밸보다는 유동적으로 시간을 활용해 일과 삶을 돌볼 수 있는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 즉 ‘일과 삶의 통합’이 노동강도와 스트레스 관리 측면에서 용이하다고 주장한다. <스마트 워킹> 저자도 다분히 이 같은 입장에 기대어 유연근무를 실용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보았다.

지난 2021년 4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은 직장인과 구직자, 아르바이트 노동자 총 3,067명을 대상으로 워라밸과 워라인 가운데 ‘선호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직장인 65.8%, 아르바이트 노동자 62.5%가 일과 삶의 분리를 통한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을 더 선호한다고 답한 것이다. 아울러 조사대상자의 60%가 ‘위드코로나 시대에도 재택근무ㆍ원격근무를 시행하는 기업이 많아질 것 같다’고 응답했다. 이는 재택근무 시행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에 극명한 대립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물론, 재택근무가 노동자에게 부정적인 경험만 제공한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재택근무의 효용에 대해서는 시중에 이미 널리 유포되고 있어 여기서는 따로 거론하지 않았다). 관건은 “누가 시간 주권을 행사하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 주권이란 노동시간을 포함한 삶의 시간을 스스로 설계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대개의 경우엔 노동보다 더 큰 힘을 지닌 자본이 시간 주권을 독점하므로, 재택근무에 있어서도 과장된 성과와 폄하된 한계를 먼저 언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리가 보장되는 구조인가.

 

정부와 기업은 재택근무가 초과노동(장시간 노동)에 집착하는 기존의 일 문화를 바꿀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만 늘어놓는다. 그러나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재택근무의 속성은 그 자체로 장시간 노동체제의 확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보다는 일의 성과(결과)에 치중하는 재택근무 시스템은 노동자로 하여금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자발적인 초과노동으로 이어진다. 밤낮 없이 울리는 SNS 메시지, 수시로 열리는 온라인 영상회의 같은 풍경은 재택근무 확산과 더불어 이제 평범한 일상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재택근무는 앞으로 더 많은 분야로 확대될 것이다. 비대면으로도 관리자는 업무 통제가 얼마든지 가능하고 부하직원들은 (그 과정이야 어찌 됐든) 수행과제 달성이 가능함을 여러 영역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재택근무 시스템이 내재하고 있는 노동유연화 효과이다. 노동유연화는 노동자의 집단성뿐만 아니라 권리 또한 해체할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종래의 노동방식과는 다른 재택근무 방식-일면 사용자의 지휘감독 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은 사용종속성에 기반한 노동권 제도의 효력을 제한할 위험성을 수반한다. 그러니 재택근무가 가져올 변화로 노동자의 자율성 또는 재량권을 강조하는 자본의 시선만 무턱대고 좇아간다면 큰 낭패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재택근무가 워라밸에 정말 도움이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구조가 그 안에 갖춰져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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