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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우리는 경쟁과 차별의 시대에 반기를 들어, 지금 여기서 비정규직 없는 대학 만들기를 시작합니다

- ‘반쪽짜리 정규직화’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윤민정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학생공동대표)

 

 

올해 2월 6일, 서울대학교 본부와 서울대 용역·파견 노동자들이 ‘노사 및 전문가협의회’를 통해 3월 1일자로 서울대에서 근무하는 763명의 용역·파견 노동자의 총장발령 직접고용 무기계약직 전환에 합의했습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에 따라 구성된 협의회에서 작년 12월부터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정된 것입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기간제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고 무기계약직화하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 방침에 따라 서울대학교 노동자 763명이 마침내 ‘기간제’, ‘간접고용’ 신분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많은 언론이 서울대의 ‘통 큰 정규직화’ 결정을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현장 노동자들은 “용역‧파견 시절보다 처우는 악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서울대 기계전기 노동자들은 이번 무기계약직화 과정에서 정년 감축에 합의해야 했습니다. 또한, 작년에 이미 해고 철회 투쟁을 거쳐 무기계약직화를 먼저 이뤄낸 서울대 ‘비학생조교’(학사운영직, 학교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전환 당시 평균 20%에 달하는 임금 삭감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서울대의 무기계약직화 결정이 노동자들의 삶을 대폭 개선한 ‘정규직화’인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제로 이 과정은 노동자들에게 ‘고용 안정’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얻기 위해 존엄과 생계를 협상해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의 맹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무기계약직화를 정규직화라고 부르면서 이를 권장하지만, 법적 고용형태 이외의 임금, 복리후생 등 실질적 고용조건 결정은 각 기관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말하며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직접고용‧무기계약직화에 따른 추가 비용을 어떻게든 줄이고 싶은 각 기관은 노동자들에게 더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강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장 해고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는 벗어났지만, 그 대가로 더욱 열악한 처우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만나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학교’를 함께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무늬만 정규직화인 무기계약직화 말고, 비정규직을 똑같이 차별하면서 정규직이라고 이름만 바꾸는 보여주기식 정책 말고, 모든 노동자를 ‘진짜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서울대학교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모든 이들이 문재인 정부 ‘잘한다’며 현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이제는 현장 비정규직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이야기할 때, 누군가는 현장에서부터 문제제기를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서울대학교 내의 21개 학생단체와 3개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손을 잡고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무한경쟁과 차별의 시대에 반기를 들다

 

특기할 만한 점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라는 연대체 구성을 처음 제안한 것이 현장 노동조합이 아니라 학생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왜 학생들이 자기 문제도 아닌 학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먼저 발 벗고 나섰는지 궁금해 합니다. 올해 3월 15일, 우리는 대학 내 비정규직 철폐를 향한 첫발을 내딛으며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출범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무한경쟁과 차별, 소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입시경쟁의 학창시절을 거치고 취업공장인 대학을 지나, 내 것이 아닌 나라의 ‘근로자’가 되기까지 평생을 쫓기듯 숨막히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평생 ‘경쟁에서 지는 것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경쟁의 패자를 차별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된 우리는 학점이 낮고 스펙이 부족하면 언제 경쟁에서 도태되고 ‘비정규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스스로를 채찍질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동료를 짓밟으라고 명령하는 무한경쟁과 차별의 논리는 정말로 그저 당연한 것입니까? 경쟁은 우리의 존엄한 삶과 행복을 보장해주나요? 언제 경쟁에서 낙오될지 모르고, 대학에서의 성적이 곧 노동시장에서의 ‘비정규직’과 ‘정규직’,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별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지금 여기,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왜 대학생이 대학 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변입니다. 당장 비정규직 문제는 대학생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정규직 문제야말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이며, 대학생들이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체제는 노동자를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분할하여 차별하고, 모든 노동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를 경쟁에서 이겨야만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보상물’로 둔갑시켜 우리로 하여금 경쟁과 이에 따른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만듭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낮추는 것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이윤을 얻는 부당한 일인데, 우리는 이 차별을 당하는 과정에서 무기력해지고 경쟁에서 승리해 이 차별로부터 탈피할 책임을 우리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합니다.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그 지독한 능력주의의 이데올로기, 차별과 경쟁의 메커니즘은 바로 우리 대학생들을 평생 옥죄어 온 사슬이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경쟁의 상대로 여기며 스스로를 채찍질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차별과 경쟁을 제도화하고 고착화하는 핵심 기제인 ‘비정규직’을 대학에서부터 없애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체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우리를 무력화하여 길들이는 방식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대학, 우리가 꿈꾸는 세상

 

이렇게 시작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학내 노동자-학생 공개간담회, 공동집회, 현 정부의 ‘반쪽짜리 정규직화’ 정책의 문제를 폭로하고 비정규직 철폐의 필요성을 알리는 학내외 선전전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학생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에는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싹트고 있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우리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 우리가 함께 꿈꾸는 대학의 모습을 논의하고 실현시켜가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진정한 연대의 감정, 동지적 관계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서 노동자-학생 연대 활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학생과 비정규직 노동자는 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서울대의 노동자들을 옭아매고 있는 경쟁과 차별, 비용절감의 논리는 곧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대학 교육을 파괴해 온 바로 그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학은 교육과 노동의 가치보다 언제나 이윤을 더 중시해 왔습니다. 바로 그러한 운영의 방향성이 여태 학생의 의견보다 돈벌이를, 학생의 수업권과 교육권보다 수익을 중시해 온 대학을 만든 것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돈보다 학생의 목소리와 교육의 가치가 반영되기를 열망하며 만들어온 시흥캠퍼스 투쟁도 이와 같은 맥락 위에 있습니다. 돈만 좇는 학교에 맞서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던 이 같은 경험이 지금 서울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학생 간의 연대활동을 가능하게 한 자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용과 효율보다 교육과 노동이, 사람이 먼저인 대학을 만들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대학 내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오는 그날까지 우리의 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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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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