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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로 가는 길에

손소희 (지역사회노동자운동지지모임, 철폐연대 회원)

 

롯데부지교환, 사드배치 시동 걸다

날이 풀릴 듯 하면서도 긴긴 겨울밤의 추위는 좀체 풀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소성리마을회관 마당에 다 낡아빠진 드럼통이 왔다. 드럼통은 연통을 달아서 불을 지피는 난로가 되었다. 마을의 청년층이라고 불리는 머리 희끗희끗한 어른들이 사드가 몰래 들어올까봐 보초를 서기 시작했다. 청년층이라고 해봐야 제일 젊은 사람 나이가 육십이다. 그 위로 이장님이 젊은 축에 끼인다. 소성리마을회관 마당에는 남자들이 난롯가에 둘러앉아 보초를 선다. 마을회관 부엌에는 매일 밤 엄니들과 할매들이 돌아가면서 보초를 선다.

사드배치 부지로 확정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위치한 롯데골프장 부지교환 계약을 둘러싼 눈치보기와 신경전이 연말연초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주사람들은 서울 명동 롯데호텔로 올라가 “부지교환 절대 안 돼, 롯데야 버텨라.”를 외쳤다. ‘제발 부지교환은 하지 말아 달라’ 소원했다.

 

2017년 정유년이 밝자 부지교환 계약을 체결할 것처럼 하던 것이 미뤄지기 시작했다. 희망의 새해가 밝은 듯 했다. 특검이 한창 활약할 때 롯데가 부지교환을 포기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끝내 롯데는 국방부의 군홧발에 무릎 꿇고 항복해버렸다. 2월 27일 롯데이사회가 열리기 무섭게 사드배치 부지교환을 결정했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언론에 기사가 나오기도 전에 군대가 롯데골프장 부지로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경찰병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번갯불에 콩 볶듯이 전개되었다. 그 날이 사드배치 반대 성주촛불 230일 되는 날이었다.

촛불시간에 맞춰 소성리엄니들이 다른 날과 다름없이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은 사드가 느닷없이 찾아온 날의 충격을 또다시 맞았다.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촛불에 참석하신 듯 했다. 침울하게도 가스통 난로의 연기는 그날따라 더 맵고 더 거칠었다. 소성리부녀회장님께 속에 쌓인 말씀을 촛불발언으로 한 번 해주십사 부탁드렸다. 부녀회장님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구호를 외쳐도, 노래가 나와도 그 자리에 앉아있는 소성리엄니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촛불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부녀회장님은 끝내 속에 담아두었던 말씀을 퍼붓듯이 하셨다.

“사회자가 성산포대에 들어온 사드도 막았는데 초전 소성리에 들어오면 못 막겠냐고 할 때마다 그 말이 너무너무 듣기 싫었어요. 성산에 들어왔을 때 못 들어오게 막았어야지 왜 소성리로 보내놓고는 그걸 막았다고 하냐 말이에요. 그 말 들을 때마다 섭섭함이 복받쳐 오르지만 성주읍 사람들 앞에서 차마 그런 말 입 밖에 낼 수 없었어요. 그래도 의리 지켜 사드 막겠다고 남아준 성주읍 사람들한테 서로 상처 될까봐 참았는데, 이제 안 참고 하고 싶은 말 다 할랍니다. 마을회관 할매들이 롯데가 사드부지 제공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눕지도 않고,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그냥 멀뚱멀뚱 앉아계셨어요. 어디 가서 말 할 데도 없고 하소연할 데도 없어요”

촛불이 끝날 때까지 소성리의 간판스타 금연엄니는 한 마디도 안 하신다. 옆에 다른 엄니들은 연신 눈물만 흘리신다. 눈물이 멎지 않는 날, 그리고 다음날 2월 28일 사드배치 부지계약은 체결되었다.

 

소성리 전투는 시작되고

비상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군대가 신속하게 움직였다. 경찰병력이 줄을 지어 들어오더니 롯데골프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장악해 들어왔다. 보행도, 통행도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매일 낮이고 밤이고 초록색 야광옷을 입은 경찰들이 마을 도로가를 순찰했다. 밤낮으로 경찰들을 마주쳐야 하는 마을 사람들은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트럭이 골프장 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을회관에 계셨던 할매들과 부녀회원들이 이상히 여겼다. 부녀회장님이 대형트럭 앞을 가로막아서 차를 세웠다. 할매들이 유모차를 앞장세워 도로로 나오셨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많은 대형트럭이 골프장으로 들어가는지 확인했다. 골프장이 운영되지 않으니 용역업체들이 사용했던 임대장비들을 꺼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해발 500미터 이상 높은 지대에 골바람으로 유명한 소성리마을 길가에 할매들이 꼼짝을 하지 않고 트럭을 막아섰다. 이종희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내가 할매들 앞에서 너무 초라했다. 얇은 바지에 홑외투 하나 입고 갔다가 피켓을 들고 서있는데 추워서 혼났는데 할매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서 계시더라.”고 했다. 보기가 너무 안쓰러워서 부녀회장님과 이종희 위원장이 할매들께 이제 그만 들어가시라고 했더니 노발대발 하시면서 “부녀회장 너 와이루(돈봉투라는 뜻의 은어) 먹었나?” 하더란다. 트럭의 반출입을 제지하더라도 마냥 막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롯데골프장에서 임대 계약한 용역업체 차량은 번호를 다 확인해서 마을에서 직접 검문 검색해서 올리고 내려 보내기로 하고는 사태를 수습했다.

 

2 소성리 할매들 [출처 청년사진가].jpg

소성리 할매들 [출처: 청년사진가]

 

소성리의 첫 전투다. 앞으로 골프장 폐쇄로 이삿짐을 옮기기 시작하면, 마을 사람들은 사드가 온다는 공포로 더 자주 막아서고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할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 그리고 실제로 국방부에서 사드배치 작업의 가속력이 붙을 것이 뻔했다.

사드배치 부지가 성주라면 엑스레이더 방향은 김천 방향이다. 김천 사람들의 피해가 훨씬 더 클 거라고 예상한다. 성주도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촛불을 밝혀왔지만 한 달 정도 후부터 김천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사드배치반대 촛불을 김천역에서 밝혀왔다. 원불교 2대 교주 ‘정산종사님’의 탄생가가 있는 성지에 사드배치라니. 원불교도 비상대책위를 구성해서 지금까지 성주와 김천 사람들과 3주체로 중심적인 활동을 해왔다. 그뿐 아니라 ‘한국사드배치저지전국행동’, ‘사드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 ‘사드배치저지 부울경대책위’까지 6주체가 사드배치결사반대 투쟁을 하기 위해서 연석회의를 꾸리고 대응해오고 있었다.

6주체 단위는 신속하게 소성리에 종합상황실을 설치했다. 각 주체별로 활동가를 상황실로 파견하였다. 소성리에는 마을회관과 민가에 피해를 최소화하고 자체 해결하기 위해서 연대자숙소를 준비했다. 원불교도 컨테이너로 임시교당을 설치해서 기도와 대응활동을 시작했다. 각 단위별로 매일 연대자들이 소성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니 밥 문제가 시급해졌다. 연대자숙소를 마련해놓긴 했지만 밥해 먹는 시설이며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라서 신속하게 부녀회가 팔을 걷어 부치고 많게는 60명에서 100명까지의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드 쫓아내야 탄핵완성!!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파면을 결정하는 텔레비전 소리에 마을회관에 모여 있던 할매들은 만세를 불렀다. 그날 하루만큼은 다 잊고 ‘박근혜 파면’을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자고 하셨다. 모처럼 큰소리 내서 웃고 즐거웠다.

다음날 서울광화문으로 상경을 했다. 박근혜가 탄핵되었다고 해도 적폐 6대 과제를 청산하지 못했다. 사드는 박근혜 탄핵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기세등등하게 밀고 들어오려고 한다. 임순분 부녀회장님은 수만 명이 모인 3월 11일, 광화문광장 무대 위에서 “박근혜가 탄핵되어 만세를 불러야 되는데 팔이 반밖에 안 올라가더라, 사드까지 쫓아내야 두 팔을 다 벌려서 만세를 부를 수 있을 거 같다.”고 하셨다. 반팔만세를 온팔만세로 부르기 위해서 전국의 연인원 1,600만 명의 촛불님들 촛불 꺼뜨리지 말고 적폐 청산을 위해서 다시 싸우자고 호소하셨다. 범국민행동에서 소성리로 평화발걸음을 집중해서 내려오겠다며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날 밤 원불교비대위 김선명 교무님과 몇 분이 갑작스럽게 철야기도를 시작하셨다. 사드배치 부지인 롯데골프장으로 오르는 평화계곡 삼거리인 진밭재에서 새벽이슬 가릴 비닐 한 장 없이 노숙농성을 시작하신 거다. 국방부가 사드배치 부지로 들어오면서 민간인의 출입과 통행을 일체 금지시켰다. 원불교 성지순례 구도길도 막혀버렸다.

국방부는 롯데와 부지교환만 진행했을 뿐 군사시설을 위한 행정절차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방부가 길을 막을 권한은 없다. 군사보호시설을 하기 위해서 지자체의 동의의견서를 받아야 하지만 받지 못했다. 사드를 배치하기 전에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하지만 절차를 간편화시키는 꼼수를 쓰려했다. 군사시설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불법사드를 들이려고 국방부가 불법행위를 뻔뻔스럽게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국방부를 비호하기에 충실했다. 그 뒤에 한국정부보다 더 큰 보이지 않는 손의 형체를 성주촛불들은 감지하기 시작했다.

   

“통행을 막지 말라. 길을 열라.”는 원불교 교무님들의 철야기도가 시작되었다. 또 한 번 비상한 상황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되어 감금되는 권력의 부재 속에도 군대는 계속 움직였다. 사드배치를 위한 공사 장비를 반입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김천 노곡리 주민이 이상한 차량이 올라간다고 부녀회장님께 연락한 것이 시발이 되어 마을에서 비상소집을 했다. 성주읍에서 소성리까지 20분은 족히 걸릴 거리에도 비상소집하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소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하더니 지질조사 장비를 반입하려는 것이었다. 미국과 부지를 공여하기 전에 지질상태를 정확히 조사해놓고 차후에 땅을 돌려받을 때 그 상태로 보존되었는지 측정하기 위한 절차라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가로막힌 화물트럭 다섯 대는 돌아가지 않고 오후에도 반입을 시도했다. 성주, 김천, 원불교, 전국의 사드반대를 위해 모여든 연대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성리 마을 주민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도로를 막아섰다. 할매들은 비상소집을 알리는 사이렌을 듣자마자 5분도 안 돼 쏜살같이 도로로 유모차를 앞장세워 달려 나오셨다. 멋지게 장비차량을 막아내고 화물트럭을 돌려보냈다. 소성리 전투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언제 어느 때 장비가 들어올지 모르니 경계와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뜻도 모았다. 성주 사람들은 촛불을 마치면 소성리로 불침번을 서러 올라갔다. 밤보다 새벽 감시와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모아지면서 바쁜 참외농사철에 부족한 인력이지만 경계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하늘길을 막아주세요

화물트럭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마을 상공으로 시누크헬기가 뜨기 시작했다. 탱크도 수송한다는 시누크가 모든 장비를 다 수송할 것처럼 떠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국방부는 ‘마을 주민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시누크 헬기로 수송을 완료시켰다’는 언론보도를 발표했다. 시누크헬기는 마을상공에서 마을 사람들 보란 듯이 큰 소음을 내면서 롯데골프장으로 향한다. 

지질조사 장비만 나르는 것이 아니라 부지공여체결이 된 즉시 공사를 집행할 수 있도록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컨테이너를 매달고 하루에 수십 번을 왔다갔다, 성주 상공을 날라 다닌다. 머리맡에 헬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도 신경이 곤두서는데 커다란 컨테이너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걸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욕밖에 할 수 없다.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심리전이다. 하늘길 막지 못하면 이 싸움은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이 잠시잠깐 사이에 몸속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시련에 빠졌을 마을 할매들을 위로한다.

“이제 시작입니다. 사드 놓을 자리 공사할라고 저카는데, 다 헬기로 못 갖다 놓을 낍니다. 분명 지상으로 들어오는 물건들 있을 거니까 우리는 앞에 도로로 지나가는 물품이나 장비는 다 막아뿔면 됩니다. 실컷 있다가 그거 놓쳐뿌면 더 손해라예, 그러니 너무 낙심하지 마이소.”

소성리는 전방이 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사드를 막아내기 위해 연대자들이 모여들었다. 감시 경계를 서기 위해서 숙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식사문제 해결을 위해서 반찬연대를 호소하자 성주 주민들은 김치며 밑반찬을 소성리로 올리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먹거리가 들어왔다. 그 모든 일들을 소성리부녀회가 감당해주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60~70명 이상의 사람들 식사를 챙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대자 수칙을 정하면서 마을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연대자는 숙소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고, 마을회관에서는 연대 반찬을 관리하고 잘 운영해서 배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연대자숙소에서 식사가 안 되는 사람들을 챙기는 정도로 체계를 갖춰나갔다.

성주읍은 후방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밤 8시에 촛불집회를 열었다. 비록 소성리로 올라오지 못하지만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작은 실천공간이다. 이곳에서 소성리의 모든 일들을 공유 받고 사드를 반대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제국주의의 패권적인 행위들을 비판하는 장이 되려고 했다. 누구도 촛불을 쉬자고 말하는 이가 없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었지만 사드가 물러가지 않았기에 만세를 불러도 팔이 반밖에 올라가지 않는 이유다.

그 아픔을 성주 사람들은 촛불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느꼈다. 세월호 학살 3년이 되는 4월 16일은 성주촛불 278일 되는 날이었다. ‘노란 나비와 파란 나비가 함께하는 촛불’을 밝히면서 이 시대의 아픔을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기억하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국제정세는 어지럽다. 어떤 이유에선지 사드발사대가 먼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오산기지에 있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왜관 미군기지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린다. 언제 어느 때 소성리로 옮겨와 알박기를 할지 알 수 없는 긴장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사드는 지상으로만 옮기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가 어느새 말이 바뀌어 시누크헬기로 분해해 옮기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중미회담이 열리고 대선정국으로 급변하고 있다. 대선 직전까지 사드반대하던 정치인들은 대선에 접어들자 말 바꾸기로 바쁘다. 한때 사드반대 입장 분명한 후보를 찾아서 이래저래 선거에 기대도 했었던 성주촛불들은 또다시 정치꾼들의 가벼운 세 치의 혀놀림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결국 남는 것은 사드배치로 닥쳐올 피해의 직접당사자가 될 주민들이 온몸으로 막아서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고립되지 않도록 연대전선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리라. 하늘길을 막지 못하는 원통함이 있지만 꼭 한 번, 결전의 날이 올 거라 예상된다. 그 날 사드를 막기 위해서 소성리는 전투훈련 중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투쟁은 결국 한반도가 미국의 점령지임을 깨닫게 해준다. 사드배치 반대를 통해서 한국 땅의 미군 주둔과 한미동맹이라는 왜곡된 국제관계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배운다.

 

 

소성리로가는길에_손소희-질라라비20170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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