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5] 생명안전 / 전주희

by 철폐연대 posted May 11,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생명안전

 

 

전주희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생명안전이라는 개념, 혹은 생명·안전이라는 단어들의 조합은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하던 한국 사회에서 창안되었다. 그 이전까지 생명과 안전은 각기 별개의 개념들로 정의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지배적인 규범과 질서 안에서 생명과 안전은 분리되어 있다. 반면 생명안전은 여전히 불완전하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한 상태로 소수의 언어로 유통되고 있다. 비록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소수의 언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로 구별되는 한 사건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질문한다면,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생명안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안전은 현실에서, 운동의 구호로 거칠게 소묘된 채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를 소망하는 사회적 열망이 높아졌다. 사회운동이 재난참사 문제를 운동의 과제로 마주하면서 맞닥뜨린 곤궁 중 하나는 안전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기술적인 범주로 굳어져 있다는 점이고, 안보(security)라는 국가 통치적 관점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안전이라는 개념의 변형이 필요했고, 안전을 생명에 대한 권리와 연결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의 문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무능력했던 것, 구조의 마지막 순간에서까지 국가가 생명의 존엄함을 훼손한 것에 대한 정치적, 윤리적 성찰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도출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러한 개념의 창안을 하나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어떤 개념에 구성요소가 하나 더 보태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개념은 산산이 부서지거나, 필시 다른 문제들로부터 비롯된 또 다른 구도를 의미할지도 모를 완벽한 변화를 나타낼 것이다.”

 

안전에 생명이라는 요소가 보태어지는 순간, 기존의 안전 개념은 와해된다. 기존의 안전 개념은 피해 당사자를 도구화하거나 보호해야 할 존재로 암묵적으로 간주한다. 생명안전이라는 개념이 창안되어야 할 첫 번째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피해자의 ‘위치’를 개념 안에 각인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재난 사회운동을 출발하려는 데 있다.

 

재난 사회운동에서 피해자 ‘위치’의 문제

 

모든 안전 관련 운동의 출발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부터 출발한다. 특히 대형참사는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 그리고 피해자를 구성요소로 갖는다. 기존의 안전운동은 피해라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지만 운동의 주체로 피해자를 세워 내기보다 운동의 출발로서 참조될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해자는 시민과 분리되며, 피해자의 권리는 보편성을 회득하기 어려워진다.

 

생명안전이라는 개념 안에 기입하려는 피해자의 위치성은 피해라는 사실이 함축하고 있는 피해의 구조적 위치이다. 피해자는 구조화된 위험들의 교차점에 자리한다. 위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며,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한순간 ‘사건’으로 현행화될 때뿐이다. 사건은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생산하지만 이내 사라지고, 남겨진 것은 참사의 흔적처럼 부서진 채 발생한 피해자이다. 우리가 재난을 손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런 속성에서 기인하지만 피해자는 자신의 신체와 삶에 새겨진 폭력의 흔적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사회적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피해의 ‘위치’에 정박된다.

 

따라서 피해자가 재난이 발생한 과거에 붙들려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취약함이 아니다. 어떤 재난참사 피해자들은 스스로가 과거의 사건에 자신을 묶어 두면서 그러한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노력을 촉구한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재난참사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증언이자 항변인 셈이다.

 

이렇게 재난참사 피해자들 중 재난참사의 사회적 해결을 촉구해 온 것을 우리는 ‘재난참사 피해자 운동’이라고 부른다. 재난참사 피해자 운동은 생명안전이라는 개념, 재난 사회운동의 기치로서 생명안전 운동에 앞서, 재난 사회운동의 출발점에 있다.

 

신자유주의적 생명정치에 맞선 대안적인 생명정치의 가능성

 

보통 재난참사는 정세와 무관한 것으로, 재난의 고유한 내적 메커니즘으로 발생한다고 간주된다. 물론 모든 재난참사를 정세적 규정으로 묶는 것은 재난을 과도하게 정치화하거나 재난의 원인을 되레 납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재난은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요인들의 불안정성이 증폭되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늘 인간과 기계, 인간과 화학물질, 인간과 사회시스템의 어떤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단지 국가가 제대로 구조하지 않고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생명의 문제가 제기된 것만은 아니다. 참사를 계기로 참사를 교통사고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려는 모든 시도,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선제적인 혐오와 더불어 정부와 국회가, 아니 정치가 그동안 ‘생명’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가 드러났다. 생명은 존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존중되지 않았다. 참사의 구조와 수습의 전 과정에서, 그리고 참사 직전 대응의 과정에서, 세월호라는 무리한 운항이 허용되는 보다 구조적인 자본의 생산·유통의 흐름에서 생명은 이윤의 한 조각이거나 관리되어야 할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난 것이 세월호 참사였다.

 

생존이 불안정한 사회에서 생명은 위계화된다. ‘놀러 갔다가 죽었다’는 비아냥이 이는 사회에서는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죽음 역시 무능력의 문제로 비난받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작된 생명안전운동은 생명의 존엄성과 안전사회의 실현이 놓인 신자유주의적 생명관리 정치를 넘어선 대안적 생명정치를 꿈꾼다. 대안적인 상상력 없이 현실의 운동은 구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안전운동이 자칫 안전과 관련된 국가 책임의 강화가 아니라 국가 권력의 강화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생명정치가 만든 생명의 위계화와 가치절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명의 위계화가 사회적 분할을 촉진하는 혐오의 정치와 단절해야 한다.

 

 

5. 본문사진.jpg

2020.11.12. 생명안전기본법 발의 기자회견. [출처: 생명안전시민넷]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운동의 의미

 

재난 사회운동을 통해 시민사회와 재난참사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대형 참사의 반복이 왜,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해 천착했다. 그리고 대형 참사의 반복과 진상규명의 부재, 피해자에 대한 무시와 혐오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법과 제도의 차원에서 체계적인 무시와 무관심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분적인 입법 보완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종합적인 생명안전기본법의 형태로 묶어서 제도화하는 것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헌법에는 ‘안전권’이 기본권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법에서 안전권이 국민의 기본적 권리임을 규정하고 국가와 지자체에서 이를 지켜야 할 원칙과 핵심제도를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법에서는 안전사고의 예방과 대응, 복구 과정에서 피해자와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신속하게 구조를 받을 권리, 사고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등 안전에 대한 포괄적인 피해자와 시민의 권리를 다루고 있다. 이는 기존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을 대체한다. 기존의 재난안전법은 정부가 재난 발생 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법 구조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보충적으로 보완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정부의 관점에서 관리의 대상으로 구조화되는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생명안전기본법의 제정을 통해 피해자와 시민의 권리를 중심으로 재난에 대한 대응시스템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