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5] 사랑이 이긴다 / 소성욱

by 철폐연대 posted May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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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사랑이 이긴다

 

 

소성욱 •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빼앗긴 상상력”

 

나는 상상력을 빼앗긴 삶을 살았다. 보통의 가족을 상상할 힘을, 나도 보통이라고 상상할 힘을.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끊임없이 나를 부정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라는 동안 내가 보고 들으며 느낀 세상은 온통 시스젠더 이성애자들의 이야기뿐이었다. 교과서, 동화책, TV, 라디오는 물론, 동네사진관에 전시된 가족사진, 가끔 가게 되는 결혼식에도 온통 비성소수자들의 이야기뿐이었기에 나는 내가 틀린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고, 비정상이 아니기 위해 나를 부정했다. 그래야 세상에 섞일 수 있었고,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끊임없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 그것 자체가 너무 위험한 것이었다. 내 스스로를 부정할 때마다 내 영혼은 메말라갔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해 점점 더 자주 상상하기 시작했고, 몇 차례 시도하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결혼하고 싶어”

 

생각해 보면, 지금의 삶은 내 남편이 나에게 준 선물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나의 정신질환이 심각해져 6개월이나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때가 있었다. 더워지기 전에 앓아누웠는데, 어느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물과 음식을 사다 주며 나를 헌신적으로 돌보고 지탱해 준 지금의 내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남편이 내게 결혼하고 싶다고 졸랐다. “결혼하고 싶어, 결혼하자.” 나는 결혼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는 것, 나는 할 수 없기에 결혼이라는 것은 축의금 내느라 돈만 많이 드는 그런 행사일 뿐이었다. 나는 할 수 없고, 누군가가 하면 가서 볼 수밖에 없는 그런 행사. 그러니까 나는 수 번을 축하하더라도, 나는 축하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내게 허락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와 가족이 될 수 있다니. 지금 당장 법적으로 되지 않더라도, 아니, 그러니까 더더욱, 권리로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니. 안 보이던 새로운 세상이 갑자기 보이는 것 같았고, 그렇게 나는 2019년 5월, 남편과 결혼식을 가졌다.

 

“배우자, 가족”


2020년 2월부터 약 8개월 동안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내 남편과 나의 관계가 이렇게 설명됐다. ‘관계 : 배우자, 가족’. 불안정한 노동을 하던 내가 남편의 피부양자로서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마치 결혼식 때만큼이나 기뻐서 화면을 저장하고 주변 친구들한테 자랑했다. 다른 성소수자들도 이 혜택과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에 한 언론에 인터뷰도 했다. 그 언론의 기사가 온라인으로 발행이 되고, 2시간 만에 건강보험공단이 남편에게 전화했다. ‘실수’. 건강보험공단 측은 나와 내 남편이 가족으로 등록된 것은 실수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정말 박탈되었다. 피부양자 자격은 물론, ‘배우자’, ‘가족’이라고 명시되었던 우리의 관계가 간데없이 한순간에 지워졌다.

 

“사랑이 이길 겁니다”

 

소송을 시작하며, 1심에서 패소할 때에도 했던 말, “사랑이 이길 겁니다.” 나와 내 남편, 그리고 동료들까지 우리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사랑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 시간이 조금 걸릴지언정, 결국에 우리가 승리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길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함께 모으고 있는 적금통장 내역부터 결혼식 사진과 방명록은 물론, 우리가 언제 어떻게 만나 서로 헌신하며 살아왔는지까지도 세세하게 증거자료로 제출해야만 했다. 그러나 재판 내내 건강보험공단 측의 언어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겼다. 남편과 나, 우리가 부부,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강보험공단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힘이야 들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우리가 부부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족이 아닌 것도 아니니, 결국엔 우리의 사랑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1심 재판부는 우리가 ‘이성 사실혼 관계의 부부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건강보험공단의 손을 들어 주었다. 남편은 기자회견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나도 정말 많이 화가 났고 속상했다. 절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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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2심 선고 기자회견. [출처: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

 

 

“사랑이 이겼다”

 

끝내 사랑이 이겼다. 1심에서 패소한 우리는 바로 항소를 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우리 부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항소심 재판은 첫 번째 기일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우리 부부가 이성 사실혼 관계의 부부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같다면 어떻게 같은지를 중점적으로 물어보며 평등의 원칙을 쟁점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 측은 우리 부부가 여느 이성 사실혼 부부들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증명하지 못했다. 사실 그건 아무도 못 한다.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가족을 가족이 아니라고, 부부더러 부부가 아니라고 입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랴. 남편은 항소심 승소 후 기자회견에서도 펑펑 울었는데, 그 눈물의 의미는 1심 패소 때와는 다른 것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어떠한 차별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간략하게 덧붙이고자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지향 소수자들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차별이 존재해 왔음은 이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성격, 감정, 지능, 능력, 행위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의 평가에 있어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그에 따라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남아 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전형적인 평등권 침해 차별행위 유형 중 하나로 열거하는 등 사법적 관계에서조차도 성적 지향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으므로,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사랑이 또 이긴다”

 

건강보험공단이 표방하는 미션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지만, 그 미션을 스스로 저버렸다. 건강보험공단은 항소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법원에 다시 상고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나는 ‘우리의 사랑’이 이미 이기기 시작했고, 또 사랑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항소심 승소 후에 정말 수많은 축하의 연락을 받았는데 특별한 점이 있었다. 축하의 말 속에 감사의 인사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 수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이건 비성소수자이건 가릴 것 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왔다. 이 승소는 우리 부부만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의 승리이기 때문에.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며 평등을 바라는 수많은 ‘우리’가 있기에, 그래서 사랑도 ‘우리의 사랑’이다. 우리는 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에 대한 투쟁 외에도 가족으로서 살아갈 권리, 혼인평등, 결혼할 권리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 나간다. 사랑이 또 이길 것이기 때문에, 또 사랑이 이기는 순간에 서로에게 건넬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생각해 본다.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은 빼앗지 못한다. 사랑이 이길 것이라는 상상력을. 결국엔 사랑이 이기는 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