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3] 이태원참사와 함께한 말. 말. 말. / 박성현

by 철폐연대 posted Mar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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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이태원참사와 함께한 말. 말. 말.

 

 

박성현 • 4·16재단 나눔사업1팀 팀장

 

 

 

“이태원참사 피해가족들에게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2023년 2월 18일은 2.18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였습니다. 20년이면 세상에 빛을 본 아이가 성인이 되는 나이이니, 피해자들이 얼마나 긴 터널을 지나왔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시간입니다. 28년이 지난 삼풍백화점참사, 인현동화재참사, 씨랜드화재참사, 태안해병대사설캠프참사, 가습기살균제참사, 스텔라데이지호침몰참사, 세월호참사 피해가족들이 대구의 피해가족들 곁에 섰습니다. 전국의 재난 참사 피해가족들이 처음으로 모두 모인 자리였습니다. 누군가 다시 재난참사로 고통받는다면 그 곁에 서서 어깨를 내어 주겠다는 의지로 ‘재난참사피해자권리옹호센터(가칭)’를 함께 준비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대구지하철참사 피해가족이 세월호참사 피해가족에게 미안해했고, 세월호참사 피해가족이 이태원참사 가족에게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본인들이 더 독하게 마음먹고 정부를 향해 싸웠더라면, 세상의 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었더라면, 그다음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애통해하며 이야기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책임지지 못했던 참사를 먼저 겪은 피해자가 다음에 일어난 피해자에게 미안해합니다. 참사를 책임지지 않고, 원인조차 밝히지 않는 실질적 책임자들은 그토록 책임을 회피하는데, 온 우주였던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은 비통해하고, 미안해합니다.

 

“용산 이태원 인명사고, 사망자, 부상자로… 다른 표현은 삼가라.”

10.29이태원참사 직후인 10월 30일 서울시 주요간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모바일 상황실)에 공유된 메시지 내용입니다. 언론 브리핑에서는 상황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참사’라는 명칭 대신 ‘사고’로, ‘피해자’라는 단어 대신 ‘사망자, 부상자’로 표현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합니다. 그 단어를 들은 시민들은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경찰은 실제 CCTV 영상과 탐문 조사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안치실로 가족을 찾으러 온 유가족에게 마약검사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그 안의 가해자를 찾겠다는 위험한 행동을 하기도 했고, 오인하여 본인이 그 현장에 없었다는 증명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사회적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정부가 드리운 그림자, 즉 ‘누군가가 밀어서 사망자들이 생겼을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이루어진 경찰 조사로 ‘그 누군가가 나일 수 있다’라는 무거운 죄책감으로 평생 짓눌릴 무게가 생겨 버렸습니다. 참사 현장에서 온 우주와 같은 자녀를 잃고도 ‘왜 살아 돌아오지 못했는지?’를 함께 질문하기보다는 이태원 핼러윈 현상에 일원으로 ‘왜 거기 있었냐?’고 질문함으로써 쉬이 얼굴을 드러내 이야기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을 겪었습니다. 정부의 발표는 시민들의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었고, 편견을 갖게 하였습니다. 희생자, 유가족, 부상자, 생존자, 구조 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포함한 피해자들이 피해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세상에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에 어려운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참사가 아닌 사고에서 피해자가 아닌 사망자, 부상자, 생존자로 명하는 일은 희생자에게 오명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않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정부의 참사 책임을 면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 아이는 놀러 간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49일 추모식에서 피해가족의 발언에서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던 ‘놀러 가서 난 사고’라는 언어는 피해가족의 마음에 멍이 들게 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그 길을 걷고 있었는지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우리 모두가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호참사 때에도 그랬습니다. ‘놀러 가다’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을 힐난하고 비난했습니다. 누구도 어떤 목적으로 길을 걷다가 죽거나 다쳐서는 안 됩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이든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이든 어떤 목적에서도 죽거나 다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안전한 보행권이 보장되지 않았던 사회에서 목숨을 잃은 참사가 바로, 10.29이태원참사였습니다.

 

“아이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50이 넘은 나의 남편도 있었다.”

같은 날 무대 뒤편 길가에서 절규처럼 울렸던 목소리입니다. 희생자 159명 안에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과 러시아, 일본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문화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이태원 지역성을 반영하듯 퀴어 희생자도 있었습니다. 피해자를 피해자로 인정하지도 않는 정부는 남겨진 가족의 다양성은 고려조차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 한 번도 피해를 입은 시민을 모아 놓고 어떤 과정으로 지원할 것인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159가정 중 100가정이 넘는 피해가족이 참여하는 10.29이태원참사유가족대책위원회가 발족했음에도 120여 일이 지난 지금도 전체 브리핑은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목격자이자 구조자였던 이태원 상가인들에게 제대로 된 지원체계는 없었습니다. 목격자였을 수 있는 이태원 지역주민들에게 한국어로 된 심리상담 전화번호만이 담벼락에 펄럭이고 있었을 뿐입니다. 개별로 배치되었다는 공무원들에게 이루어진 교육자료에는 명패조차 없었던 분향소와 장례지원금을 어떻게 지급하는지만이 적혀 있었습니다. 연령이나 국적,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피해가족의 범위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정부의 브리핑과는 다른 지원체계로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습니다.

 

 

7. 본문사진.jpg

2022.12.13. 10.29이태원참사 충실하고 성역없는 국정조사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아이는 사고지역과는 너무도 먼 안치실에… 어떤 관계인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유품을 건네는 공무원…”

이태원역 1번 출구 참사지역에서 나왔다는 유류품은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실내체육관에 모아졌습니다. 자녀의 물건을 하나라도 제대로 찾고 싶었던 부모는 유류품을 찾아 나오며 화가 났습니다. 엄마가 기억하는 자녀의 것이라 찾아 나오기는 했지만, 희생자와 어떤 관계인지, 그 물건의 주인이 맞는지조차 확인하지 않는 담당자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물건과 바뀌기라도 했다면, 혹은 전혀 관계없는 누군가가 찾아가기라도 했다면, 희생자의 물건을 찾아가지 못할 수 있는 다른 가족들도 있지 않겠냐 화를 내고서야 본인에게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사회가 놓쳐 버린 생명, 그 생명에 대한 사회의 무례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생각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 좀 이런 생각들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지금 말씀하신 (원스톱)지원센터 쪽에도 그런 어려움을 좀 충분히 제기를 하셨더라면…”

친구와 참사현장에 갔다가 본인만 부상자로 돌아왔던 청소년, 159번째 희생자에 대한 총리의 발언이었습니다. 원스톱지원센터라는 수려한 이름 속에는 많은 용기를 내어야만 지원이 가능한 심리상담체계가 있습니다. 상담지원체계는 전화상담이 가장 먼저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 심각하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센터로 내원할 것을 권합니다. 유가족, 목격자, 구조자인 피해자들은 자신이 전화를 해야 할 만큼 심각한 사람인지 아닌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 어려운 일을 겪었으니 슬프며, 분노가 일어 오르는 게 당연하다 싶습니다. 때로는 너무 이상하리만치 아무렇지 않기도 하니 이것이 정상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스스로를 판단해 상담전화를 누르기까지 수 없는 반목이 마음속에 일렁입니다. 그렇게 건 전화상담은 실망스러웠다고 합니다. 어렵사리 찾아간 한 주에 두 번씩 찾아갔던 상담이 본인에게 맞지 않기도 합니다. 이런 수많은 착오를 겪어야 했던 심리지원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 경험한 이들의 소회입니다. 그런 체계를 만든 정부, 친구의 떠남을 혼자 자책했던 청소년까지 삶의 끈을 놓게 한 정부의 총리가 한 말은 한없이 무례했습니다.

 

“사망시각 10시 30분”

사망진단서에 적힌 시간입니다. 자녀가 차고 있었던 애플워치에는 11시 30분이 넘도록 아이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았습니다. 참사로 떠난 희생자의 사망진단서에는 너무도 무심하게 참사가 발생한 시각 10시 15분 이후인 10시 30분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어쩌면 살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가족들은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정확한 사인과 참사의 원인을 알기 전까지는.

 

“저는 최근에 가장 염려하던 그날을 맞이했습니다. 심리상담사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이제 더는 당신의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고백할 그날을 말이죠. 세상이 변화하는 모습, 진상규명이 되지 않으면 결국 본질적인 원인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참사 100일, 국회추모제에서 생존자의 발언 중 일부입니다. 참사의 진실을 아는 것은 회복의 첫 단추입니다. 나의 가족이 떠났던 이유, 그 참혹한 현장을 목도하고 겪어야 했던 이유를 묻는 것은 결코 유난한 일이 아닙니다.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사회의 미숙함으로 겪었다면, 그 사회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참사 초기부터 피해가족들의 요구는 매우 분명했습니다.

 

첫째,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후속 조치

둘째, 모든 책임자에 대한 성역 없고 엄격한 책임 규명과 문책

셋째,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 규명

넷째,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및 인도적 조치 등의 적극적 지원

다섯째,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여섯째,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

 

10.29이태원참사는 사전 대비를 통해 막을 수 있었던 사회적 참사입니다. 우리는 안전한 사회에서 보행할 권리를 잃었습니다. 재난 참사를 참사로 부르지도 못하고, 피해자는 피해자로 존중받지도 못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모이고 말하고 경험을 나누어 함께 해결하고 싶었지만, 모이고 말할 권리를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사진과 명패가 있는 분향소를 통해 함께 애도하고 추모할 권리가 있지만, 현재 서울시의 ‘강제철거하겠다’는 계고장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별이 된 가족의 사망원인과 시각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지만, 무엇도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사회의 무책임으로 유가족이 되었고, 매일 잠 못 이루는 목격자가 되었으며, 사투를 겪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회복을 위한 권리보장은 미미했습니다. 참사 피해자들은 SNS와 길거리에서 폄훼와 혐오의 말에 난도질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의 재난 참사 피해자로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만하라’고 쉬이 이야기하지만, 가장 그만하고 싶은 건 그들일 겁니다. 누구도 ‘피해자’이고 싶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다시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전국 재난 참사 피해가족들이 용기를 내어 ‘함께 연대하겠다’ 길에 나섰던 것이라 그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