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5] 바우처 / 선지현

by 철폐연대 posted May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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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노동용어 

 

바우처

 

 

선지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 

 

 

 

바우처 제도의 도입과 확대 

 

상품권, 쿠폰으로 번역하기도 하는 바우처. 사람들에게는 사회서비스 방식 중의 하나로 특정한 서비스를 보조하는 제도로 익숙하다. 현금으로 주면 ‘보조금’으로, ‘현물’로만 교환 가능한 상품권(카드)을 지급하면 바우처로 생각한다.

 

사회서비스의 바우처 제도에 대해 정부는 “국민의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하고 질 좋은 사회서비스 보장을 위해 노인, 장애인, 산모, 아동 등 대국민에게 서비스를 지원하는 제도”라고 정의한다. 바우처 금액은 정부지원금과 본인부담금으로 구성돼 있다. 서비스 이용자에게는 이용권을 발급해 서비스를 선택할 권한까지 부여하고, 공급 기관에는 서비스 경쟁을 유도해 고품질 서비스를 유도하는 게 정부가 말하는 제도 도입의 취지다.

 

바우처의 공식적인 등장은 2003년 사회복지법의 개정이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에 바우처 제도가 처음 시행된 것은 2007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다. 이어 2008년에는 산모건강신생아건강관리, 가사간병방문지원사업, 임신출산진료비 지원 서비스가 시행되었다. 이후 점차 확대돼 2015년에 국가바우처 운영체계가 도입됐고 통합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바우처마다 각각 카드를 발급하다가 이를 통합하는 국민행복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현재는 약 17종의 바우처를 이 카드를 통해 제공받을 수 있다.

 

 

2. 그림.png

[출처: 국민행복카드 홈페이지]

 

 

바우처 제도의 도입과 확대는 사회서비스의 공적 책임의 강화 요구 속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이 과정은 사회서비스의 시장화 확대와 그 궤를 같이한다. 바우처는 민간사회복지기관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던 정부의 사회서비스 재정 지원의 방식을 이용자에게 돌린 제도다. 이는 앞서 말했던 이용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경쟁을 통한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사회서비스의 공적 책임은 새롭지 않다. 그런데 그 방법은 대체로 흔히 사회복지라고 인식되는 비영리 민간조직들이 시설을 만들고 사람을 고용해 운영했고 정부는 재정 지원과 관리 감독을 해 왔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사회서비스의 시장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때 비영리기관만 수행할 수 있었던 사회서비스를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영리법인에 사회서비스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획기적인 일자리 창출’로도 이야기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모습은 어떨까? 

 

바우처 분야의 확대는 사회서비스의 지원 확대로 이해된다. 실제로 바우처는 장애인활동보조 지원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17종에 이르고 있다. 양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은 커졌다. 이에 따라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기관도 2019년 기준으로 23만 2,107개소(통계청)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사회서비스의 공급실태를 살펴보면 시장화의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공급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업체/기관은 개인사업체가 54.7%이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기관은 1.0%에 불과하다.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곳은 34.8%다. 업체 규모를 보면 10인 미만 사업체가 59.4%에 달하고, 100인 이상 사업체는 1.4%에 불과하다. 영세한 규모 업체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영세업체들은 수익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사회서비스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열악한 노동조건은 서비스의 질 악화와 이어진다. 노동조건이 열악하다 보니 일하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결과는 이를 분명히 보여 준다.

 

조사 대상 사업체의 절반은 인력확보가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 핵심적인 이유가 열악한 근무여건이다. 그러다 보니 근속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6년(22년 기준)인데,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은 3.8년이다. 이도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좀 긴 편이고, 방문 복지 서비스의 경우 근속은 2.84년에 불과하다.

 

사회서비스의 대표적인 분야인 돌봄의 경우에는 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정부 대책이 총선에서 1순위 공약이었다. 저마다 돌봄문제를 국가의 미래와 연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 모두 불만과 분노가 높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규모는 110만 명에 달하고 있지만,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평균명목임금은 전 산업노동자 평균임금의 70%에 불과하다. 돌봄노동은 더 심각하다. 돌봄 및 보건서비스 분야 노동자의 중간임금은 127.5만 원(2021년 기준, 제갈현숙)이다.

 

고용 불안정 문제도 심각하다. 대부분의 돌봄노동자들은 기간제, 시간제, 또는 시설이나 플랫폼 기반 파견노동 등의 형태로 일하고 있다. 바우처 수가에 맞춰 급여가 지급되는 바우처 노동자들은 매년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하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단시간 노동과 장시간 노동의 극단을 오가며 불안정한 고용과 임금의 상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실패 경험에도 경쟁체제 강화를 외치는 윤석열 정부 

 

2023년 5월 윤석열 정부는 사회보장 서비스 자체를 시장화·산업화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사회서비스 고도화 추진 방향’을 제출했다. 사회서비스를 완전히 시장에 넘겨 버리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사회서비스의 비용 대부분은 인건비다.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력 증가는 필연적이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하는 최소화 기준의 단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중심과 열악한 영세업체의 공급구조 속에서는 경쟁체제 강화는 노동비용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 상황에서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으면 바우처를 아무리 늘린다고 해도 사회서비스 정책은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다. 값싼 돌봄노동자 유입을 고민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이주가사노동자 100만 원 등과 같은 기막힌 발언들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 점검 회의에서 저출생 해법으로 “국내에 이미 거주 중인 16만 3,000명의 외국인 유학생과 3만 9,000명의 결혼이민자 가족분들이 가사, 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는 사회서비스의 공적 책임을 악화시키고 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과 사회서비스 영역의 사회운동의 오랜 투쟁으로 만들어진 사회서비스원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서울시의회는 4월 26일 ‘서울특별시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폐지시켰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2. 본문사진.jpg

2024.04.26.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폐지조례를 강행처리한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를 규탄하고 폐지조례의 부결과 즉각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출처: 공공운수노조] 

 

 

사회서비스는 모든 국민에게 복지·보건의료·교육·고용·주거·문화·환경 등 분야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사회구성원의 삶을 향상하기 위해 지원되는 제도다. 이게 정부가 밝히고 있는 사회서비스의 정의다. 사회서비스의 공적 책임이 이 정의에 분명하게 표현돼 있다. 공적 책임은 재정지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설과 운영, 관리 감독에 이르기까지 정부 차원의 책임이다. 이런 것이 분명하게 사회서비스의 운영원리로 작동되지 않으면 사회구성원들이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한 상호의존의 돌봄사회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