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11] ILO 국제노동기준과 노동조합법 / 유태영

by 철폐연대 posted Nov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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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ILO 국제노동기준과 노동조합법

 

 

유태영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국제노동팀장 / 변호사

 

 

 

ILO 핵심협약, 비준은 마쳤으나…

 

2019년도에는 노동부에 민원 전화를 걸 때마다 통화 연결음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국정 홍보 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ILO 창립 100주년 총회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출국할지 안 할지 예측하는 언론 보도도 연일 쏟아졌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제87호, 제98호 협약을 비준해야 하는지, 비준한다면 그에 앞서 노동조합법 개정을 먼저 해야 하는지, 또는 법 개정보다 비준을 먼저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국회, 학계에서 토론이 이어졌다. 당시 사용자 단체는 노사 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사용자의 대항권’ 운운하며 ILO 핵심협약 비준과 경영계의 숙원 사항(예를 들어, 대체근로 허용)을 맞바꿀 것을 요구했다. 대외적으로는 유럽연합이 한국과 체결한 한-EU FTA(자유무역협정) 제13장에 따라 한국도 ILO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압박을 가해 왔다.

 

우여곡절 끝에 노동조합법이 개정되었고, ILO 핵심협약 중 강제노동에 관한 제29호,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제98호 협약도 비준되었다. 협약 비준서가 기탁된 2021년 4월 20일부터 1년이 지나서, 2022년 4월 20일부터는 협약의 효력이 발효되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하였다.

 

이제 협약이 발효되고 반년이 지났다. 과거에는 해고자, 실업자가 조합원 중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반려 당했었던 노동조합이 이제 드디어 설립 신고를 마쳤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가 바로 노동조합법 2, 3조 개정 운동이다. 이하에서는 ILO가 제시하는 국제노동기준에 맞추어 노동조합법을 개정하는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5. 본문사진1.jpg

2022.04.20. ILO 기본협약 발효에 따른 양 노총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ILO(국제노동기구)에 대해 알아보면

 

ILO(국제노동기구,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는 노동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이다. 187개 회원국의 노사정 삼자가 모여서 노동문제를 논의하고, 이를 ‘노사정 삼자주의(Tripartism)’라고 한다. 이 노사정 삼자주의는 각국의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관들, 비정부기구가 모여서 회의를 하는 대부분의 국제기구와 ILO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국제법상 조약으로서 비준국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협약’,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협약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협약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권고’를 제정하고 있다. 협약과 권고는 노사정 삼자주의에 따라 정부와 노사 대표가 토론하여 정한 국제노동기준이다. 즉, ILO 협약은 한국 경영계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노동자 측에만 힘을 실어 주거나 어느 한쪽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결과가 아니다. 노사정 합의의 산물이자 노사 관계에서 ‘싸움’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위와 같이 협약이 만들어진 후에는 ILO는 회원국들이 이를 잘 준수·이행하는지를 감독하기 위한 절차적 메커니즘, 쉽게 말해서 정기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총회에서 20여 건의 협약 위반 사례에 대해 심사하는 ‘기준적용위원회’, 회원국들의 결사의 자유에 관한 위반 여부를 심사하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 가 그것이다. 특히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제98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회원국에 대해서도 협약 위반을 심사하여 왔다. 그 결과 대한민국 정부는 ILO 핵심협약을 위반하기 이전부터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빈번히 제소되어 주요한 결정을 이끌어낸(?) 일종의 ‘요주의 회원국’이었다.

 

노동조합법 개정 방향 ① : 노동자라고 인정받기

 

ILO 제87호 협약 제2조는 “근로자 및 사용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사전 허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여 단체를 설립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애당초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는지 또는 다른 종류의 계약을 체결하였는지에 대해서 구분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나아가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자영근로자(self-employed workers)는 고용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결권을 향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1)

 

한국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이 제소한 사건에 대한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판단도 있었다. 2009년 한국 노동부는 화물트럭 기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조합원에 포함된 전국건설노동조합에 대하여 규약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법외노조 통보를 하겠다는 입장이었고, 이에 대해서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자영근로자들self-employed workers)이 제87호, 제98호 협약에 따라 응당 누려야 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증진하고 수호하기 위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완전히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함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권고하였다.2)

 

노동조합법 개정 방향 ② : 진짜 사용자 찾기

 

ILO 제98호 협약 제4조는 (회원국 정부는) “단체협약으로 고용조건을 규제하기 위하여 사용자 또는 사용자 단체와 근로자 단체 사이에 자발적 교섭을 위한 메커니즘을 충분히 발전시키고 이용하도록 장려·촉진하기 위하여 국내 사정에 적합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노동조합은 간접고용노동자, 하청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한국 정부를 수차례 제소하였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이 제기한 제1865호 사건, 3) 현대자동차, 기륭전자 등에서 일하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제기한 제2602호 사건, 삼성전자서비스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제기한 제3047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하여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원청 회사에 대하여 단체교섭 목적의 인정을 요구하는 파업은 불법이 아니고, 노동조합과 하청 및 파견 근로자의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자 사이의 단체교섭은 항상 가능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4) 즉, 간접고용노동자들이 그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가진 원청 사업주에 대하여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이를 위해 파업까지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5. 본문사진2.jpg

2022.10.18.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법안 발표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노동조합법 개정 방향 ③ : 쟁의행위 제대로 하기

 

위와 같은 원칙에 따라 노사 관계의 당사자가 제 이름을 찾은 후에도 협소한 쟁의행위 개념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현행 노동조합법 제2조는 노동쟁의의 대상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것으로 한정하여, 예를 들어, 정리해고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파업은 불법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형법상 문제까지 살펴보면, 단순히 노무 제공을 거부한 평화적 파업에 대해서도 업무방해죄가 적용되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문제로 이어진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평화적 파업에 참여한 것을 이유로 일체의 근로자에게 형사처벌이 부과되어서는 안 되고, 파업의 틀 안에서 사람과 재산에 대한 폭력 기타 일반 형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 이루어진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부과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5) 또한 한국 철도노동조합이 제기한 제1865호 사건에서 업무방해 조항에 기한 벌금과 결부되어 있는 손해배상소송은 노동조합의 존속 그 자체에 심각한 재정적 위협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정당한 조합활동에 대한 위축 효과를 가져온다고 우려하였다.6)

 

결론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결론은 ‘우려를 표명한다’, ‘후속 정보를 요청한다’ 와 같이 표면상으로는 일견 외교적이고 유화적인 수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만 ILO 협약은 ILO의 긴 역사에 걸쳐 노사정 삼자가 함께 합의한 결과물이고, 이를 위반하였는지 감독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은 지속적이고 집요하다. 현행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사용자, 쟁의행위에 관한 정의 규정(제2조),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규정(제3조)을 시급히 개정하여야 하는 이유는 국제노동기준상으로도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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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제노동기구 사무국, 「결사의 자유 위원회 결정 요약집(제6판, 2018)」, para. 387.

2) 김동현·이혜영,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동법의 쟁점」, 사법정책연구원, 2022, 258쪽.

3) ILO 데이터베이스(NORMLEX)상, 1995년도에 제기되어 현재까지 후속 조치(Follw-up) 상태인 일종의 장기 미제 사건이다. https://www.ilo.org/dyn/normlex/en/f?p=1000:20060:0:FIND:NO:20060:P20060_COUNTRY_ID,P20060_COMPLAINT_STATU_ID:103123,1495811

4) 국제노동기구 사무국, 「결사의 자유 위원회 결정 요약집(제6판, 2018)」, para. 681, 457.

5) 국제노동기구 사무국, 「결사의 자유 위원회 결정 요약집(제6판, 2018)」, para. 954, 955.

6) ILO CFA, 382nd Report (2017), Case No. 1865 (Republic of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