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12] 덕성여대 김건희 사장님 / 박장준

by 철폐연대 posted Dec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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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덕성여대 김건희 사장님

 

 

박장준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

 

 

 

세상 모든 원청은 불법파견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부의 근로감독, 법원의 지위확인 소송에서는 불파가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현실과 진실에 부합하지 못한 법/행정적 기준 자체부터 문제이지만, 사라진 증거를 모아 진실을 증명해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증거는 다시 나타난다.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투쟁할 때 그렇다. 일례로 연세세브란스병원의 청소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자 원청인 병원은 하청과 함께 민주노총 깨기 대응전략을 짰다. 원하청 자본이 공모한 이 노조파괴 공작은 병원장까지 공식 보고가 됐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어 투쟁하자 조직적으로 노조를 탄압한 것은 다름 아닌 원청 삼성이었다.

 

그리고 최근 증거가 쏟아져 나오는 현장이 있다. 바로 덕성여자대학교다. 이 학교는 원청인 자신이 청소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이라는 진실을 불가피하게 드러냈다. 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이다.

 

배경설명부터 잠깐.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으로 서울지부 소속이다. 서울지부는 올해를 포함 12년 동안 서울지역 대학, 빌딩사업장의 미화·보안·주차·시설관리 용역업체들을 한데 모아 ‘집단교섭’이라는 것을 해 왔다. 요컨대 집단교섭은 조합원들이 더 단결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권리를 만들어 가는 틀이다. 매년 생활임금 투쟁을 하면서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많은 임금을 쟁취했고, 휴게실을 개선해 왔고, 단체협약도 한 장 한 장 더 쌓아 올렸다. 서울지부 집단교섭 사업장 조합원 1,200여 명의 투쟁은 서울지역 모든 미화·보안·주차·시설관리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야말로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바꾸는 투쟁이다.

 

올해 집단교섭 투쟁은 지난해 11월 13개 사업장 16개 업체를 상대로 시작됐다. 업체들은 원청 눈치를 보며 임금안조차 제출하지 않았고 교섭은 올해 2월 결렬됐다. 3월부터 몸자보를 입고 학내 집회와 선전전 등 현장투쟁을 해 왔고, 6월부터 한 사업장씩 잠정합의를 이뤄냈다. 임금협약 잠정합의 내용은 시급 400원 인상인데 이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권고한 수준이다.

 

임금이 인상되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세후 193만 원이 된다. 185만 원에서 8만 3,600원이 올라서 그렇다. 여전히 최저임금 언저리이고, 서울시 생활임금과 서울시교육청 생활임금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이 싸움은 현장에서부터 최저임금을 올리고 생활임금을 만들어 가는, 노동권의 ‘밑바닥’을 끌어 올리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본론. 이 싸움이 덕성여대에서 멈춰 버린 이야기다. 덕성여대가 진짜 사장임을 자인한 풀스토리다.

 

덕성여대는 지난 10년 동안 집단교섭 사업장 중 가장 빠르게 잠정합의를 이룬 곳이다. 그러다 올해 1월 새로운 총장이 취임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사상 최초로 덕성여대 출신 총장이 된 김건희 씨는 지난 5월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비용절감에 이렇게 요구했다. “노동시간을 7시간으로 줄여 달라.”

 

이런 일방적인 노동강도 강화를 받아들일 노동조합은 없다. 노동조합은 하던 선전전을 계속했다. 그러자 학교는 치졸한 ‘복수’를 시작했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적용하던 방학 중 노동시간 단축(조기퇴근)을 청소노동자에게만 중단시킨 것이다. 덕성여대 구성원 중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이 바로 청소노동자들이다. 9월 학교 이름과 상징을 새긴 마스크를 받지 못한 사람들 또한 용역노동자들이다.

 

가을학기 개강과 함께 노동자들은 투쟁을 본격화했다. 투쟁하는 이유를 알리는 선전물을 캠퍼스 곳곳에 붙이고, 매일 캠퍼스를 행진했고, 매주 수요일 집회를 했다. 정규직노조와 한국노총까지 만나 가며 지원을 요청했다. 10월 4일 총장실 앞 철야농성을 시작했고, 10월 12일부터 아흐레 전면파업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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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0. 가을학기 개강에 맞춰 캠퍼스에 게시한 선전물.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덕성여대에서 두 번째 집회를 개최한 9월 28일 김건희 총장은 <사랑하는 학생들에게>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고, △ 이것을 다수가 만족하고 있으며, △ 중간착취는 사실이 아니며, △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대학 직원들과 차별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면피, 왜곡, 거짓으로 가득한 글이었다.

 

노동조합이 철야농성, 파업을 진행하며 투쟁 수위를 올리자 김건희 총장은 총장실을 버리고 도서관장실로 이사했다. 그리고 학교는 이 문제 중재에 나선 지역구 의원을 통해 ‘요구사항’을 10월 17일 제시했다. 시급 400원을 인상하되 조건으로 △ 청소면적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재산정하여 필요 인력을 정하고, △ 내년 이후 정년 퇴직자에 대한 충원 계획은 재정 상황을 반영하여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원청인 학교가 구조조정의 키를 쥐고 흔들겠다는 것인데 이걸 수용할 노동조합은 없다. 그래도 노동조합은 학교가 제시한 의제에 대해 대화할 의사가 있음을 전달했다. 그러면서 “이해당사자인 원·하청 노사 4자가 함께 협의해야 한다고 판단하며, 4자 협의기구를 구성해 논의한다면 성실하게 참여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조합의 대화 의사를 확인한 지 4시간 뒤 학교는 2차 담화문을 발표했다. 학교는 노동조합 투쟁을 “인면수심의 선 넘은 것”, “특혜 바라는 집단 이기주의”로 비난했다.

 

노동조합은 대화와 교섭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0월 24일 조합-업체-학교 간 3자 대화에서 학교는 교수연구실, 학과사무실, 실습실을 청소면적에서 제외해서 청소노동자 TO를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이것이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한 것인지 연도별 이행계획은 수립돼 있는지 묻는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은 “회사는 △ 청소면적 감소에 따른 필요인력, △ 2023년 이후 정년 퇴직자에 대한 충원 계획과 관련 원청사와 협의한 결과를 조합에 전달하고, 조합은 노동강도 등 노동조건이 악화되지 않는 조건에서 이에 협조한다”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며칠 뒤 학교는 노동조합의 수정안에 대해 ‘수용 불가-원안 고수’ 입장을 전달했다. 학교가 폭주를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10월 30일 김건희 총장은 총장실 앞에서 면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외면했고, 이틀이 지난 뒤 용역업체를 통해 ‘후퇴안’을 제시했다. “노사는 대학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여 2022년~2026년까지 매년 발생되는 자연(정년) 퇴직자에 대한 인력은 충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시급 400원과 노동자 23% 구조조정을 맞바꾸자는, 한마디로 판을 깬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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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8. 학내외에 퍼진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잡은 선전물.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노동조합은 투쟁을 이어 나갔고, 학교는 11월 8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용역업체에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11월 8일 자 내용증명은 노동조합은 덕성여대가 서울지역 종합대학 32곳 중 장애인 고용률이 꼴찌이고 집단교섭 13개 사업장 중 유일하게 합의를 이르지 못해서 ‘낙제대학’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명예훼손이고 학교 구성원들에게 공개사과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11월 14일에는 지난주 집회로 학습권과 수업권이 침해됐고 노동자들이 대학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청소노동자에게 민형사상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쯤 되면 모든 내용이 증명됐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은 김건희 씨다. 이윤 0원을 적어낸 용역업체를 선정해서 ‘바지’로 만든 것이 바로 원청 덕성여대다. 용역노동자 보호지침을 무시하고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주체가 바로 원청 덕성여대다. 청소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힌 것이 바로 원청 덕성여대다.

 

이러니 노동자들은 끝까지 투쟁해야만 한다. 5년짜리 구조조정에 맞선 싸움이고, 원청이 노골적으로 진짜 사장임을 밝힌 싸움이다. 두 달 가까이 진행된 고강도 투쟁에도 단 한 명의 이탈도 없이 똘똘 뭉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 한국노총도 동참한 파업투쟁, 연대로 펄럭이는 캠퍼스, 덕성여대로 모이는 동지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김건희 씨의 진짜 사장 선언으로 너무 중요해진 투쟁이 돼 버렸다. 김건희 사장님, 고맙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이사장실에서 지켜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