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8] 나이주의와 학교 / 달랑베르

by 철폐연대 posted Aug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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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나이주의와 학교

 

 

달랑베르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이 2020년 11월부터 하고 있는 캠페인의 이름이다. 문장의 뜻 그대로 나이가 어린 사람을, 특히 어린이 및 청소년을 하대하거나 차별하지 말자는 취지이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나이 차별적 언어문화와 차별·혐오 표현 등을 지적해 왔다. 예를 들어, 캠페인에서 지적한 표현 중 ‘대들다’, ‘말대꾸하다’가 있다. 이 말은 보통 어린이·청소년이 어른의 말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 듣게 되는 말이다. 하지만 서로 평등한 관계에서는 이런 말을 쓰지 않고 의견 대립이 있다거나 반박하다, 논쟁하다 같은 말로 표현된다. ‘대들다’ 등의 표현에는 어린이·청소년이 어른의 말에 순순히 따라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것은 예의가 없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차별적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급식충’, ‘잼민이’와 같이 어린이·청소년을 호칭하는 신조어들이 왜 차별이고 혐오이고 하대일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2년 올해는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이러한 내용을 모으고, 캠페인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실천 경험을 모은 소책자를 크라우드펀딩으로 발간했다. 소책자와 함께 제작한 리유저블컵에는 100년 전 어린이날 선언에 있었던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라는 요구를 새겼다. 100년 전에 어린이 존중과 인권을 위해 요구했던 것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환기하려는 의도이다.

 

소책자를 제작하기 전에는 “어린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킵시다” 포스터를 만들어 어린 사람에게도 존칭을 쓰고 존중하기 위한 기초적인 문제의식을 담아 배포했다. 포스터는 학교, 마을, 시민사회단체, 청소년기관 등 다양한 공간에 1,200여 부가 배포되었다. 지금까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홈페이지에서 이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서명한 ‘평평이’(평등을 지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뜻)들은 300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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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언어 속 나이 차별 문제 개선 캠페인> 포스터.

 

 

학교에서부터 경험하는 나이주의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존댓말을 들으며, 연소자는 연장자를 마땅히 존경해야 하고 연장자는 연소자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나이주의’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가진 청소년운동에는 나이가 아닌 친소 정도를 기준으로 존댓말과 반말을 정하는 것은 물론 ‘형’, ‘언니’ 등의 나이주의를 근간으로 한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이름이나 활동명 등으로 서로를 칭하는 문화가 있다. 처음 이런 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은 낯설고 어색하게 느끼곤 하지만, 실제로 겪어 보면 이런 문화에 합리성이 있고 보다 민주적인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나이주의를 본격적으로 겪기 시작하는 곳은 바로 학교이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2021년 11월, 중고생 697명이 응답한 ‘학교 내 나이차별적 언어문화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교직원이 학생을 상대로 하대한 경험의 경우 평소 수업에서는 70.3%, 공식 행사에서는 33.9%로 존대 사용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수업 현장에서는 하대하는 교원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멸칭을 들은 학생의 비율은 ‘새끼’가 약 45%, ‘자식’이 약 40%로 높은 비율이 나타났다. 그나마 교원들이 학생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은 한다는 점에서 사회 전반적으로 나이주의가 약화된 것을 알 수 있지만, 아직 실천의 부분에서는 갈 길이 먼 듯하다.

 

나이주의는 비단 청소년-비청소년(학생-교사) 관계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끼리의 관계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학교에서는(주로 중고등학교에서) 선배가 (대체로) 먼저 태어났고 먼저 입학했다는 이유로 초면에 후배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반말을 사용하고 존댓말을 듣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나에게는 이런 경험이 있다. 중학교에 입학한 직후 한 선배가 초면에 반말을 사용하자 나도 똑같이 반말을 사용하여 응대하였다. 그로 인해 ‘예의 없는 새끼’로 낙인찍혀 한 학년 동안 곤란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나이주의가 세대를 넘나들어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뿌리 박혀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하여 지금은 잘 모르거나 말을 놓자는 합의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조건 존댓말을 사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이는 나보다 후배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에는 다행히 소식이 잘 들려 오지 않지만, 약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역사가 깊은 단성학교, 또는 소위 ‘명문고’라고 불리는 학교에서 한 명이 잘못했다는 이유로 선배들이 후배들을 집합시켜 기합을 준다든가, 선도부가 있는 학교의 경우에는 다른 학생들을 단속하면서 뿌듯해하며, 교사들은 그것을 묵인하고 방조하며 조장하는 일이 흔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학교들에서는 비록 직접적 폭력은 사라졌더라도 특유의 수직적인 선후배 관계가 강하게 존재하는 것은 여전하다.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아주 큰 결격 사항이 있지 않은 이상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 저절로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게 되어 있다. 이로 인하여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바라보는 어린이/청소년의 나이에 따라 학년을, 또는 학년에 따라 나이를 인식하는 편견이 지배적으로 퍼져 있다. 학교에서 ‘학년’이라는 존재는 일종의 계급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선배는 후배에게 불합리한 행동을 가해도 된다. 후배는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선배를 존경하고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 후배는 시간이 지나 선배가 되면 후배에게 자신이 당했던 부조리를 똑같이 행한다. 자신이 지금껏 당해 왔다는 보상심리로 인하여 후배에게 부조리를 행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가 계속되기 때문에 학년이라는 계급사회가 더욱 공고해지는 측면도 있다.

 

또한 이러한 나이주의는 학교 밖에서도 성인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이어진다. 서로 만나면 나이를 물어 누가 더 연장자인지를 확인하려 하고, 반말/존댓말, 호칭 문제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는 일도 있다. 직장에서 나이가 적거나 많음으로 인해 채용/근무에서 차별을 받고, 검찰과 같은 보수적인 조직에서는 후배가 선배보다 높은 직급에 오르면 선배는 직장을 떠나기도 한다. 이렇듯 나이주의는 나이/세대를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 있고, 일터에서나 사회 전반에서 평등한 관계 맺음을 가로막는다.

 

정리하자면 학교에서부터 우리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나이가 더 많은 어른이 나이가 어린 청소년을 지도하면서 하대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윗사람으로서 반말과 막말 등 부조리한 행동을 해도 존경받아야 한다는 구도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어진다. ‘나이 = 학년’이란 공식으로 인하여 학교에서는 학년이 높기 때문에(= 나이가 많기 때문에) 부조리가 거침없이 일어나고 대물림되며 뿌리가 깊어진다. 나이와 결부된 계급사회는 더욱 공고해지고 나쁜 양성 피드백 작용이 반복된다. 학교에서 부조리가 계속 이어지는 구조는 한국 군대 부조리의 대물림과 무서울 정도로 흡사하다.

 

학교 현장을 변화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어린이·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나이주의와 권위주의를 몰아낼 방법은 없을까?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의 주요 과제 중 하나도 학교 현장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문제의식을 가진 한 명 한 명의 실천과 무학년제 등이 최소한의 해결책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나이에 따라 하대를 당하는 것은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들은 살아가면서 나이로 인해 많은 장벽에 부딪힌다. 어떤 행동을 하려고만 해도 친권자를 대동해서 오라는 말을 듣고, 정치 참여는 금기시되어 있으며, 금융거래 또한 제약에 시달리고, 정신과 병원에 혼자 내원했을 때 진료 거부를 당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겪는 경험과 주어진 환경이 달라 같은 나이어도 성숙도 - ‘성숙도’라는 용어의 문제점은 차치하고서라도 - 가 다른데도 일률적으로 나이를 기준으로 행위의 권한과 의무/권리의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 아닐까? 단순히 ‘청소년도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런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기준으로 자격을 판단하는 방식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선후배 관계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들도 나이주의에 기반한 학생과의 관계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보는 중고등학생, 또는 교사 분이 있다면 학교 현장에서의 나이주의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본 캠페인이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한 걸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