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2]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에 대하여 / 정영섭

by 철폐연대 posted Feb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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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포커스

 

 

권리 없는 착취와 차별의 연장

-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에 대하여 -

 

 

정영섭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

 

 

 

1. 고용허가제란?

 

고용허가제(E-9비자)는 한국 정부와 동남아·서남아 16개 정부가 협약을 맺고 이주노동자를 들여오는 제도로 2004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흔히 중소영세 제조업과 농축산업, 어업 등에서 주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이 제도로 온다. 산업인력공단이 각국에 현지 사무소를 설치하여 본국 노동담당 부처와 협력하여 한국어시험과 기능시험을 실시하고 이를 통과한 예비 노동자들이 구직자 명부에 2년 동안 등재된다. 한국 고용주는 이들 가운데 선택을 해서 계약서를 보내고 노동자가 계약서에 사인하면 비자를 받게 되고 출국 전 교육을 일주일 정도 받고 입국 후에 2박 3일 교육을 받은 후에 고용주에게 인도되어 사업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최초 근로계약은 3년 기간 이내 자율협상에 의한 계약인데 보통 고용주가 3년짜리 계약서를 보내므로 노동자는 한국에 일하러 오기 위해 사인을 할 수밖에 없다. 3년이 지나면 고용주가 재고용을 해 줘야 1년 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다. 이렇게 4년 10개월로 제한해 놓은 이유는 고용허가제 실시 당시에 합법적으로 5년 이상 체류하게 되면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이 생겼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 4년 10개월 이후에는 사업주가 다시 재고용을 해 주면 ‘재고용특례’로 본국에 1개월가량 출국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일할 수 있다. 재고용특례를 받지 못하면 본국에 가서 한국어시험을 다시 보고 들어와서 한 번 더 일할 수 있다. 즉 최장 체류기간은 9년 8개월이다. 비전문 단기고용 이주노동자라고 정부는 취급하지만 실상은 10년 가까이 일하는 장기체류 노동자들인 것이다.

 

2. 고용허가제 이전 : 야만의 시기와 저항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와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87년 전후이다. 당시 한국 경제는 3저 호황 등으로 성장 중이었다. 동시에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어 내국인 노동자 임금이 크게 인상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많은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였고 그럴 만한 규모가 되지 않는 기업들은 국내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때마침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올림픽은 한국의 발전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국제스포츠 이벤트를 위해 정부는 입국 규제를 그전보다 완화하였다. 그리하여 아시아 지역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관광비자 등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비자 없이 미등록 체류를 하며 열악한 3D 업종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주노동에 대해서 아무런 제도도 없었던바, 정부는 이러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묵인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들은 더욱 많은 이주노동자를 요구하게 되었고 정부는 1994년부터 산업연수생제도를 실시하였다.

 

연수생제도는 생겨서는 안 될 비인간적 반노동자적 제도였다.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이라면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 산재보상 등을 하나도 적용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를 말할 줄 아는 기계로만 보았기에 폭언, 폭행, 산재가 난무했고 여권과 통장 압류도 빈번했다. 임금이 아닌 연수수당은 쥐꼬리보다 더 적었는데 그마저 체불하기 일쑤였다. 이주노동자들은 1994년 산재 피해자들이 보상을 요구한 경실련 강당 농성, 1995년 산업연수생들이 쇠사슬을 몸에 감고 기본권 보장을 요구한 명동성당 농성 등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더 나은 노동조건과 자유를 찾아 연수생 노동자들은 사업장에서 도망 나갔고 2000년대 초가 되면 거의 80% 가까이가 사업장에서 이탈하여 미등록 상태로 일하게 되었다. 제도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90년대에 생겨난 많은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산업연수생제도 철폐를 위해 투쟁했다. 2003년에 정부는 고용허가제법을 통과시켰고 2004년 8월부터 시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강제 단속추방하려는 칼바람에 맞서 2003년 11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이주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1년 넘게 명동성당에서 전개되었고 이는 권리 없는 고용허가제, 노동자를 쓰다가 내쫓아 버리려는 국가에 대한 저항이었다.

 

 

2. 본문사진1.jpg

2022.12.18. UN 세계 이주노동자(이주민)의 날에 기념대회를 하고

행진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출처: 이주노동자노동조합]

 

 

3. 고용허가제 20년 : 무권리 강제노동

 

(1) 고용허가제의 변화 이력

 

비판을 가득 안고 시작된 고용허가제가 올해로 법 제정 20년, 시행 19년이 된다. 그 시간 동안 고용허가제는 여러 변화를 거쳤고 주로는 고용주들의 요구를 수용한 내용들이다. 그만큼 권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인력으로만 보고 ‘외국인근로자를 체계적으로 도입·관리함으로써 원활한 인력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법, 약칭 외고법)의 ‘권리 없이 쓰다가 버리는 일회용 노동’의 본질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먼저 2005년의 개정을 보면, 3년간 일한 노동자를 사업주가 재고용하면 노동자가 6개월 이상 출국했어야 하는데 이 기간을 1개월로 단축했다. 사업주들이 인력 공백 최소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3+3년, 총 6년을 일할 수 있었다. 2007년의 개정은 중국 및 구소련지역 한국계 이주노동자(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방문취업제(H-2비자, 특례고용허가제라 불림) 실시를 위함이었다. 이때부터 동포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오게 되었다.

 

가장 큰 개정은 2009년의 개정이었는데, 우선 1년 단위 계약기간을 3년 이내 계약으로 바꿨다. 이는 사업장 변경이 제한된 상황에서 노동자가 열악하기 그지없는 근로조건을 1년만 참으면 계약이 끝나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을 막아 버리고 사업주에게 3년 동안 묶어 놓는 조치였다. 그리고 3년 이후 재고용되면 1개월 출국했다가 다시 들어와 3년 일하던 것을 그 1개월 공백도 사업주들이 없애 달라고 하니 출국조건 없이 3년+1년 10개월 연속 일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전에는 3년 일하고 1개월 정도 그나마 본국에 가서 가족을 볼 수 있었던 것을 없앤 것이다. 고용허가제 노동자는 아무리 오래 한국에서 일해도 가족을 하루라도 초청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반인권적이라는 비판이 큰 상황이다. 한편 사업장 변경 제한에 대해서는 고용허가제를 만들 당시부터 대표적인 독소조항이자 강제노동 조항으로 거세게 문제제기되었는데, 이를 의식해서인지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 등’을 변경 사유에 추가하고, 이주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유의 경우 사업장 변경 횟수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바꿨다. 또한 사업장 변경 시 구직기간 2개월도 너무 짧다는 비판에 이를 3개월로 연장했다.

 

2011년에는 특별한국어시험제도를 마련해서 고용기간이 끝나고 귀국한 노동자가 시험을 봐서 한국에 한 번 더 오는 것이 가능하게 했고, 2012년에는 ‘성실근로자 재입국제도(현재의 재입국특례제도)’를 만들어 사업장 변경을 하지 않고 고용기간이 끝난 노동자를 사업주가 재고용하면 일정 기간 출국했다가 다시 입국해서 일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렇게 4년 10개월의 기간을 한 번 더 부여하기로 한 것은 2004년부터 입국한 노동자들의 체류기간이 2010년부터 끝나기 시작했는데 이들 중에 30% 정도가 출국하지 않고 남아 미등록체류를 하면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즉 미등록체류를 줄이기 위한 미봉책으로 정부 스스로 표방한 ‘단기 순환’의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는 정부가 아무리 고용허가제를 단기노동 제도로 관리하고자 해도 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장기체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2012년에는 정부가 사업장 변경 지침을 개악해서 전국적으로 이주노동자들과 운동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전국적 투쟁이 전개되었다. 기존에는 어렵게 사업장 변경 사유를 충족시켜서 구직을 하게 되면 노동부 고용센터에서 노동자에게 사업체 몇 개의 명단이 담긴 알선장을 주고 그 가운데에서 노동자가 구직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정부가 브로커 개입 운운하면서 알선장 방식을 중단하고, 구인업체에만 이주노동자 명단을 제공해서 업체가 연락하게끔 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니 사업장 변경이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그 제한된 범위에서의 선택권마저 박탈당한 이주노동자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적 대책위가 만들어지고 항의 행동이 이어지자 정부는 업체가 연락하게 하는 대신에 고용센터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노동자에게 구인업체 정보를 문자로 보내는 방식으로 한발 물러서게 되었다.

 

2014년에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퇴직금인 ‘출국만기보험’ 지급 조건을 ‘출국 후’로 바꿨다. 미등록체류를 줄여야 한다며, 그전에 4년 10개월 끝나면 지급하던 보험금을 출국해야 주는 것으로 바꿔 버린 것이다. 절차도 복잡하기 그지없어서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은 보험금이 100억도 넘게 쌓여 있는 실정이다.

 

2017년에 정부는 숙식비 기준을 정한다며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만들었는데 열악한 기숙사 문제의 근본 개선은 없이 숙식비 상한선을 통상임금의 8~20%로 정했다. 즉, 임시가건물에 살게 하고 점심 제공을 안 하면 8%, 점심을 제공하면 13%, 주거용 건물에 살게 하고 점심 제공을 안 하면 15%, 점심을 제공하면 20%까지 고용주가 월급에서 공제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는 고용주가 원활하게 생산에 노동자를 동원하기 위해 제공하는 복지 성격의 기숙사에 대해 통상임금에 비례해서, 그것도 임금전액불 지급 원칙에 위반되게 사전공제를 할 수 있게 한 독소 지침이었다. 한 방에 2~3명 살게 하면 그 인원수대로 받을 수 있으니 고용주는 월세장사까지 할 수 있다. 이 지침은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어서 노동자들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2020~2022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히면서 이주노동자 입국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국내 인력이 급속도로 부족해지고 여기저기서 인력난으로 아우성을 치자 정부는 이주노동자 체류 연장 조치를 했다. 마음대로 쓰다가 버리는 이주노동의 중요성이 재난 시기에 새삼 확인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고용허가제 제도 변화>

시기

제도 변화

2005. 11.

3년의 취업기간 만료자를 재고용하는 경우 재취업 제한기간 단축 : 6개월 → 1개월

2007. 1.

방문취업비자(H-2) 동포 취업 절차 정비

2009. 9.

근로계약기간 변화(최대 1년 → 취업활동기간 이내. 주로 3년 이내)

재고용제도 개선(3년+1개월 출국+3년 → 3년+1년 10개월)

사업장변경 사유 추가(사용자의 부당한 처우 등)

사업장변경 기간(구직기간) 조정(2개월 → 3개월)

사업장변경 횟수 조정(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경우 횟수 미산입)

2011. 11.

특별한국어시험제도 마련. 귀국 노동자 대상 재입국 시험

2012. 7.

성실근로자 재입국 취업 특례제도 시행. 미등록체류 방지, 기업의 숙련인력 요구

2012. 8.

사업장 변경 지침 개악(알선장제도 폐지). 제한된 범위의 사업장 선택권마저 박탈됨

2014. 2.

출국만기보험을 기존 퇴직 후 14일 이내 지급에서 ‘출국후 지급’으로 개악함

2015. 10.

농업, 축산업 표준계약서 신설

2017. 2.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 지침 제정. 통상임금의 8~20%까지 월급에서 공제 가능하게 하여 사업주에게는 추가 이익, 노동자에게는 피해

2019.

숙련기능인력 체류자격 전환 제도 시행. 5년 이상 근무중인 숙련외국인에게 장기체류비자(E-7-4) 전환 허용, 그러나 조건은 까다롭고 쿼터는 매우 적음

2020~22.

코로나19로 인한 취업활동기간 특별연장 시행. 인력 부족으로 인한 체류연장 조치

2022.12.

‘산업현장과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고용허가제 개편방안’ 발표

- 노동부 자료 등을 필자가 재구성.

 

 

 

(2) 고용허가제의 차별과 억압

 

고용허가제의 대표적인 문제점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첫째, 가장 큰 문제점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업장에서 힘들고 어렵고 견딜 수가 없을 때 노동자의 마지막 수단은 사표라도 내는 것인데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은 사표 낼 자유가 없다. 고용주 동의 없이 사표를 내면 비자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 고시에 해당되는 조건, 즉 심각한 임금체불, 상습적 폭언/폭행, 성폭력, 불법 임시가건물 기숙사 등에 해당되면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사업장 변경을 해 줄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노동자가 입증을 해야 한다. 그러니 노조나 단체의 지원 없이 언어와 법제도에 서툰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하기는 너무나도 장벽이 높다. 실질적인 강제노동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운동 진영에서는 제1의 요구로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을 요구해 왔고, 2020년에는 위헌소송까지 제기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21년 말에 이러한 권리침해가 합헌이라고 판결해 버렸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노동부의 연구용역에서는 국제법과 헌법 등 위반이라면서 일정한 제한기간(1년) 이후 자유화할 것을 결론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ILO 강제노동 금지협약(29호협약)이 비준·발효되었기 때문에 사업장 변경 제한 문제는 계속 크게 문제제기될 것이다.

 

둘째, 모든 권한이 고용주에게만 주어져서 노동자는 철저하게 종속적이고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 예컨대 최초 3년 고용기간 이후 1년 10개월 더 일하려면 고용주가 재고용을 해 주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는 출국해야 한다. 4년 10개월 이후 재고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고용주는 이런 취약한 조건을 이용하여 부당한 요구를 하기도 하고 금전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업장 변경 동의를 조건으로 수십 수백만 원의 금전을 요구하는 사업주들도 많다.

 

셋째, 농축산어업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다. 이는 내국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현실적으로 농어업에서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다수의 노동자가 이주노동자들이기 때문에 피해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집중된다. 즉 근로기준법 63조에서 휴게, 휴일 조항을 적용 제외시켜 놓았기 때문에 노동시간에 거의 제한이 없고 휴일은 한 달에 이틀 정도이며 초과근로 수당도 없다. 5인 미만 사업자등록 없는 사업장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적용대상도 아니다. 기숙사 역시 더욱 열악하다.

 

넷째, 높은 산재사망률과 건강권 차별 문제이다. 노동인구의 4% 정도인 이주노동자들이 전체 산재사망자 가운데 11~12%를 차지하는 것은 내국인보다 세 배나 산재사망률이 높다는 것이다. 대다수가 30인 미만 열악한 사업장에서 일하니 위험한 일을 많이 하게 되고, 안전설비나 안전장비, 안전교육은 부실하다. 사업자등록 없는 노동자들은 직장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2019년 7월부터 지역건강보험 의무가입이 되었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건보가입자 전체의 평균보험료를 내야 해서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도 10만 원 넘게 건보료를 내야 한다. 그렇다고 필요할 때 병원에 제대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20년 겨울 한파 속에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 씨는 병원을 간 적이 한 번도 없고 건강진단을 받은 적도 없었다. 장시간 고강도 휴일 없는 노동 속에 이주노동자들은 의료접근권도 낮은 것이다.

 

다섯째, 퇴직금인 출국만기보험은 ‘출국 후’ 지급받아야 하고, 보험금이 실제 퇴직금 액수보다 낮다. 그래서 그 차액을 사업주에게 따로 청구해야 하는데, 출국을 앞둔 노동자가 이를 받아 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해마다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은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한번쯤 임금체불을 겪어 보지 않은 노동자가 없을 정도이다.

 

여섯째, 가족결합권이 없다. 10년 가까이 일을 해도 가족동반은 고사하고, 짧게라도 한국에 초청할 수도 없다.

 

일곱째, 인종차별은 만연화되어 있다. 이는 비단 이주노동자만이 아니라 모든 이주민이 겪는 문제이다. 특히 사업장에서는 반말과 인격무시, 폭언, 고압적 자세 등이 많고 같은 사람으로서의 존중이 극히 미흡하다. 일은 더 많이 시킨다. 노동부 고용센터에 사업장 문제를 제기하러 방문해도 고용센터 직원은 대개 사업주 말을 우선시한다.

 

4.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 권리는 어디에

 

이런 상황에서 고용허가제 20년에 즈음하여 정부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치는 무권리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2022년 12월 29일에 노동부가 발표한 보도자료 ‘산업현장과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은 권리는 뒷전에 있고 고용주가 오래 일하여 숙련된 이주노동자를 공백 없이 더 장기간 쓸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 정권의 기조가 ‘권리는 없이 인력 공급은 확대’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노동부는 “종전 산업연수생 제도와 비교하여 투명한 제도운영과 함께,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 외국인근로자 권익 강화에 기여하는 성과가 있었다”며 고용허가제에 대해 자화자찬하고는 “다만, 제도 설계 당시의 기본 틀을 현재까지 큰 변화 없이 운영하다 보니, 산업현장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제도운영 전반의 재검토와 혁신이 불가피해졌다”며 권리개선보다는 산업의 요구를 개편의 근본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비전문인력 중심, 단기순환 → 숙련인력 활용 한계”, “업종(제조업) 중심 고용허가 → 탄력적 인력 운영 곤란”, “인프라 부족 → 외국인력 실수요 파악 한계”, “효과적 체류지원 필요성 증대” 등을 이유로 들면서 ① 외국인력의 숙련 형성 강화, ② 인력활용 체계의 다양화·유연화와 함께, ③ 노동시장 분석 강화 및 ④ 적극적 체류지원을 개편 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리하여 변화의 핵심 골자는 “동일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서 숙련을 형성하고, 한국어 능력을 갖춘 외국인력을 우대하는 E-9 외국인력 장기근속 특례 제도를 신설”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즉 기존의 4년 10개월+4년 10개월 트랙은 그대로 두되, ‘준숙련’인력으로서 10년+a를 공백없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트랙을 고용허가제 내에 새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준숙련’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제조업의 경우 동일 사업장에서 30개월 이상 근무(혹은 입국 후 최초 배정 사업장 24개월 근무), 제조업 외 업종은 동일 사업장 24개월 이상 근무(입국 후 최초 배정 사업장 18개월 근무)에 한국어능력시험 일정 점수 이상과 사회통합교육 이수(3단계 이상)를 해야 한다. 최대 체류기간인 10년+a의 a년에 대해서는 노·사 및 관계부처 의견수렴 등을 거쳐 정한다고 한다. 또한 “장기근속 특례 인정 후 일정 기간은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하도록 운영”하겠다고 한다.

 

결국 이는 산업과 고용주의 요구에 맞추어 숙련형성 및 유연화된 이주노동자를 공급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러한 노동자에 대해 정주나 영주의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10년 이상 최대한 장기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기체류에 따른 권리보장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것은 기존의 무권리 강제노동의 고용허가제와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준숙련으로 인정받기 위해 한 사업장에서 이동하지 못하게 30개월, 24개월 묶어 놓는 것은 또 다른 권리 제한은 아닌가. 또한 준숙련 인정 후 일정 기간을 또 해당 사업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인력 공급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한 비판을 인식해서인지 ‘근로여건 등 개선’, ‘산업재해 예방 강화’ 등의 항목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주거환경 개선에 있어 지자체가 공공기숙사를 확충하거나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하면 외국인력 배정 시 우대한다거나, 영세 농어가 대상으로 숙소 임차료와 통근버스운행비 지원 검토, 숙소정보 제공 강화, 숙식비 지침 합리화 등은 아직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며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개선책으로는 극히 미달하는 수준이다. 비주거용 임시가건물의 기숙사 활용을 금지하고, 주거용 기숙사를 통한 인간다운 생활 보장과 고용주의 비용 부담,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기숙사 대폭 설치 등이 지금 즉시 필요하다.

 

그 외 지방노동관서 통역원 확충이나 지역별 외국인근로자권익보호협의회 활성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확대, 사업장 지도점검 확대, 송출국 현지의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유도, 산업안전 교육 강화 등은 없는 것보다야 나을 수 있겠지만 권리보장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농어업 노동자 차별 철폐, 임금체불 대책 마련, 퇴직금 국내에서 지급, 산재 근본대책과 건강권 보장, 가족결합권 보장, 사업장 안팎의 인종차별 철폐 등을 위한 정책이 가장 절실한 것이다.

 

한편 이번 개편안에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허용 분야를 확대하는 내용도 있다. 즉 일부 서비스업(폐기물 수집, 운반, 처리 및 원료 재생업, 음식료품 및 담배 중개업, 기타 신선 식품 및 단순 가공식품 도매업, 식육운송업)의 상·하차 직종에도 이주노동자를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저임금에 고강도 노동으로 인력이 부족한 업종과 직종에 대해 노동조건 개선을 하지 않고 손쉽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고 하는 발상이 다시금 재연되고 있어서 씁쓸하다. 더욱이 탄력적 인력 공급이라는 미명하에 3개월 내 인력 수요에 대한 파견 허용이나 가사·돌봄서비스 인증기관 고용 방식의 인력 공급도 검토하겠다고 하니 더욱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2. 본문사진2.jpg

2022년 10월에 열린 이주노조 수원지역 집회 모습. 사업장 변경의 자유, 노동허가제,

인간다운 기숙사 보장이 주요 요구이다. [출처: 이주노동자노동조합]

 

 

5. 맺음말

 

2023년 고용허가제 도입 쿼터는 11만 명으로 사상 최대로 정했다고 한다. 예년에 비해 두 배의 이주노동자가 입국할 전망이다. 이제 이주노동자 없이는 경제와 사회가 굴러가지 않는 시대가 되었음을 모두가 실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 체류를 장기화하는 것에 따라 그에 걸맞게 권리보장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려야 한다. 노예노동, 하인노동, 강제노동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이자 같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연대와 공존이 필요하고 이러한 노력을 전 사회적으로 부단히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고용허가제 개편안은 한참 부족하고 미달하는 방안이다. 산업과 고용주의 요구에 따른 숙련 이주노동자 장기 활용방안이며 차별과 착취의 연장일 것이다.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개편안을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이주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해 문제제기하고 개입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올해는 고용허가제 도입 시기에 단속추방에 맞서고 노동비자 쟁취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농성투쟁에 나섰던 명동성당 농성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 역사를 되새기면서 오늘의 현실과 이어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보장에 함께해 나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