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12]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by 철폐연대 posted Dec 07,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현장 속으로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문턱 없는 연대와 편안한 소통의 공간

다섯 해를 난 꿀잠 이야기

 

 

인터뷰·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고단한 삶일지언정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를 따스하게 보듬고 격려해 주는 공간이 있다면 희망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이 잠시나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곳…. 올해로 개관 5년째를 맞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은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바로 그런 공간이다.

친숙한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꿀잠은 ‘달게 자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곳’이다. 지난 5년간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청년학생, 평화활동가, 문화활동가, 인권운동가 등에게 소중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매해 4,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꿀잠에서 단잠을 청하고 밥을 먹는다. 그렇다고 꿀잠을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꿀잠은 개관 이래 쉼터 운영에만 그치지 않고 전국 어디든 손길, 발길 닿는 대로 연대의 힘을 보태어 왔다. 5년이라는 시간이 말 그대로 쏜살같이 지났을 터였다. 지난 11월 15일, 언제나 따듯한 환대와 즐거운 수다가 있는 곳, 꿀잠으로 찾아갔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김소연 동지를 만나 꿀잠의 지난 5년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6. 본문사진1.jpg

2022.10.01. 노동가수 황현 동지 1주기 기억콘서트가 열린 꿀잠 지하1층 강당에서

김소연 운영위원장의 모습. [사진: 신유아]

 

 

쉼터를 마련하기까지

 

기륭전자 불법파견 투쟁 10년의 경험은 꿀잠이 만들어진 중요한 실마리가 됐다. 10년을 싸워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기륭전자, 동희오토, 현대기아차, 재능교육 등 비정규직 현장 곳곳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제를 개별사업장에 국한한 대응만으로 풀 수 없었다. 그래서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마무리하는 국면에서 ‘비정규직 체제’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오체투지에 나섰다. 2014년 겨울 파견법-정리해고법 폐지를 걸고 첫 번째 오체투지를 시작했고, 이듬해 초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2차 오체투지를, 케이블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3차 오체투지를 함께했다.

쉼터 마련을 고민했던 초반에는 10년의 투쟁 이후 돌아갈 현장이 사라진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앞으로도 비정규직 운동에 복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가자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세 차례의 오체투지 행진과 2015년 7월 기륭전자 투쟁 10년 평가토론회를 계기로 그 의미는 더욱 확장됐다.

 

“기륭전자 불법파견 투쟁 10년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죠. 그땐 농성장에서 한뎃잠을 자는 게 우리 일상이었잖아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먹고 자고 씻을 수 있는 공간의 절실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죠. 처음엔 기륭공대위(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가 작게 시작을 하면 또 일이 점점 커지거든요.☺

그래서 당시 함께 싸웠던 비정규단위들과 공동으로 쉼터 설립을 제안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기 와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뿐만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고민도 나누고 같이 싸울 수 있는, 그렇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이런 연결이 절실한 당사자들부터 먼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쉼터를 만드는 주체로 나서야 한 번의 개별사업장 투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제도를 없애는 싸움의 전망도 함께 그려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꿀잠은 2,000여 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종잣돈으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주택가에 터를 잡았다. 2017년 3월에 거처를 정하고 나서 약 100일간 건물 리모델링 작업이 진행됐다. 낡고 허름한 집을 새단장하는 데 연인원 1,000여 명이 직접 망치와 톱을 들고 힘을 보탰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비정규노동자의집 건립을 위한 기금 마련에 팔을 걷어붙여 나섰고, 내 집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쉼터를 마련하는 일을 시작으로 철거 및 인테리어 공사, 개관 이후 쉼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전부 투쟁하는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참여 속에 이루어졌다. 여럿이 함께 일군 공간인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쉼터 건립을 위한 기금 마련에 박차를 가하던 차에 공교롭게도 박근혜 퇴진 투쟁이 겹쳤어요. 그래서 광화문광장에 해고 노동자들, 문화예술인들과 같이 꾸린 텐트촌 농성이 마무리될 쯤에야 부랴부랴 쉼터 공간을 찾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광화문 일대부터 집을 알아봤거든요. 왜냐하면 지역에서 상경 투쟁하는 동지들이 방문하려면 일단 교통편이 좋아야 하잖아요. 그땐 우리가 너무 순진했었나 봐요. 광화문 대로변도 아니고 서대문 산꼭대기 마을까지 샅샅이 뒤져봤는데 우리가 매입할 수 있는 가격이 전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구로나 가리봉동 일대도 알아보았는데, 거기는 교통편이 그다지 좋지 못했어요. 결국 돌고 돌아 영등포에 발을 들이게 됐죠. 서울 집값이 비싼 줄은 진즉 알았지만, 내 집 마련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환대와 연대의 자리로 거듭나다

 

헌 집을 리모델링하는 일은 숙련된 기능공들이 작업을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초짜’들로만 구성된 철거 및 시공 작업은 거북이걸음처럼 더디기만 했다. 꿀잠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4층, 옥탑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자재를 나르는 일부터 많은 힘과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공간 구석 구석마다 정성껏 힘을 보탠 이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공간구획 같은 설계 작업은 건축가의 자원활동으로 이뤄졌지만, 대부분의 집 짓는 작업은 투쟁하는 노동자들, 문화예술인, 종교인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했어요. 당시 꿀잠 리모델링을 맡은 건축가의 고민은 ‘내게 필요한 공간은 무엇인지’가 일순위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보통 우리는 금액에 맞춰서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꾸밀 건지를 생각하잖아요. 이 나라 집값이 너무 비싸니까 사람들이 공간의 쓸모보다는 비용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현실을 우리도 완전히 무시는 못 하죠. 그래도 집을 짓는 이들이 또 이 공간을 이용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죠.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그런 요구들을 정리해 나갔어요.”

 

꿀잠을 단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 공간이 자아내는 따스함, 아늑함 같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는 걸. 그건 필시 사람 냄새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꿀잠이라는 공간을 채우고 가꾸는 사람들의 힘이 이끌어낸 분위기이겠지만,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의 산물이기도 하다.

 

“핵심은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가 여기 왔을 때 편안하게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대개 그렇듯이 밥을 먹고 빨래도 하고 또 씻고 잠을 자는 게 집에서 하는 기본적인 활동이잖아요. 이런 걸 내 집처럼 편안하게 할 수 있어야 하죠.

그리고 꿀잠에 오셔서 ‘와~ 여기 진짜 좋아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나의 싸움이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고 홀대받기 쉬운 세상이잖아요. 이 싸움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누군가가 없다면, 때로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그런 감정에 빠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 ‘아,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 정말 소중한 일을 하고 있구나.’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의식주만 잘 챙길 수 있게 만들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더러 계셨거든요. 우리가 직접 공사했지만 자재는 좋은 걸 썼어요. 오래된 집이지만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최대한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시공 포인트였어요.”

 

‘잘 먹고 잘 싸우자’는 우리의 모토!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의 공간적 거점이자, 상경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쉼터로, 연대와 소통의 공간으로, 틈새를 메우는 역할과 필요한 물품의 신속한 조달창고의 역할”(2015.7.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를 제안합니다」 중 발췌)을 해 보자는 애초 취지를 십분 발휘하기 위해 꿀잠은 오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 5년간 꿀잠은 영등포구 도신로51길 7-13에 위치한 쉼터이자 배움터, 먹거리 나눔의 공간에만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지 않았다. 특히 먹거리를 나누는 일은 꿀잠 1층 공용식당 겸 카페 공간을 벗어나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그만큼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저희가 쉼터 사업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연대활동도 좀 더 열심히 해 볼 계획이었거든요. 그래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을 초대해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꿀밥 나눔’이라는 시간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가지려고 했는데요. 코로나19 동안에는 투쟁 현장에서 도시락이나 간식을 나누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해 왔어요. 특히 올해 같은 경우엔 꿀밥 나눔을 주기적으로 진행하지는 못했어요. 아무래도 다른 단체들은 한 해 사업계획을 세워서 진행하지만, 꿀잠은 약간 ‘투쟁 119’ 같은 곳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뭔가를 하게 되면 우리도 덩달아 바빠지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사실 예측 가능한 사업은 역사기행이나 법률강좌 정도이고, 나머지 사업들은 여러 단위의 투쟁 사정에 따라서 굉장히 유동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투쟁 119’ 같은 존재라는 비유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꿀잠은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이자 기댈 언덕이었다. 한편으로는 꿀잠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비상 대기하는 심정으로 1년 365일을 나야 하는 꿀잠의 활동가들을 떠올려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꿀잠을 만들면서 세운 큰 운영 기조가 하나 있어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회비도 내고 운영도 직접 한다는 ‘당사자 운영 원칙’이에요. 그래서 꿀잠 활동가들도 과거에 기륭전자, 콜트콜텍 투쟁을 한 당사자들이 중심이 돼서 일하고 있고요. 지금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내가 싸웠던 경험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또 함께하니 힘이 된 경험도 갖고 있기 때문에 꿀잠 활동가들은 어떤 싸움도 남의 일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려고 해요. 그동안 연대를 받았다면 이제 우리가 연대하는 주체가 되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상근 활동가들이 꿀잠에 있는 거죠. 물론 때로는 힘들기도 하죠. 그래도 꿀잠에 와서 밥 한 끼 나누고 잠을 자고 간 당사자들이 잘 싸워서 이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것만큼 큰 기쁨이 없죠.”

 

 

6. 본문사진2.jpg

2022.02.07. 꿀잠 존치 의견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한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과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회원들. [사진: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향해

 

꿀잠은 개관 이래 5년 중 절반 가까운 시기를 코로나19와 함께 보냈다. 작년에는 감염병 확산과 거리두기 강화의 영향으로 숙박자 수가 평소보다 3분의 1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회의도 하고 잠도 자는 곳이 바로 꿀잠인데, 코로나19 상황은 이러한 대면 활동을 크게 위축시켰다.

올 들어서야 꿀잠은 예년의 활기를 되찾았다. 이제껏 꿀잠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겠지만, 지면을 통해 공유하고 싶은 사람과 사연을 손꼽아 달라고 청했다.

 

“맨 먼저 떠오르는 건 두동초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 온 게 기억나요. 이 친구들이 울산에서 왔다고 해서 저는 지방 대도시 친구들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가 울산에서도 두메산골이더라고요. 한 반에 20명 정도 있는 작은 학교였어요. 요즘에는 학생들이 수학여행 갈 곳을 투표로 정하고 프로그램도 직접 짠대요. 그래서 서울 한옥마을에서 묵을지 아니면 꿀잠에서 묵을지를 결정하려고 몇몇 친구들이 사전답사를 왔어요. 이 학급을 담당하는 선생님은 학생들이 꿀잠에 와서 ‘노동자’,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하나만이라도 공간을 좇아서 기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하셨어요. 다행히 학생들 투표는 꿀잠으로 결정됐어요! 수학여행 온 친구들에게 꿀잠 소개도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도 짤막하게 나눴어요. 그래도 놀러 온 거니까 지하 강당에서 맘껏 뛰어놀기도 하고 1층에서는 치킨도 먹으면서 시끌벅적하게 하루를 머물고 갔죠. 나중에 평가를 물어보니 다들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건물 앞에 있는 청소 여성노동자의 조형물이 인상 깊었던 모양이에요. 제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마 그런 거겠죠. 꿀잠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다양한 영역과 세대가 비정규직 문제를 접할 수 있었던 경험?

그런 점에서 이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턱 없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정규노동자들의 쉼터이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고민을 나누고 같이 협력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가는 사랑방 같은 곳이 꿀잠이기도 하잖아요.”

 

작년 말에는 신길2구역 재개발 사업으로 꿀잠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러자 싹쓸이식 재개발을 멈추고 꿀잠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서를 52개 단체, 5,663명의 개인이 함께 냈다. 다섯 달 동안 108명이 영등포구청 앞 릴레이 1인시위도 진행했다. 결국 수많은 이들이 함께 지은 꿀잠을 원모습 그대로 지키지 못하게 되었지만, 대체부지를 확보하는 선에서 서울시, 영등포구청 등 관계 당국과의 합의는 지난 3월 31일에 마무리됐다.

재개발 사업은 오히려 꿀잠의 공공적 가치를 지역사회에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꿀잠이 있었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권리 침해의 당사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 싸울 수 있었다. 이들이 몸소 겪은 두터운 연대의 기억은 꿀잠뿐만 아니라 신길2구역 원주민의 터전이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로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지키는 공간으로써 꿀잠의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 마지막으로 김소연 운영위원장이 기대하는 꿀잠의 내일에 대해 들어 보았다.

 

“얼마 전 개관 5주년 기념사업으로 ‘꿀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거든요. 그때도 이야기했지만 ‘차별 없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꿀잠이 조금이라도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정말 많고 그중 어느 누구도 먹고 자는 문제에서 예외일 순 없어요. 그냥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서 가끔은 그 소중함들을 다들 잊고 살잖아요. 그런 노동이 정말 귀한 것이라는 걸 지금보다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시면 좋겠어요. 이 세상을 지탱하는 모든 노동은 하나 같이 소중하단 걸, 그래서 어떤 노동도 소외되어선 안 된다는 마음이 더 단단하게 연결되길 바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