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7] 동국제강 90일간의 투쟁 / 차헌호

by 철폐연대 posted Jul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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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동국제강 90일간의 투쟁

 

 

차헌호 •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공동소집권자 /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잘 갔다 올게.”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2022년 3월 21일 월요일 아침 9시 25분경, 동국제강(주) 포항공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고인은 동국제강 하청업체인 창우이엠씨에서 크레인 보수를 담당했던 4년 차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다. 아침에 “잘 갔다 올게.” 한마디가 임신한 부인과 생의 마지막 작별인사가 됐다.

 

그는 월요일 아침부터 보수 작업을 위해 크레인에 올랐다. 수리 작업 중에 크레인 회전체가 작동됐다. 크레인이 움직이면서 안전벨트가 고인의 몸을 휘감았고, 흉부 압박으로 질식사했다. 안전관리자는 현장에 없었다. 고인은 전원이 차단되지 않은 크레인 수리 작업에 투입됐다가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동국제강은 지난 5년간 5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5건의 사망사건 모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처벌은 솜방망이였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1명씩 죽어 나가도 전부 평균 500만 원의 벌금형으로 끝났다.

 

그러나 하청노동자 고 이동우의 죽음은 달랐다. 고인의 부인 권금희 님은 억울한 죽음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회사의 태도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사측은 사고 7일이 지나도록 아무 입장이 없었다. 장례식장을 찾아와 조문도 하지 않았다. 3월 28일 고인의 어머니는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화가 나 대구고용노동청 중대재해관리과에 항의 전화를 했다. 그러자 다음날 동국제강(주) 공동대표인 김연극 사장이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장례식장을 방문한 김연극 사장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변호사를 통해서 요구하실 사항 말씀하시면 최대한 다 들어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뒤 5일이 지나서야 사측은 변호사를 통해 합의안 초안을 유족 대리인에게 보내왔다.

 

기가 막혔다. 합의안은 처벌불원서와 임직원 면책 중심의 내용으로 가득했다. 유족은 분개했다. 유족은 다음날 동국제강의 책임 인정과 사과, 재발방지대책 수립,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를 반영한 배상 등의 요구안을 보냈다.

 

사고 23일이 지난 4월 13일, 유족들은 동국제강 포항공장 앞에서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주말까지 동국제강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동국제강 본사로 상경해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농성할 것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회사는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유족들은 상경했다.

 

유족의 상경투쟁, 분향소를 차리다

 

농성장을 차렸다. 4월 19일 유족과 서울 지원모임은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유족은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고인의 부인은 임신 3개월의 몸이었다. 부인의 어머니는 암 4기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 함께 상경했다. 유족은 무겁고 아픈 몸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동국제강은 뻔뻔하고 완강했다. 장세욱 대표이사의 사과는 불가하며 법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5차 협의까지 사측은 무성의한 태도를 이어갔다. 유족과 지원모임, 연대 동지들은 동국제강 본사 로비에 들어가서 농성을 했고, 철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장을 찾아가 동국제강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가톨릭과 기독교, 조계종 등에서 기도회와 예불을 이어 가며 함께 연대했다. 유족은 서울 투쟁사업장 연대를 다니며 동국제강의 문제를 알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농성장을 함께 지켰다. 노조 울타리에서 보호조차 받지 못하던 하청노동자 이동우의 산재사망은 이렇게 세상과 연결되고 확장되면서 여론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86일 만에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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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동국제강 비정규직 故 이동우 산재사망 합의결과 입장발표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무노조 사업장

 

동국제강 비정규직은 노조가 없다. 정규직은 한국노총이다. 동국제강 정규직 노조는 무려 27년 연속 무파업 타결을 모범적인 노사관계라며 자랑한다. 2019년 2월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해 노조위원장은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비정규직의 죽음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인은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못했다. 가입할 노동조합이 없었다. 현장에 민주노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똑같은 크레인 수리 작업을 하는 당진 현대제철은 작업 전에 전원을 차단한다.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무노조 사업장은 유족이 홀로 싸워야 한다. 아무리 억울해도 투쟁은 엄두를 낼 수 없다. 동국제강은 이전 산재사망과 동일하게 별일 아니라 생각했을 것이다. 매번 그랬으니까. 유족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돈으로 합의하고, 벌금 몇백이면 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인의 부인은 달랐다.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더 강해지고 더 악착같이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배 속의 아이도 울보가 아니라 이 투쟁을 통해서 강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산재사망이 발생해도 투쟁하는 유족을 만나기 쉽지 않다. 고 이동우 노동자의 유족은 억울함을 덮지 않고 투쟁을 선택했다. 다시는 똑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원했다. 고 이동우 노동자의 죽음도 유족의 결단이 없었으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투쟁의 의미

 

90일 만에 장례를 치렀다. 고인은 90일 만에 차가운 냉동고에서 나왔다. 유족들은 오열했다. 38세의 젊은 노동자는 배 속의 아이를 보지도 못한 채 한 줌 재가 되었다. 90일간의 투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원청의 법적 책임을 제대로 받게 만드는 일이 남았다.

 

동국제강 투쟁은 유족의 결단이 있어서 가능한 투쟁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유족에게 싸워줘서 고맙다고 하고, 유족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함께 싸워줘서 고맙다고 서로 같은 인사를 반복했다. 원청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서로 고마운 일이었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 산재사고도 우리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함께 싸워야 한다. 모든 노동자의 죽음을 우리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동국제강 투쟁을 통해 소중한 것을 배웠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첫 투쟁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유족의 절실한 투쟁으로 만들어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강행규정이다. 이 법을 지켜야 하고, 법을 어기면 누구나 처벌받아야 한다. 이제 겨우 원청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무기가 작게나마 생겼다. 그러나 법 자체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투쟁이 없으면 그 자체로 힘이 되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것이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목소리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함께 싸워야 힘을 받는다. 김용균 투쟁과 문중원 열사 투쟁이 그랬다.

 

동국제강 투쟁은 원청의 공개사과, 재발방지 등을 받아내면서 원청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한발 전진했다. 임신한 몸으로 90일간의 투쟁을 펼친 권금희 님과 암 4기인 어머님이 평안하길 바란다. 서럽게 우는 유족의 통곡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함께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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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1. 동국제강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과문. [출처: 동국제강 홈페이지]

 

 

 

<이동우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

 

이동우 동지, 얼마나 원통하십니까.

어렵게 생긴 아이의 태명을 ‘딱풀’이라고 불렀다지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아이의 얼굴 한번 못 보고, 동지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3월 21일 집을 나서며 “잘 갔다 올게.” 한마디 인사가 생의 마지막 작별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이를 간절히 바랐던 이동우 동지, 임신한 아내를 홀로 두고 떠난 동지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안전벨트에 온몸이 감긴 고통보다 임신한 아내와 귀한 아이를 두고 떠나야 하는 동지의 마음은 어떠할지,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이동우 동지, 저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8년째 해고자로 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같은 비정규직입니다. 일하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우리와 같은 하청 비정규직입니다.

 

제가 일하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으면 제 아내가, 저의 두 딸이 농성장을 차리고 원청을 상대로 거리에서 농성을 한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습니다.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동우 동지, 이제 이 여름이 가고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면 동지의 아이 ‘딱풀’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동지의 아이는 엄마가 88일간 아빠를 위해서, 그리고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 얼마나 잘 싸웠는지 알게 될 겁니다. 88일간 금희 님과 아이는 너무 잘 싸웠습니다.

 

이동우 동지,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편히 눈을 감아도 됩니다. 이제 편히 잠드십시오.

당신이 가는 곳은 산업재해가 없는 세상, 차별이 없는 세상. 사계절 매화, 진달래, 목련이 활짝 피어 꽃향기로 가득한 곳이길 바랍니다. 그곳에서 먼저 간 노동자들이 동지를 맞이할 겁니다.

 

태안화력발전에서 일하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손피켓을 들었던 용균이, 한국마사회 문중원 기수, 고교 실습생으로 일하러 갔다가 죽음을 맞은 CJ 진천 고교 현장실습생 김동준, 김포 토다이 현장실습생 김동균, LGU+ 전주 고교 현장실습생 홍수연, tvN 이한빛 PD, 경기 수원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김태규 님, LGU+ 하청 고객센터 이문수 님, 부산 경동건설 정순규 님, 쿠팡 동탄센터 박현경 님, 평택항에서 일하던 이선호 님, 서울 지하철 구의역 김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이동우 동지를 맞이할 겁니다. 그곳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면 유가족분들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진짜 책임자 처벌”을 위해 모두 잘 싸우고 계신다고, 꼭 안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억울한 피해 가족들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그곳에서 항상 지켜봐 주십시오.

 

이동우 동지는 많은 것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동지를 기억하겠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훗날 제가 이동우 동지를 만나면 먼저 달려가 꼭 안아 드리겠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별하는 고통이 더는 없도록,

아픈 유가족의 서러운 통곡이 더는 없도록,

우리 비정규직이 더 악착같이 싸우겠습니다.

 

이동우 동지, 편히 잠드십시오.

 

고맙습니다.

 

2022년 6월 16일 추모문화제에서,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 차헌호 편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