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7] ‘안전배달료’가 필요한 이유 / 구교현

by 철폐연대 posted Jul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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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안전배달료’가 필요한 이유

 

 

구교현 • 라이더유니온 사무국장

 

 

 

장면 1.

실시간으로 바뀌는 임금. 혁신기업이라 불리는 배민쿠팡이 운영하고 있는 정책이다. 배민쿠팡의 배달료는 매 순간 변동된다. 처음엔 주문량이 몰리는 피크타임에는 오르고, 나머지 시간에는 떨어지는 패턴이 있었으나, 요즘은 그 패턴도 사라졌다. 라이더 입장에선 배달료를 예상하며 일하면 짜증만 나니 그냥 주는 대로 받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는 상태다. 배달료를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지, 분명 사측은 공식이 있겠지만 라이더는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이면 라이더는 매 순간 속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수행 건을 빨리 마치고 다음 건을 빨리 잡는 것만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장면 2.

배달대행 플랫폼기업에는 배민쿠팡 이외에 일반대행이라 불리는 플랫폼회사들도 있다. 배민쿠팡은 소비자의 주문과 라이더의 배달 모두를 중개하는 일종의 통합형이고, 일반대행 플랫폼회사들은 배달만 중개하는 분리형이다. 소비자가 배민쿠팡으로 주문하면, 어떤 주문은 배민쿠팡 라이더가, 어떤 주문은 일반대행 라이더가 배달을 수행하게 된다. 이 일반대행은 배달료가 낮은 대신 묶음 배달이 가능하다. 배민쿠팡은 빠른 배송을 내세우며 라이더가 1건씩만 배차하는 시스템인데, 일반대행은 배달료가 낮은 대신 여러 건의 배달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래서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라이더가 4개의 배달을 동시에 수행한다고 치자. 1건당 짧게 잡아 15분이 걸린다고 하면 마지막 배달은 1시간가량이 걸리게 된다. 소비자는 컴플레인을 걸 가능성이 있고, 상점주의 독촉 전화가 걸려 올 수 있다. 결국 라이더는 안전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교통법규까지 어겨가며 속력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장면 3.

다시 배민으로 돌아와 보자. 배민은 올해 4월부터 배달료 산정 기준을 변경했다. 배달료는 일정 거리까진 기본배달료를 적용하고, 그걸 초과하는 구간에는 할증료를 붙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할증료 산정 기준을 기존 직선거리로 하던 것을 내비 실거리 기준으로 바꾼 것이다. 골목, 산, 하천 등이 많은 한국의 지형 특성상 할증료를 직선거리로 산정할 경우 실거리에 비해 할증료가 과도하게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고, 라이더유니온 등이 줄기차게 이를 비판하면서 내비 실거리 기준으로 이를 변경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바뀐 시스템은 내비 실거리가 아니었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100건의 배달을 분석해 보니, 배민앱이 파악한 거리와 내비 실거리와의 격차가 발생한 비율은 72%에 달했다. 짧게는 200m, 길게는 1,900m까지 차이가 발생했고, 결국 그 거리를 라이더는 무료로 달렸다는 것이 확인됐다. 배달료 산정에 있어 정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사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배달료를 지급해 왔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이더유니온은 ‘안전배달료’를 요구하고 있다. 안전배달료는 최근 화물연대 총파업 과정에서 널리 알려진 ‘안전운임제’를 모태로 하고 있다. 안전운임제는 낮은 수준의 운임이 위험한 운행을 강요하므로 운임의 체계를 갖추고 수준을 높여 충분한 휴식, 적정속도 준수, 과적 근절 등을 유도해 도로의 안전을 증진시킨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현재 컨테이너·시멘트 부문에서 3년째 시행되고 있으며 제도 시행 이후 진행된 연구(한국안전운임연구단, 2021)에 따르면, 졸음운전을 줄이고 과적을 방지하는 등 실제 도로의 위험을 줄이는 효과를 낳고 있다. 배달 라이더들의 속도경쟁을 낮추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화물업종의 안전운임제와 같이 배달업종에는 안전배달료를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안전운임연구단의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제도 시행 전 71%에 달하던 졸음운전은 제도 시행 이후 53%로 18% 포인트 감소했고, 과적 경험비율은 24.3%에서 매년 13.6%, 9.3%로 낮아졌음이 확인됐다. 안전운임제도 시행 2년 만에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안전운임제는 그림과 같이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 조건만 입력하면 자신이 받을 운임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다. 배달노동은 화물운송에 비해 훨씬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으므로 배달료 체계화는 의지만 있다면 간단한 문제일 것이다.

 

 

5. 본문사진1.jpg

안전운임 계산기. [출처: 화물연대본부 홈페이지]

 

 

안전배달료는 현재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개정안에 담겼다. 정의당 국토위 심상정 의원이 대표로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발의된 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생활물류서비스 종사자의 과로, 과속, 과적 운행 등을 방지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종사자에게 지급하는 최소한의 배달료로서 생활물류서비스 안전배달료를 정의하였다.

2) 생활물류서비스 안전배달료를 결정하기 위해 사업자, 종사자 등의 이해관계 당사자와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된 안전배달료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3) 생활물류서비스 안전배달료는 운송수단의 유지·관리·운영 비용, 종사자 노무비 등의 비용과 종사자의 시간당 배달물량, 휴식 및 대기시간, 유사업종 종사자의 노무비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도록 하였다.

4) 매년 10월 31일까지 다음 연도의 생활물류서비스 안전배달료를 심의·의결하여 공표하도록 하고 종사자에게 공표된 안전배달료 이상의 배달료를 지급하도록 하였다.

5) 안전배달료에 미치지 못하는 배달료를 지급하거나 리베이트 등의 부정한 방법의 금품 수수 등을 하는 경우, 신고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안전배달료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도록 하였다.

 

라이더유니온은 안전배달료 도입을 위해 개별 회사와의 단체교섭, 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 캠페인 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최근 배민쿠팡 이외에 일반배달 대행업체들과 맺고 있는 단체협약에 배달료 기준을 명시하며 안전배달료의 근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노동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건당 최저임금의 논의에 주목하고 있으며,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투쟁에 연대하며 안전운임제가 안착되고 여타 업종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라이더유니온은 라이더 안전교육사업과 안전운행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를 통해 라이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안전배달료와 같은 라이더 권리에 대한 긍정적 여론 형성을 목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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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 도입을 위한 배달·택배노동자 행진. [출처: 라이더유니온]

 

 

안전배달료는 라이더의 안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넓게 보면 라이더와 같이 건당 수수료를 받는 노동자의 보수에 있어 법정 기준을 만드는 흐름에 함께하고 있다. 건당 수수료로 일하는 노동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고, 이들의 보수는 아무런 체계 없이 사업주의 재량에 맡겨진 상태다. 각자 개별적으로 근무하며 서로가 경쟁자인 건당 수수료의 세계에서 노동자들이 집단을 형성해 협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사업주는 노동의 견제도, 정부의 관리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있듯이 건당 수수료에도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 배달업종의 안전배달료 도입은 전체 노동자의 권리 확장에 기여하는 운동인 것이다. 많은 분들의 연대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