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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예술인’은 누구인가? 무엇인가?

 

 

안명희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1. ‘예술인’으로 인정된다는 것

 

아시다시피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근로자’로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 모두가 ‘예술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기 위해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처럼,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보호받고 여러 복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예술인복지법상 예술인인지 아닌지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례로 방송과 영화를 만드는 노동자는 예술인복지법상 예술 분야에 포함되어 예술인으로 인정되지만, 책을 만드는 노동자는 배제되어 예술인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술인복지법상 예술 분야는 문학, 미술, 사진, 건축, 음악, 국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만화 등 11개뿐인데, 여기에 출판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송도 되고 영화도 되는데 왜 출판은 안 되는지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습니다.

 

또한 방송을 만드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드라마·예능·교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노동자는 예술인으로 인정되지만,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노동자는 예술인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술 활동 증명에 관한 세부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서입니다. 이 때문에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와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는 보도 작가와 출판편집자·북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 등에게도 ‘예술인 고용보험’을 적용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술인은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예술인 고용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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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8. “출판 외주노동자, 방송작가 전체에게 고용/산재보험 적용하라! - 미디어산업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사회안전망을” 기자회견 모습. [출처: 언론노조]

 

 

2. 예술인도 노동자라는 선언, 문화예술 노동자의 등장

 

흔히 예술인은 근로자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술인 중에서도 사업장에 소속되어 예술 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술단체 단원들인데, ‘2019년 공연예술실태조사’에 따르면 국공립단체 및 민간단체 단원들 중 정규직은 20.6%이고, 비정규직은 79.4%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들 예술인의 고용은 더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예술인들은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이긴 합니다. ‘2021년 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업 예술인 중 78.2%가 프리랜서라고 합니다(여기서는 예술인을 근로자이거나 프리랜서로 구분합니다). 그렇다 보니 예술인들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노동자성이 부정되는 법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예술 활동 또한 노동임을, 예술인도 노동자임을 설득해 가고 있습니다. 번번이 정부가 예술인/문화예술 노동자들을 ‘근로자는 아니나 특별히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키는데, 이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서고 있습니다.

 

한편 영화의 경우,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영화근로자’를 정의하고 있는데,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자로서 노조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근로자를 말합니다. 이 법에는 영화근로자 외에도 영화업자단체, 영화근로자조합 등도 정의되고 있는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이 법에 근거하여 영화노동자의 근로계약서 작성 및 노동조건 개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는 방송이나 출판산업 등에서도 참고할 만한데, ‘CJB청주방송 故이재학PD 사망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방송사 비정규직 관련 법·제도 개선’을 위해 방송산업 관계법령에 ‘방송근로자’ 정의 규정을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3. 문화예술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만남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12년 8월과 9월, 철폐연대는 만화가, 뮤지션, 영화스태프, 출판편집자, 어린이책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과 함께 ‘문화노동자 불만집담회’를 진행했습니다. 각자의 노동환경, 저작권, 조직화, 사회적 교섭, 복지확보 방안, 문화정책 관련 대응 등을 얘기했고, 마지막으로 예술인을 노동자로 호명하는 것, 어떻게 권리를 찾아 나갈 수 있을지, 비정규직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넘어 주체로 서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당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비없세)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권리헌장 운동’이란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권리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권리의 법적 기준, 사회적 기준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현장과 지역, 부문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요구를 모아내는 ‘불만집담회’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철폐연대는 문화예술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는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5조 :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 모두가 노동자들이다. 특수고용 노동자, 문화예술 노동자, 가사 노동자, 실업자와 구직자, 해고자 모두 노동자로서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가 있다”로 표현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철폐연대와 비없세가 함께 쓴 책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를 봐 주세요.)

 

시간이 흘러 2018년 12월, 방송 드라마 스태프, 예술강사, 출판노동자, 영화 촬영 스태프, 무용인, 사진작가, 연극인 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에 이름을 올리고, ‘내가 김용균입니다’라고 외치며 행진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예술인을 넘어 스스로를 노동자로 규정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투쟁으로 함께하는 것이 이제는 새삼스럽지 않을 만큼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참 많이 애써 왔습니다.

 

4. 문화예술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의 만남

 

2020년 5월, 문화예술분야 노동조합 및 예술단체 들의 연대체인 ‘문화예술노동연대’는 국회 앞에서 ‘5.11. 고용보험법 개정안 환경노동위원회 통과에 대한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입장 발표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를 배제하고, 예술인에게만 예외적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고용보험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규탄과 모든 노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고용보험 적용을 위해 문화예술노동연대는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계속해서 함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용보험 적용은 예술인들의 반복되는 죽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생계 대책임에도 이명박 정부는 ‘특고와의 형평성’을 운운하며 ‘예술인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면 노동자의 범위가 넓어진다’며 끝끝내 거부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보험 가입대상을 특고와 예술인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2018년 11월 특수고용 노동자와 예술인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에 문화예술노동연대는 2019년 9월에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 동지들을 찾아가 연대를 청했습니다. 이후 특수고용 노동자는 문화예술노동연대 기자회견에, 문화예술 노동자는 특고대책회의 기자회견에 발언자로 서면서 문화예술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간 간극을 좁혀 갔습니다. 코로나19, 고용보험, 산재보험, 플랫폼종사자법 등 함께 대응해야 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철폐연대와 함께 특고대책회의에 참관 단체로 참여하고 있는데, 고용보험/산재보험 전면적용을 위한 투쟁뿐 아니라,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에도 함께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특수고용 노동자이면서 플랫폼 노동자이고 프리랜서이기 때문입니다. 노동권 박탈, 차별과 배제는 문화예술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비껴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5. 문화예술 노동자와 노동조합

 

2017년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예술인 고용보험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문화예술노동연대라는 연대체를 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 창립총회를 통해 문화예술노동연대는 “문화예술노동 단체 간의 연대와 소통을 도모하고, 문화예술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과 공동 이익의 옹호를 목적”하면서, “문화예술 산별 노동조합의 설립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습니다.

 

‘협회’ 등의 문화예술인들을 대변하는 단체는 많으나, 흩어져서 개별로 일하는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2012년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개별 사업장 노동자들과 외주 노동자들이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없었습니다. 방송작가들의 노동조합, 예술강사들의 노동조합, 웹툰/웹소설 작가들의 노동조합, 공연예술인들과 음악인들의 노동조합 역시 1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방송연기자노조와 영화노조, 보조출연자노조가 각각 34년, 17년, 16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 노동조합들은 민주노총 소속이거나 한국노총 소속이거나 독립노조입니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공공운수노조, 서비스연맹, 언론노조 등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예술노동연대에서 ‘문화예술산업노동조합’을 희망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어찌어찌해 활동 가능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문화예술 노동자들과는 딱히 관련이 없는 동질감을 찾기 어려운 상급단체에 소속되다 보니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발언력이 크지 않다는 현실적 고민에서 나온 바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6.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2021년 3월 문화예술노동연대는 9개 현장 단체(게임개발자연대, 공연예술인노동조합, 뮤지션유니온, 웹툰작가노동조합,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와 함께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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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모습. [출처: 문화예술노동연대]

 

 

각 현장 노조들의 요구는 달랐지만, 전체 문화예술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문화예술노동연대가 요구한 바는 △ 1. 문화예술 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노조 할 권리 보장, △ 2. 적정한 임금을 받을 권리와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 △ 3. 문화예술 노동자 고용보험·산재보험 전면적용, △ 4. 문화예술 노사교섭·노사정교섭·노정교섭 실시였습니다.

 

문화예술 노동자 모두가 노동자로 인정되고, 교섭과 투쟁을 통해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장해 나가는 데 그 어떤 제약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노동조건에 개입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임금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일하는 사람 누구나 온전히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라는 사실을 문화예술 노동자 역시도 사회적으로 확인해 나가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 요구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 산재보험 역시 예술인 고용보험과 마찬가지로 당연가입이어야 하며, 다만 예술인 고용보험처럼 선별적·차별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술과 노동과 삶에 대한 권리를 확장해 나가기 위해 때론 정부를, 때론 정부와 사용자 모두를 대상으로 교섭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 했습니다. 이 같은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요구에 정부와 사용자는 적극 응답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입니다.

 

불안정한 노동이 일반화된 시대, 노동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노동자들이 점차로 확산되는 지금, 이미 불안정성을 내재화한 예술인들이 권리를 찾고자 투쟁하는 노동자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예술인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문화예술 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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