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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되돌아보기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비정규직 투쟁의 역사가 20년이 되어간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판결로 정규직이 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정규직이 되는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그런데 일부 노동자들만 선택적으로 정규직이 되거나, 정규직이라는 이름을 갖더라도 노동조건은 달라지는 바가 없기도 하다. 자회사를 정규직화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점차 늘어나고 마치 정상적인 일자리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화 투쟁’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금까지 ‘정규직화 투쟁’을 해왔던 비정규직 운동 과정을 되돌아보고 비정규직 운동의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그를 위해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되돌아보기”라는 워크숍을 마련하였다. 10월 31일 전국사무금융노조 회의실에서 진행된 이 워크숍에는 2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활동가 들이 참여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정규직 운동은 새로운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은 “비정규직 20년 투쟁의 성과와 과제” 발제를 통해서 민주노조운동은 정규직들의 좁은 이해관계에만 천착하면서 자본의 ‘의자놀이’에 놀아나고,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반성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런 민주노조운동을 새롭게 복원하는데 비정규직 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비정규직은 ‘싸우지 않으면 쟁취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투쟁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으로 투쟁이 가로막히고, 때로는 정규직지부가 걸림돌이 되면서, 비정규직들도 투쟁보다는 법이나 정부 정책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 비정규직 운동은 내 싸움만 이기는 것을 넘어 제도를 바꾸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하며 비정규직이 세력화하면서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발언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노동조합의 목표가 ‘정규직화’로 그치지 않으려면 우리는 ‘왜 노동조합을 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산인권센터 랄라 활동가는 한국 사회가 ‘공정함’을 트렌드로 삼고,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구조를 평등하다고 여기며, 책임의 주체인 기업과 정부는 사라지고 노동자들끼리 갈등하며 상호 존중하지 않는 상태라고 규정했다. 노동을 폄하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노동’은 사라지고 ‘을’로 호명되며, 노동자는 자신의 문제를 정의할 언어와 문화를 갖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운동의 목표도 위계를 철폐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신분상승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비정규직 운동은 ‘노동’의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할 힘을 가져야 하고, 각 개인이 이 힘을 복원하여 전체운동의 힘이 되도록 하기 위해 ‘공감’과 ‘소통’의 공간을 늘리고 불합리함을 느끼는 이들의 연결을 통한 연대의 그물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야 비정규직 운동도 개인의 운동을 넘어 전체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비정규직 운동은 과연 노동조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운동인가, 비정규직 운동은 새로운 운동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비정규직 운동은 개인의 신분상승 운동을 넘어 전체를 연결하고 제도를 바꾸며 노동자 전체의 차별을 없애는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비정규직 노조는 ‘정규직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 변화를 자신의 운동과제로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해 기간제교사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서울교통공사노조,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역지부, 기륭전자분회, KTX승무지부 동지와 코스콤, SK에너지(인사이트코리아)에서 투쟁했던 동지들이 준비한 토론을 이어갔다.

 

 

정규직 전환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지금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했지만, 법원의 판결이나 정부 정책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고, 그렇게 정규직으로 전환한 경우 노동조합의 방향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정규직으로 먼저 전환한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닌 정부 정책으로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정규직 전환 투쟁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이룰 것인가를 함께 토론하고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규직 전환이 신분상승의 수단이 아니라, 왜곡된 고용구조를 바꾸는 힘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렇게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토론자들은 정규직화 투쟁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규직화 투쟁은 ‘불안정한 노동’이라는 비정규직의 존재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운동이며,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노동권이 박탈되는 현실에 제동을 걸고 모든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당연’한 것처럼 만들고 계속 비정규직을 늘려왔다. 그 과정에서 언제부터인가 ‘정규직화’라는 요구가 무리한 것으로 인식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자신의 신분과 한계를 내면화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인 노동’이라는 권리를 보편적인 노동자의 권리로 제기하는 ‘정규직화’ 투쟁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정규직화 투쟁’은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조직하고 단결하도록 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잘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정규직화의 가능성이 열리면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서 나설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불법파견 투쟁이 한계에 봉착하기는 했지만, 현대자동차 등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잘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가 ‘불법파견 투쟁’을 계기로 조직이 확대되었던 것처럼 정규직화의 가능성은 노동자들을 일어서게 만든다. 구의역 참사 이후에 서울교통공사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다만 이 투쟁이 ‘신분상승’ 욕구를 뛰어넘게 하려면 무엇이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비정규직 투쟁이 비정규직 구조를 없애는 데로 나아가려면

 

정규직 전환 투쟁이 개인의 신분상승이 아닌 비정규직 구조를 없애는 것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권리’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개인이 정규직이 될 권리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을 세우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보편성이 발휘되려면 운동도 ‘연대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 방식을 고집하면 노조들도 현실가능한 수준으로 합의하게 된다. 노조들이 각각 싸울 때에는 이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투쟁하는 이들이 모여서 연대의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하청이 공동으로 파업을 하는 서울대병원이나 한국잡월드 등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연대를 통해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모두의 권리임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의 성격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이를테면 한국비정규교수노조에서는 조직의 성격을 단지 비정규 교수들의 노동조건 개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평등대학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조직의 과제로 하려고 한다. 인천공항에서도 ‘공공성’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조직의 과제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제출하고 있고, 교육공무직본부나 기간제교사노조에서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만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로서 교육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고민을 함께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비전을 이렇게 확장하면 노동자들도 자신의 노동조건 개선이나 신분상승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기륭전자분회에서는 비정규직 투쟁이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아가려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제도,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파견법 철폐나 노조 할 권리 쟁취를 위한 노조법 2조 개정 투쟁 등 당면한 노동조건 개선이나 정규직 전환만이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하는데 힘을 주는 제도적인 변화를 위해서도 함께 싸워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18년 11월 12일부터 4박 5일 동안 ‘비정규직 그만쓰개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하는 것도 그런 제도 개선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이런 투쟁이 비정규직 투쟁이 확장된 연대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가

 

발제를 한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은 현재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고민을 많이 제출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 훼손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때로는 정규직 노조의 벽을 넘어야 회사와 싸울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때문에 상처받는 이들도 있고,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는 특히 ‘시험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정규직이 되나!’ 라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괴롭혔다. 이런 갈등을 과연 넘어설 수 있는지, 민주노조운동은 변화가 가능한지 고민이 많은 때이다.

이런 갈등을 극복하려면 우선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최근 노동조합들이 자신의 힘을 믿기보다는 협상이나 정부위원회에 많이 기대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 많이 무너졌는데, 상급단체에서부터 그 원칙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예전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가 사내하청 박일수 열사 투쟁 때 구사대 역할을 했던 것에 대해 금속산업연맹이 단호하게 징계하여 제명 처리를 했던 것처럼 상급단체가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갈등의 확산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빅텐트’를 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현장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하기 어려운 조건이지만, 교육과 연구를 하는 이들이라는 정체성으로 함께 모이는 ‘연맹’과 같은 것을 구상하면서 큰 틀에서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노조의 경우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면서 여러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지만 조직을 통합한 이후에 노조활동을 함께하면서 공동투쟁의 힘을 키워가고 있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정규직 노동자들을 설득하고 공동투쟁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많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점차로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전체 노동자의 일자리가 위협받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공동파업을 이끌어냈고, 대우자동차에서도 정규직 중에서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는 주체가 세워졌다. 그런 점에서 소수라고 하더라도 활동가들이 나서서 연대의 틀을 만들고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극복해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비정규운동의 과제는 무엇인가?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조직되지만 민주노조 안에서 발언력은 매우 약하다. 공공운수노조에서는 40%가 비정규직 조합원이고, 전체 민주노조운동에서도 비정규직 조합원이 30% 이상이지만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발언력과 대표성은 그만큼 되지 못한다. 비정규직들이 연맹별로 나뉘어져 있고 고용형태별로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각 연맹에서 비정규직은 모두가 소수자이다. 고용형태와 연맹의 차이를 넘어 비정규직 노조들이 공동의 과제를 갖고 함께 투쟁하는 경험이 있어야 연대의 틀을 형성할 수 있고, 그래야 비정규직 주체들이 발언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비정규직 단위들의 공동투쟁이 그래서 매우 소중한 것이다.

조직화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을 제고하는 것도 더 많은 조직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까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었지만 중소영세사업장은 0.2%에 불과하고 대다수 비정규직이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비정규직 조직화는 매우 어렵다. 대규모로 조직이 확대된 곳을 보면 승리의 경험, 희망적인 전망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힘들기만 하면 조직이 되지 않는다. 그런 희망적인 전망을 만드는 것이 민주노총이 해야 할 역할이다. 함께하면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을 주어야 한다. 지금은 민주노총에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가능한 단위들이 자그마한 변화라도 예민하게 포착하고 조직화로 연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비정규직 운동이 나아가려면 우리 내부의 차별의식과도 결별해야 한다. 교육공무직본부의 경우 교섭이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은 ‘이 정도면 된다’는 관료들의 인식 때문이지만 비정규직들도 스스로의 권리에 한계치를 두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능력주의’가 보편화되고 공정성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면서 비정규직들도 많이 위축된다. 그렇지만 비정규직도 그 사업장의 주체라는 점, 사회에서 필요한 노동을 하는 이들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경쟁과 위계가 아닌 삶의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권리’로 대응하는 것이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비정규직 운동도 고용구조의 변화에 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지금까지 투쟁했던 이들과는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 사용자성도 불분명하고 노동자성도 불분명한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자들의 고용형태가 복잡해지고 왜곡되는 상황에서 ‘노동권’은 어떻게 확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은 제출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열심히 조직도 하고 투쟁도 하지만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조’는 여전히 먼 곳이다. 이런 변화를 고려하면서 비정규직 운동도 낡은 틀이 되지 않도록 조직과 투쟁을 변화시키는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마치며

 

워크숍에는 비정규직 운동 초기에 투쟁을 했던 인사이트코리아와 코스콤 노동자들도 함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운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최선을 다해 싸웠던 이들이 지금은 비정규직 운동의 주체로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랜 투쟁에 지치고, 현장에서 고립되기 때문에 새로운 투쟁에 나서기에는 힘에 부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서로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되는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간부들이 자주 만나고 필요한 연대를 함께 조직하고, 우리 운동의 의미를 서로 새기면서 서로를 독려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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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31.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되돌아보기” 워크숍 현장 [출처: 철폐연대]

 

[편집자부] 이 글은 2018년 10월 31일 진행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워크숍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되돌아보기” 발제와 토론 내용을 종합해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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