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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위험의 외주화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1 2018 4.28세계산재사망노동자추모의날 민주노총 결의대회 [출처 노동과세계(변백선)].JPG

 2018 4.28. 세계산재사망노동자추모의날 민주노총 결의대회 [출처: 노동과세계(변백선)]

 

 

1. 들어가며

 

지난 2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었다. 28년만의 전부 개정안이자, 문재인 정부의 산재사망 절반 감소 대책을 이행하기 위한 법 개정안이라는 표지를 달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기준법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법안으로 1982년 제정되었고, 1990년에 전부 개정되었다. 전부 개정의 배경에는 올해로 30주기가 되는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투쟁이 있었다. 1988년 15세 문송면 노동자의 수은중독 사망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이어 원진레이온 직업병 노동자들의 137일 간의 장례 투쟁이 이어졌다. 이를 반영한 1990년 전부 개정안에 비로소 ‘산업안전교육,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 동수, 건설업 안전보건관리비, 유해화학물질의 제조‧사용‧성분표시, 유해성 조사 및 조치의무’ 등등이 도입되었다. 노동부에 안전기획과‧산업보건과가 신설되고, 1992년에는 정부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개원했다. 1988년 산업의학회가 설립되고, 이후 산업의학전문제도가 도입되었던 것도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투쟁의 결과였다.

 

28년 만에 진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하 개정안)의 제출은 지난 수년 동안 노동‧시민사회가 제기한 하청‧비정규 노동자 산재 문제와 직업병 투쟁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법 개정안에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 원청 책임 및 처벌 강화, 기업의 영업비밀 남발 규제, 건설업의 발주처 책임 강화, 작업 중지 등 노동‧시민사회가 제기한 요구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개정안의 내용과 범위가 정부 주도로 진행되면서, 방향은 있으나 빈 구멍이 많은 채 제출되었다. 특히, ‘전부 개정안’이라고 불릴 만큼 현재 산업재해의 현실이 담겼느냐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가 쏟아진다. 정부에서는 “법의 목적과 취지를 개정하고, 기간의 산안법의 체계 변경이 있어 전부 개정안으로 명명한 것이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산재 예방의 현장성을 위한 노동자 참여제도의 문제나, 매년 320여 명의 과로사, 나날이 증가하는 정신건강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전혀 내용이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은 자본과 경제부처 및 보수언론의 맹공을 받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 대기업과 건설협회, 경총의 강력한 공세와 산업자원부를 비롯한 경제부처의 반발로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에 몇 달째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규제를 운운하며 입법 예고안에서 후퇴와 수정을 거듭한 안으로 국회로 넘어갈 공산이 큰 상태이다. 또, 국회로 가면 보수 양당의 가위질에 또 얼마나 잘리고 후퇴할지, 아니면 표류를 거듭하다 20대 국회를 마감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에 대한 투쟁이 필요하다.

 

 

2.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의 주요 내용

 

1) 개정안과 위험의 외주화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에서는 2011년 인천 공항철도 사망사고를 전후로 하청 산재문제를 집중 제기해 왔다. 도급 금지 및 제한과 관련하여 개정안에서는 첫째, 수은 제련 등 유해위험 작업 도급금지, 둘째, 유해 위험작업은 하도급 승인을 받아야 하고, 하도급 승인을 받은 작업은 재하도급 금지, 셋째, 원청은 하도급을 줄 때 안전보건과 관련한 적격 수급인 선정, 넷째, 건설업의 경우에는 불법하도급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3년 이상 7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이 강화된다. 건설업의 경우는 별도로 불법하도급에 대한 원청 처벌 강화도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으로 별도 추진된다.

 

2) 원청 책임 및 처벌 강화

원청 책임 강화 관련해서는 첫째, 사업주 정의를 고용의 전제가 아니라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노무를 제공받는 자’로 개정하고, 원청 사업주의 정의를 도급‧위임 등 명칭에 관계없이 확대, 둘째, 원청 책임범위를 종전의 22개 장소에만 적용되던 것에서 제한 없이 적용하고, 원청이 지정‧제공하는 장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 산재에 대해서도 원청의 책임 부여, 셋째, 원‧하청 노동자가 참여하는 안전보건협의체(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가능, 그 밖에 건설업의 경우에는 발주처의 책임 명시, 타워크레인 등에 대한 원청 책임을 명확히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3) 처벌 강화 및 원청 처벌 강화

첫째, 산재사망에 대한 형사처벌 하한선 도입과, 법인 처벌을 분리하여 10억 원 이하 과징금 도입 및 수강명령제도 도입, 둘째, 기업 최고책임자의 역할을 강화하고 처벌과의 연계를 위해 ‘대표이사의 이사회 보고와 집행’ 의무 부여, 셋째,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에서 원청 책임에 대한 법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고도 적용하고, 하청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위반 시 하청업체와 동일한 수준으로 원청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4)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호대상 확대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대상을 종전의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목적을 변경했다. 구체적 적용 사항으로는 첫째,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안전교육 실시, 둘째, 이륜자동차 배달 앱 중개사업주에게 안전보건조치 의무 부여, 셋째, 프랜차이즈 가맹사업본부의 안전보건정보 제공 의무 부여 등이다. 고용관계로 정식화되지 않는 중개사업주, 프랜차이즈 본점 등에 제한적으로 안전보건의무가 부여되고, 일반 사업주도 근로계약이 아닌 임대‧위탁 계약의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안전교육 등을 실시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5) 안전보건 정보 공개와 작업 중지 명령

직업병을 유발하는 화학물질 관리에 대해서 첫째,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노동부 보고의무 부여, 둘째, 기업의 영업비밀 관련 심사제도 도입, 셋째, 유해화학물질 정보 공개가 도입된다. 또한, 작업 중지와 관련해서는 첫째, 노동자의 작업대피로 인한 해고 등 불이익 처우에 대한 형사처벌 도입, 둘째, 종전에 감독상의 조치로 되어있던 노동부의 작업 중지 명령의 법제화 등이 있다.

 

6) 건설업 특례와 기타

이번 개정안에서는 건설업을 별도의 절로 독립시켜 구성했다. 앞서 소개한 발주처, 타워크레인 불법 하도급 산재사망 처벌 강화 등의 신규 개정 내용과 종전의 공기, 공법 변경 등 주로 건설업에 적용되었던 조항을 묶어 별도로 독립시킨 것이다. 또한, 주요내용 외에도 메탄올 중독사고, 삼성의 직업병 역학조사 참여 거부 문제 등 안전보건의 각종 현안투쟁에서 제기되었던 내용의 일부가 개정안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와 같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주요 내용만 해도 6~7개 분야, 60여 개 조항에 달하고 있어서 구체적 내용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3. 개정안의 의미와 한계

 

1) 정책 방향은 진전되었으나, 구체적 대상과 내용은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다

민주노총은 한국에서 매년 2,400여 명의 산재사망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로 ‘고용구조와 산업구조의 변화를 담지 못하는 법과 정책’의 문제를 제기해 왔다. 개정안에서는 이를 일하는 사람, 사업주 정의, 도급의 정의, 원청, 특수고용, 프랜차이즈, 중개사업주, 건설업 발주처 등에 대한 내용으로 제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줄기차게 반대해 왔던 도급 금지가 개정안에 포함된 것이나 사업주나 도급, 원청의 정의를 넓힌 점, 메탄올 중독사고나 플랜트나 제조업의 사외하청 문제를 반영하여 원청이 지정하거나 제공한 장소의 하청도 포함시키고, 특수고용도 적용하는 것은 다양한 비정규 고용의 형태를 반영한 의미 있는 진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배달 앱과 같은 프로그램 중개사업주의 문제, 파리바게뜨 등 프랜차이즈 본점의 책임 부여도 진전된 것이다. 그러나 각 조항의 적용대상과 내용은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과연 개정안으로 어떤 현장의 산재가 얼마나 감소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일례로 유해위험 작업 도급 금지 조항이 도입되는데, 현재 그 대상은 노동부 발표로도 22개 사업장의 850여 명 정도가 대상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행 산안법에서 도급 인가 대상을 도급 금지로 전환한 것에 불과해서, 위험의 외주화를 사회적으로 제기한 ‘구의역 김군’도, 조선하청 노동자도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위임법령도 없어서, 도급 금지를 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법 개정을 거쳐야만 가능한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특수고용 노동자도 현행 산재보험 특례 적용 9개 직종 정도만 대상이고, 배달 앱 중개사업주도 이륜차에만 적용된다. 대상이 협소할 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해야 하는 안전보건조치도 교육이나 정보 제공 등으로 제한적이다.

 

2) 작업중지권, 노동자 참여권 등 핵심적 예방조치가 누락되었다

기간의 투쟁에서도 노동자 참여 보장은 중요한 요구였지만,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중요하게 인식의 전환으로 제기되는 문제이다.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가만히 있으라’의 반복은 참사를 불러온 중요한 지점이다. 이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매일 매순간 부딪치고 있는 문제이다. 급박한 위험 상황에서 작업을 중지하면 회사의 징계를 받고,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다. 대부분의 중대재해 발생 현장에서는 항상 노동자의 개선 요구가 묵살된 전력이 드러난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 작업중지권 현실화와 산재예방을 현실화하기 위한 근로자 대표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권한 강화는 전혀 없었고, 아예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3) 안전보건 정보에 대한 알 권리 보장은 진전되었다

개정안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 중의 하나가 직업병 대책이다. 과로사나 정신 건강에 대한 대책이 전혀 검토나 반영되지 않았던 문제도 있다. 한국의 직업병 문제는 산재보상의 영역에서도 과제가 많지만 예방분야로 오면 측정제도, 검진제도, 보건관리 등 형해화되어 있는 제도가 많다. 개정안에서는 가장 기초적으로 현장의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 제공의 영역인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성과 정보 제공을 담고 있다. 현장에서 작성도, 정보 제공도, 교육도 가장 취약한 부분이고, 삼성을 필두로 영업비밀이 남용되어 산재보상에서도 심각하게 문제가 되었던 상황이다.

개정안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으나, 화학물질관리법에서는 민간도 참여 가능한 별도 심의구조를 갖고 있는 영업비밀 심사승인 절차를 개정안에서는 안전공단에 일임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 물질안전보건자료 외에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등 각종 안전보건 정보 제공에 대한 것은 국회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것들이 있어, 이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 같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최근 삼성이 직업병 산재신청 과정에서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국가기밀로 둔갑시켜 영업비밀 논쟁이 붙으면서 맹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 개정안의 물질안전보건자료 제도나 국회 발의 안전보건정보 제공의 각 법안이 후퇴될 소지가 다분하다.

 

4) 건설업 적용의 별도 절 구성은 긍정적이나, 소규모 공사와 민간현장에 대한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건설업을 별도의 절로 특화시킨 것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그러나 주요 개정 내용인 발주처의 책임 강화에서 핵심 내용인 공기와 예산 문제가 누락되어 있고, 발주처의 법 위반에 대한 처벌조항이 너무 약해서, 공공 현장의 경우에는 정책적 접근으로 현실화 가능성이 있지만, 민간 공사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건설업을 별도의 절로 구성하면서, 플랜트 현장이나 건설업의 전체 업종에 적용되어야 할 일부 조항을 건설로만 한정되도록 만든 점도 문제다. 특히, 건설업 산재는 소규모 현장의 발생 비율이 높아서, 법 개정으로는 한계가 있고 소규모 현장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데, 현재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 확대나 산업안전관리비 투명성 강화 등은 하위 법령이나 정책으로 진행되고 있다. 법 개정이 바로 건설업 사망사고 감소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책적 시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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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대한 노동‧시민사회의 강력한 투쟁을 준비하자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에는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투쟁의 역사로부터 현장의 억울한 죽음과 지난한 투쟁, 분노와 절망이 어려 있다. 이번 개정안의 조항 문구 하나하나를 볼 때도 그동안의 죽음과 투쟁의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동시에 방향은 제시하면서도 구멍이 숭숭 뚫린 세부 내용에 답답함을 참기 어렵다. 더욱 분노가 치미는 것은 이 정도의 개정안조차도 기업이 망하고, 경제가 위축될 것처럼 난리를 치는 자본과 경제부처의 맹공, 그리고 과잉금지 원칙의 위배, 위헌 소지를 운운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행태이다. 그리고 벌써부터 수정과 후퇴를 준비하는 노동부의 태도이다. 과연 그 중 누가 이라크 전쟁 사망자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다치고 병들고 죽어가는 산재사망 OECD 1위 국가의 현실에 대해 책임져 왔는가. 자신들의 책임은 방기하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자본, 정부, 전문가 들은 법리를 따지고 탁상공론을 하기 전에 그야말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지난한 산안법 개정이 노동자 투쟁의 역사였던 것처럼, 규제개혁위를 거쳐 국회까지 이어지게 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투쟁의 본격화를 준비해야 할 때이다.

 

 

* 이 글은 철폐연대가 발행하는 기관지 <질라라비> 179호(2018-07)호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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