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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포커스

 

 

성과주의와 자살의 연결고리: 금융노동자를 중심으로1)

 

김영선 • 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 연구위원

 

 

실적 쥐어짜기식 성과주의가 팽배한 작금의 맥락에서는 노동과정상의 제 문제들, 심지어 과로사 및 과로자살조차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성과주의가 어떻게 문제의 개별화와 연관된다는 것인가? 능력주의든 성과주의든 개인 능력을 기준 삼는다는 것은 성공(과 이에 따른 인센티브)은 물론 실패(이에 따른 책임)까지 모두를 개인적인 것(개인의 능력 부족, 관리 실패 등)으로 환원하고 착취와 소외,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를 자연스레 은폐, 재생산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더 중요한 점은 능력 기준이나 성과 기준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봉합해 버리고 기준 미달에 대한 죄책감(‘나는’ 능력이 없어서!)과 비난(‘쟤는’ 능력이 없어서!)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그간 자본 장치/담론은 핵심역량·핵심인재론, 경쟁력 담론, 능력주의, 성과주의 등의 분할 장치를 반복 변주하면서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발전국가 시기의 모범근로자, 수출역군이나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의 삼성맨, 현대맨 등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핵심, 경쟁력, 능력, 합격자, 자격 있음, 고성과를 포섭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 무능력, 불합격자, 자격 없음, 저성과에 대한 배제/차별을 정당화해 왔다. 작금의 능력주의는 이러한 분할선을 공정한 것으로 둔갑하는 최신 버전의 어법일 것이다. 사실상 대단히 차별적이지만 외견상 공정한 것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분할선! 이런 분할 장치/담론의 폭력성(문제의 개별화, 배제/차별의 정당화 등)은 노동의 비참과 고통을 반복 유발하는 일터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여기서는 금융노동자의 정신질환, 자살을 중심으로 성과주의가 작동하는 바를 살펴본다.

 

1) 본 글은 <기사 분석: 추세>(<사무금융 노동자 업무상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 연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21)를 수정‧편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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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사무금융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온라인 카드뉴스 중 사례모음 이미지. [출처: 사무금융노조 페이스북 페이지]

 

‘여기서는 실적이 곧 인격’

 

성과주의는 금융업의 본질적 특징으로 여겨진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성과주의는 ‘이쪽 일’을 하려면 응당 감내해야 할 것으로 얘기하는 경향이 강했다. 또 다른 경향은 성과 압박과 불안, 우울, 자살 위험 간의 상관성이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제반 문제에 대한 대응을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점이다. 실적 압박, 감내의 태도, 문제의 개별화 메커니즘이 뒤엉킨 노동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20년 경력의 증권노동자는 “영업 직원들이 제정신일 수 없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어마어마하게 심합니다. 실제로 감정의 기복이라는 게, 우리는 속된 말로 ‘뽕 맞는다’라고 하는데요.”라며 고충을 전했다. 업무 스트레스로 호흡 곤란, 가슴 통증, 우울증, 공황장애, 위장장애, 불면증이 상당히 잦고, 이는 강도 높은 실적 요구와 연관성이 높다고 말한다. 성과체제 위의 금융노동자는 언제나 탈락 위험을 안고 사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한다. ‘벼랑 위의 시시포스 노동’처럼 매우 위태로운 고위험 상태에 놓여 있는 모습이다.

특히, ‘밥값’2)과 ‘욕값’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밥값, 욕값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이 ‘이쪽 일’을 하려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정신질환의 정도는 ‘빨간불’ 상태였다. 정신질환 지표는 일반 인구 대비, 여타 업종 대비 유달리 높았다. 그런데 빨간불 상태의 정신건강 문제, 밥값이나 욕값에 대한 높은 스트레스는 업종 전체의 공통적인 특징임에도, 그 고통의 계급정치적 지점은 너무 쉽게 탈정치화된다. 성과주의 프레임은 노동의 고통을 개별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 또한 성과체제가 양산하는 상식화된 감각이다. 이는 금융노동자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금융노동자만의 특수성으로 볼 일이 아니란 이야기다.

실적 쥐어짜기 시스템이 유발하는 문제적 양상은 다양했다. 우선, 자살을 포함한 비극적 사건으로 나타났다. 때로는 직장 내 괴롭힘(체계적으로 생산되는 왕따!)과 뒤엉킨 형태로, 때로는 남성주의적 조직문화(허드렛일을 여성의 것으로 간주!)를 강화하는 형태로 발현되고 있었다. 또한 각종 고위험에 대한 회사의 책임 회피를 정당화하고 개별 노동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심지어 차명계좌나 일임매매 같은 위법적 관행 또한 실적 쥐어짜기식 체제가 방조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양산하는 문제일 수 있다. 이는 성과 압박이 팀별, 지점별로 가중되는 경우에 더 두드러진다. 이런 맥락에서 자살 감정의 만연과 자살 사건의 반복은 어렵지 않게 예감할 수 있는 사회적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신건강 문제가 ‘빨간불’ 상태라 할 정도로 심각함에도, 이에 대한 조직 차원의 대응은 미미하고 마음의 감기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마음이 아픈 상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양상은 꽤나 모호한 경우가 많고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물론 이는 의학적 설명이라기보다는 신체질환에 비해 정신질환이 상대적으로 원인 규명이 불명확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픈 마음 상태를 이야기로 끄집어내는 것이 쉽지 않고 사회적 발언으로 드러내는 건 더 어렵다. 많은 인터뷰 대상자도 “사실 저도”라며 치료 경험을 꺼내놓기는 했지만, 그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가족 또는 동료나 회사에 털어놓지는 않는다고 했다. 물론 스스로도 자신의 정신건강 문제를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특히 남편/아내에게 아픈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굳이 힘든 얘기해서 뭐하냐”는 것이었다. 마음이 아픈 상태를 ‘굳이 들춰낼 필요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말하기도 뭐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여럿이었다.

아픈 마음 상태를 회사에 이야기하는 것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쓸모없는 일’이라고 답했는데, ‘다 그래’, ‘너만 그런 게 아냐’ 심지어 ‘그러면 정신병원 가야지’라고 말하는 분위기의 조직에서는 아픈 마음 상태를 쉽게 털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늘 인력이 부족한 일터에서, 실적 목표치를 개인별, 팀별, 지점별로 푸시하는 연쇄적인 성과 평가의 환경에서, 이쪽 일 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조직문화 속에서, 분 단위 초 단위로 실시간 실적을 체크‧평가하는 곳에서 이런 마음의 아픈 상태가 발화될 여지는 크지 않다. 공감의 여지도 낮다. 정신질환의 구조적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결함으로 치환될 여지가 높아진다. 정신건강 문제가 무능력이나 나약함으로 비치거나 동료에게 미안함을 유발할 수 있기에 각자가 알아서 감당해야 할 것으로 취급되고 만다.

 

2) 영업실적 손익분기점(BEP, break-even point) 급여를 표현하는 증권노동자들의 일상적 표현이다.

 

‘미치도록 단 커피 주세요’

 

개별 노동자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조직적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각자만의 개인화된 요법을 찾아 감내의 한계치를 끌어올리면서 각자도생해 나가게 된다. 조직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집단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천보다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거나 자기만의 신을 섬기는 상황이 연출되는 맥락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계에 자신이 자주 가는 유튜브만을 진리의 근거로 삼게 되는 경향과 유사하다. 일종의 주술적 태도다.

아픈 마음 상태가 문제로 불거졌을 때 그 원인을 조직의 구조적 특징과 연결 짓기가 어려워진다.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를 탓하게 된다. 일상적으로도 그렇게 얘기하고 내버려두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업무 관련 스트레스가 유발한 정신질환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을 원인으로 연결 짓는 관점은 아픈 마음 상태를 구조적인 것과 거리 두게 하고 문제의 화살을 개인에게 향하게 하는 자본의 언어, 비난 문화와 상당히 맞닿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마음이 아픈 상태를 각자 버티고 이겨내야 할 개인 문제로 취급하는 조직 분위기 속에서도 많은 경우는 버틸 수 있는 한계 상황까지 버티려 하고 또는 극복하려 애쓴다. 병원을 찾는 건 감내의 한계치가 다다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잘 버티기/잘 이겨내기’ 위한 자기만의 노하우를 하나씩은 찾는다. 인터뷰이들은 네일아트, 복싱, 미치도록 단 커피 마시기, 진짜 매운 거 먹기, 영어공부, 반신욕, 정말 아주 아주 조용한 곳에서 그냥 쉬기, 힘을 빼고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기, 사우나 가서 지칠 때까지 땀 빼기와 같이 자신만의 노하우를 꺼냈다. 자세한 설명 요청에 이야기를 풀어 나갈 때면 약간은 ‘업된’ 목소리 톤을 보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기만의 노하우는 어쨌든 고위험 환경에서 버텨내기 위한 각자만의 방법이다. 하지만 고위험-고성과 체제 그 자체가 유발하는 문제를 문제 삼는 방법은 아니다. 각자만의 노하우는 지극히 개별적인 것이고 심지어는 주술적인 것이어서 ‘친한’ 동료와의 상담 시 노하우를 건넨다 하더라도 ‘케바케(경우에 따라 다 다르다)’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각자의 노하우로 아픈 마음 상태를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고위험-고성과 일터는 여전히 마음이 아픈 상태에 처한 사람들을 계속 양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픈 마음 상태를 조직의 공통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집단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문제 해결의 첫 출발이다.

아픈 마음/몸 상태를 조직환경적 접근을 통해 드러내는 과정에서 공통적인 유발 요인을 문제제기할 수 있고 해법도 가능하리라 본다. 조직 차원의 집단적 대응이 마련된 가운데 아픈 마음에 대한 폭넓은 공감과 지지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개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담 프로그램 유의 조치는 조직 내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어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문제를 개별화하는 자본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증상에 대한 대처일 뿐 고통의 구조적 원인에까지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지 더 고민해야겠지만, 조직 분위기를 다르게 구축하는 게 필요한데, 이를테면 아픈 마음/몸 상태를 ‘혼자만 끙끙 앓고 애쓰게’ 방치하는 조직이 아니라 충분히 발화되도록 지지하는 조직으로의 전환 말이다.

 

우울증 블랙홀

 

그간 금융노동자의 자살 사건이 적지 않았다. 1990년 이후 2020년까지 지난 30여 년간 미디어에 노출된 자살 사건을 조사했는데, 이 중 금융노동자의 자살 사건은 총 109건이었다. 전체적으로 가파른 증가세(1990년대 22건에서 2000년대 32건, 2010년대 55건)를 보였다. 특히 2010~2013년(6건, 7건, 7건, 14건)과 2004~2005년(10건, 6건)에 사건의 빈도가 유독 높았다. 자살 빈도가 유독 높았던 두 시기를 별도로 분류해 자살의 공통 원인을 추출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일종의 집합적 사건으로서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서다. 우선, 두 시기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감행되던 시기로 인력 감축이나 지점 통폐합을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었다.

자살 사건 가운데 업무 관련성 자살의 비율을 보면, 전체적으로 그 수가 증가하는 경향이다. 여기서 ‘업무 관련성’은 산재 판정 기준에 따른 상당인과관계를 요하는 엄격성보다는 망자의 고통과 문제적 상태를 드러내기 위한 차원에서 폭넓게 산정했다. 기사 분석의 한계상 업무 관련성을 판정하기 위한 근거 자료가 부족하지만, 유가족, 동료, 회사 관계자, 경찰 등 이해관계자의 진술에 나타난 업무 관련성 내용(분실에 대한 변상 책임, 과중한 업무, 인원 감축으로 인한 업무량 증가, 고객 항의로 인한 스트레스, 잦은 전환 배치, 실적 압박)을 보다 적극적으로 포함해 업무 관련성 자살을 카운트했다.

관련 내용으로는 실적 압박과 연관된 것이 많았다. 이를테면, ‘촉박한 개발 일정’, ‘할당 약정 스트레스’, ‘고객과의 금전적 분쟁’, ‘월급값 하라는 인격적 모독’, ‘불완전 판매에 대한 고객 항의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실적 압박 스트레스’, ‘새 부서 배치’, ‘상사 지시의 잘못된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5개월 새 2번 연속된 발령’, ‘지점 통폐합과 영업실적 압박’, ‘영업실적 저조’, ‘BEP 스트레스’, ‘과도한 실적 목표치’와 같은 말이 발견됐다.

자살 기사 가운데 눈에 띄는 건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개인 문제(가족력, 과거 치료력 또는 기질)로 환원하는 표현이 잦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① “고인은 평소 우울증과 비슷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서 자살을 선택한 것 같다”는 진술이다. 개인 과거력은 업무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마찬가지로 ② 고등학교 때 목매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거나 ③ 2년 전부터 우울증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아오던 중이었다거나 ④ 평소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라거나 ⑤ 빈틈을 전혀 안 보이는 완벽주의자였다는 다양한 형태의 개인 과거력이 등장한다.

우울증, 자살 시도 같은 개인 과거력이 등장하는 순간 다른 해석과 판단의 여지는 사라지고 목숨을 끊은 이유가 꽤나 그럴듯하게 설명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과거 치료력으로서의 우울증이 왜 자살 시점에서 악화했는지, 그 연유가 혹시 업무와 연관성은 없는 것은 아닌지, 업무 문제가 아니었다면 과거 치료력이 있더라도 별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아닌지를 따져 묻는 질문이 파고들 자리는 없다. 과거 치료력으로서의 우울증은 자살 사건과 연관된 모든 원인을 빨아들여 날려버린다는 점에서, ‘우울증 블랙홀’이라 부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범죄’나 ‘투자 실패’도 업무와의 연관고리를 주변화 또는 은폐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실적-위법-자살의 연관고리

 

논쟁적인 대목이지만, 금융노동자의 자살 기사에서 실적주의가 유발하는 불법적 관행과 연관된 자살 사건이 많았던 점도 문제로 제기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논쟁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업무 관행과 불법적 요소, 그리고 실적 압박 간의 경계가 모호하고 뒤엉켜 있기는 하나 과연 불법적 지점을 업무 관행이나 실적 압박의 산물로 연결 지어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는 업무 관행을 합법-불법의 잣대로만 재단하기에는 불법이 방조된 채 실적을 채워야 하는 업계 관행이 꽤 빈번하고 또한 여기서 비롯하는 자살이나 문제적 사건도 잦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만 놓고 보면, 금융노동자들은 업계 관행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 인간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개인 비위의 여지가 높은 사람들이란 이야기일 텐데, 물론 그렇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불법적 관행을 조장·유발하는 실적 중심의 조직문화나 경영방식이 그 밑에 깔려 있는 맥락임을 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불법적 관행은 실적 쥐어짜기 시스템이 내모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데 우울증 블랙홀처럼 불법적 요소가 미디어에 노출되는 순간 실적 쥐어짜기 시스템이 유발한 자살의 맥락(불법을 감수하고 실적을 채우려다 문제가 생긴 경우, 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자살 사건)에 대한 모든 판단은 중지되고 개인 비위로 처리되어 버린다.

불법적 관행이 공격적인 영업방식, 실적 쥐어짜기 시스템과 연관되어 있음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인터뷰 가운데, 차명계좌(일명 ‘모찌계좌’)를 활용한 자기매매나 보고 없는 매매, 임의매매, 포괄적 일임매매, 쪼개 팔기, 지인(명의)계약, 작성계약이 사실상 실적 채우기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잦았다. 각종 캠페인과 프로모션이 개인별, 팀별, 지점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때가 되면 실적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매년 상향 조정되는’ ‘달성하기 어려운’ 실적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서, 특히 지점별 실적 경쟁이 치열할 때면 위법적 방법을 선택할 여지가 높아지는데, 자살은 이런 관행이 방조되는 고위험-고성과체제에서 빚어지는 비극이다. 위법적 관행이 만약 문제로 불거졌을 경우,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 사유/결함에 의한 것으로 전가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위법적 관행-손실(스트레스)-자살로 이어지는 사건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순간, 차명계좌 같은 위법적 요소는 더 극화되는 반면, 실적을 채우기 위한 업계 관행은 누락된다. 결국 자살의 원인은 불법한 개인에서 비롯한 것으로 설명된다. 위법적 요소는 더욱 미디어에 노출되고 → 자살은 개인 비위 문제로 귀착되면서 → 위법 관행을 방조하는 실적 쥐어짜기 체제는 재생산되는 상황! 이러한 악순환은 실적 목표치가 높을 경우, 인센티브의 덩어리가 클 경우, 실적을 평가할 시기 즈음 목표치를 밑도는 상황에 있을 때, 캠페인·프로모션 압박이 클 때, 또는 고위험·고수익을 공격적으로 운영하는 조직일 경우, 또는 조직 간 매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때 두드러지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증시 폭락 상황에서 투자 손실에 따른 고객과의 분쟁으로 자살 사건이 발생한 경우 또한 빈번했다. 관련 기사의 전형적인 서사는 투자 손실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극복하지 못해’ 우울증을 겪다 자살한 것으로 설명하는 패턴이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우울증을 겪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표현은 자살 기사의 고정 멘트일 정도다. 여기서도 투자 손실의 책임을 개별 노동자에게 지우는 모습이다. 그 부담과 스트레스는 개별 노동자가 극복하고 이겨야 할 것이 아니라 회사가 관리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 대상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를테면, 자살 사건에 대한 해석 또한 ‘높은 인센티브’를 가져가는 것에 대한 ‘대가’(손실에 따른 고객과의 분쟁도 개별 노동자 선에서 해결해야!)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높은 인센티브에는 손실이나 자살 같은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제에 대한 회사의 책임 회피를 인센티브 장치가 합리화하는 형국이다.

 

욕값도 월급에 포함

 

한편, “욕값도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는 인터뷰가 보험노동자 및 창구상담노동자에게서 상당히 많았다. 어느 구술자에 따르면, VIP를 하루에도 서너 번은 만난다. 여기서 VIP는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진상 고객을 일컫는 은어다. 경력이 오래돼 진상 고객을 대하는 노하우가 생기고 어느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막상 욕을 직접 들을 때면 심장이 내려앉는 건 어쩔 수 없다. 감정 노동이 심한 터라 울화나 공황장애, 호흡 곤란,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동료를 보면 ‘왜 그런지 십분 이해가 된다’는 구술이 기억에 남는다. ‘십분 이해가 된다’는 말은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 업무에서 비롯하는 구조적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여기서 계속 일하려면 어떻게든 ‘네가 감내하고 이겨낼 수밖에 없다’는 경험치에 근거한 자조적인 공감이라고 본다. 연대로 이어지는 공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욕값이 만연한 스트레스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하는 빈도도 적지 않았다. 불가피한 관행으로 여기는 태도가 짙었다. “욕값도 월급에 포함된다”는 표현은 그만큼 ‘이쪽 일’을 하려면 욕먹는 일을 응당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보상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나 고객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의 경우 특히 그러했다. 물론 이런 양가적인 태도가 금융노동자만의 특징은 아니라고 보지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고도로 높은 금융업이라는 환경에서 발현되는 독특성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욕에 대한 회사의 보호 조치를 선제적으로 문제제기하기보다는 욕도 개별 노동자가 감내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는 형국이다. 또한 손실 부담에 대한 고객 불만도 인센티브를 받는 만큼 그것을 감당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러한 인식이 상식화된 맥락에서는 손실·손해 책임에서 비롯한 자살 사건조차 개인 문제로 귀착되고 만다. 여기에서도 자본은 ‘책임 회피 프레임’을 수월하게 유지 재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인식이 상식화된 맥락’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정신적) 고통마저 개별적인 것으로 타자화하는 실적주의 프레임과 거기에 얽혀 있는 일상 감각에 균열을 내는 정치가 필요하다.

회사로부터 ‘출발하는’ 불완전 판매의 경우에도 불거진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개별 노동자가 떠안고 “끙끙 앓아야 한다”.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높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곳에서는 개별 노동자가 느끼는 실적 압박도 크고 만약 문제가 불거졌을 경우에 대한 책임이 개인에게 지워지는 경향이 강하다. ‘고수익 가능성’에 ‘위험의 대가’가 포함되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말이다.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회사와 공격적으로 운영하는 회사 간의 정신질환 유병률의 차이가 어떤지도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추정이긴 하지만 후자가 월등히 높을 것이다. 가설이 경험적 사실로 밝혀진다면 금융노동자의 자살은 개인적 비극의 형태를 띠지만 그것은 방조되거나 조장된 결과로 양산된 부정의다. 문제가 충분히 예상됨에도 방치됨으로써 비극이 유발됐기에! “(자살 사건) 그건 실적 압박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죠”라는 어느 구술자의 강조도 과로죽음의 체계적 방조를 뒷받침한다. 우리가 여기서 참조 삼을 만한 대목은 정신질환 대응에 있어서 개별 노동자 차원의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적 쥐어짜내는’ 조직문화나 공격적인 영업방식을 전환하는 데까지 나가야 금융노동자의 자살 감정, 자살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노동자 상당수가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업무 성과에 대한 압박’을 꼽는다. 여러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바다. 일례로 성과 압박에 대한 부담이 높을수록 자살 위험(자살 생각이나 자살 시도의 위험)이 높았다.3) 금융노동자에게 실적 채우기와 성과 압박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라는 점은 자살 사건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적 중심주의는 동료 관계를 치열한 경쟁 관계로 내몰고 ‘도달할 수 없는’ 실적치에 좌절케 하면서 몸과 마음을 고갈시키는 것이다. 여전히 여러 기업에서 성과 독려, 대책 강구라는 미명 아래 변형된 형태의 저성과자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과 몸을 짓밟는 괴롭힘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실적 쥐어짜기체제를 개선하지 않는 채로 금융노동자의 제 문제에 가시적인 변화를 꾀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노동과정상의 제 문제를 철저히 개별화하고 배제/차별을 대놓고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성과주의 등 일련의 분할 장치/담론에 균열을 내는 정치가 더욱 요구되는 시대다.

 

3) 이유민 외, <사무금융노동자에서 노동 강화 요인으로써의 성과압박과 정신건강 실태>, 《대한직업환경의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2020, 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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