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2] 중증장애인, 새해와 함께 들려온 비명 / 우정규

by 철폐연대 posted Feb 14, 202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오늘, 우리의 투쟁 (2)

 

 

중증장애인, 새해와 함께 들려온 비명

 

 

우정규 •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정책국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2024년 1월 1일 새해가 밝으며 어떤 해고가 도래했습니다. 지금부터 그 해고와 앞으로의 싸움에 대해 짧게나마 소개하고자 합니다.

 

최근 서울시는 지난 4년(2020~2023)간 지원해 왔던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예산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2024년부턴 사업이 연장되지 않으니 기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는 고용계약 연장을 더 기대할 수 없었고, 쓸쓸히 계약만료로 인한 해고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2023년 서울형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대한 공격은 연중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서울시는 차년도 사업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사업 자체를 폐지하였습니다. 이에 2023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던 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과 사업수행 전담인력 50명이 모조리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너무나 조용합니다. 비장애인이 이렇게 공공의 영역에서 대량 해고되어도 이리 고요했을지. 아무튼 고요 속에 죽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끈질기게 저항하길 선택했습니다. 어쩌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투쟁이 ‘해고 투쟁’이란 어떤 역사에 들어선 게 아닌가 합니다. 장애인에게나 비장애인에게나 노동권은 생존권일 텐데, 이렇게 쉽게 사라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4. 본문사진1.png

2023.11.20. ‘해고는 살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권리중심중증장애인일자리 폐지, 최중증장애인 400명 해고 규탄 기자회견.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가치를 놓치고 외면하고 있을까요. 지난 4년간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중증장애인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오늘은 짧게나마 그 의미를 되돌아보려 합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장애인구의 경제활동 지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장애인구는 전체인구 대비 경제활동률과 고용률은 낮으며, 실업률은 높습니다. 그중에서도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률과 고용률은 경증장애인의 절반 수준인데, 이를 전체인구와 비교하면 3분의 1도 되지 않는 낮은 수치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단순하게 장애와 비장애라는 인구특성 경계를 넘어 현재 한국의 장애인구 내에서 중증과 경증의 고용격차가 확연히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최저임금법 제7조 제1호에서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은 최저임금법 적용제외 대상으로 규정하여 사실상 합법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고 있습니다. 2022년을 기준으로 약 1만 명 이상의 장애인이 최저임금적용제외 인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며, 이들은 여전히 월평균 4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언론에서는 전체인구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300만 원을 돌파했다고 알리는 시대에, 누군가는 사회 변두리로 밀려난 채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들 중 95% 이상이 발달장애 유형의 당사자임을 고려할 때 장애 유형 간의 격차와 차별도 존재함을 알리는 증거가 됩니다. 

 

이제는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소득·고용 격차가 아닌, 중증장애와 경증장애의 격차를, 나아가 발달장애와 비발달장애의 권리가 어떤 측면에서 비교되고 연구되어야 하는지 묻고 답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장애인의무고용제도의 우수성을 운운할 때에, 그들은 다수의 장애인 노동자들이 소규모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음을 숨깁니다. 장애인은 대체로 저임금·계약직의 형태로 노동에 참여하고 있고, 오롯이 6% 장애인만이 300인 이상의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음을 모른 체하고 있습니다. 현재 의무고용제도가 장애인의 고용지표에 기여하는 바가 있겠으나, 동시에 고용부담금이라는 돈을 납부하면 그 의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면죄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미 도덕보다 자본이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본에 면죄부를 주었던 사회가, 기존의 능력·재활·생산성의 정책이 휘두르는 잣대가 이미 중증장애인을 사회 변두리로 밀어내었음을 느낍니다. 

 

정부는 최저임금적용제외 노동자의 전환을 지원하는 방식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다시 최저임금적용제외로 재전환될 우려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의 소득·고용 정책의 방향성을 논할 때에 공공 부분이 지원하는 일자리의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성이 중증장애인을 또다시 변두리로 밀어내지 않으려면, 중증장애인 우선고용 지원체계와 수행가능한 맞춤형 직무가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에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더욱이 중요합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그동안 노동영역에서 배제되어, 비경제활동인구로 규정되었던 최중증장애인이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의 삶의 기반들을 새로이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일자리입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가장 취약한 노동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하고자 합니다. 기존의 시장과 기성 장애인 소득·고용 정책이 밀어내었던 최중증장애인을 우선고용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고용률이 낮은 탈시설·최중증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 그리고 장애여성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기준(경합)을 앞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채용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임금노동을 처음 해 보는 경우가 많으며, 임금노동을 해 봤다고 하더라도 최저임금을 받고 일을 해 봤다는 노동자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최중증장애인이 살아가는 지역사회에서 활동지원 및 근로지원 제도를 사용하여 노동할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양질의 일자리입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또 다른 특징은 중증장애인이 수행가능한 직무(권리옹호, 문화예술, 인식개선)를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은 직무를 수행하며 지역사회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지역사회의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고자 노동합니다. 나아가 기존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맺고 있던 관계를 변화시키는 활동을 통해 UN장애인권리협약(CRPD)을 알리고, 이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통해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생산하던 것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어떤 권리였던 셈입니다.

 

실제로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 대한민국의 제1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 견해(Concluding observations on the initial report of the Republic of Korea)에서 “대한민국이 인권의 주체로서 장애인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대하기 위해 인식제고 캠페인을 강화할 것을 권장함. 특히 위원회는 협약의 내용과 목적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공무원·국회의원·언론·일반 대중들에게 관련 교육을 제공할 것을 권고한다”고 명시하였고, 2022년 2·3차 병합보고서에서도 유사하게 권고하였는데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국 정부를 대신해,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직접 나서 왔던 ‘존재증명노동’이었습니다.

 

그러니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기존에 시장으로의 이전을 목표로 하는 재활 중심의 일자리와는 구분될 수밖에 없으며, 그 목표를 달리합니다. 공공영역에서 중증장애인이 일할 권리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며, 처음으로 장애인이 갖는 ‘노동의 권리’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로써 보장하는 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중증장애인에게 일자리 참여를 통한 자립을 도모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정책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에 현재 서울지역을 제외하고 타 지역에서 꾸준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시는 중증장애인을 베어 내길 선택합니다. 앞서 나누었던 것처럼, 2024년 오세훈 서울시장에 의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 폐지로 인해, 한순간에 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이 집단해고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항하기로 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오세훈 서울시장 권리중심공공일자리노동자 400명 해고철회 및 원직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권리중심노동자대책위)’ 출범을 제안하며 시민사회단체에 연대의 힘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대책위는 2024년 1월 24일에 공식적으로 출범하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임기 내도록 싸울 것을 결의하고자 합니다.

 

 

4. 본문사진2.jpg

2024.01.24. 권리중심노동자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은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폭력으로 무산되었으며, 영상활동가 및 기자들도 강제퇴거 당했다. [출처: 레디앙 여미애] 

 

 

마지막으로 저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대책위에 함께할 것을 제안합니다. 단체라면 참여단체로, 개인이라면 연대하는 시민으로 후원을 통해 힘을 보태며 함께합시다. 중증장애인이 밀려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기에, 전장연은 싸우는 중증장애인 해고노동자들의 곁이 될 동지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해고된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이 언젠가는 비명이 아닌 함성을 내지를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십시오. 전장연은 언제나 비명을 지르는 이들 곁에서 함께 싸우겠습니다. 이에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연대로 증명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