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2]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은 정말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는가 / 장귀연

by 철폐연대 posted Feb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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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법률 돋보기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은 정말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는가

 

 

장귀연 • 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 소장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이 근래 많이 사용되고 있다. 서로 현격히 다른 노동조건을 가진 두 종류의 일자리로 노동시장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중구조의 위쪽에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이 있고, 아래쪽에는 중소기업, 하청, 비정규직의 일자리가 있다. 전자는 고임금을 받고 고용불안도 비교적 덜한 반면, 후자는 저임금의 열악한 일자리이다.

 

노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쓰였던 용어지만, 근래에는 특히 정책 입안자들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언론 기사에 자주 등장하고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소위 “노동개혁” 추진을 위해서 전문가 논의체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운영했는데,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에서 첫 번째로 제기한 문제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였다. 그 후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은 정부 브리핑 등에서 수시로 사용되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뒤를 이어 2023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상생임금위원회’는 아예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논의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 장관이나 차관이 기자 간담회를 할 때마다 거의 항상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들먹이곤 한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을 노조 탄압의 구실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정규직-노조를 가진 노동자들은 “기득권”으로, 중소하청-비정규직-무노조의 노동자들은 “노동약자”라고 부른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우위에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이용하여 높은 임금을 고수하고 고용 유연화를 막기 때문에, 이중구조의 열위에 있는 무노조의 노동약자들이 저임금과 불안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득권 세력인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노동약자를 위하는 것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우고 있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절 메시지는 “기득권을 뿌리 뽑고” “노동약자를 보호”하여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타파”하겠다는 것이었다.

 

한편 노동계는 물론 정부의 노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노조 탓이라는 프레임에 반대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5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이 공동주최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과 대책> 토론회에서는 이중구조가 노조 효과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하청기업 사이 지불 능력의 격차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념에 대해서는 노동 연구자, 정부정책 입안자, 심지어 노동운동 활동가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고임금의 대기업 정규직과 그것이 아닌 일자리의 격차가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이 뚜렷하다고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노동시장 일자리와 노동자들을 이렇게 이분화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분석일까?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을 노조 탄압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는 논리는 물론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개념 자체가 그러한 프레임을 야기할 소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는 지난 12월 21일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의 허구를 밝히다>라는 쟁점 토론회를 열었다. 여기서 발표한 두 명 발제자의 발제 내용을 요약해서 싣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담론 비판

– 김철식 (노동권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노동시장이 임금, 고용안정 등 노동조건에서 질적 차이가 있는 두 개의 노동시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현상을 말한다. 이 용어는 2012년 발간되어 한국어로도 번역된 <이중화의 시대>라는 책에서 비롯하여 유행하기 시작했다.1) 이 책에서 ‘이중화’는 내부자와 외부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특징으로 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칭한다. 내부자란 일반적으로 내부노동시장을 의미하는데, 대기업 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내부노동시장과 그 외부의 노동시장이 따로 존재한다는 이중노동시장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내부자와 외부자가 서로 다른 노동시장으로 분할되고,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사회적 보호(복지) 제도도 분리되어 적용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분열된다고 본다. 이중화란 내부자와 외부자의 차등적 처우가 훨씬 더 확연해진다는 의미에서 기존의 제도적 이중구조가 심화되고 또 이전에는 내부자로 취급되던 집단이 외부자로 밀려난다는 점에서 이중구조가 확대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현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담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2022년 6월 노동시장 개혁 방향을 발표하고 7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하여 12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적시한 권고문이 발표되었으며, 2023년에는 2월 ‘상생임금위원회’와 9월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를 발족시키는 등, 정부는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으로 상정하였다. 그와 동시에 이 이중구조의 원인을 노-노 간 착취구조로 간주하면서 노조 혐오와 노-노 갈라치기를 위한 담론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3년 고용노동부 업무계획을 보면, “공정과 법치의 노동개혁 원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첫 번째 목표를 노동개혁 완수, 두 번째 목표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으로 두었다. 노동개혁 완수란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한다는 것으로, 특히 노조의 비리를 뿌리 뽑고 불법·부당한 관행을 제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노조 대신 상생협력의 산업·노동 생태계를 조성하여 두 번째 목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경영계는 기본적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을 고용경직성(노동시장 경직성)에서 찾으면서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1980년대 중반 이후 노동시장 경직성에 대한 비판 담론이 확산되었는데, 노동시장 경직성이 고용(실업률)에 영향을 미치므로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OECD는 일련의 보고서들에서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틀 내에서 노동시장에서 충분한 유연성을 달성”2)할 필요가 있으며 “(고용보호법률이) 직간접적으로 사용자의 노동자 고용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고용수준에 영향을 미친다”3)라고 하면서, “사용자가 더 기꺼이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 정규계약에 대한 의무적 보호는 상대적으로 ‘완화’될 필요가 있다”4)고 역설해 왔다. 그러나 사실 노동시장 경직성과 실업률 간의 관계에 대한 실증적 증거는 불명확하다. 몇몇 연구들은 유연성 증가가 고용성과를 높인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설득력 있는 경험적 결과가 없음을 지적하면서 고용보호 완화가 오히려 고용성과를 더 악화시킨 경우도 많이 발생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5)

 

그러나 OECD를 비롯한 노동경제학의 주류 담론은 노동시장 경직성을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불안정노동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높은 실업률은 임금의 하방경직성 때문이고, 임금의 하방경직성의 원인은 내부자에 기인한다는 논리이다. 말하자면 일자리를 가진 내부자와 노조가 임금, 노동시장, 노동조직, 노동이동에 필요한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노동시장 경직성, 고실업률, 일자리 창출 부족의 주요 요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이러한 담론은 더욱 강화되었다. 당시 OECD는 “고용보호법률이 보호받는 노동자(내부자)와 구직자 및 임시노동자(외부자) 간의 이중주의(dualism)을 강화함으로써 경제 전반의 고용을 줄일 수 있다”6)거나 상용직과 임시직 간의 고용보호법률 적용의 엄격성 차이가 청년 및 자질이 빈약한 사람들의 임시고용 증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7)고 주장하였다. 이중구조 원인으로 노동시장 경직성을 지적하면서 고용보호법률을 약화시킬 필요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노자대립보다는 노동 내부집단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내부자를 이중화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고실업률은 내부자 및 노조가 자기 일자리 보호를 위해 변화에 저항하는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고용보호 규제를 타파하여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한국의 경우,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내부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 노동자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 설립,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노동기본권 확보에서 상당한 성과를 획득했고, 기업별 노조체제 하에서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에서부터 내부노동시장을 형성했다. 이러한 노동자 투쟁에 대한 대응으로 자본은 1990년대 신경영전략을 전개하였다. 노동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동대체적 자동화를 추진하여 자동화가 급진전되었다. 그렇다고 실업률이 높아지지는 않았는데, 자동화로 노동을 대체하는 것 이상으로 생산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또 자본은 차츰 비정규직과 외주하청을 늘리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접어들면서 비정규직이 크게 확산되었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본격적으로 진전됨에 따라,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유연안정성 담론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정책·제도를 통해 노동자의 전반적인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은 다양한 형식의 불안정노동 활용을 확대하면서 제도적으로 보장된 노동권을 회피할 수 있었다. 수출부문 대기업들은 고도성장을 이루었는데, 이 과정에서 신규투자를 억제하면서 자동화, 외주화, 비정규직화를 통해 매출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따라 대기업 원청이 하청으로 모순을 전가하는 구조가 강화되고 노동의 불안정화가 심화되었다.

 

이 시기 노동의 상황을 보면, 내부노동시장의 축소, 불안정화, 사회적 고립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연이은 구조조정으로 내부노동시장이 크게 축소되었다. 기업 내부에서도 노동시장이 분절되어 대기업에서조차 불안정노동이 확산되었다. 이처럼 고용불안이 심해지자 노동자와 노조는 방어적 대응을 하게 되어 조합원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을 보면 고용불안은 노동시장 경직성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원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고용불안이 심해지자 흔들리는 내부노동시장을 지키려 하는 노동자와 노동자의 방어적 대응이 나타나 내부노동시장을 사수할 수 있었던 곳에서는 경직된 노동시장처럼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불안정노동이 확산되어 가는 와중에서 내부노동시장을 지켜 낸 노동자와 노조는 귀족노동자/귀족노조라고 매도되었다. 거대한 불안정노동의 바다에 대기업 내부노동시장이 섬처럼 떠 있는 양상이었고, 이 섬은 다른 노동자집단으로부터 고립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노조의 쇠퇴와 노조 권력의 약화가 수반되었다. 노조를 만들어 낼 여유도 갖지 못한 불안정노동이 증가함에 따라 노조 조직률이 하락하고 미조직 노동자가 증가하였다.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가 적어진 만큼 노조의 대표성도 떨어졌다. 노조 조직들이 자기 사업장에서 자본의 공격을 막아 내기에 급급하고 조합원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을 우선시하게 되면서 노조들도 개별화되었고 초기업적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대기업 내부노동시장이 다른 불안정노동으로부터 고립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받는 상황에서 노동시장 경직성과 내부자 권력을 실업과 고용불안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담론이 확산되었다. 즉 “정규직 인력의 유연한 조정이 어렵기 때문에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꺼린다”거나 “대기업 정규직의 과도한 임금과 고용보호의 비용이 중소하청기업, 비정규직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자본은 이러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장해 왔다.

 

이처럼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이 전개되어 온 과정을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고용보호를 약화시키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맥락을 일단 제쳐두더라도, 그렇다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이론적으로는 적확한 개념인가? 언뜻 보기에는 사회적 현상의 구조를 잘 드러낸 것 같지만, 사실 이론적 개념으로서도 문제가 적지 않다. 그 문제점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중구조 개념은 노동시장에 대한 설명적 개념이 아니라 묘사적이고 현상기술적 개념에 불과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권 확장으로 형성된 제도적 보호기제를 우회하고 회피하려는 자본의 대응과 그를 둘러싼 동학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제도적 보호를 회피하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가 진행되었고, 제도적 보호를 받는 층위가 축소되고 고립화되었으며, 제도적 권리로부터 배제된 노동이 확대되었다. 즉 일차적으로 자본이 노동권과 제도적 보호를 무력화하기 위해 불안정한 노동형태들을 확산시켰고, 그 가운데 노조의 힘 등을 통해 그나마 그 공격을 방어해 내어 일부 내부노동시장이 남아 있는 양상이 바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말이 가리키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념은 이러한 과정과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결과인 겉모습만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중구조 개념이 묘사적이라고 했지만, 사실 오늘날의 노동시장을 제대로 묘사해 주지도 못한다. 현재 노동시장의 종합적 모습을 포괄적으로 기술해 보면, 두 가지 방향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하나는 직접적·안정적 고용관계가 축소되고 고용관계가 비가시화되는 것이다. 직접적 고용과 정규직 고용이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단지 비정규직이나 중소하청기업 노동자로 환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노동형태가 등장하여 고용형식이 모호해지게 되었다. 특수고용이나 플랫폼노동 등 노동권의 보호로부터 근본적으로 배제되는 수많은 불안정노동이 확장되었다. 대기업 정규직은 아주 소수로서 진입구가 폐쇄된 상태로 점차 규모가 축소되어 섬처럼 고립되어 있으며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고립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자본의 포섭 영역이 고용관계 외부에서도 확장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노자관계 외부에 존재하던 영역들이 내부로 편입되었다. 소매나 음식점 등 전통적인 자영업 영역에서 프랜차이즈가 확산되면서 자영업자들이 자본의 통제하에 들어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 현재의 노동시장은 무수한 분할과 비가시적 노자관계 영역의 확장이라는 특징을 띠게 되었다. 비정규직의 다양화, 개별화, 차별과 분할 양상의 변화, 동일노동의 차별을 직무위계 확대로 정당화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현재 노동시장은 수많은 분할선들이 종횡으로 엮어 그어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또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프랜차이즈 가맹 등으로 자본이 통제 영역은 확장하되 책임은 축소·회피하는 방법들이 개발되었고, 이러한 영역에서는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은폐되고 비가시화되고 있다. 분할선들이 무수하게 그어지고 은폐된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지금의 노동시장 모습을 단지 이중구조로 파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즉, 이중구조라는 말로는 실제의 노동시장 양상을 제대로 묘사하는 것조차 되지 못한다.

 

셋째, 이중구조 개념은 오늘날 노동시장 모순을 노동시장 내 노동자 간의 관계 문제로 축소한다. 분석의 초점을 노동시장 내부에 국한하고 있는데, 노동시장에는 내부자와 외부자인 노동자들만 존재하고, 노동시장의 모순을 노동자들 중 내부자와 외부자로의 분할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들의 이중화와 불평등 심화의 주요 원인을 노동자들 내부의 차별과 분할에서 찾으며, 내부자로 규정되는 노동자들을 불평등의 주요 원인 제공자로 간주한다. 그러나 노동시장 내/외부자의 분할의 주요 요인은 내부자인 노동자들이라기보다 노동시장 내부자와 노동시장 내부자와 사용자 간의 담합(계급교차 연합)이다. 즉 일차적으로 노동을 불안정화하려고 하는 것은 사용자이며, 이때 노동조합이든 핵심인력으로서의 위치든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 집단이 사용자와의 암묵적인 담합을 통해 내부자로 남고 그렇지 못한 노동자 집단이 외부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사용자에 대한 분석을 배제한 채 노동시장 내 노동자 집단만을 내부자/외부자라는 틀을 가지고 이중구조로 보는 것은 총체적인 분석을 가로막는다. 또한 이중구조론에서는 외부자의 불안정성에만 초점을 두고 내부자에 대한 분석은 부재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부자 또한 불안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즉 내부자와 외부자 간 격차가 심해지지만 동시에 내외부자를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중구조 개념은 이와 같은 경향을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념은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있어서 노동시장 외적 요인을 포함한 주요한 구조적 원인과 변화를 간과 혹은 은폐하는 효과를 보이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개념 대신, 현실의 노동시장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대안적 개념으로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노동의 불안정화는 “금융화와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하는 자본축적양식의 변화가 국가와 자본, 노동 간 세력관계를 매개로 임노동관계의 각각의 계기인 노동과정, 노동력재생산,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임노동자의 삶과 노동, 생활전반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현상”8)으로 정의할 수 있다. 불안정성은 다차원적인 성격을 가진다. 불확실성(degree of certainty), 일에 대한 통제력(control to work), 법과 조직 및 관행에 의한 보호, 소득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불안정성을 분석할 수 있다.9) 현실에서 불안정화는 노동시장 전 영역에서 균등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열악하고 불안정한 부분이 더욱 열악하게 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불안정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동시장 내 노동자 간 격차도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특정 영역이나 특정 집단의 특정한 불안정성이 다른 영역 및 집단의 다른 불안정성을 유발하거나 심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동 불안정화의 다차원성과 메커니즘을 분석할 때 현재 노동시장의 작동 방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중구조라는 단순한 개념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론과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현실

–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이중구조론이라는 말이 예전부터 있었던 용어라고 하지만, 나는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 들었다. 그만큼 지금 노동시장 이중구조 담론이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이전에 조선소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했던 용어들이 있다. ‘갑질’, ‘원하청 불공정 거래’, ‘비정규직 차별’, ‘다단계 하청’ 등의 말을 주로 사용했다. 보다시피 용어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문제를 만들어 낸 주체로 ‘원청’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느샌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 말에는 착취의 주체인 자본은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만 남는다. 문제의 원인을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리고 노동자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은 책임의 주체를 감춰 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은 부당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을 드러냈다. 많은 시민들이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에 놀라고 파업에 공감했다. 그해 7월 윤석열 대통령은 파업에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는 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구성된 것이 ‘조선업 상생협의체’이다. 이 상생협의체는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리고 마치 이것이 모범인 양, 2023년 고용노동부 계획을 보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타 산업과 업종에 전파시키겠다고 명시하였고, 실제로 2023년 말경 자동차산업 등에서 이를 본뜬 상생협의체를 만들었다. 그런데 상생협의체는 이른바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방법으로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배제하고 오직 원하청 사용자들만으로 구성되었다.

 

2023년 2월 조선업 상생협의체에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상생협약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전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변화가 전혀 없기 때문에 관심도 갖지 않는다. 상생협약은 그냥 ‘껌 포장지’일 뿐이다. 실제로 상생협약 내용 자체 내에서도 상호 충돌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하청노동자 저임금 개선을 위해 적정 기성금을 보장하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저임금을 유지 강화하는 이주노동자 고용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또 재하도급(물량팀) 사용을 최소화하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물량팀의 다른 이름인 프로젝트 협력사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중구조를 개선한다는 상생협의체에 대해서 얘기하느니 차라리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 자본주의는 보편적으로 재벌(독점자본)의 하청구조와 비정규직 고용을 통한 착취 체제로 유지된다. 이는 조선업뿐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철강, 전자 등 모든 산업에서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조선업은 상대적으로 힘들고 위험한 노동이고, 다단계 하청구조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어 더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 노동자들은 매우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고 또 고도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저임금 구조에 갇혀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원청이 하청에 주는 기성금이 낮기 때문이다. 기성금이란 공사 과정에서 완성된 정도에 따라 원청에서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금액인데, 단가, 시수, 능률의 3단 콤보로 결정된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모두 원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데, 그중 어느 한 가지에 장난을 치면 기성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단가가 올라도 시수를 깎거나 능률을 낮게 책정해 기성금을 지급하면 하청업체가 실제 지급받는 기성금은 줄어들게 된다. 기성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니 하청에서는 임금체불과 업체폐업도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떼인 임금을 국가가 주는 대지급금으로 받기도 하지만, 하청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일 뿐 아니라 원청이 지급해야 하는 임금을 국가가 대신 지급하는 셈이니 손실의 사회화가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주노동자 고용을 확대하면서, 노동시장 외부에서 상대적으로 더 임금이 낮은 노동자를 대량 유입하여 저임금을 유지·강화하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를 사용하면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나 정주할 권리 등 노동권은커녕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하지 않으면서 노동만 착취하려는 정책이 문제다. 정주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조선소에서 필요로 하는 숙련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유지할 수가 있는가? 어렵다고 본다. 정주노동자는 저임금 구조에 가두고 이주노동자는 기본권도 부여하지 않는 노동 착취 강화이며 산업의 미래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정책에 다름 아니다.

 

조선업에서는 다단계 하청고용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상용직 하청노동자의 저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이주노동자 또는 물량팀과 아웃소싱을 고용해 충원하는 것이다. 상용직을 최소화하고 다단계 하청고용의 증감으로 호황기와 불황기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최대화한다. 또는 이를 더욱 강화하여 전체 고용을 다단계 하청고용과 이주노동자로 채우려고 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조선업 호황기를 맞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종합하면 정부와 자본은 ‘하청노동자 저임금’과 ‘다단계 하청고용’이라는 기본 구조를 전혀 바꾸지 않으려 하고 있다.

 

어떤 계기가 없다면 암울한 전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 계기는 소위 이중구조를 개선한다는 원하청 상생협의체가 아니다. 상생협의체는 기존 현실을 유지·강화할 뿐이며, 실제로 상생협약이 체결된 지 10개월이 지났음에도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은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오직 유일한 방법은 하청노동조합이 교섭과 투쟁을 통해 원(하)청 자본과의 노사관계를 제도화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안 된다면 하청노동자에게 조선소는 그야말로 무간지옥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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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mmenegger et al.(ed.), The Age of Dualiza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한국어 번역, 이중화의 시대, 한국노동연구원, 2012.

2) OECD, Labour Market Policies for the 1990s, 1990, p.21

3) 앞의 보고서 p.23

4) OECD, OECD Jobs Study, 1994, p.34

5) 전병유, 유연안전성 담론과 전략에 대한 비판적 고찰, 산업노동연구 21권1호, 2016; Méda, Dominique, Deconstructing Flexicurity and Developing Alternative Approaches: Towards New Concepts and Approaches for Employment and Social Policy, Routledge, 2014.

6) OECD, Employment Outlook 1999, 1999, p.68

7) OECD, Employment Outlook 2004, 2004, p.67

8) 불안정노동연구모임,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위기: 불안정노동 연구, 문화과학사, 2000.

9) 이정아·김수현, 정규직의 허구적 안정성과 청년의 불안정성, 경제와사회 114호, 2017; Vosko, Precarious Employment: Understanding Labour Market Insecurity in Canada, McGill-Queen’s Press, 2006; Kalleberg and Vallas(eds.), Precarious Work. Emerald Publishing Limited,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