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12] 가전제품 판매노동자의 노동실태와 권리 보장 방안 / 엄진령

by 철폐연대 posted Dec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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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포커스

 

 

가전제품 판매노동자의

노동실태와 권리 보장 방안

 

 

엄진령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조사를 통해 확인된 노동조건 실태

 

㈜하이프라자, 삼성전자판매㈜는 각 LG전자와 삼성전자의 판매자회사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에게는 베스트샵, 삼성디지털프라자라는 매장의 이름이 더 익숙하다. 이런 이름의 모든 매장이 제조업체의 판매자회사인 것은 아니지만, 전자제품 시장에서 오프라인상으로는 판매자회사들이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노동자들은 대부분 자회사 소속의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삼성전자판매㈜의 경우 일부 단시간 노동자들이 있지만 주된 인력은 정규직, 남성, 청년, 판매직군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판매자회사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에서 총 427명의 노동자들의 응답을 확보했으며, 이 가운데 여성은 14.5%로 소수였고, 평균연령은 36세로 20~30대 노동자들이 73.1%를 차지하고 있었다. 청년층이 다수인 만큼 근속기간 역시 짧게 나타났는데, 설문조사 참여자들은 1~5년 차가 45.4%로 가장 많았고, 6~10년 차가 32.1%로 두 번째로 높았다.

 

근속기간이 단기간인 노동자들, 청년층이 많은 특성은 가전제품 제조업체 판매자회사가 짧게 벌고 탈출해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20, 30대 노동자들이 비슷한 연령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세전 기준 연봉 평균은 6,224만 원가량으로 조사되었다. 임금은 높은 반면 장시간 노동, 높은 업무 스트레스 등이 회사에서의 장기적인 전망을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그러나 한편 임금의 안정성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달은 평균 559만 원인 반면, 가장 낮은 달은 평균 296만 원으로 떨어진다. 고정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반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성과급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처럼 낮은 급여의 안정성, 그리고 최근 낮아지기 시작한 성과급으로 인해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안정적인 고정급 비중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늘어나고 있다.

 

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9시간 49분, 주 평균 49시간 47분으로 상당히 길다. 출퇴근 전후의 무료노동, 점심시간도 없이 업무를 지속하는 경우도 잦았다. 판매실적에 따른 성과급과 매장에 머무는 만큼 판매실적을 올릴 가능성이 더 생긴다는 점은 휴게시간과 노동시간의 경계를 없애고, 잠깐의 휴식에도 눈치를 보게 만든다. 판매가 집중되는 주말은 당연히 모든 노동자들이 근무를 해야 하는 날로 인식되고 있고, 가장 많은 판매실적을 낼 수 있는 날이기에 교대로 주말 휴일을 갖는다거나 하는 상상도 그리 가능하지는 않았다. 휴일에도 일에 신경을 쓰거나, 매장에 출근을 하는 경우도 상당수였고, 심지어 휴가지에서 고객전화응대가 계속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겪어 본 일이었다.

 

이 같은 장시간의 노동을 대부분 노동자들이 ‘서서’ 일한다. 입구에서의 고객맞이부터 판매가 이루어지는 동안 노동자들이 편히 앉을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판매계약을 작성하는 시간뿐이다. 노동자들은 오히려 입구에서 대기(입구대기/컨시어지)하는 시간을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이 정도는 관리자인 지점장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데, 회사는 대기 시에 ‘서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지시를 명확히 폐지하지 않는다. 점차 완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착석대기’를 원칙화하는 방침을 세우지 않기에, 여전히 서서 하는 노동은 일상적인 업무의 형태로 존재한다. 40%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하지정맥류와 같은 질환에 시달리는 이유이다. 그 외에도 노동자들은 다양한 업무 관련 질환을 갖고 있었다. 불규칙한 식사와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불량, 위염 등 소화질환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이 절반을 넘는 53.6%였고, 전신 피로를 경험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무려 55.5%에 달했다. 불안감, 우울감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다수로, 불안감은 44.7%, 우울감은 39.6%의 노동자들이 그 증상을 호소했다.

 

이 같은 건강 실태는 높은 업무 스트레스, 서서 하는 노동, 고객과의 긴장관계, 관리자의 강한 통제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업무 스트레스와 관련해서 모든 스트레스 항목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보다 ‘매우 그렇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난 점이 매우 특징적인데, 이처럼 강하게 표출되는 부정적 의견은 그간 누적되어 온 불만의 표출로 짐작된다. 특히 성과달성 압박, 인사평가, 수직적인 조직문화, 미래불안감, 판매정책 변화, 고객갑질로 인한 스트레스 항목에서는 ‘매우 그렇다’는 응답을 한 노동자들이 절반을 넘었고, 성과달성 압박, 미래불안감, 판매정책의 경우에는 60%를 넘는 노동자들이 매우 심각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업무 스트레스 외에 노동자들이 가장 불만을 표하는 사항은 회사의 일방적인 인사권 행사였다. 지점의 위치가 판매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에 어떤 점포에 배치되느냐가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그러나 이 이동은 매우 일방적이고, 또 급격하게 이루어져 노동자가 대비할 수 없게 만든다. 이동 과정에서 노동자가 겪게 되는 업무상의 불이익이나 생활의 불편 등이 고려되는 경우는 드물고, 배치의 기준 또한 불명확하다. 인사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인사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결국 ‘사내정치’로 표현되는 줄타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만든다. 평가를 객관화하고, 수용도를 높이는 것, 인사권 행사에서 불이익을 줄이는 등의 개선이 불가능하지 않으나, 오랜 기간 노동자들을 억누르는 것으로 수월하게 회사를 운영해 왔던 수직적 강압적 조직문화 속에서 이런 노력은 전혀 강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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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4. “전 직원 트럭시위 돌입 기자회견” LG전자 베스트샵 판매노동자들이 처우개선과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트럭시위를 진행했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가전제품 판매자회사의 노동통제 양상과 노동자 대응

 

판매자회사 노동자들의 이 같은 노동실태의 배경에는 제조업체의 ‘자회사’라는 지위에서 기인하는 특징들이 자리한다. LG전자, 삼성전자와 같은 가전제품 제조업체는 다양한 유통채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한다. 90년대 이전 소규모 가전제품 ‘대리점’을 통해 전자제품을 유통하던 시절, 가전제품 제조업체들은 이 대리점에 다양한 혜택을 주면서 자사 제품만을 취급하도록 했는데, 이 혜택에 대한 의존은 대리점들이 제조업체의 폐쇄적 유통망으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통시장이 개방되고, 해외 브랜드 유입, 대형 유통자본의 진입 등이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가전제품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자회사’ 방식의 가전제품 판매유통채널이 규모를 키우게 된다. 이 ‘판매자회사’를 통해 LG전자, 삼성전자는 유통시장 개방의 흐름에서 국내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하게 지켜냈다.

 

이 같은 제조업체의 시장 대응 과정에서 ‘판매자회사’가 가진 독특한 지위는 그 운용의 목적으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제조업체들이 판매자회사를 운영하는 이유는 신제품 판매와 가격 방어, 그리고 매출의 확대이다. 제조업체들은 하이마트와 같은 양판점을 통해서도 판매를 하지만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양판점에 유리한 조건으로 들여놓기는 어렵다. 제조업체는 100% 지분을 가진 종속 자회사인 판매자회사를 통해 신제품의 초기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제품이 판매자회사와 양판점 등에서 동시에 판매되기에 양판점을 통한 저가화를 일정 선에서 방어하기 위해서 판매자회사는 동일 제품 대비 어떤 매장보다 높은 가격대를 유지한다. 이 같은 판매 전략을 유지하는 것은 판매자회사가 순이익을 창출하는 것보다 매출, 즉 시장 점유율을 보다 중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유리하지 않은 판매 조건 속에서 실적을 창출해야 하는 몫은 오로지 노동자들에게 주어진다. 판매자회사는 제조업체에 종속된 자회사이기에 원하는 제품을 중심으로 매장을 구성할 수도 없고, 모회사인 제조업체와 가격협상을 할 수도 없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들을 최대한 압박해 매출을 올리는 것뿐이다.

 

즉 판매자회사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노동통제는 판매자회사가 취할 수 있는 좁은 전략 범위 내에서 가장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인 셈이다. 이로 인해 판매자회사의 노동자 관리전략은 매우 강압적이고, 직접적인 통제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특징으로 첫째, 기업의 통제요소들은 소비자가 구매에 접근하는 과정에서부터 판매 후 관리까지 전 노동과정에 걸쳐 작동된다. 둘째, 서비스노동이라는 점으로 인해 감정노동을 강화하는 장치들이 다양하게 활용되는데, 감정노동을 강화하는 통제요소들 역시도 이데올로기적 통제보다는 직접적으로 노동자의 행동을 통제하고, 압박하여 실적을 추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셋째, 회사가 제공하는 유인은 매우 단순하다. 판매 실적에 대한 성과임금이 거의 유일한 보상이며, 판매를 잘하는 것이 곧 ‘판매사원’이라는 정체성과 만족감을 충족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 요소를 작동시키는 것 또한 직접적인 통제로 나타나는데, 저성과자 제도를 통해 기업이 제시한 목표치 이상의 실적 달성을 강제하고, 판매 부진자에 대해서는 코너투어 시 모욕감을 주거나, 부진자 카톡방으로 불러들이는 등 보다 직접적인 성과 독촉이 이루어진다.

 

통제의 세부 형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먼저, 노동자들의 성과 목표는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되고 할당되며, 이를 임금과 연계하여 실적 달성을 압박한다. 이는 다만 제품의 매출만이 아니라 제휴카드 사용, 상조상품 판매, 멤버십 앱 설치, 가망고객 유치 등 제품 판매 외의 부분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저성과자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해고 과정에 이르는 절차를 두기도 하고, 저성과자 교육의 명목으로 수치심을 주어 성과압박을 더욱 강화한다. 석회, 코너투어/RP(판매 과정을 시연하는 것), 무실적 카톡방 등 성과 독촉 도구는 다양하게 동원되며, 이 과정에서 인권 침해적인 통제 양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감정노동을 강화하는 고객만족도 조사, VOC 등은 노동자의 노동을 판매 전후의 과정으로 확장해 강도를 높이고, 고객맞이에서의 입구대기 혹은 컨시어지 등으로 부르는 서서 하는 노동이 강요된다. 미스터리 쇼퍼는 노동과정 전반에서 지정된 행위의 수행을 감시하고 평가하며, 그 외 코너투어/RP 역시 노동자의 행동을 통제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그리고 이 같은 배경에는 군대식 조직문화로 표현되는 일방적인 내리꽂기 방식의 소통,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인 인사관리 등이 존재한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통제가 실적이라는 결과 도출을 위해 가장 편리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자들이 이 같은 관리 통제에 대응하는 가장 소극적인 방법은 스트레스에 대한 외면과 회피이다.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가장 적극적인 전략은 회사에서의 탈출이지만, 업계 내에서 가장 나은 임금 수준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기업 밖으로의 탈출이 그리 성공적인 방안으로 인식되지는 않고 있다. 집단적인 대응 양상도 있었다. 노동자들 간의 지나친 경쟁 격화를 막기 위해 대형 매장에서는 순번제를 통해 판매 상담을 진행하기도 하고, 미스터리 쇼퍼가 확인되는 경우 인근 지점과 정보를 공유하여 무력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노동조합의 결성은 회사의 통제에 맞선 가장 적극적인 집단적 대응이다. 노동자들의 개별적 대응은 종종 실패할 수밖에 없고,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실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점포 입지나 그 외 환경요인은 노동자들이 제어할 수 없는 요인들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판매 실적이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고, 계속된 판매 압박과 강압적 통제에 시달려야 한다. 그에 대응해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결성을 선택했고, 그 활동을 통해 안정적인 처우를 확보하고, 일방적인 인사이동에 대응하며, 인권이 보장되는 일터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고 있다.

 

일터의 변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과제

 

전방위적인 노동자 통제, 강압적이며 단순하고 직접적인 노동통제 양식이 주를 이루고, 이러한 관리·통제는 인권 침해적 성격을 여러 면에서 드러내고 있었지만, 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전까지는 변화하기 힘든 기업의 문화로 인식되거나, 판매노동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노동조합은 노동조건의 개선뿐만 아니라 조직문화의 전반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책임을 또한 중요하게 안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노동조합을 통해 변화시켜 나가야 할 과제가 많다. 특히 현재의 자회사 구조는 청년세대의 ‘현장 정착성’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청년세대가 정착하여 안정성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기업이 되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어떤 노동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노동조합의 이후 활동의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노동조건 개선과 관련해서는 우선 ‘권리’로서 적정한 노동시간 통제와 쉴 권리의 확보가 필요하다. 하루 노동시간의 길이를 단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휴식시간 및 휴식공간의 확보, 퇴근 후, 휴일이나 휴가 중 노동으로부터 완전한 자유의 확보 등이 중요한 과제이다. 이와 더불어 성과와 무관하게 최소한의 안정적인 임금 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가전제품 판매노동자들의 성과급을 제외한 고정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그치는데, 실적 중심의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 축소로 귀결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인사평가 및 인사이동 등에 대한 부분도 개선이 필요하다. 인사평가 기준, 평가의 과정과 내용에 투명성을 더해 회사의 일방적인 권한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개입하고 노동자가 대응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인사권에서 사용자의 재량권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노동자에게 노동환경 및 근무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노사 간의 교섭에서 그 기준 등을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프지 않을 권리, 산재로부터의 보호도 중요한 과제이다. 산재의 예방은 일하고 있는 환경을 제대로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에 작업장에 대한 위험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며, 해당 일터의 위험과 사고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노동자 및 사용자에게 사업장 내 사고 및 질병의 위험을 알리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노동조건 변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동조합이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판매자회사는 각 4,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큰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지점 단위로는 10인 미만, 많아야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이나 마찬가지다. 그 속에서는 노동조합보다 지점장의 권한이 더 크게 작용하기 십상이다. 그만큼 노동조합의 활동을 현장에 가깝게 배치하고, 현장에서 사안이 발생할 경우 즉시 이를 수렴하고 대응하는 현장 대응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활동들이 축적될 때 노동조합이 현장의 대안으로서 좀 더 크게 노동자들에게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 대한 노동조합의 접근은 보다 세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란 현재에 머무르거나, 이 기업을 탈출하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선택지에 불과할 수 있다. 일터의 대안은 노동조합일 수 있으나, 개별의 삶의 대안으로서 가장 유력한 방안은 여전히 노동조합이 아니라 해당 기업에서의 이탈 혹은 탈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노조 운영의 주체로 서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함을 인지한 상태에서의 장기적인 활동 전망을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부침에 대해서는 산별노조 차원의 세심한 지원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별노조는 개별 기업 조직화에서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직화로 나아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판매자회사의 노동실태는 제조업체의 판매유통전략으로부터 기인되는 것으로,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판매자회사를 넘어선 제조업체의 생산 이후 유통 흐름 전반에 대한 조직화가 필요하다. 양판점에 대한 조직화 및 조직된 노조와의 연계, 개인대리점과의 연계 등이 이후 제조업체의 유통 전략에 대한 대응지점 마련을 위해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처럼 조직화의 시야를 확장하고 가전판매 시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영향력 확대로 나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제조업체를 상대로 한 노동조합의 활동을 요구한다. 판매자회사와의 노사관계를 넘어 제조업체를 상대로 한 요구를 정선하는 것부터 접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판촉 전략에 대한 사항, 경영성과급에 대한 사항 등이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판매를 전후한 유통 과정에서 배송, 설치 및 수리 등으로 분화된 다른 자회사와 연결된 구조 속에서 판매자회사의 지위를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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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2년 7월 발표된 “가전제품 제조업체 판매자회사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및 조직화 연구”(노동권연구소, 금속노조 발주)의 결과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