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보통의 인권

 

문재인 정부 5년, 인권 현실을 돌아보다

119인의 활동가가 주목하는 인권의 장면/사건

 

대용 •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2017년 4월 <평등과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이하 인권운동더하기)가 출범했다. 기존 인권단체들의 상설 연대체였던 인권단체연석회의가 형식적 무게감은 내려놓고 인권운동의 교류와 공동의 지반을 만들어 나가자는 논의 속에서 전환-재출범한 것이다. 이렇게 인권운동더하기로 전환하며 첫 번째로 벌인 사업은 ‘광장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문재인 정권 출범, 인권운동의 전망과 과제’라는 이름의 토론회였다. 이후 7월에는 ‘인권과 존엄이 기본이 되는 나라를 위한 새 정부 인권과제 제안’을 모아내 발표했고, 9월에는 ‘인권운동,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한걸음 더하기 전략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인권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유독 컸기 때문이기보다는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의 힘으로 정권을 잡은 정부가 자임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정권을 잡았다고 자연스럽게 인권과제 실현에 앞장서지 않을 권력집단을 향해 목소리 높이고 싸워 나가야 할 인권운동의 과제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정권도, 인권운동더하기도 5년의 시간을 지나 보냈다.

 

인권운동더하기의 몫

 

2021년 12월, 20대 대선을 3개월 앞두고 인권운동더하기는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촛불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여전한 보수양당 구도에서부터 출발하는 20대 대선이다. 여기에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들의 정치 행보는 한국 사회의 가치와 비전을 미사여구로 사용하던 기존 정치판의 구도도 따라가지 못한 채 혐오선동과 네거티브 발언만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정치 현실이 한국 사회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인권운동이 토론하고, 모아냈던 그 많은 인권과제가 어떤 현실에 놓여 있는지 확인하고 현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인권운동더하기의 책임이자 몫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권활동가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구하고자 설문조사 “문재인 정부 인권 현실, 100인의 활동가에게 묻는다”는 기획되었다. ‘국가가 시민 위에 군림하지 않는 사회’, ‘더 많은 평등으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생명과 노동의 존엄에 기초한 사회’라는 이름으로 대주제를 분류하고 53개의 문재인 정부 인권의 사건/장면을 선정했다. 2017년 인권운동더하기가 모아냈던 인권과제를 토대로 인권 현실을 드러내는 사건/장면을 추려내서 활동가들에게 다시 물은 것이다. 과연 한국 사회 인권 현실이 2017년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는지 말이다. 2017년 제안했던 인권과제를 그대로 다시 평가하지 않고 인권의 사건/장면을 질문한 이유는 일부 과제가 제도화, 정책화 되었다는 평가만으로는 지금의 인권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5년 문재인 정부 시기의 사건/장면을 돌아보며 지금 인권운동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공동의 과제로 삼고 나아갈 것인지 확인해 나가고자 한 것이다.

 

7 보통의 인권_01.jpg

 

2021.12.09. 119인의 인권활동가들이 선정한 ‘인권의 장면’ 발표 기자회견 모습. [출처: 인권운동더하기]

 

119인의 인권활동가가 주목한 인권의 사건과 장면

 

‘국가가 시민 위에 군림하지 않는 사회’에서 인권활동가들이 주요하게 선정한 인권의 사건/장면은 코로나 핑계로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감시가 제도화되는 장면과 남북관계 전환과 정전을 이야기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언급조차 못 하는 정부의 모순적 태도를 꼬집었다. 모두 전통적인 인권의 과제로 이미 문재인 대통령도 정부 출범 이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 왔던 것들이었다. 특히,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온 국가보안법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부터 폐지를 단언하며 민주주의 국가로서 최소한의 절차적 진전을 기대했던 영역이었다. 하지만 당선과 함께 실종된 폐지 의지는 권력을 쥔 정치세력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여기에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의 힘으로 선출된 정권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는커녕 코로나19라는 핑계를 찾아냄과 동시에 집회를 전면 금지시키는 모습 또한 권리 보장은 정부의 선의에 기댈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 이외에도 권력기구 개편을 이야기했지만 누구를 위한 권력기구 개편이었는지 실감할 수 없는 개혁의 과정, 감시와 개인정보 판매에 앞장서는 정부의 모습, 엄벌주의가 강화되는 장면 등을 인권활동가들은 주목했다.

 

‘더 많은 평등으로 더 많은 민주주의를’에서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흐름이 어디에 멈춰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 응답이었다. 인권활동가들은 성소수자, 여성, 난민, 청소년 등이 겪는 다양한 권리침해의 현실을 인권의 장면으로 선택했다. 이 응답의 결과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보호 대책, 지원정책만을 언급하고(혹은 그조차도 하지 않으며) 총체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역할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는 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했다. 무엇보다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싸움이 이 분류 안에서 인권의 장면으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무책임이 한국 사회 인권 현실을 어디서 멈춰 세웠는지를 인권홛동가들이 지목한 것이다. 또한, 소수자 문제를 각기 다른 소수자 영역의 싸움이 아니라 연결된 싸움으로 인식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싸움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의 의지가 투영된 결과일 것이었다.

 

‘생명과 노동의 존엄에 기초한 사회’에서는 다른 항목에 비해 다양한 선택지에 인권활동가들 응답이 고르게 분포되었지만, 공통 키워드는 노동자의 죽음이었다. 생명과 안전을 이야기하는 문재인 정부였지만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에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고, 현장실습생 안전대책을 내놓았지만 죽음이 반복되는 결과는 막지 못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사회를 그대로 둔 채, 노동자의 권리는 신장되지 못한 채,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말뿐인 대책이 결국 누구의 생명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현장의 죽음만이 아니다. 코로나19 방역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대책 없이 시설을 폐쇄해 시설에 갇힌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장면 등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5년 내내 ‘생명과 안전’을 알맹이 없이 미사여구처럼 사용하며 정작 막을 수 있는 죽음을 방치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싸움을 보이지 않도록 만든 책임에서도 드러났고, 인권활동가들은 이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고 주목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설문조사에서 인권활동가들이 53개 선택지 외에 주목해야 하는 인권 현실을 꼼꼼하게 적어준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시간 군사기지 확장에 맞서 싸우는 성주와 강정의 투쟁 장면과 해외 무기 수출을 확장하고 이스라엘과 FTA를 체결하며 팔레스타인 침공을 묵인하는 모습까지 문재인 정부가 평화를 외면하는 모습에 주목했다. 또한, 존재하지만 등장하지 못하는 이주 아동의 인권 문제나 코로나19 사망자에 대한 추모, 성소수자의 연이은 죽음,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의 죽음과 철거 투쟁 과정의 문제도 함께 살펴봐야 할 인권의 장면으로 지목했다. 나눔의 집 인권 침해 문제와 청소년 주거권과 시설의 현실도 꼼꼼하게 짚어주었으며,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 반대에 맞선 싸움, 태아 산재 인정을 위한 싸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전파매개행위죄 폐지를 위한 싸움에도 함께 살펴볼 인권의 사건/장면으로 언급했다.

설문을 위해 준비한 인권의 53개의 사건/장면은 특정한 사건/장면으로 지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선택지에 포함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교차하는 사건/장면을 하나의 선택지로 좁히면서 제외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설문에 응답한 인권활동가들이 함께 주목해 봐야 할 인권의 사건/장면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해 주었기 때문에 인권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들을 살필 수 있었다.

 

이제는 싸움을 시작할 때다

 

119명의 인권활동가의 설문 응답을 모아두고 보면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다. 인권활동가들은 53개의 선택지 중 단 하나의 선택지도 빠짐없이 인권 현실을 드러내는 사건/장면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그저 많은 활동가가 응답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랜 시간 주장해 온 인권과제부터 새롭게 등장한 이슈까지 놓치지 않고 주목하며 인권 현실의 총체를 바꿔내기 위한 활동가들의 ‘운동’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운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권 현실을 모아낸 설문 결과만으로 인권운동의 과제가 도출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하는 활동가들의 응답을 모아둔 결과는 인권운동이 마주하고 돌파해야 하는 과제를 도출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체적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싸움이다. 혐오를 선동하는 현실 정치권에 더 이상 인권과제를 제안하고 실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119명의 인권활동가가 진단한 인권 현실을 손에 쥐고 인권운동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고 길을 찾아 나설 때다. 차별금지법 만들려면 사회적 합의부터 만들어 오라는 정치권에 “우리가 사회다”라고 외쳐 왔듯, 지금 인권운동이 찾아 나설 길은 제도를 넘어 세상을 바꿔내는 운동을 조직하는 일이다. 우리의 삶과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체제를 겨냥하고, 지금과 같은 제도정치에 우리의 인권을 내맡길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데 이번 설문조사가 조그만 디딤돌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많은 분들이 함께 살펴봐 주시길 요청드린다.

 

*설문결과 살펴보기

http://m.site.naver.com/0TZHT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