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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라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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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8개월째, 만학의 길

박현진 (철폐연대 회원)

 

그동안 하던 심리상담 일을 작년에 그만두고, 올해 한 일이 공부다. 늘그막에 무슨 공부냐 하면, 컴퓨터 공부다. 컴맹 탈출을 겸해서 컴퓨터그래픽 공부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다. 컴퓨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은 한글 타자 치기, 엑셀 더하기 빼기, 조금의 ppt 등을 적당히 하는 정도다. 활동가로 일할 때 집회, 토론회 등의 포스터나 어떤 공지를 잘 만들어진 jpg파일로 볼 때면 부러움과 함께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늘 신기했다. 왜냐하면 그걸 만든 활동가에게 물어보면 학원이나 학교에서 따로 배우지 않고 그냥 프로그램을 좀 만지다 보면 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안 배우고 그게 가능한지, 납득이 안 되잖아ㅠ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컴퓨터 능력을 좀 키워볼 마음으로, 가능하다면 전직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폴리텍대학 콘텐츠디자인 과정을 다니게 되었다. 폴리텍대학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과정인데 1년 과정이라고 홍보를 하지만 방학 빼면 실제 교육기간은 8개월 정도다. 3월에 시작해서 12월 초까지 다니면 마무리가 된다.

원고청탁서를 받았는데, 제목을 보고는 많이 오글거렸다. 제목이 ‘숨을 고르며, 미래를 준비하는 날들의 이야기’였다. 숨은 별로 차지 않았고ㅋㅋ, 미래를 준비하는 건 맞는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기에는 뭔가 쑥스럽고 해서, 컴퓨터그래픽 공부를 하면서 보낸 8개월 동안 배운 것과 느낀 걸 적어볼까 한다.

 

3월에 처음 수업을 듣기 시작했을 때로 돌아가 보면, 30명이 좀 안 되는 사람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데 40대 중반인 나는 연장자에 들어갔다. 고3 위탁생(실업계, 마이스터고 등이 아닌 인문계고 3학년 학생들에게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학업 대신 전문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훈련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뒤에서 좀 더 얘기하겠지만 현실은 글쎄…….)들이 1/3 정도 있고, 나를 포함한 40대 2명, 그리고는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사람들이었다.

1학기 때는 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자인 수업 위주로 진행되었다. 그래도 포토샵은 이름 정도는 들어봤는데 일러스트,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름부터가 처음이었다. 분명 한국어로 수업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섞여있어서 놀랍고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는 것도 어려웠지만, 주말을 쉬고 월요일에 등교하면 지난주에 배운 것이 리셋 되어서 다시 처음부터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미지가 희한하게 변하고 신기한 기능들을 배우는 건 재밌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재미 때문에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던 거 같다.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그렇게 수업을 하다가 5월 말에 컴퓨터그래픽스 운용기능사 자격증 실기시험을 치게 되었다. 필기야 어찌되었든 외우면 되는데, 실기시험은 과제로 주어지는 포스터를 일러스트, 포토샵, 인디자인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4시간 동안 완성해서 출력해야 한다. 운전면허시험 다음으로 보는 국가고시 실기시험!ㅎㅎ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시험이라 그런지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사람은 없었고, 교복 입고 시험 보러 온 학생들도 있었는데, 간만에 느끼는 긴장감이랄까……. 즐거운 경험이었다. 시험 시간 20분을 남기고 감독관이 “시험 종료 20분 남았습니다” 라고 하는데, 작업하던 손이 덜덜 떨렸다. 다행히 4시간 안에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교복 입고 온 학생들은 어찌나 손이 빠르던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완성해서 제출하고는 나가는 것이다.

 

내가 받은 시험과제는 ‘한가위의 날’ 행사 포스터였다. 주어진 이미지(복주머니, 태극문양, 허수아비 등)을 일러스트에서 그리고, 포토샵에서 사진이나 일러스트에서 작업한 이미지를 합성해서 jpg파일로 저장하고, 그 저장한 jpg파일을 인디자인에 가져와서 포스터에 있는 글자들을 정리해서 완성해야 한다. 이걸 4시간을 꽉 채워서 겨우 제출했는데, 2시간도 안 되어서 나가는 학생들을 보니까 넘나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걸 2시간이 안 되는 시간에 만들 수 있는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한 달 정도 지나서 합격 발표가 났는데, 합격이었다. 그것도 90점이라는 놀라운 점수로~~~.

컴퓨터그래픽스기능사 자격증은 다행히 한 번에 붙었는데, 웹디자인기능사 자격증은 실기시험 한 번 떨어지고, 12월에 다시 쳐야 한다. 웹디자인은 포토샵, 일러스트 작업이 약간 있고, 코딩을 해서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만드는 건데, 이게 다 영어로 해야 하는 공부인 데다 컴퓨터 언어라서 엄청 머리 아파하면서 공부 중이다. 공부하면서 괜스레 철폐연대 홈페이지 만들어준 동지가 엄청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수능 다음날이다. 함께 공부한 고3 위탁생 중에서도 수능을 본 친구가 있다. 나머지 친구들은 수시로 대입 원서를 냈다. 고3 학생들은 직업훈련을 위해서 왔다기보다는 수험공부를 피해서(?) 온 느낌이었다.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많고 그림실력이 있는 친구들인데, 이 과정을 통해서 실력이 늘었다고 느끼는 친구는 없는 것 같았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오는 사람들과 함께 수업이 진행되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말이다.

고3 위탁생들은 이 훈련과정을 잘 마쳐야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다시 본교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만들어야 할 서류가 많고, 이미 형성된 반에 들어가는 건 전학 가는 기분일 거고, 그래서 불편해도 참을 수밖에 없게 된다. 고등학교에서 폴리텍대학으로 졸업사진 찍는 날에 학생을 보내달라고 했다는데,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졸업사진 찍으러 오라는데, 고3 담임 선생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저는 몇 반인지도 모르는데 안가고 싶어요.” 올해 일은 아닌데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고3 학생은 졸업사진 찍으러 가고 싶었는데, 본교에서 면학분위기 해친다고 오지 말라고 해서 아이가 울었다는…….

 

좀 친해지고 나서 고3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학생들이 느낀 불편함이 많았다. 교수들끼리 의사소통해서 처리해야 할 문제로 학생을 연구실로 불러서 야단치고, 과제를 늦게라도 제출하기 위해서 연구실이 어디인지 물었더니 “그걸 왜 나한테 묻냐? 그런 건 과대에게 물어야지” 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수업 중에 해야 할 과제를 마치고 개인작업을 하는데 다른 거 한다고 여러 차례 꼬집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고 싶다면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요. 일만 커지잖아요” 라는 답을 들었다.

해당 교수에게 사과를 요구했더니 사과는 없고 “학생들의 실력이 부족해서” 라는 딴말만 해댔다. 그래서 다른 교수들에게 학생들이 당한 이야기를 했더니 해당 교수에게 주의를 주겠다거나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하겠다거나 하는 답은 못 듣고, “앞으로는 우리가 잘 살피겠다”는 답을 듣는 것으로 끝났다. 전문가·교수라는 집단이 가진 잘난 척, 이기심을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서 화는 났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우리 이야기를 들어줘서, 대신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폴리텍대학 법인 이사장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이석행이 올해 취임했다. 수업교과에 노동인권교육을 넣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인권교육 특강 내지는 근로기준법 특강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근데 학교 홍보한다고 서포터즈 만들고 노란 비행기 날리고 있길래 어이가 없어서 아는 사람들에게 이석행이 이러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답변이 거의 비슷했다. “그럴 줄 몰랐냐?” 였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했던 사람이 교육기관의 장이 되면 노동인권교육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이게 너무 큰 바람인가? 노동자들이 낸 조합비로 월급 받아 생활하는 사람이 그 노동자들을 대표한다면서 위원장이라는 명함 가지고 다니다가 다른 자리로 가는 게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왜 민주노총에 위원장이 필요하지? 그냥 다 같이 활동가 하면서 맡은 역할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갔는데…… 내가 공부하는 기관의 장으로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와서 들었던 생각이다.

 

2 작업한 책표지 [출처 필자].jpg

작업한 책표지 [출처: 필자]

 

컴퓨터그래픽, 웹디자인 공부는 여전히 나에게 미지의 세계다. 분명히 배웠는데 다시 봐도 모르겠고, 어떨 때는 이 기능이 먹혔는데 어떨 때는 전혀 안 되고.ㅠㅠ 오늘 수업 때 내년 달력 만드는 걸 했는데, 1학기 때 컴퓨터그래픽 실기시험 준비하면서 연습했던 기능들이 머리에서 사라지고 없어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역시나 새로운 분야의 공부는 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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