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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노동자를 위한 전략과 실천 

 

일터의 ‘행간’을 읽으며 행동하는 간호사들의 이야기

이민화 (행동하는 간호사회,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간호사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나이팅게일, 백의의 천사, 등불을 든 천사. 간호사가 되기 위해 뛰어드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마도 그들은 생명을 존중하고 아픈 사람들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살아있는 나이팅게일 같은 사람일 것 같다. 하지만 많은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김빠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요.”, “집안에 간호사 한 명쯤 있으면 좋다며 부모님이 권유하셔서요.”

 

대중적으로 알려진 간호사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체를 들여다보면 예쁜 포장지에 담긴 썩은 음식을 보는 느낌이 든다. 채용사이트에 자주 뜨는 회사는 피해야 한다는 말처럼 취업률이 높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만큼 이직률이 높다는 것이다. 신규 간호사 1년 내 이직률이 33.9%나 된다는 통계자료(병원간호사회, 2016년)를 보면 그런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호사 1인의 주당 초과노동 시간은 평균 6.9시간(의료연대본부, 2017년),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물을 마시지 않다 보니 방광염에 걸리는 간호사, 수면부족‧위장장애‧우울증 등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이 많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많은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1.JPG

2018.5.12. ‘간호사, 침묵을 깨다’ 집회 [출처: 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1. 상상과는 다른 간호사의 현실

 

“간호사로 일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눌 만큼 지난 1년 동안 간호사 관련 사건은 쉴 틈 없이 터져 나왔다. 한림대성심병원의 선정적인 장기자랑, 서울대병원의 첫 월급 36만 원, 밀양 세종병원 화재, 서울아산병원 故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신생아 사망사건, 강원대병원 수술실 간호사 성희롱 사건, 간호대학의 비인권적 관장실습 문제, 의료진 폭행사건, 그리고 최근 서울의료원 故 서지윤 간호사의 죽음까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 터질 일들이 하나씩 터져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희망적인 생각을 하자면 똑같은 사건에 입을 꾹 다물었던 간호사들이 침묵을 깨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겠다.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를 보며, 故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보며,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사망사건을 보며 일반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겠지만 간호사들은 다 이렇게 반응한다. “드디어 터질 게 터졌구나”, “나도 신규 때 그렇게 죽었을지도(혹은 환자를 죽였을지도) 몰라.” 도대체 병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간호사의 가장 큰 문제는 인력문제이다. OECD Health data에 따르면 간호사 1명당 담당 환자 수는 미국 5명, 일본 7명인데 반해 한국은 15~20명이라고 한다. 사람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간호사에게 매순간 2~3배의 일을 시키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화장실에 가지 않고 밥을 먹지 않고 시간외 근무를 하며 어떻게든 그 일들을 하려고 애쓰지만 돌아오는 것은 환자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무기력함이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부족한 인력은 사람의 목숨마저 빼앗을 수 있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가 1명 더 늘어날 때 수술환자의 사망 위험이 7%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유럽 9개국에서의 간호사 대 환자 비율, 간호사 교육수준, 병원 사망률: 후향적 관찰연구, 2014년).

 

2018년 2월 사망한 서울아산병원 故 박선욱 간호사는 ‘12년 연속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병원’이라 불리는 서울아산병원에 2017년 9월 내과계 중환자실 신규간호사로 입사하였다. 보통 외국의 경우 특수파트는 경력 간호사 채용이 기본이지만 불가피하게 신규간호사를 채용해야 할 경우 6개월에서 1년간의 교육기간을 거친다고 한다. 그리고 교육 중의 신규간호사는 정규인력으로 포함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는 서울아산병원에서 故 박선욱 간호사가 교육받은 기간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간호사를 병원 현장으로 떠미는 것이다. 교육기간이 끝나고 독립한 故 박선욱 간호사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떠맡게 되어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 체위 변경을 시키다 환자의 배액관을 망가트린 실수를 했는데 이 일로 소송을 당할까봐 심한 불안감을 느꼈고 며칠이 지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간호사의 열악한 인력문제는 최악의 경우 이렇게 한 간호사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혹은 인력문제가 원인이 되어 ‘태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안에서 피해자로 존재하던 간호사들은 버티며 일했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어있음을 떠올리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간호사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진실을 말할 수 없게 만든다. 간호사를 적게 고용한 병원은 자연스럽게 이득을 취하게 되고, 중증환자들은 양질의 간호를 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하게 된다. 생명이 존중되어야 할 병원에서 간호사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명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시작

 

열악한 간호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노동조합에 가입해 바꿔나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교육의 부재로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고 막상 가입하려고 해도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도 많다. 대형병원의 노동조합은 탄압이 심하고 지방의 작은 병원으로 갈수록 노동조합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간호사들은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얘기를 나눠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든 타개해보자고 모인 것이 바로 ‘행동하는 간호사회’다. 시작은 87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선배간호사들이었다.

 

30년 전, 뜨거웠던 그 시절 1987년, 전국적으로 노동조합이 생겨나면서 병원에도 노동조합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처우를 개선하고 ‘참간호’를 실현하기 위해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산하 간호사위원회 준비위원회가 생겨났다. 간호사위원회 준비위원회는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약 8년 동안 활동하며 이 기간 동안 소식지 <참간호>를 48호까지 만들어냈다. 그러나 각자의 사업장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느라, 또는 병원이 폐업되면서 이직하느라, 뿔뿔이 흩어지고 간호사위원회는 준비위원회인 채로 활동을 멈추었다.

그 당시 활동했던 사람들 일부가 2017년에 다시 모인 것이다. 그리고 최근 간호사 관련 이슈가 물밀 듯이 터져 나온 것이 계기가 되어 젊은 세대들도 모였다.

 

간호사 개인이 건강하게 일터에서 일할 수 있으려면 근무환경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리고 일터를 그렇게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지 등을 간호사·간호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행동하자는 의미에서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로 이름 지었다. 여기에서 ‘건강권’은 간호사 건강권과 간호사가 간호할 사람, 즉 모든 사람의 건강권을 의미한다.

 

 

3.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활동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크게 간호사와 간호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 문제는 간호학생 시절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간호사뿐만 아니라 간호학생들과 함께 행동하는 간호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간호학생은 4년의 교육을 받고 국가고시를 치른 후 대부분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된다. 학생 시절부터 간호학생답게, 예비간호사답게 행동할 것을 지시받으며 환자에게 봉사하며 헌신적인 간호사가 되도록 교육받는다. 그리고 선배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게, 후배들의 앞길을 막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이런 과정을 겪다보면 학생들의 인권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지난해 9월 간호대학에서 이루어져왔던 반인권적인 관장실습이 그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국 각지의 간호사와 간호학생들이 모여 온·오프라인으로 소통하며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고 있다. 정기적인 활동으로는 한 달에 한 번 이상의 모임과 토론을 가지며 토론 후 온라인 소식지 <행간을 읽다>를 발행하고 있다. 그리고 ‘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코드그린 북토크> 등의 외부세미나를 주최하기도 했다. 면접갑질, 간호대학의 관장실습, PA간호사 문제, 故 서지윤 간호사의 죽음 등에 대한 입장서를 냈으며 작년 11월에는 전국 203개 간호대학에 간호학생들을 위한 간호사 현실을 담은 유인물을 전달하였다.

 

간호사 1인이 담당해야 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은 현실 속에서, 환자를 위해 일하는 간호사는 정작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기 어렵다.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간호사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근무환경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필요한 실천을 할 것이다. 병원은 환자의 안전과 회복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 속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을 강요받기도 한다.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병원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만드는 방법, 간호사들의 요구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건강권을 실현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필요한 실천을 앞으로도 꾸준히 할 것이다.

 

 

* 행동하는 간호사회 공식 SNS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actnownurse

-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actnow_nurse

- 트위터 : https://www.twitter.com/actnown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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