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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이 계속되기 위해

 

권미정 • 김용균재단 사무처장, 철폐연대 집행위원

 

 

 

한동안 어느 신문을 펼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생소하면서 긴 법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중대재해를 일으키는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그 의미는 알지만 법 이름이 어려워서인지 길어서인지 자주 “중대기업처벌법” 또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 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2006년부터 시작되어, 2012년부터는 입법발의 운동을 시작했다. 이 활동들이 이어져 2020년에 집중되었고, 2020년의 끝과 2021년의 시작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이 있었다.

그 결과 지난 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이름으로 길게는 14년, 짧게는 1년간의 투쟁이 한 매듭을 짓게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33일간 단식농성, 산재피해가족 두 분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이 29일간 진행한 단식투쟁도 함께 끝났다. 같이 단식투쟁을 했던 두 동지는 며칠 앞서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단식을 끝냈다.

2차 단식단으로 국회정문 앞 농성을 했던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위, 노동조합, 정치단체, 산재재난참사 피해자들의 투쟁도 8일 밤 기자회견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2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투쟁01.jpg

 

2020.12.28.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입법 촉구 산재재난참사 유가족 및 시민사회 단식 농성 돌입 기자회견’ 모습. [출처: 철폐연대]

 

법은 우리의 힘으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싸우는 기간 중에도 중대재해 소식은 계속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많은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법이 만들어지길 바랐다. ‘만능해결책’이 될 수 없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걸 알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이 현재보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줄 거라 믿었다.

법은 국회에서 제정되지만 그 법을 만드는 힘은 우리들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시민 우리들. 우리가 주체라고 생각했다. 국회에 법 제정을 그냥 맡기고 쳐다보지는 않기로 했다.

만들어지는 법의 내용도 중요하고, 그 과정을 누가 주도하는가도 중요했다.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는 법은 우리가 원하는 내용이 되기도 힘들겠지만,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기 어려움을 잘 안다.

그래서 우리는 대중적으로 법 제정 투쟁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20년에 처음 시행되는 10만 국민동의 청원운동을 했다.

청원 글을 올리고 나서 매일매일 몇 명이 청원했다고 확인하고 함께 해달라고 요청하고 주변에 알렸다. 피켓을 들고 나가서 시민들을 만나고 QR코드를 찍어서 인증하는 운동도 했다. 그리고 10만 국민동의청원운동은 성공했다.

이후 그 운동의 주체들은 법사위원들에게 ‘문자폭탄’을 날리기도 하고 응원의 문자를 보내주기도 했고, 촛불을 함께 들고 피켓을 들고 외쳤다.

그래서 그 긴 시간의 단식투쟁도 가능했고 농성자들은 추위도 견딜 수 있었다. 여러 곳에서 보내온 핫팩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응원이 되었고,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 국회 앞을 찾아오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법 제정을 촉구하는 2,400배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동지들도 있었다. 민주당사 앞 피켓팅도 있었고 민주당사 점거농성도 있었다. 각자 할 수 있는 바를 하려고 노력하고 함께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되었고, 이어서 1월 26일 공표되어 2022년 1월 27일부터 적용된다. 그러나 50인 미만 사업장, 공사금액 50억 미만의 건설업은 3년 동안 적용이 유예되었다. 또 5인 미만 사업장,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에 따른 소상공인의 사업 또는 사업장,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영업장 중 바닥면적 1천 제곱미터 미만인 경우는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기업과 정부가 노동자-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요구했는데

 

노동자ㆍ시민이 덜 죽고 다치지 않도록 하는 법을 만들자 했는데 규모에 따라, 업종에 따라 예외가 만들어졌다. 안전에 차별을 두는 법은 생명을 차별하는 법이다. 가장 많이 산재사망이 생기는 곳에는 법을 적용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중대재해가 계속 되어도 사업주의 지급능력이 이유가 되어 책임질 주체가 없어졌다. 시민재해의 경우도 바닥면적에 따라, 사업장 규모에 따라, 업종에 따라 사업주의 책임을 묻지 못하는 예외들이 만들어졌고, 공무원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한 법안이 되었다.

원청 지시대로 일하다가 몸이 조각난 고 김용균이 있고, 살인적인 업무강도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했던 고 이한빛이 있고, 혼자 작업하다 파쇄기에 빨려 들어간 고 김재순이 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인이 된 고 김동준, 3일 일하고 추락사했던 고 김태규도 있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익스프레스 화재사고는 하청작업을 주면서 안전장치도 하지 않아 발생했다. 원청-하청-재하청으로 일하던 화물노동자가 발전소에서 추락해, 물체에 깔려 사망한 사고도 계속 발생했다.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기업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들이 매일 7명이다. 죽지 않았을 뿐 중대재해로 달라진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도 많다.

시민재해라고 다르지 않다.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정부는 관리감독의 책임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참사들이다. 그런데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여전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1만여 명이 죽거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지만, 2021년 1월 12일 진행된 1심 재판에서 관련 기업 전직 임원들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22명이 실종된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에 정부는 침몰원인 조사도 유해수습도 하지 않고 있으며 선사는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허가가 안 되는 위험지역에 행정관청이 허가를 내줬고 춘천 인하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갔다가 산사태로 매몰되었다. 302명의 희생자를 낸 삼풍백화점 참사,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로 숨진 192명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산재·재난은 의도적 범죄이자 경영책임자·정부의 책임

 

중대재해처벌법은 의미 있는 조항도 있지만, 권리의 배제와 차별을 담고 있어서 과연 제정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게 하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은 수많은 한계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산재와 시민재해는 기업과 정부가 노동자와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라는 우리의 주장이 법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우리들만의 주장이 아니라 국민의 70% 이상이 지지하고 동의하는 노동자-시민의 요구임을 확인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드는 과정은 산업재해와 시민재해의 근원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둘러싼 투쟁이었다. 우리가 쓰는 일상용품을 만드는 과정에 다치고 죽은 이들, 내가 쓰는 핸드폰에 삶이 부서진 노동자들을 보았다. 기업은 돈을 벌었는데 제품을 만든 노동자와 제품을 사용한 시민들은 일상이 파괴되는 과정을 보았다. 이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고 돌아가는지를 다시 확인하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자본과 노동자ㆍ시민의 싸움이 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성, 처벌의 의미, 책임의 대상, 처벌의 수위, 적용 대상, 법 제정의 실효성 등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노동자ㆍ시민의 판정승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투쟁이 승리했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가 투쟁의 주체들을 모아내는 것을 기획하여 투쟁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노동자·시민이 함께 주체로 나서며, 이후 법 적용 투쟁을 위해서라도 노동자들, 특히 조직된 노동자들이 주체로 나서는 법 제정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다. 대중적인 법 제정 투쟁이 되어야 한다는 고민에 코로나19 상황에 맞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려 고민했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2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투쟁02.jpg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국회 앞 농성장에 설치된 상징조형물 모습. [출처: 권미정]

 

아쉬움 그리고 남는 고민

 

그러나 개인적 평가를 한다면 만족스럽게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 우리(<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진보운동단위)는 코로나19 상황에 맞는 대중적 투쟁전술을 고민하지만, 뾰족한 새로운 방안을 찾지 못했다. 과연 코로나19 상황이 말하는 ‘모이지 말고 대중적으로’라는 방안이 무엇인지, 우리만 그 방법에 익숙해지지 않은 것인지 고민된다.

주체적 측면으로는 조직된 노동자들, 산재피해자들, 재난피해자들,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각자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총괄적으로 기획하고 배치하지는 못했다는 게 큰 아쉬움이다. 할 수 있는 활동,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싸우는 주체들이 누구이고 그들은 무엇을 요구하는가에 따라 투쟁의 그림이 달라지곤 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충분히 주체들의 목소리를 내도록 기획하지 못했고, 충분히 조직되지 못한 주체들의 존재조건이 원인이기도 하다.

아직 법 시행까지는 11개월 남았다.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고 앞으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다시 분석하고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곳곳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에 우리가 어떻게 공동으로 대응할 것인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중대재해에 대한 전국적 공동대응. 공동대응을 하자는 것에 반대하는 단위는 없을 텐데, 공동대응 체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는 사실 고민이 된다. 상상해보자면,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지역에서 듣게 되거나 언론을 통해 확인하게 되면 전국으로 흩어져 존재하는 단위들이 각자의 역량을 투여하여 역할을 분담해야 할 것이다. 현장으로 달려가고, 확인해야 할 사실들을 여러 갈래로 확인하고, 피해자와 가족·동료들을 만나고, 노동부와 사측을 만나고 압박하고, 요구를 정리하고 언론작업을 하고…. 진행 순서는 달라도 공동대응을 한다는 전제는 참여하는 단위가 서로 역량을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중심을 잡는 단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 준비와 결의 없이 전국적 공동대응이 가능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어느 정도로 가능할까. 지역별로는 중심에 서서 집중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위가 있을까. 그런 단위가 없다면 전국적 공동대응을 어떤 수위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필요성과 현실성 사이에서 어떤 준비와 결의가 필요할까.

 

이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자신의 역할을 하고 해산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 전국적 공동대응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답을 내야 한다. 그리고 대중적 법 제정 운동으로 고민한 ‘노동자ㆍ시민이 주체되기’가 이번 기회에 더 확장되면 좋겠다.

그래서 법 제ㆍ개정의 결과가 법안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주체 확대와 강화를 통해, 운동의 확대라는 결과물로 남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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