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9] '전화 받는 기계'에서 '당당한 노동자'로! 새내기 노조의 당찬 포부 / 석소연

by 철폐연대 posted Sep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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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전화 받는 기계’에서 ‘당당한 노동자’로! 새내기 노조의 당찬 포부

 

석소연 • 공공운수노조 정부민원안내콜센터분회 분회장

 

 

 

다시는 콜센터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 다짐하고, 4~5년을 근무했던 콜센터를 떠났다.

작은 가게라도 ‘내 가게’를 운영해보겠다며 1년 반 정도 개인 가게도 운영해보고, 3D 프린팅 자격증 공부도 해보았지만, 특수형태 업무인 강사의 대우도 녹록치 않았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찾게 된 일은 역시나 콜센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해야 할까? 나이 탓이라고 해야 할까? 구직 사이트에서 콜센터 업무를 검색하면서 ‘침을 뱉고 떠난 우물물을 떠먹는 기분이 이런 거겠지’ 조금 우울하기도 했다.

 

정부기관 콜센터는 다를 줄 알았는데…

 

정부민원안내콜센터…. 이름에서 느껴지는 어려움 때문에 망설였지만 ‘정부기관 콜센터’라니 그래도 조금은 다르겠지, 기대를 했다. 그렇게 다시, ‘국민콜 110’으로 입사했다. 2017년 12월 겨울이었다.

 

정부민원안내콜센터는 2007년 5월에 출범, 대국민 서비스의 최전선에서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316개 행정기관에 대한 민원을 안내, 위택스 지방세 신고, 정부24 사용방법, 국민신문고, 행정심판접수 및 진행 상황 등을 상담한다. 간추려서 이야기하니 별 거 아닌가 싶지만,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 18부 ․ 5처 ․ 17청 ․ 2원 ․ 4실 ․ 6위원회, 도합 52개 기관에 연관된 콜이 많아 어려운 내용이 많고 검색해야 할 자료도 방대하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요일제, 정부재난지원금, 고용안정지원금 신청 안내까지 정부와 관련된 정책은 모두 110으로 인입되곤 했다. 정부에서 무언가 발표할 때마다 110 상담사들은 긴장을 해야 한다. 세부 교육도 없이 뿌려지는 보도자료 속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안내해야 하고, 내선 번호 없이 모든 문의가 110으로 직접 인입되니, 어떤 질문을 받을지 예상할 수 없어 당연히 신경이 곤두선다.

게다가 정부기관의 콜센터임에도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일반 콜센터와 다를 바 없다. 모두가 콜 수, 콜 시간, 형식적인 친절 평가에 등수를 매겨, 등급에 따른 급여를 받는다. 통화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팀장에게 쪽지가 오기도 한다. “대충하고 끊어주세요~.” , “자세한 내용은 다른 곳으로 안내해주세요.” 정녕 민원인도 대충하고 기관 연결되는 것을 바라고 있을까. 지시에 따라 업무를 하다 보면 자부심과 자존감을 동시에 잃는다. 대충 넘기고 친절한 음성으로 전화를 많이 받아야 업무등급을 잘 받았을 수 있는 곳. 처음 입사할 때 기대했던 정부 콜센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업무시간 마감 후 시스템을 로그아웃하였는데, 팀장이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있었다. 팀장이 로그아웃이라고 외치지 않았는데 마음대로 로그아웃을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뻘, 이모뻘 나이는 상관없이 “팀장의 명을 따르라.”라고 하는 것 같았다. 팀장이 왕인가, 싶었다. 사람이니 기분 조절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욱해서 팀장에게 따지기라도 하면, 본인 화가 풀릴 때까지 업무 중 쪽지 테러를 받는 등 집중 케어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팀마다 다르긴 했지만, 이런 팀장 아래에 근무하는 팀도 있는 현실이다.

 

업무에 관련하여, 한 달에 한 번씩은 제도개선, 우수상담 콜이라는 명목으로 원고를 제출해야 했다. 수많은 콜 중에 그나마도 ‘잘 된’ 사례를 억지로 쥐어짜듯 찾아서 최대한 미화시켜 작성했다. 글을 쓰는 시간을 따로 주는 것이 아니니 쉬는 시간이나 업무 외적인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당연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민원인이 큰소리라도 치면 상담사는 우선 “죄송합니다”라고 습관적으로 사과해야 하는 일은 다반사였고 그런 상담사를 보호해 주는 제도는 찾기 어렵다. 그저 “오늘은 민원이 풍년이구나!” 자조하며 상담사들끼리 건네는 위로에 마음을 달랠 뿐이다. 오히려 상담사가 잘못 대처해서 일이 커졌다고 지적당하는 일도 있었다. 업무를 마치고 집에 갈 때면 내 입사 동기 사랑스러운 투덜이는 “노조가 필요해!”, ”민원인보다 회사 내 민원이 더 많아~.” 라고 투덜거리곤 했다. 그 투덜거림을 들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위안 받곤 했다. 그러면서 노조? 빨간 띠를 두르고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단체가 모여 확성기를 틀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 예전에는 화염병도 던졌던 거 같은데…. 그렇게 노동조합이란 곳에 대해 무지했고, 방송이나 사회에서 비춰준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길들여졌음을 이제서야 돌아본다.

 

입사 당시, 정부민원콜센터는 두 개의 민간업체가 나누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나의 민간위탁으로 통합이 되었는데, 기존보다 안 좋은 조건으로 바뀌었다. 서너 달에 한 번 돌아오던 토요일 오전 근무가 두 달에 한두 번씩 주말 풀 근무로 바뀌었고, 미약했지만 지급되던 복지 포인트가 사라졌다. 남아야 하는 사람들은 안 좋아진 조건을 감수해야 했고, 싫은 사람들은 퇴사하면 그만이었다. 소모품처럼 상담사는 다시 채우면 된다, 회사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마저도 이 ‘합병’ 건은 변경 1주일 전에서야 통보되었다. 내게 위안을 주었던 투덜이 동기는 “이게 말이 되냐! 이래서 노조가 필요했어.”라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퇴사했다.

 

형식적이고 불합리한 업무 성과 평가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남아 있다는 이유로 불편한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나는 그 불편한 환경에 적응해나가며 어찌어찌 부팀장 자리까지 맡았다. 기존 팀장들의 이탈로 업무도 모르는 외부 QPI평가 팀장도 이 시기에 입사했다. 뭘 평가하겠다는 거지? 의구심이 들어 무리하여 그 팀장이 있는 부서로 이동을 요청했고, 나는 QPI팀 부팀장이 되었다.

6~7개의 연습 콜 이후 바로 업무평가에 투입되었다. ‘어……’, ‘저……’, ‘그……’ 따위의 사족을 몇 번이나 사용했는지? 사물 존칭은 몇 번 사용했는지? 일일이 상담사의 콜을 들으며 점수를 차감하기 위해 귀를 쫑긋해야 한다. 정확한 업무를 안내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요조체’를 얼마나 썼는지가 중요했고, 어미를 올렸는지 내렸는지가 중요한, 형식에 맞추기 급급한 평가였다. 평가하면서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원청에서 원하는 평균을 맞추기 위해 평가가 낮게 나오면 다음 평가는 쉬운 상담내용으로 평가를 해서 평가를 조절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청은 보고를 위해, 위탁사는 급여 구분(S~D등급)을 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 QPI는 진짜 평가가 아니었다. 업무를 모르는 외부 입사 팀장은 업무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기준표를 작성해 평가했고, 상담사들은 잘못된 업무 지적에 분노했고, 자부심을 잃어버린 상담사 중에는 7년을 다니던 직장을 뒤돌아보지 않고 퇴사를 한 사례도 있었다. 이 내용을 해당 팀장에게 말하니 이의제기를 했으면 고쳐줬을 거라며 본인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 이의제기 하지 않은 상담사 탓이라고 했다. 이제 겨우 정부민원콜센터 입사 2~3개월 된 팀장이 7년을 고생하고 자리를 지켜온 상담사를 하찮게 여기는 듯해 화가 치밀었다.

이의제기 하면 점수만 올려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QPI팀장, 전문팀장이 알아서 할 거라면서 방관하던 현장대리인, 상담사의 마음은 보듬어 줄 마음이 없는 관리자들. 그런데 나도 상담사들을 평가해야 하는 QA팀의 부팀장이었다. 오히려 팀장에게 반항한다며 더 혹독하게 평가를 이어갔던 나였다.

하지만 결국 내가 백기를 들었다. 내가 하지 않아도 평가는 계속되겠지만 내 언니, 내 친구, 내 동생들에게 내가 상처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고민하지 않고 그 자리를 그만뒀다.

 

노조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시간

 

그런데 그때 투덜이 동기가 외쳤던 “노조가 필요해~”라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필요성은 느끼지만 만들어지지 못하는 까닭은 아마도 나와 같은 선입견도 있었겠지, 싶었다. 마침 그때, 건강보험공단 콜센터에 다니는 지인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보다 필요성을 느끼는 나였지만, 나는 고민하지도 않고 “하지 마!”라고 이야기했다. “누가 상담사 따위 이야기를 들어준대?”, “누가 나서서 대신 싸워준대?”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꽉 막힌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답답해하며, “회의에 한 번 참석해 볼래?”라고 권유해준 지인 덕에, 건강보험 콜센터 회의에 참석했다. 1월 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 대전, 부산, 경기…. 대구를 제외한 11개의 지역의 조합원 대표들이 주말에 쉬지도 않고 회의를 하기 위해 서울로 모여 있었다. 빨간 머리띠를 두르지도, 화염병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힘든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방법들을…. 작게는 회비 1,000원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을 20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 질서 있게 발언권을 얻어 서로를 이해시키기도 하고 공통된 문제를 찾아가기도 했다. 4시간이 넘는 회의였다. 아무도 고함을 치거나 자기 주장만 맞다고 우기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까지 뉴스에서 보아온 노조와는 달랐다. 멋있어 보였고 부러웠고, 동시에 부끄러웠다.

“나 스스로가 안 된다고 생각했구나!”, “누가 싸워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부당하다고 말해야 하는구나!” 보기만 했을 뿐이지만, 그 4시간은 너무나 멋진 시간이었다.

 

회의 중간쯤 권익위원회 콜센터는 민간위탁 심층 논의 필요사무 직접 수행 결정기관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왜 당사자인 넌 모르고 있니?’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들을 보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건강보험콜센터 노조 대표들은 대부분 부러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이런저런 말을 걸기도 했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논점은 정규직 전환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생각지도 않은 소식을 들으며 부러운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한 치 앞을 모르고 그저 좋다고만 생각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조용히 나를 부르며 명함을 한 장 주시는 분이 있었다. 작은 체구에 안경을 쓰고 아주 작은 목소리지만 똑 부러진 목소리를 한 동지가 말을 건넸다. 지금에서야 동지라고 말하지만, 그때는 명함을 받고도 뭐하시는 분인지도 몰랐다. 그분이 바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동지였다. 조용하고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정규직 전환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전환되느냐가 더 중요하고, 전환 이후에는 노조가 꼭 필요할 거라고….

무슨 뜻인지 당시에는 다가오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된다는데 더 중요한 게 있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데, 뭐가 중요하다는 건지? 흘려듣듯 넘겨버렸고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회사에 돌아와서 언제쯤 전환 발표를 하는지 기다렸다. 하지만 들려온 소식은 민간위탁 연장이라는 소식이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합원을 모으고 있을 때쯤, 3개월이 훨씬 지나서야 원청이 아닌 위탁업체의 본부장이 상담사를 모아 놓고 “ 말을 잘 들으면 ○○○기관처럼 잘 전환해 줄 거다”라고 말했다.

착한 아이처럼 말만 잘 들으면 알아서 전환해 준다? 알아서?

그 말이 오히려 상담사들에게 노조가 필요하다고 일깨워주었다. 뜻을 같이할 동료들을 모으기 시작하니 금세 가입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급하게 창립식을 치렀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모이지는 못했지만 30명가량이 모여서 공식적으로 ‘정부민원안내콜센터분회’를 만들었다. 아직 노조가 뭔지 잘 모르지만 우리는 대표도 뽑고 운영진도 뽑고 서기도 뽑았다. 코로나로 인해 조합원들 교육도 하지 못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제는 왜 노동조합이 필요한지 알아간다고 하는 동료들이 있어 기뻤다.

 

정신없이 노조를 만들자마자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측 대표를 뽑는다는 공고가 게시되었다.

‘선출인원: 관리자 그룹 1명, 110팀장 1명, 전문팀장 1명, 110팀 선임상담사 1명, 전문팀 선임상담사 1명.’

‘근속기간: 110팀은 54개월, 전문팀은 47개월 이상. 지원 대상자가 다수인 경우 평가 기준 추가 예정.’

말만 잘 듣는 대표가 필요하다는 공지. 노조가 있어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공지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우왕좌왕하며 항의 공문을 보내고 이의제기를 했다. 그 결과 현장관리자를 노사전협의회에서 제외할 수 있었다. “현장대리인도 정규직전환대상자”라고 말하며 우리의 주장은 잘못된 거라고 말하던 권익위 담당자도 인정했다.

지금의 대표 구성도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기존의 기준을 취소하고 노조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노조가 생기고 처음 이루어 낸 성과였다.

 

하지만 노조가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로 인해 조합원은 재택근무와 현장근무자로 나누어졌다. 다 같이 모여 사진 한 장도 찍을 수도 없었다. 자꾸 시련이 닥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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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관련 타 기관 업무수행으로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던 상담사들에게 돌아온 건 고작 원가 2,000원도 안 되는 음료수와 떡이 전부였다. [출처: 정부민원안내콜센터분회]

 

코로나19 민원 업무로 녹초가 된 상담사들

 

어느 날 문득, 공지도 없이 식약처 마스크 문의 전화가 연결되었다.

현장대리인에게 사실 확인을 요구하니 식약처에서 모두 소화할 수 없어 오픈되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 간단한 10분 조회교육과 매일 바뀌는 자료를 뒤적이며 쉼 없이 상담을 했다.

식약처 업무가 끝나 갈 때쯤 이번에는 행정안전부의 정부재난지원금 전화가 인입되었다.

식약처 업무가 인입되었을 때 미리 공지도 없이 전화 연결하지 않게 해달라 요청했더니, 이번엔 미리 공지만 했다. 교육도 없이 자료만 보고 안내하란다. 그렇게 상담사들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허리 통증, 목디스크에 시달리며 정부재난지원금 업무를 마무리했다. 코로나19 관련 업무에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런 조합원들에게 단체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조차도 힘들었다.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모두가 코로나 업무에 지쳐있었다.

과중한 업무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사측은 권익위 핑계를 댔고 권익위는 예산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예산이 없으면 유급휴가라도 달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행정안전부에서 고생했다며 간식을 나누어 줬다. 잔칫집 식혜와 손가락 두 개 정도 되는 크기의 떡. 우리는 모두가 지쳐 초상집인데….

차라리 주지를 말지~! “지원해줘서 진심으로 고맙고 수고했다.”라는 말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한 달 내내 평균 통화시간 5~6시간을 소화해낸 상담사들에게 원가 2,000원도 안 되는 간식을 주면서 뿌듯했을까? 청와대 비서관에게 110 상담사들 일을 잘했다며 칭찬을 받았단다. 일은 우리가 했는데….

그렇게 일을 잘하는 110 상담사들에게 돌아온 소식은 고용노동부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서류 안내. 업무이다. 일을 너무 잘한다며 청와대에서 수직으로 내려온 요청이라 거절할 수 없다고 한다. 이번엔 사전공지도 해주고 90분 동영상 교육에 30분 자율학습으로 안내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지쳐가는 상담사들을 대상으로 QPI평가를 하며, 월 2회 하던 걸 1회로 간소화시켜줬다며 생색을 내는 위탁업체. 급여는 정해져 있고 등급을 나눌 수밖에 없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마스크 안내를 하다 지방세 안내를 해야 하고, 재난지원금 안내를 하다 행정심판청구 안내를 해야 하고,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 안내를 하다 무단 주정차 신고, 동물 사체 처리 등의 안내를 해야 하는 우리는 그들에겐 그저 ‘콜 받는 기계’일 뿐이다. (평가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밀린 전화를 같이 좀 받아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의 고통 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 없이…. 장기 무급병가자, 퇴사자들이 생겨났다. 일주일만…. 하루만……. 버티고 버티어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이 종료되는 7월 20일, 드디어 끝이구나 싶었다.

 

말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7월 21일.

출근부터 상담사들의 술렁거림이 느껴졌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홈페이지에 고용노동부 담당 번호는 삭제가 되고 110 번호만 남겨져 있고 전날 신청을 못한 민원인들은 책임을 물었다. “홈페이지가 불안정해서 신청을 못 했으니 책임을 져라!”, “신청한 지 한 달이 지나도 지급되지 않고 있으니 책임져라!” 악담해가면서 소리 지르는 민원인들…. 조회 권한도 없는 110 상담사들은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권익위 담당자에게 110 번호가 왜 삭제되지 않았는지 이유를 물었다.

고용노동부에서 말하길….

청와대 지시로 110 번호를 긴급고용안정지원금 홈페이지에 기재했기 때문에 청와대 지시가 있어야지만 삭제할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연락도 잘 안 된다며 무표정한 얼굴로 답변을 해왔다.

상담사들은 울먹거리며 전화를 받아내고 있는데, 더 이상 생각할 여유도 없고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부랴부랴 청원 글을 올리고 피켓을 만들어 1인 시위를 했다.

2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홈페이지에서 110 번호가 지워졌다.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부당하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행동으로 옮겨야지만 변화가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청사 관리 담당자가 쫓아오고 현장대리인들이 그만하라고 소리 질러도 우리는 부당하다고 말해야 한다. 이게 두 번째 성과였다.

이후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면서 청원 글은 비공개 처리가 되었지만 우리는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변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한 소리를 내야 한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김혜진 동지가 내게 건넸던 말이 바로 이런 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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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민원안내콜센터 상담사는 B.H. 요청이면 뭐든지 해야 하는 국민?” 코로나19 콜센터 과중업무에 대한 항의 피켓팅 모습. [출처: 정부민원안내콜센터분회]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아직은 우리 조합원들과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모두가 자기의 권리를 눈치 보지 않고 요구할 수 있는 그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분회장이 된 것은 똑똑해서도 겁이 없어서도 아니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일 거라는 이유이다. 필요한 걸 알면서도,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앞에 서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라고만 생각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건 없었다. ‘부족하지만 내가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시작하겠지.’ 라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나만 아니면 돼.’ 라고 회피해버리는 순간, 우리의 권리도 없어진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난 후에는 모든 조합원이 분회장이고 운영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전화 받는 기계’가 아닌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권익위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야 노조 5개월 차 신생노조!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순간순간 부딪히는 벽도 많지만, 지치지 않고 나아가 끝내 ‘그때 우리 힘들었지.’ 말하며 웃을 수 있는 날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지치지 않으리. 다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