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11] 집회의 자유는 시간, 장소, 방법을 선택할 자유다 / 박한희

by 철폐연대 posted Nov 14,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보통의 인권

 

 

집회의 자유는 시간, 장소, 방법을 선택할 자유다

- 야간집회를 금지하려는 정부여당의 시도에 대해 -

 

 

박한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2016년 연말부터 2017년 겨울까지 매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 밤거리는 촛불을 든 시민들로 채워졌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한 촛불집회는 연인원 1,000만 명이 참여했고,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을 조금만 돌려 2010년 전만 해도 이와 같은 밤과 새벽에 이루어지는 집회는 원칙적으로 모두 위법한 집회였다. 1963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이 제정되었을 때부터 야간집회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일몰 후 일출 전, 집회가 금지된 시간 

 

한국에서 집시법이 처음으로 제정된 것은 1963년 12월이다. 이 법은 ‘집회 및 시위를 보호’한다는 목적이 무색하게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압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집시법의 전신으로 1961년 만들어진 ‘집회에관한임시조치법’부터가 5·16 군사정변 직후 군부 세력이 집회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회의사당, 대통령관저, 서울시청 등 공공기관 200미터 내에서의 집회가 절대적으로 금지되었고,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도 금지되는 등 장소와 방법이 제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한은 집회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1963년 집시법 제6조는 “누구든지 일출전, 일몰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했다. 해당 조항은 집시법이 여러 차례 개정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여러 불합리한 조항이 개정되는 가운데에서도 그대로 남았다. 다만 1989년 집시법 전부개정으로 관할 경찰서장이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애초에 경찰이 특정 집회를 검토해서 야간에 개최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위헌적이었다. 그렇게 밤은 집회가 금지된 시간으로 수십 년간 유지되었다. 

 

 

6. 본문사진1.jpg

2004년 5월 28일 저녁 6시에 개최된 첫 번째 야간 불복종 집회. [출처: 미디어스] 

 

 

이런 위헌적 상황을 해소한 것은 계속해서 불복종행동을 하며 집회의 자유를 외친 시민들의 힘과 이에 호응한 헌법재판소 결정이었다. 헌법재판소는 2009. 9. 24. 2008헌가25 결정에서 야간집회를 원칙 금지하면서 경찰이 예외적으로 허가하게 하는 것은 헌법이 금지한 집회에 대한 허가제로서 위헌이며, 2010. 6. 30.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할 때까지만 효력을 인정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2014. 3. 27. 2010헌가2 결정에서는 ‘일몰 후부터 24시까지의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와 같은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야간집회를 일률 금지하려는 개악을 시도했다. 이러한 개악을 막은 것 역시 시민들의 힘이었다. 항의전화와 기자회견, 성명 등을 통해 개악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제10조는 47년 만에 그 효력을 상실했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정부여당의 시도 

 

그런데 이렇게 야간집회가 법적으로 허용된 지 10년도 더 지나 다시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18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그 전날 진행된 이태원참사 200일 추모문화제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거리 노숙을 했다는 이유로 혐오감을 유발했다면서 엄중 대응을 촉구했다. 그리고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당정협의회는 ‘노숙도 집회의 연장으로 간주하고 적극 대응’, ‘심야시간대 옥외 집회 제한’ 등의 조치를 하겠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대통령실도 7월 26일 비슷한 내용의 집회시위 제도 손질을 권고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을 이어받아 경찰은 9월 21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집회·시위 문화 개선방안’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평균 일출시각(오전 6시30분께) 등을 고려해 심야 집회·시위 금지 시간을 24~6시로 규정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헌재가 위헌으로 판단한 야간집회 금지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 국회 다수당이 더불어민주당인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공표한 대로 집시법이 개정되는 것은 당장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처럼 정부, 경찰, 여당이 계속해서 야간집회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야간집회가 문제적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시민들에게 전파하고, 실제로 이루어지는 야간집회에 대한 탄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경찰은 대법원 앞과 파이낸스센터 앞 등에서 개최된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의 노숙집회를 계속해서 해산시켰다. 7월 7일과 8일 이루어진 제3차 집회에서는 경찰의 강제해산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또한 금속노조가 9월 12일 신고한 국회 노숙집회에 대해서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 위협을 끼칠 수 있다며 부분금지통고를 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경찰이 주장하는 위협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금지통고의 효력을 일부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법원의 이러한 판단에도 여전히 경찰은 야간시간대 집회를 제한하고 금지통고를 남발하고 있다. 

 

왜 야간에 집회를 하면 안 되는가?

 

야간에 집회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평일에 집회를 하는 경우 일과시간을 마치고 참가자들이 함께하기 위해서는 야간에 개최되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낮에 시작한 집회가 저녁까지 길게 진행되기도 한다. 비정규직 집회처럼 1박2일의 노숙 농성을 통해 주장을 전달해야 할 필요도 있다. 여성운동이 오랫동안 해 온 달빛시위처럼 야간이라는 시간대 자체가 집회의 목적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2019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평등과 안전이 빛나는, 무지개 은하수를 놓아라!’는 제목으로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대행진을 진행하였는데, 이 역시 안전을 이유로 성소수자 혐오를 하는 이들에 맞서 이루어진 야간집회였다.

 

 

6. 본문사진2.jpg

2019년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서 개최된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대행진.

[출처: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그럼에도 집회의 자유를 탄압하려는 정부와 여당, 경찰 등은 계속해서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던진다. 왜 야간에 집회를 하려 하냐고. 굳이 사람들이 자는 밤에 집회를 해야 하냐고. 이러한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할 가치는 없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미 2003년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을 통해 밝힌 바를 들려주고자 한다.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즉 집회를 하루 중 언제 개최할지 등 시간 선택에 대한 자유와 어느 장소에서 개최할지 등 장소 선택에 대한 자유를 내포하고 있다.”

 

하루 중 언제 집회를 할지, 언제부터 언제까지 집회를 할지를 국가의 억압 없이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야간집회 금지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존중한다면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이 하루 중 자유롭게 모이고 말할 수 있도록 보장할지 그 방안이다. 야간집회 금지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