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1] 철폐연대와 함께하는 2023년 동향 / 철폐연대

by 철폐연대 posted Jan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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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폐연대와 함께하는 2023년 동향

 

 

 

1. 정부·자본·국회 동향 

 

● 노조법 2·3조 개정, 대통령 거부권으로 좌절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결국 폐기되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2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를 통과하고 11월 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12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12월 8일 국회 재의에서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출석하여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라는 재의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으로써 최종폐기되었다.

노조법 2조와 3조 개정은 노동자의 노조권 확보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행 노조법은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고용주만을 노조의 교섭 상대인 사용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용역·하청 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해도 실제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원청과는 교섭을 할 수가 없다.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 설립조차 못 했다가 근래 들어 행정관청에서 노조 설립에 대해서는 신고 필증을 교부하는 추세지만, 사용자들의 교섭 거부로 여전히 교섭을 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법 2조의 개정안은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경우도 사용자로 간주하도록 하여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 노조들이 노동3권의 하나인 교섭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였다.

다른 한편, 일명 노란봉투법이라고도 불렸던 노조법 3조 개정은 노조 활동과 이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노조 활동을 탄압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려는 것이었다. 기업들은 파업 등 노조 활동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와 노동자 개개인에게 거액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남발해 왔다. 합법적인 파업으로 인한 영업 중지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지만 파업 과정에서 수반되는 점거나 피케팅 등의 활동을 꼬투리 삼아 손해배상 소송을 거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개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억 원씩의 금액을 소송에서 청구받고 전 재산이 가압류당하는 등의 일을 겪는다. 자연히 노조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노동3권의 하나인 단체행동권이 심각하게 제한받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조법 3조 개정으로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려고 했다.

현행 노조법이 이처럼 노동3권을 제약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꾸려는 운동이 진행되었고, 2022년 9월 14일 양대노총과 철폐연대를 비롯한 노동·법률·시민·종교단체 등 93개 조직이 참여하여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를 결성하였다. 2023년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이 운동의 결과물이다. 운동본부는 2023년 내내 결의대회, 농성, 입장 발표 등으로 노조법 개정의 의미를 알려 내고 국회를 압박하였다. 반대로 자본 측은 노조법 개정을 극렬 반대하였으며 정부·여당도 이에 동조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잇따라 노조법 개정이 오히려 법치를 흩트린다는 둥의 발언을 했다. 노조법 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소위를 통과하고도 법제사법위에서 처리가 되지 않고 계속 계류하였다. 이에 대해 노조법 개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본회의에 직회부하기로 하자, 여당인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본회의 회부가 부당하다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이 청구를 기각하고 나서야 노조법 개정안의 본회의 회부가 가능해졌다. 그렇지만 본회의를 통과하고도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노조법 개정이 무산되었다.

비록 2023년 국회에 회부되었던 노조법 개정안은 폐기되었지만, 노조법개정운동은 끝이 아니다.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노조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하고, 이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진전된 노조법개정운동이 계속될 것이다. 

 

● 노조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윤석열 정부… 규약과 단협, 회계까지 통제

윤석열 정부는 국회를 통과한 법안조차 대통령 거부권을 써 가며 노동3권 보장을 막는 한편, 노조에 대한 탄압과 통제는 더욱 강화했다. 2022년 화물연대에 이어 2023년 건설노조까지 노조를 불법 폭력배 집단으로 몰아붙이며 집중적으로 탄압한 것 외에도 모든 노조의 규약과 단협, 회계를 들여다보며 노조의 기본적인 활동을 통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사무금융노조, 화섬식품노조에 하부조직의 집단탈퇴를 금지한 규약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렸다. 집단탈퇴 금지 규약이 가입과 탈퇴의 자유를 저해한다는 명분이지만, 산별노조를 무너뜨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시정명령에 따르면, 예를 들어 산별노조 산하 사업장 지회가 총회를 통해 산별노조를 집단탈퇴하는 것을 규약으로 막지 못한다는 뜻으로 산별노조의 조직형태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금속노조, 사무금융노조 등 산별노조는 그 자체가 하나의 노조 단위이며, 산하 지회 등은 그 노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편제한 조직형태일 뿐이다. 내부 조직이 탈퇴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특정 노조의 방향성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개인들이 노조를 탈퇴하여 다른 노조를 만들면 그만인데 이런 방식은 현 산별노조 규약에서도 막지 않고 있다. 노조법에서는 내부 규율 및 통제에 대한 규약을 필수로 둘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집단탈퇴 금지는 그 일환이다. 노조 연합체인 산별연맹에서 한 노조 단위인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산별노조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시정하라는 것은 산별노조를 부정하고 기업별 노조 체제로 되돌리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노사가 체결한 단협도 시정명령의 대상이 되었다. 정부는 공공부문 노사가 맺은 단협들을 조사하여 소위 ‘불합리한’ 단협 조항에 대해서 시정명령을 내렸다.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의 관공서 내 노조 사무실 출입을 허용한다거나 구조조정 정원 삭감을 금하거나 승진심사에 노조 추천 인사를 포함시키는 등 노조가 조합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사측과 교섭해 체결하는 단협으로 당연한 내용들이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또 정부는 2023년부터 노조 회계공시 시스템을 만들어 조합원 1,000명 이상의 노조나 산하 조직이 매년 회계를 공개하도록 했다.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조합비를 소득공제에서 제외하도록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사실상 공시를 강제하였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노조 운영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반발했으나 결국 수용하기로 해서 연말에 이르러 대부분의 노조 조직이 정부의 회계공시 시스템에 등록을 했다. 정부는 노조 회계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회계 결과를 통해 노조 활동 내역을 감시하고 조합원들의 총의로 이루어지는 노조 활동을 전 국민에게 공개하면서 여론전을 펼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노조의 자주성을 크게 해치는 것이다. 노조 활동을 감시와 통제 하에 두면서 노조 자체적인 규약이나 노사 자율로 체결된 단협 내용에 대해 멋대로 시정명령을 내린다면 독재 시기의 어용노조 시절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각별한 경계와 저항이 필요한 지점이다. 

 

● 여론의 뭇매를 맞은 노동시간 개편안, 여전히 미련을 못 버렸나

2023년 3월 9일 정부는 노동시간 주 52시간 상한제도를 무력화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일단 입법화를 유예했다. 그러나 11월 19일 이에 대한 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일부 업종에 대해서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여 여전히 노동시간 개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3월에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안은 현행 주 단위로 되어 있는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한 달이나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대신 단위기간이 길어질수록 연장근로 허용 총량은 줄이겠다는 내용이었다.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거나 또는 1주 64시간 상한, 4주 평균 64시간 이내만 지키면 되는 것으로 하였다. 연장근로 상한의 단위기간이 길어지면 그 기간 내에서 최대 연장근로시간을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연장근로가 집중된 시기에는 심각한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한 달 단위로 바꾸면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지키더라도 1주 69시간을 일하는 주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개편안 발표 후 주 69시간 노동제라며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으며, 근로시간 저축제도를 통해 제주도 한 달 살기가 가능하다는 정부의 선전도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비웃음만 받았다. 그러자 정부는 일단 입법화를 유예하고 국민 여론을 더 살피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에 따라 6월부터 8월까지 설문조사 등을 실시하였는데, 결과 발표를 미루다가 11월에서야 결과를 공개했다.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현행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이후 장시간 노동이 줄어 들었다는 응답과 업무 시간에 예측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응답이 각각 그렇지 않다는 응답에 비해 대략 3배의 비율에 달한다. 사업주만을 대상으로 현행 노동시간제로 어려움이 발생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사업주의 85.5%가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결과들은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정착되고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보도자료 및 발표에서는 이런 결과는 축소하거나 생략하고 노동시간 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을 중심으로 강조했다. 예를 들어 ‘현행 노동시간 제도에서 갑작스런 업무량 증가 등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명제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문항의 응답 결과는, 동의한다는 비율과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 발표에서는 동의한다는 비율에 대해서만 언급하며 현행 노동시간 제도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현행 노동시간 제도는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가 반영되기 어렵다’는 문항에 동의한다는 응답 비율이 많이 나온 것을 강조했다. 또 현행 노동시간제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는 문항에 사업주의 14.5%만 그렇다고 응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부 응답자들의 애로사항을 상세히 소개하고, 이 중 그나마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비율이 높은 업종·직종들을 거론하면서 업종·직종별로 노동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시사했다. 강한 반발에 부딪혀 좌초한 근로시간 개편안에 정부가 여전히 미련을 갖고 계속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상생임금협의? 실체는 노동 배제와 노조 탄압의 구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 재편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 2022년에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만들어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구조 재편을 역설한 결과보고서를 내놓았고, 2023년 3월 발표한 근로시간 재편안도 이 결과보고서에서 제시한 정책 방향에 입각한 것이었다. 임금구조에 대해서도 2023년 2월 2일 상생임금위원회를 구성했다. 상생임금위원회에서는 2023년 내에 상생임금 확산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12월 현재 아직 발표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생임금위원회를 비롯한 정책 활동을 보면 정책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상생임금위원회는 5월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는데, 여기서 임금 불평등의 가장 큰 요인이 근속년수라고 지적하며 연공급 해체와 직무급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원하청 임금 격차를 줄인다는 목표로 2022년 말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구성하여, 2023년 2월 ‘조선업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2023년 10월부터는 상생임금 확산의 일환으로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본떠 화학 산업과 자동차 산업에도 상생협의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타파하고 임금격차를 해소한다는 명분 하에 실제로는 노동을 배제하고 오히려 노조를 공격하는 구실로 삼고 있다. 업종별로 구성한 상생협의체에는 기업들만 참여할 뿐 노조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중구조는 노조로 조직된 ‘노동기득권’ 때문이라고 언급해 왔다. 철폐연대 노동권연구소는 12월 21일 이중구조론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개념이며 노조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밝히는 토론회를 열었다.

 

 

2. 간접고용/특수고용 

 

● 건설노조에 대한 ‘건폭몰이’… 탄압은 끝나지 않았다

2023년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은 극에 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월 21일 국무회의에서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실태와 대책을 보고 받은 후 “건설현장에서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라며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하라”고 발언하면서 사실상 노조 탄압을 명령했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건설노조를 “경제에 기생하는 독”, “노조의 탈을 쓴 약탈 집단”이라고 칭하면서 건설노조에 대한 혐오를 조장했다. 이 결과로 조합원 40여 명이 구속되고, 150여 명이 기소되었으며, 2,000여 명이 소환 조사를 받는 등 1년 내내 탄압이 계속됐다. 여기에 고용노동부는 건설노조의 고용 요구를 채용절차법 위반으로 1억 3,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고, 공정위는 건설기계 조합원들의 단체행동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보고 과징금 2억 6,900만 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과정에서 5월 1일 양회동 열사가 분신 사망하기도 했다. 경찰은 양회동 열사에 대해 최장 8시간 30분에 걸친 소환 조사를 세 차례나 진행했고, 핸드폰 압수수색,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회사 측이 제출한 ‘처벌불원서’마저도 ‘강요’에 의해 작성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등 폭력적이고 편파적인 압박 수사를 진행하면서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여기에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200일 건설현장 특별단속’을 하면서 내건 ‘1계급 특진’ 조건이 경찰들에게 무리한 수사를 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경찰은 이미 회사와 합의한 3~4년 전 사건까지 샅샅이 재조사를 하면서 압박해 들어왔고, 별다른 혐의가 없음에도 범죄가 있다는 추정만으로 소환 조사를 하기도 했다. 또 강력범죄수사대나 광역수사대 등 노동관계법 등에 무지한 수사관들이 수사를 이어가면서 건설노조의 노동조합 활동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수사를 이어갔다. “회사가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는 등의 주장을 서슴치 않게 하고,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을 ‘집단모의’, ‘집단폭력’으로만 몰고 가는 수사 방향에는 철저한 예단과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에게 건설현장에 만연한 불법하도급이나 고용불안정성은 하등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러한 탄압은 현장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후퇴로 직결되었다. 지난 8월 건설노조 조합원 총 3,333명에 대한 설문 결과를 보면, 건설노동자 5명 중 3명은 월급이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일자리 또한 줄어들었는데, 건설노동자 3명 중 1명(32.8%)은 ‘실업 중’이라고 응답했다. 노조 탄압의 기조는 현장에도 반영되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적 있냐’는 질문에 68.6%가 ‘그렇다’고 답했고, 59.1%는 ‘조합원을 아예 고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부의 탄압 이후 조합원 수도 줄어들고, 기존 조합원들은 일자리를 찾아 지방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무엇보다 ‘작업 속도를 높일 것을 강요한다’(17.3%), ‘안전 규정을 무시하는 일이 잦아졌다’(12.3%)는 답변과 함께, 응답자의 절반 이상(52.5%)은 최근 안전사고 빈도가 늘었다고 답했다. 노조가 생긴 뒤 바뀌었던 건설현장이 노조 탄압 이후 다시 10년, 2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탄압 와중에도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는 지난 6월부터 철근콘크리트협의회 사측과 2023년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진행해 왔다. 예상했던 대로 전문건설업계는 임금 삭감, 유급휴일 요건 삭제, 토요일 근무시간 연장, 특별휴가 삭제 등 건설현장의 노동조건을 10년 이상 후퇴시키는 요구안을 제시하면서 교섭 자체를 파국으로 끌고 가더니 결국, 지난 12월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한다”라며 공문을 보내왔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후속타로 일방적 단체협약 해지를 통해 건설현장을 10년 전 무노조 무법천지로 되돌리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현재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의 노동환경을 후퇴시키고자 하는 전문건설업계의 일방적 단체협약 파기에 맞서 단체협약 사수, 노동조합 사수를 위한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 출범

2023년 지상파 방송사 입사자의 60%가 프리랜서, 파견, 용역도급, 임시사역, 기간제 등 비정규직으로 그야말로 방송사는 비정규직 백화점이며, 사실상 방송은 비정규직이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7년 직장갑질119의 업종별 모임인 방송계갑질119의 활동이 현재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의 결성으로 이어지고, 2021년 2월 CJB청주방송 이재학PD의 사망 이후 결성된 대책위원회의 끈질긴 투쟁, 이어 또 다른 이재학을 외치며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노동자성 인정을 받는 성과들이 쌓였지만, 막상 일터로 돌아간 당사자들의 고립, 방송사의 꼼수들로 파편화된 방송 비정규직의 더 큰 연대와 저항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났다.

이에 지금까지 방송 비정규직 투쟁을 함께해 온 방송 노동자들, 법률가들, 활동가들이 모여 9월 1일 한국의 방송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되찾고 방송현장을 변화시키기 위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을 출범시켰다. 엔딩크레딧은 방송 비정규직 당사자들을 주체로 세우며, 개별 법률 투쟁의 성과에 매몰되지 않는 더 폭넓은 대응을 시도하며, 전국에 흩어져 일하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결고리를 구축하고, 정규직 비정규직 간, 직종 간 벽을 넘어선 더 큰 연대를 모색한다는 활동 목표를 세웠다. 현재 엔딩크레딧은 무늬만 프리랜서, 불법파견, 부당한 계약해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중첩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한국 사회 방송 비정규직 문제의 축소판인 광주MBC 비정규직 투쟁을 지역에 제안하고 함께하고 있다. 

 

●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찾기

2023년에는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찾기를 위한 투쟁이 많았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서울시 투자기관으로서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2023년 4월, 오히려 30명인 콜센터 인원을 22명으로 축소하고, 건물도 이전하는 등 완전 아웃소싱을 하겠다고 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4월 24일부터 파업과 단식에 나섰다. 용역사인 MPC플러스와 교섭을 하여 4월 27일 정원을 25명으로 하고, 노사 및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해서 콜센터 상담원 처우개선을 논의하기로 합의하고 파업을 종료했다.

2022년 저축은행중앙회는 콜센터 용역업체를 효성ITX로 바꾸며 100% 고용승계를 약속했다. 하지만 효성ITX는 이 약속을 어기고 노동자들을 부당해고했다. 두 명의 노동자가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을 시작했고, 한 명의 노동자는 해고를 당하지 않았지만 동료의 해고에 항의하며 함께 투쟁에 나섰다. 저축은행중앙회 콜센터 노동자들은 2023년 8월 7일부터 효성ITX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고, 단식 16일 만에 복직 약속을 받으며 단식농성을 마무리했다.

KB국민은행은 10월 19일 콜센터 용역업체 입찰공고를 내며 본래 6개 업체가 맡았던 금융부문 고객상담 용역계약을 4개 업체로 하겠다고 하면서 입찰에서 탈락한 2개 업체 소속 콜센터 노동자 240명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노조는 집단해고를 막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결국 신규 입찰에 성공한 용역업체 두 곳에서 자진퇴사자를 제외한 인원을 고용하기로 합의하면서 투쟁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고용승계’가 아니라 ‘경력직으로 신규채용’을 하는 형식이 되면서 연차나 경력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된 점은 한계이다.

 

 

3. 공공부문 비정규직 

 

●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의 소속기관 전환 투쟁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이 2023년 11월 1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조합원들은 원주의 건강보험공단 본사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으며, 서울지역에서도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지부장은 11월 1일부터 35일간 단식을 하다가 12월 5일 쓰러졌고, 그 단식을 이어받아 공공운수노조 정용재 부위원장이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조합원들도 릴레이 단식에 나섰다. 그리고 12월 18일부터 5일간 서울 용산에서 원주까지 행진을 진행하기도 했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는 이유는 건강보험공단이 2021년 파업 투쟁으로 합의한 ‘소속기관 전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소속기관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방기했을 뿐 아니라, 10월에는 2019년 2월 이후에 입사한 700여 명을 정리하고 경쟁채용을 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단 한 명의 동료도 잃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파업에 나섰다. 고객센터 업무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소속기관 전환이 노동자 해고로 귀결시킬 수 없다고 결심하고 투쟁한다. 

 

●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공공성을 지키는 투쟁

2019년 출범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은 장기 요양, 장애인 활동 지원, 보육 등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시 출연기관이다. 돌봄에 대한 공공의 책임이 제기되며 만들어진 기관이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후 서울시의회는 2023년 서사원 예산을 210억 원에서 68억 원으로 142억 원 정도 삭감했다. 서사원의 자구책도 임금체계 개편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서 반려하고, 추경예산도 편성하지 않았고, 사내유보금 활용도 불승인했다.

서사원은 종합재가센터 숫자를 축소하고 촉탁직 노동자들을 재고용하지 않았다. 인력이 부족해서 노동자들은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렸다. 재가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에 대한 월급제 폐지도 시도하고 있다. 어린이집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한 곳이 위탁운영이 종료되고 민간으로 넘어갔는데, 서사원은 다른 6개 어린이집도 운영을 종료하려고 한다. 서사원 보육노동자들은 공공어린이집의 지속 운영을 촉구하며 2023년 10월 30일부터 15일간, 그리고 12월 20일과 21일 파업을 진행했다. 월급제 사수와 단체협약 개악 저지, 그리고 공동돌봄 축소를 막기 위한 투쟁이다. 

 

● 초단시간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다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주휴수당과 유급휴가가 보장되지 않고, 퇴직금과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에서 제외된다. 급격하게 증가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경기도가 발주한 “초단시간 노동자 실태파악 및 정책방안 마련 연구” 보고회가 2023년 2월 23일에 열렸고, 2023년 5월 16일에는 용혜인 의원 주관으로 “초단시간 노동자 권리찾기법 입법 촉구 국회토론회”가 열려서 입법 대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초단시간 노동자들의 투쟁도 이어졌다. 의정부시 예술단 노동자들은 월 30시간의 초단시간 노동자라서 저임금에 4대보험도 온전히 적용받지 못했다. 의정부시는 연습과 공연준비 시간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4대보험 적용과 최소 월 60시간 보장을 요구하며 피켓팅과 집회 등을 이어갔다. 결국 2023년 11월 23일에 합의에 이르러 노동조건이 개선되었다. 이미 가입된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외에 국민연금도 가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시간 확대는 쟁취하지 못했다.

강원대 한국어교원 노동자들도 투쟁했다. 한국어교원 노동자들의 해고 소송에서 법원은 한국어교원의 기타 노동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인정해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강원대는 강사를 초단시간 근로자로 두려고 한다. 강원대 한국어교원지회는 2023년 11월 6일부터 파업을 선포하고 9일부터 10분 파업을 진행하면서 강의 업무 외 업무에 대한 소정근로시간을 인정하고 고용 안정과 처우개선을 하라고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4. 노동안전 

 

●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 더 이상 유예되어서는 안 된다

2021년 1월 27일 시행됐던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중소사업장에 대한 2년간 시행 유예기간을 만료하고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경영계는 지난 2년간 법 자체에 대한 비판만 무수히 제기하더니, 전면 적용 시점이 다가오자 유예기간 재연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출범 초기부터 내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더니 급기야 12월 3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중대재해처벌법을 2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산업단지를 찾아 안전보건체계 지원을 약속하는 등 법 적용 유예를 위한 행보를 적극 진행하고 있다.

당초 반대 입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도 조건부 찬성을 들고 나오면서 또다시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이 난항을 겪고 있다. 민주당이 내건 조건은 정부의 공식 사과와 향후 2년간 구체적인 지원방안 수립, 2년 후 반드시 시행 등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내건 공식 사과는 누가, 어떤 부분을, 누구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인지 명확하지도 않고, 지원방안 수립 역시 법 적용 여부와 무관하게 진행되어야 할 사항이지 유예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치권이 보이는 유예 연장을 위한 움직임 속에서도 국민 여론 대다수는 2024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모든 사업장에 전면 적용하는 것을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노총, 정의당 이은주 의원, 생명안전행동이 12월 15일 하루 동안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조사결과에 따르면 71.3%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내년부터는 적용해야 한다’라고 응답했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업재해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답변은 79.4%에 달했다. 결국 정부와 경영계가 주장해 왔던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논란에 대해 일반 국민은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더 이상의 법 적용 유예 연장 논의에 압도적인 반대 여론이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전체 중대재해의 80%가량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지난 10년간 50인 미만 사업장 산재 사망 노동자는 1만 2,045명이고 이 중 사고사망은 7,138명에 달한다. 매년 700명 이상이 죽어 나가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유예기간 연장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위기의 일터에 계속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시간과 날짜를 미루는 유예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 여름만 한철? 2023년도 물 건너간 폭염대비법안

폭염특보가 내려진 2023년 6월 19일, 코스트코 하남점 야외주차장에서 일하던 청년 노동자 김동호 님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일 해당 지역 최고기온은 35.2℃에 달했고 이틀째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이었다. 이처럼 폭염으로 쓰러지는 노동자들이 매년 늘고 있다. 최근 5년간만 해도 온열 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는 117명이었다. 이 가운데 19명은 숨졌다. 소규모 사업장은 유독 온열 질환에 취약했는데, 전체 온열 질환 산업재해 117건 중 70건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특히 사망자 19명 중 15명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위기로 인해 폭염, 폭우, 혹한 등이 심각해졌고,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더 자주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된다. 사회적으로 기후위기에 따른 위험노동을 어떻게 줄일지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가 고온 등으로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사업주가 보건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업주가 보건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그런데도 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온열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3대 기본 수칙, ‘물 ·그늘 ·휴식’이 있지만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 즉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 제도적 강제가 뒤따라야 한다.

전국이 폭염으로 들끓던 지난 8월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폭염 대비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앞다퉈 외쳤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마련될 것 같던 입법 절차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여야가 논의한 폭염 대비 법안은 ‘폭염·한파 시 지방자치단체장 혹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업주에게 작업 중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주가 폭염 예방 조치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법제화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자 논의가 멈춰 버린 것이다.

올해에는 다를 것 같더니 역시 마찬가지라는 뒷말이 나온다. 폭염 대비 법안은 여름이면 반짝 관심을 모았다가 날씨가 선선해지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수년째 반복됐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폭염에 노출되는 작업장은 겨울에는 한파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여름이든 겨울이든 지나친 폭염, 한파에 생명을 위협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필요하다.

 

 

5. 기타 노동 동향 

 

● 먹튀 폐업에 손배·가압류까지, 노동권 말살에 저항하는 옵티칼 투쟁

2022년 10월, 공장 생산동이 원인불상의 화재사고로 전소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한국옵티칼)는 한 달 만에 국내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한국옵티칼은 LG디스플레이에 LCD편광필름을 납품하는 일본 닛토덴코그룹 한국 자회사로, 2003년 구미4국가산업단지 외국인투자전용단지에 입주했다. 당시 구미시는 외투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50년간 토지 무상임대, 법인세, 취득세 등 각종 특혜를 한국옵티칼 측에 제공했다.

회사는 “청산절차 이행을 위해서 위로금만 논의할 수 있다”며, 공장재건 및 고용에 관한 노동조합(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이와 동시에 회사는 1년 치 임금을 위로금으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직원 210명에게 희망퇴직을 통보했다.

불타버린 공장은 물론 이곳에서 성실하게 일해 온 노동자들까지 모질게 내동댕이친 회사의 일방적인 공장청산 통보에 노동자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공장이 화마를 입어 사라졌다 한들 그것이 노동자들의 일과 삶마저 깡그리 삭제해도 괜찮다는 근거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더구나 노동자들을 재고용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닛토덴코그룹이 화재보험금으로 챙긴 1,300여억 원으로 공장을 재건하든 평택공장인 한국니토옵티칼로 고용승계를 하든 남아 있는 노동자들의 고용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한국니토옵티칼 역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와 마찬가지로 일본기업 닛토덴코의 자회사로 편광필름을 제조하는 생산법인이기 때문이다. 한국니토옵티칼은 구미공장에서 넘어온 생산 물량을 맞추기 위해 30명을 신규채용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니 한국옵티칼 13명의 고용을 승계하지 못할 이유란 있을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된 노동자들이 공장을 지키며 고용문제 해결을 요구하자, 회사는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에 나섰다. 1년째 공장을 지키며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사측은 퇴거불응과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하는 한편, 방해금지 가처분과 철거 지연에 따른 ‘손해액’ 2억 원 규모의 가압류를 법원에 신청한 것이다. 2023년 8월 말 사측의 가압류 신청이 받아들여져 농성 중인 조합원 5명의 전세보증금이 묶였다. 공장 화재 발생이 분명 노동자들 책임은 아닐진대, 일터를 잃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삶의 터전까지 잃을 위기에 그렇게 내몰렸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당연히 설비 유지보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측에 있을 터였다.

사측은 ‘토지 원상회복’이 2023년 한 해 동안 거듭된 공장철거 시도 이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측이 원상회복해야 할 것은 노동자들의 사라진 일자리가 무엇보다도 우선이다. 또한 쟁의행위 중인 노동조합을 상대로 기업이 손배소로 앙갚음하는 관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노동자들의 일과 삶은 아랑곳없이 이윤만 챙기느라 여념 없는 먹튀자본의 행태에 맞선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투쟁이 꼭 승리해야 하는 이유다.

 

● 방영환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법대로 해 달라”는 간단명료한 외침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던져야 할 만큼 절박하고 힘겨운 싸움이 되는 세상이다. 2023년 9월 분신 자결한 택시 노동자 방영환에겐 택시 완전월급제 실시와 임금체불 문제 해결 요구가 그랬다. 생전 열사는 해성운수라는 회사 소속으로 근무해 왔다. 그는 회사의 불법행위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된 이후 지난한 소송을 거쳐 복직한 뒤에도 227일간 회사 앞에서 1인시위를 계속해야만 했다. 해성운수가 현행법상 불법인 사납금제를 피해, ‘기준운송수입금’으로 이름만 바꾼 채 사납금제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사납금이란 택시회사에 소속된 기사가 당일 수입의 일부를 회사에 내고 남은 초과금을 정해진 방침에 따라 가져가는 제도를 말한다. 변형 사납금제를 존치해 온 해성운수는 방영환 열사에게 하루 19만 3,000원을 꼬박꼬박 떼 갔다. 이처럼 사납금제는 택시업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사업주에게 고정적인 소득을 보장해 주는 임금 수탈 제도와 다름없다.

방영환 열사뿐만 아니라 전국의 법인택시를 운행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이 변형 사납금제 때문에 도로 위 장시간 노동을 감수해야만 했다. 과속·난폭운전, 승차거부 등 반복해서 제기되는 위험하고 불친절한 법인택시의 문제점 역시 이 같은 사납금제의 폐단에서 나온 것이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택시 사업주의 온갖 꼼수로 유지돼 왔던 사납금제를 근절하기 위해 지난 2020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일부개정돼 택시 노동자에게 운행경비를 전가하지 않도록 했음에도 택시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법이 횡행하고 있다.

이에 ‘방영환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023년 10월 18일 출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방영환 열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택시 사업주에 대한 처벌 및 법령에 따른 택시 완전월급제 전면시행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쳐 왔다. 12월 11일, 방영환 열사를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해성운수 대표이사 정승오가 구속됐지만, 해성운수 등 21개 택시회사를 거느린 동훈그룹 일가는 공식사과 등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대한 이행조차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택시 노동자들이 사업주의 횡포와 정부 당국의 무책임한 행정에 목숨을 버리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택시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용객인 시민들도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때까지 관심을 거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 민주노총 상담통계로 확인되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 권리 실태

민주노총이 2023년 1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의 5,659건의 상담 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상담자 특성으로 살펴볼 때 60대 이상의 상담 비중이 늘고 20대 이하의 상담은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는 점, 노조 없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개별 상담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작은 사업장 상담이 늘고 있다는 점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사업 규모별로 살펴볼 때 30인 미만이 전체의 51.5%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5인 미만 사업장 상담이 10.2%로 나타나 전반적으로 작은 사업장의 상담이 늘고 있는 추세다.

상담 유형별로 살펴볼 때 임금에 관한 상담이 29.2%로 가장 많았고, 해고·징계 등 인사 관련 상담과 노동3권 상담이 각각 11.7%와 11.6%, 산업재해 및 노동안전 관련 상담이 10%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업재해 및 노동안전 상담이 지난 3년간 계속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작은 사업장의 상담이 많은 것만 아니라 그 내용에서도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특징들을 확인되었다. 작은 사업장의 경우 임금에 관한 상담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같지만 그 비중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났고, 노동3권과 관련한 상담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으며, 4대 보험과 관련한 상담도 작은 사업장에서 더 비중이 높았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임금에 관한 상담이 48.2%를 차지했고, 노동3권과 관련한 상담은 0.8%에 불과했다. 100인 미만 규모로 살필 때도 노동3권 관련 상담은 1% 전후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1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에는 임금에 관한 상담 비중이 10%대로 나타나는 반면 노동3권에 관한 상담이 100~299인 23.1%, 300인 이상 28.5%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작은 사업장의 노동3권이 매우 취약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상담통계를 발표하며,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요구가 있지만 권리 보장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노조할 권리가 더 폭넓게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 작은 사업장의 노동안전이 계속 위협당하고 있는 현실이 확인되는데도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를 시도하는 등 정부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는 점에 대해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2018년부터 전국의 노동상담 내용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매년 통계를 분석하고 향후 노동자 권리보장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관련한 자세한 통계는 민주노총 홈페이지(https://nodong.org/statement/7844293)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이주노동/고용허가제 

 

● 가사·돌봄의 시장성만 좇는 정부의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 정책

2023년 7월 31일 고용노동부는 저출산 대책 일환으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9월에는 제39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 및 제2차 외국인력통합관리TF에서 고용허가제(E-9)의 일부로 이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국무조정실은 밝혔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2022년 합계출산율 0.59명을 기록한 서울지역 맞벌이 부부를 상대로 시범사업을 벌여 100명 규모의 이주 가사노동자를 이르면 2023년 12월부터 도입하게 되며, 사업의 목표는 가사 및 육아돌봄 부담 완화이다. 고용허가제 틀을 활용하는 만큼 이들에게는 최저임금 포함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법이 적용되고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에서 고용돼 일하게 된다. 하지만 국내 가사노동자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종일근로가 아닌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정부는 “6개월가량의 시범 운영을 통해 서비스 만족도, 희망하는 비용 지불의 수준, 관리개선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진단하여 육아·가사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는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현재 (급여는) 월 200만 원이지만, 월 100만 원 정도 되면 정책 효과가 좋겠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10월 16일 서울시청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답했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선정한 시범사업 업체는 이들의 숙소를 고시원에 마련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른바 ‘저출산 대책’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시범사업 구상이 나올 무렵부터 이주·여성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특히 정부가 양질의 가사·돌봄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한 공적 책임은 사실상 누락한 채 돌봄의 권리를 앞장서 시장화한다는 비판이 거셌다. 개별 가족 안에서 이주 가사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은 결국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돌봄을 위치 짓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에 35개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이주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은 8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단순한 비용 절감만을 목적으로 이주 가사·돌봄 노동자를 확대하는 것은 외국인 차별·착취에 앞장서는 것”이라며 시범사업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돌봄 노동 가치 하락’이나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침해 우려’ 등이 잇따라 제기되었지만 그에 대한 보완책은 이번 시범사업에서 비중 있게 고려되지 않았다. 

 

● 이주노동자 기본권 제한하는 정부의 고용허가제 개악

정부가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대응을 위해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지역제한 조치를 2023년 10월 19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7월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비전문(E-9) 외국인력의 사업장 변경제도, 숙소비 기준 및 주거환경에 관한 개선방안’을 의결한 데 따른 조치로 △ 권역 내 사업장 변경, △ 최초 취업사업장 장기근속 유도, △ 사업장 변경이력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사업장 변경 시 수도권, 충청권, 경남권, 경북·강원권, 전라·제주권 등 5개 권역 안에서만 가능하도록 했고, 조선업과 같은 인력난이 심각한 업종의 경우 세부 업종 안에서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했다. 기존에도 사업장 변경제도는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직장 변경 및 선택의 자유 침해에 더해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침해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일련의 계획은 오로지 기업의 이주노동자 인력운용 애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주노동자를 국내 산업에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만 담고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이나 열악한 숙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대책은 빠져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태업 등 근로자 귀책사유로 인한 사업장 변경이 잦다’는 사업주들의 일방적 주장을 고스란히 수용했다. 사업주들이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이주노동자의 잦은 사업장 변경이 안정적인 인력운용 및 숙련 형성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설령 사업주들이 말하듯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신청이 부쩍 늘었다 하더라도, 이는 이주노동자 고용 사업장의 노동조건, 기숙사 환경, 비인간적인 대우 등 차별과 착취가 그만큼 뿌리 깊은 탓이다.

따라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 및 권리 보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역의 빈 일자리 문제, 생산인구 감소를 핑계 삼아 이주노동자의 발을 아예 꽁꽁 묶어두는 정부 정책은 명백한 강제노동이다.

이주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본권 침해 폭거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 

 

● 인프라 확충해도 모자랄 판에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 ‘0원’

정부는 고용노동부가 민간 비영리단체에 위탁·운영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2024년도 예산 약 71억 원을 전액 삭감한 예산안을 지난 2023년 9월 국회에 제출했다.

2004년 처음 설립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전국에 9개 거점센터와 31개 소지역센터가 있다. 센터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임금체불 등 노동조건에 대한 상담과 한국어·산업안전 교육 등을 진행해 왔다. 거점센터의 경우 전액 고용노동부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정부 예산안 발표 직후 폐쇄 위기에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이어 12월 21일 국회는 2024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는데, 결국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민간위탁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문제는 정부가 센터 지원예산을 모조리 삭감한 가운데 국내에서 일할 이주노동자 인력 규모는 올해 12만 명까지 증원할 계획이라는 점이다. 예산을 배정받지 못한 센터는 새해부터 당장 문을 닫게 된 상황인데도 정부는 “센터의 교육기능은 산업인력공단으로, 상담기능은 지역노동청으로 이관하므로 문제없다”는 입장을 그간 피력해 왔다. 그러나 예산과 전문성 부족에 따른 업무 혼선 우려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는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 주로 주말을 이용해 센터에서 대면 상담을 해 온 데다가, 상당수의 소지역센터는 이들을 위한 장터나 문화행사를 여는 등 지역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과연 지역노동청이 센터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들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이주노동자 고용을 대폭 확대하겠다면서도 상담, 교육, 교류 등으로 이주노동자의 체류를 지원해 온 센터를 폐쇄키로 한 결정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대책은 쏙 빼놓은 채, 이처럼 인력수급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정부 정책은 전형적인 ‘땜질식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7. 판정·판결·법률 동향 

 

● 노조법 2·3조 개정과 관련해 주목할 판결들

올해는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해 이어졌고, 그와 관련한 판결들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연초에는 CJ대한통운이 집배점 소속 택배노동자들에 대해 노조법상 사용자로서의 지위를 가지며, 전국택배노조의 교섭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의 교섭 불응을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첫 판결로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을 근로계약관계로만 한정해야 할 필요성도 정당성도 없으며, 노조법상의 ‘사용자’에는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권한을 갖는 사업주가 포함된다는 해석을 내린 의미 있는 판결이다.

손해배상청구와 관련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 준 판결도 나왔다. 올해 6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투쟁에 대해 회사 측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노조와 개별 조합원의 손배 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노동자들이 패소했던 부분을 파기하고 환송한 것이다. 또 손해배상액에서 쟁의행위 이후 추가 생산 등을 통해 생산손실이 만회된 부분에 대해 원심에서는 이를 고려하지 않았으나, 대법원은 휴일, 연장근로 등으로 손실이 만회되고 이에 따른 매출 감소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고정비를 손해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이 판결은 손해배상과 관련한 노조법 3조 개정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내용인 한편,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위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 판결이기도 했다. 

 

● 노동자성을 인정한 다양한 판결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으로 불리며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의 노동법상 지위를 인정한 판결들도 많았다. 3월에는 가구업체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가구 수리기사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지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3월에는 위탁계약을 체결한 헬스트레이너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연이어 나왔다. 이 판결은 그간 헬스트레이너의 근로기준법상 지위에 대해 엇갈린 판결을 정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8월에는 아이돌보미 노동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서비스 제공기관의 사용자 지위를 인정한 첫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왔다. 이 판결은 아이돌보미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자나 베이비시터 등 제공기관을 통해 서비스를 공급하는 많은 영역의 노동자 권리 상태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던 판결이다.

무늬만 프리랜서에 제동을 거는 대법원 판결도 있었다. 6월 대법원은 프리랜서 계약을 하고 일하던 국방홍보원의 프리랜서 음향감독 부당해고 사건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을 인정하고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11월에는 뮤지컬 앙상블 배우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도 있었다. 이 사건은 간이대지급금 지급을 거부한 근로복지공단의 처분 취소를 구한 사건으로 법원은 사전에 기획된 공연사업에 종속되어 주문된 대로 일하는 일의 성격을 근거로 노동자임을 인정했다. 예술노동이라는 인식보다 실제 노동의 양상과 종속 구조를 들여다본 판결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인 판결이었다.

10월에는 수입자동차 판매대리점과 판매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일하는 판매영업사원(카마스터)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프리랜서 계약이나 실적임금이라는 형식이 아닌 노동관계의 실질을 살펴 내린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다. 

 

● 무기계약직(공무직)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판결

9월 공무직 노동자의 차별과 관련해 공무원이 비교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나왔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특수한 신분이기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으며, ‘무기계약직’이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차별 금지 사유인 ‘사회적신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공무원이 특수한 신분이라는 것 외에 무기계약직이 사회적신분이 아니라고 볼 합당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아, 결국 공무원이 무기계약직과 다른 특수한 지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에 끼워 맞춘 판결로 비판받았다. 업무의 범위나 책임, 권한 등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주된 업무의 내용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종 유사업무에 해당한다고 보아 온 지금까지의 해석을 크게 제한하는 것으로 문제가 큰 판결이다.

또 10월에는 15년간 주차단속 업무를 수행해 온 노동자들 절반 이상을 해고한 제주시 주차단속 공무직 사건에서는 결국 해고 조치가 정당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해당 업무를 공무원이 아닌 자가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인데, 사안의 근본적인 원인은 충분하지 않은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메꿔 온 공공부문의 인력운용 방식에 있다. 제주시 사례처럼 노동자들의 업무를 뺏고, 계약직 공무원으로 대체하고, 일부는 해고하는 방식은 노동자의 일에 대한 존엄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수도 없다. 이 판결의 결론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간접고용 등을 활용하는 공공부문 인력 활용의 문제가 제대로 지적되지 않고 있는 점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 그 외, 기억해야 할 주요 노동 판결

올해 5월에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요건인 ‘집단적 동의’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노사대등원칙을 확인하는 중요한 요건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관 7명 다수의견)이 나왔다. 그렇기에 변경되는 취업규칙의 내용이 타당하다거나 합리적이라거나 하는 이유로 그 권리가 대체될 수는 없다고 보았으며, 이는 기존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면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유효하다고 보았던 종전 판례를 변경하는 중요한 판결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판결은 현 정부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관련한 법률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추진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다만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행사할 때도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어, 동의권 남용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있어서 또 다른 쟁점을 낳은 판결이기도 하다.

11월에는 노동조합의 작업중지권을 인정하는 첫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와 주목을 받았다. 대법원은 화학물질 누출사고에 대해 작업을 중지하고 동료들을 대피시킨 노동조합 지회장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개별 노동자가 권리 행사를 하기 어려운 일터에서 노동조합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확인한 판결로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