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3] 마사회법 개정의 한계와 의미 / 김혜진

by 철폐연대 posted Mar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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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법률 돋보기

 

 

마사회법 개정의 한계와 의미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2017년 부산경마공원 박경근, 이현준 말관리사가 목숨을 끊으면서 마사회의 비민주적인 조직운영과 말관리사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그리고 2019년 문중원 기수가 마사회와 경마산업 전반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런 죽음을 묵과하지 않으려고 8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마사회 경마기수 고 문중원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싸웠다. 102일간의 긴 투쟁 끝에 2020년 3월 9일 문중원 열사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문중원 열사 장례를 마쳤지만 시민대책위원회는 공공기관 한국마사회를 제대로 변화시킬 과제를 책임지기 위해 ‘한국마사회적폐청산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적폐청산위원회)로 전환했다. 그리고 ‘마사회법 개정 TF’를 구성하여 법개정안을 만들었다.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많이 수정되었고, 2023년 12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윤미향 의원이 마사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국회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미 22대 국회의원 선거 시기로 들어선 지금, 이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렵겠지만 이 법안이 유실되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마사회법 개정의 필요성 

 

마사회는 도박산업의 독점시행체이다. 마사회는 매출 증대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면서 불법에 눈을 감고 사행성 경마를 장려해 왔다. 2021년 한국마사회 공익감사와 정기감사를 보면 마사회는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편법으로 ‘S등급’을 받아 임직원이 경영평가 성과급을 받았다. 외국인 고객에게 마권 구매 편익을 제공하면서 외국인 도박단을 유치하기도 했다. 마사회 예산에서 경마사업 운영 비용은 98.5%인데 말산업 육성과 사회공헌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1.0%에 불과했다. 마사회가 공공기관으로서 사행성을 멀리하고 말산업 육성과 국민복지증진을 위한 사회적 가치 창출에 나서도록 공공성을 강화해야 했다.

 

또한 마사회는 권한을 분산해야 했다. 마사회는 조교사와 기수들의 면허등록과 취소에 대한 권한을 갖고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했다. 그런데도 마사회는 ‘개인마주제’라는 구조에서 경마관계자들은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말관리사나 기수와는 아무런 고용관계가 없는 단순한 시행체일 뿐이라고 했다. 마사회의 강력한 권한 속에서 권리 없는 경마관계자들은 마사회를 견제할 힘이 없었다. 주무부처인 농립축산식품부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 감독 기관의 통제 권한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래서 마사회의 권한을 분산하고자 했다.

 

기수들은 개인사업자 형태이고, 말관리사는 마사회가 직접 고용하지 않고, 마주와 계약을 맺은 조교사들에게 고용되어 있다. 그런데 기수와 말관리사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사실상 마사회가 결정한다. 고용구조가 왜곡되어 있는 구조에서 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고 노동조건 개선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고용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개인마주제’ 시스템 전체를 변화시켜야 하는 문제라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고용구조 전반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상황을 인정하더라도 기수와 말관리사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했다.

 

그동안 경주마들이 좋은 조건에서 사육되고 훈련하고 출전하고 퇴역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1991년에 동물보호법이 제정되었지만 그 법을 경주마의 복지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현실에서는 고의로 경주마의 다리 골절을 유도하는 학대행위가 발생하기도 했고, 경주에서 과도한 채찍 사용을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도 없었다. 퇴역마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경주마의 복지향상은 마사회의 중요한 책무로, 그리고 중요한 과제로 다루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과제는 어떻게 실현 가능할까. 노동조합을 지원하고, 마사회의 여러 비리들을 고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마사회의 변화는 내부 구성원들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위 문제를 개선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도 중요했다. 그래서 적폐청산위원회 산하 ‘마사회법 개정 TF’에서는 마사회 설립과 운영의 근거인 ‘한국마사회법’을 개정하고자 한 것이다.

 

 

6. 본문사진.jpg

2021.01.25. 말산업 종사자의 노동권과 동물권 확대를 위한 한국마사회법 개정안 처리 촉구 기자회견. [출처: 동물자유연대] 

 

 

마사회법 개정안의 한계 

 

‘마사회법 개정 TF’에서 마사회법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이 개정안을 발의할 의원을 조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법안을 다루는 상임위원회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인데, 윤미향 의원이 농해수위에 들어오고 나서야 법안 발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법안이 발의될 뿐만 아니라, 통과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가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법안의 중요 내용이 제외되었다.

 

마사회법 개정 TF는 마사회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규제하고자 했다. 문중원 기수의 죽음을 야기한 기수와 조교사의 면허 등록과 취소의 권한을 농림축산식품부로 분산하려고 했다. 그리고 경마종사자의 인권보호, 경마종사자의 노동권, 말 복지와 관련한 정부의 지도 감독 권한을 강화하려고 했다. 그리고 경마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하는 말산업발전위원회에서 마사회의 일방적 결정을 막기 위해 위원의 위촉 등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려 했다. 또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감독 기능도 강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현행 관리감독 기능으로도 충분하다는 정부의 주장으로 이 내용은 삭제되었다.

 

기수와 말관리사의 결정권, 그리고 노동권을 확보하려고 했던 마사회법 개정 TF의 문항도 담기지 못했다. 마사회법 개정 TF에서는 기수와 조교사, 말관리사 등 경마관계자의 권리와 의무를 담은 장을 신설하고자 했다. 마사회법이 경마의 운영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담을 뿐, 경마관계자의 권리를 다루는 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수의 기승거부권이나 경마관계자의 안전권과 같은 권리를 명시했다. 또한 사실상의 사용자인 마사회와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명시했다. 이를 통해 경마관계자 간 평등한 관계를 도모하고 마사회의 내부 견제기능을 강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발의된 개정안에는 이 내용을 담지 못했다.

 

동물복지에 관한 내용도 처음 마사회법 개정 TF에서 논의했던 내용들 중에 일부만 담겼다. 이미 시행 중인 동물복지법과 중복된다는 이유였다. 

 

마사회법 개정안의 의미 

 

마사회법 개정안에 마사회의 권한을 분산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발의된 마사회법 개정안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이 법의 목적에 한국마사회가 경마의 공정한 시행과 말산업의 육성에 관한 사업을 공공성에 입각하여 효율적으로 수행하게 함(안 제1조).

나. 마사회가 경마의 공정한 시행과 사행성 조장 예방을 위한 종합적인 방안 및 말산업 관련 기술 및 서비스의 연구와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시책을 강구하고 추진하도록 책무를 규정함(안 제2조의2 신설).

다. 말산업발전위원회의 설치 목적에 경마 및 말산업 관련 종사자의 안정적인 근로환경 조성 등에 관한 자문을 추가하고, 같은 위원회 위원 자격에 말관리사, 「동물보호법」 제4조제3항에 따른 민간단체의 임직원 또는 동물복지에 관한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자를 추가하며, 마주, 조교사, 기수 및 말관리사의 대표자는 각 1명 이상 같은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도록 함(안 제32조의2).

라. 마사회의 사업 범위에 말의 복지 증진 및 보호 시설 설치를 위한 사업을 추가함(안 제36조).

마. 마사회의 임직원, 마주, 조교사, 기수 및 말관리사의 공정하고 건전한 경마 실행 의무 및 불법경마나 비위행위를 인지한 경우 신고 의무를 신설함(안 제47조의2 신설).

바. 마사회법상 과태료 상한을 현행 1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인상함(안 제61조).

 

이 법 개정안은 공기업인 마사회에 공공성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음을 명확히 했다. 지금까지 마사회는 경마의 시행과 말산업 육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여기에 ‘공공성’을 넣어 공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마사회가 경마의 공정한 시행, 사행성 조장 예방을 위한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고, 말산업과 관련한 연구개발 촉진의 책무도 담았다. 경마관계자의 공정하고 건전한 경마 실행 의무, 그리고 불법경마와 비위행위를 인지한 경우 신고 의무도 신설했다. 어찌 보면 추상적인 문구일 수도 있지만, 경쟁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마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랐다.

 

또한 이 개정안은 마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말관리사는 그동안 마사회법에 규정조차 없었고, 따라서 경마산업에서 주체로 인정되지 못했다. 이에 말관리사의 정의를 법에 명시하였다. 또한 마사회의 모든 정책을 심의하는 말산업발전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게 했다. 그리고 기수와 말관리사가 말산업발전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마사회의 사업범위에 말의 복지증진과 보호시설 설치를 위한 사업을 추가했고, 말산업발전위원회의 위원 자격에 동물복지에 관한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자를 추가하도록 했다. 또한 마사회가 말의 복지증진과 보호시설 설치를 위한 사업을 하도록 규정했다. 부족하더라도 말 복지증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마사회적폐청산위원회 마사회법 개정 TF는 이 개정안이 한계가 많기는 하지만, 공공성과 노동자 권리를 조금이라도 진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통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21대 국회에서 이 법안의 통과가 어려워졌지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다음 국회에서도 개정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현장이 바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마사회를 감시하고, 마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마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 그리고 마사회라는 사행성 산업을 시행하는 공공기관을 규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시민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