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12] 가지 않은 길을 함께,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의 정규직 전환 투쟁 /김태형

by 철폐연대 posted Dec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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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가지 않은 길을 함께,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의 정규직 전환 투쟁

김태형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

 

 

2017년 5월 12일! 꿈만 같은 날이었다. 취임 후 3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이후 한 가닥 희망이 생긴 것이다. 한국가스공사에 근무하는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같은 해 9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도움으로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를 결성하게 됐다. 대구에 본사를 둔 한국가스공사 산하 기지본부(평택, 인천, 통영, 삼척), 지역본부(서울, 인천, 경기, 강원, 대전충청, 전북, 광주전남, 대구경북, 부산경남), 기지건설단(인천, 제주) 등 16개 지회를 조직하고 직종별 지부장을 선출해 공동지부장 체제로 지도부를 꾸렸다. 조합원은 비정규직 노동자 1,137명 중 873명이 가입해 힘차게 출범했다.

 

 

“우리에겐 권한이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당시 가스공사에는 사장이 공석이었다. 신임 사장 취임만 손꼽아 기다렸다. 사장이 없는 상태에서의 노사전문가협의회는 결정권이 없다는 사측의 주장에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학수고대했던 신임 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2018년 1월 8일 부임했다. 그 사람이 바로 정승일 현 산업통산자원부 차관이다. 기대와 달리 정승일 사장은 8개월 만에 차관으로 영전하는 동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마침표를 찍지 않고 한국가스공사를 떠났다.

또다시 직무대행 체제, 2019년 7월 10일까지 결정권이 없다는 사측의 무관심으로 허송세월만 보내야 했다. 신임 사장 취임만이 길이라는 심정으로 국민연금공단, 서울대병원 같이 현명한 리더를 고대하며 기다려야만 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정말 힘이 있고 현명해 보이는 사장이 취임했다. 바로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신임 사장이다.

채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 정부 시절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산업정책비서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힘 있는 사장의 출현으로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취임 초기 협상 날짜가 빠르게 잡히고 속도감이 느껴졌다. 내리 13차, 14차 노사전문가협의회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측 협상 대표는 놀라운 말을 하고 만다.

“우리에겐 권한이 없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협상 대표로 앉아 있는 한국가스공사 고위직에서 이런 무책임한 말이 나올 줄 몰랐다. 이에 우리 노동자들은 사장 면담을 요청했다. 사장 면담 후 오는 11월 26일, 사측도 성의 있는 협상안을 갖고 나오겠다고 약속했다.

 

 

투쟁본부 출범

 

비정규지부는 지난 9월 18일 대림동에 위치한 전국공공운수노조 별관 2층 회의실에서 공공운수 민길숙 조직쟁의실장, 박유리 조직쟁의국장, 공성식 정책기획국장과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 노조 담당자 회의’를 갖고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조의 계획과 기존 운영위를 투쟁본부로 전환하는 안건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비정규지부 운영위원들은 안건을 모두 통과시키며 투쟁 의지를 새롭게 했다.

조직 자체를 투쟁본부(본부장 홍종표), 집행위원회(위원장 정동일), 조직쟁의분과(분과장 박인국), 정책교섭분과(분과장 박기춘), 교육선전분과(분과장 이태용)로 세분화하고 기존의 16개 지회를 권역별로 조직화했다. 권역은 수도권(7개 지회), 충청·호남권(3개 지회), 영남권(6개 지회) 등 세 개 권역으로 나눠 원활한 소통과 연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는 최근 한국잡월드분회 전환 채용,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직접고용 등에서 공공운수노조가 성과를 내고 있지만 해결할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지부의 정규직 전환에 있어서 공공운수노조는 총괄원칙 하에 △ 전환대상: 상시‧지속 업무는 모두 전환, 예외는 불가피한 경우만 최소화 △ 전환방식: (기간제) 무기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으로의 전환, (파견·용역) 모회사 직접고용, △ 채용방식: 현 노동자 고용 전환 최대한 관철 등을 고수하며 정규직 전환 1·2단계 사업장은 올해 내로 전환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집중교섭 및 투쟁을 명확히 했다. 이후 우리들은 쟁의권 확보에 주력하며 결전을 다졌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입니다”

 

 

매우 의미 있는 일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10월 29일 한국가스공사 경기지역본부 설립 이후 최초로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 연구·경기지회 공동 결의대회가 열렸다. 투쟁본부로 전환하고 10월 초 전 지회 순회 간담회를 실시했다. 그리고 10월 18일 본사지회와 경북지회를 필두로 15개 지회에서 순차적으로 순회결의대회 개최에 돌입했다. 이를 통해 11월 총파업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수순을 밟은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 중 연구·경기지회 결의대회에서 홍종표 투쟁본부장의 투쟁사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다.

“노동 현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 가는데도 아직도 세상은 바뀌지 않고 있다. 왜 안 바뀌는지 알고 있나. 그것은 제가 그동안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제 탓이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은 내 형제가 될 수 있고 내 자식이 될 수 있는 비참하게 죽어간 노동자들을 우리 대에서 막아야 한다”며 노동운동에 나서는 우리들 각자에게 매우 시금석과 같은 말을 남겼다.

 

 

급여는 기밀사항, 직원 긴급 모집 내놓고 채용 협상

 

비정규직의 설움은 무엇일까? 서울지회 결의대회에서 전산 심지수 동지의 투쟁사를 듣고 있다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심 동지는 한국가스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혼자 컴퓨터 400대, 프린트 100대, 기타 기기 등 모든 사무실, 관리소, 양주지사까지 관리하고 있다. 250명의 가스공사 직원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제 월급이 많은 줄 알고 계시지만 공사 내 비정규직 중 제일 적다. 7명의 지역 사업소 전산 비정규직(OA)이 모여 대구 본사 항의를 결의하고 2명이 방문했지만 잘릴 뻔 했다. 2015년, 용역사는 왜 기밀사항인 급여를 공사 측에 공개했느냐며 해고하려 했다. 이후로도 변한 것은 없다. 시중노임단가, 물가인상 등 적용 없이 딱 하나 최저시급 적용 받고 있다. 임금 협상 시 동결만 되어도 다행이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한국가스공사 서울지역본부 OA직원 긴급 모집’을 걸어 놓고 협상을 하자고 한다. 이게 협상인가, 협박인가?”

 

 

비정규직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의미는……

 

비정규직의 설움은 이뿐일까? 지난 7월 아끼던 후배 동료 한 분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오십도 안 된 나이에……. 그는 나와 같은 한국가스공사 경기지역본부 특수경비로 종사한 비정규직이다. 그는 죽기 몇 주 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간암 말기 소식은 불과 수개월 전에 들었다. 복수는 차오르고 팔다리는 갈수록 가녀려졌다. 볼살이 빠져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 나와 보였다. 주위의 퇴직 권유에도 그는 꿋꿋이 출근을 했다.

그때 판단을 빨리 하지 못한 내 자신이 하염없이 원망스럽다. 간암 말기에 복수가 차오르는 상황에서 뭘 더 바랄 수 있었을까? 그러나 나도 그도 한 가닥 희망을 가졌다. 신약 테스트 신청도 해봤다. 그의 희망을 들어준 특수경비 현장대리인도 상황이 반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상의를 해왔다. 결국 동의를 하고 그에게 말을 건넸다. 말이 없었다. 한참 지나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리고는 수주 후 세상을 떠났다. 퇴직 후 개인형IRP(퇴직용) 계좌도 함께 가서 개설했지만 퇴직금은 고스란히 남긴 채 그는 떠났다. 후일 유족에게 전해들은 얘기지만 퇴직을 권한 것을 원망했다고 들었다.

무엇이 그를 죽음의 문턱까지 가도록 일에 매달리게 했을까? 노동자는 몸이 재산이다. 아프면 그 순간 노동시장에서 매장되고 만다. 실업급여? 그것도 근로가 가능해야 받을 수 있다. 용역사가 퇴직 처리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노동지청의 창구 직원은 해당사항이 안 된다며 딱 잘라 설명했다. 행정복지센터에 문의를 해도 집도, 차도 있어 딱히 도와줄 방법이 없단다. 단지 죽으면 장례비 얼마 정도가 전부일 뿐.

아파도 마음 놓고 쉴 수 없는 비정규직!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협상이 한창인 그 순간에 더욱 미련이 남지 않았을까? 묻지 못했다.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자체도 두려웠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 현장에서 비정규직은 병을 키우고 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 비참할 따름이다. “그대, 하늘에서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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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천기지지회 순회 결의대회 [출처: 필자]

 

 

“연금 수급액 앞자리 숫자를 바꾸자!”

 

지난 2년을 협상해 왔다. 애초 우리의 대응 방향 계획은 전환대상, 전환방식, 전환시기, 채용방식, 임금 및 노동조건 등 처우 개선, 인사관리 순으로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사측은 파견직만 직고용하고 타 직종에 대한 전환방식은 철저히 함구, 아니 자회사 방안만 고수했다. 직고용 직종조차 전원 전환이 아닌 신규 채용 방식을 내비쳤다.

몇몇 조합원 동지들의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그러나 조합 설립 후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3~4년 동안 오르지 않았던 임금을 올렸으며 처우 개선에도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재계약이 거부된 동료와 함께하기 위해 12명의 전산 동지들이 투쟁하여 복직의 기쁨도 맛보았다. 노조가 무엇인지를 짧은 기간이지만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도 어떤 분들은 저절로 될 일을 호들갑 떤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들이 밉지만 가던 길을 멈출 수는 없다.

자회사의 결과물은 이미 충분히 목도했다. 자회사 전환으로 협상을 마무리한 타 공공기관 연대 동지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결의를 다진다.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우리 노측은 사측에 자회사 설립 자금의 출처를 끊임없이 물었다. 그러나 사측은 묵묵부답이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여기서 무릎을 꿇는다면 또 다른 이름의 용역사인 자회사에서 여생을 마쳐야 할 운명에 처하고 만다.

지금 투쟁을 멈출 수는 없다. 지금 잘 싸워 연금 수급액의 앞자리 숫자를 바꿔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 수급액 평균이 92만 5천 원이다. 그러나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에 크게 못 미칠 것이다. 나 또한 평균치에 못 미친다.

앞으로 더욱 결연한 의지로 투쟁하겠다. 최근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본부 워크숍을 다녀왔다.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 혼자 싸우는 것 같지만 그곳에서 연대의 힘을 체험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때 육상 선수를 했다. 지도해 주셨던 분들 중에 나보다 잘 뛰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분들의 지도를 받았다. 그분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했고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걸었기 때문이다. 노조를 알아 가면서 선배 노동자들의 발자취를 바라다본다. 참 쉽지 않은 길이다. 선배들의 조언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얻는다. 연대하는 동지들이 있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