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706] 또 다른 사각지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리를 지키기 위한 길 / 김헌주

by 철폐연대 posted Jun 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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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각지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리를 지키기 위한 길

김헌주 (경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 철폐연대 회원)

 

 

경산에 와서 이주노동자운동을 한답시고 쫓아다닌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시간이란 게 늘 화살같이 빠르다 생각하지만 경산에서의 10년도 뒤돌아볼 겨를 없이 지나간 느낌이다. 그래도 10년이니 10년을 돌아보는 작은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 중이다.

살던 집이 이사를 할 예정이라 경산의 10년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경북 북부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과 부대끼는 일을 고민하다가 농업노동자 문제에 집중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의 단초를 잡아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노력 중이란 말은 사실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다. 그러던 차에 밀양의 깻잎밭에서 일하는 농업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는 캠페인이 부산울산경남 단체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질라라비>에서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칠 리가 있나. 깻잎밭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활동을 좀 정리해 보라고 연락이 왔다. 한 일이 없는데 무슨 정리나 보고를 할 게 있겠나. 부끄러운 변명 밖에 더 있겠나 싶기도 했지만 이를 계기로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어업․농업 노동자, 요리사․용접공 등 E-7비자노동자, 해외투자기업연수생노동자 등)들의 노동 권리문제에 더욱 천착하라는 채찍으로 여기고 보고서를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또 사고가 터졌다. 경북 군위의 축산농가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정화조 청소를 하다가 황화수소가스에 질식해서 두 명이나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5월 12일이었다. 모처럼 좀 일찍 퇴근한 금요일, 집에 들어서는 순간 TV 뉴스를 보고 있던 아내가 “어, 네팔사람이 죽었다는데 어떡하지?” 라고 해서 화면을 보니 경북 군위의 축산농가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자막으로 나오고 있었다. ‘또 농장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욕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나 욕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나를 위로하는 자기최면일 뿐…….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네팔노동자들한테 전화를 돌리고 방송국과 지역언론사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소문 끝에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 경산과 성서 등지에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사고현장을 방문했다. 찾아간 현장은 군위 우보의 산 속에 있는 상당한 규모의 돼지농장이었다. 농장에 들어서는 순간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냄새가 이럴 진데 도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일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더 기가 찬 것은 이주노동자들의 숙소가 그 농장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기숙사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몰려드는 파리와 역한 냄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새벽부터 하루 10시간씩(점심시간 1시간 포함 11시간)을 역한 냄새와 싸우면서 일을 하고 작업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도무지 생활권이라고는 보장되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에 기가 막혔다. 또한 돼지도 역시 생명인지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사람이 두 명이나 죽은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음 날도 작업을 하고 있는 현실도 어이가 없었다.

 

이후 글을 쓰는 이 시간까지 농업노동자들이 처한 엄혹한 현실을 곱씹어보고 있다. 노동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이 고장난 시스템을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을 반복하면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과 관련된 후속처리문제, 여전히 농장에 매여 작업을 강요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일단 노동부 관계자를 면담하는 일에서부터 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구노동청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18개나 되는 사업주의 위반사항을 찾아낸 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사업주의 구속영장 청구방침을 정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 문제가 부족하나마 농업노동자들의 심각한 실태를 바로잡는 작은 단초가 되기를 바라는 바람이다.

 

<사건 발생 경위 및 문제점>

 

- 5월 12일 오전 대흥종돈장 축사의 돼지를 이송하는 작업을 함. 이송 후 오후 2시경 돼지의 분뇨가 쌓여있는 정화조 청소를 지시함. 분뇨정화조는 원래 기계를 동원하여 호스를 통해서 분뇨를 흡입하여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였으나 사건 당일은 기계가 고장 나서 사장이 고인이 된 두 노동자에게 직접 수작업을 지시함.

- 작업 투입 시 마스크 등의 기본적인 안전도구를 전혀 지급하지 않았고 이 농장에서는 평소에도 고약한 냄새 때문에 작업이 어려울 정도이나 공식적으로 지급되는 게 없어 네팔노동자들이 자비로 마스크를 구입해서 사용하기도 함. 실제로 현장에 갔을 때 작업장 내 기숙사에서 네팔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역겨운 냄새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음.

- 깊이 2미터, 폭 2미터로 추정되는 정화조 안에서 한 명은 양동이로 분뇨를 퍼올리고 한 명은 정화조 위에서 양동이를 받아서 비우는 방식으로 작업을 함. 오후 2시경부터 작업을 시작했고, 약 30분가량 작업을 하다가 정화조 안에 있던 사람이 오물더미로 쓰러지는 것을 보고, 또 한 사람이 구출하러 들어갔다가 그 위에 쓰러지면서 두 사람이 오물더미 속에 파묻혀 변을 당함.

- 이후 작업장에 있던 한국 사람이 구급차를 불렀고 도착까지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됨. 119에 신고하기 전에 네팔노동자들이 현장에 있던 승용차로 긴급하게 이송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119 구급차를 고집하는 관리자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측면이 있음. 축산농장이 위치한 지역은 군위읍으로부터 약 20분 내지 30분 정도 떨어진 산 속의 오지임. 농장의 주소도 정확하게 등재되어 있지 않아 내비게이션을 통해서도 정확한 위치파악이 제대로 안 됨.

- 경찰 및 노동부 조사과정에서 사장은 네팔노동자들에게 작업할 때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진술하라고 강요하기도 함. 사망사고가 발생했음에도 현재 7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임.

 

<작업장 현황과 노동조건>

 

- 이주노동자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휴식하고 하루 10시간씩 일해 왔음. 한 달에 이틀의 휴무일은, 고정일이 아니고 현장작업자들이 번갈아가며 당번을 정해 휴무를 함. 총 9명 중 2명이 사망하여 현재는 7명임.

- 현장에서는 아주 역한 냄새가 났고, 이로 미루어 사망한 고인들이 일했던 정화조는 유독가스가 엄청났을 것으로 추정됨.

- 양돈장 부지 안에 기숙사가 있어 이주노동자들의 생활권이 전혀 보장이 안 되는 상황임.

 

<이후 대책활동 및 제안>

 

- 현재 네팔에 있는 유족들에게는 연락이 되었고 유족들은 사후 수습을 위해 한국에 들어오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음.

- 빈소와 장례절차 등은 유족의 입국 여부가 결정되거나 입국을 하면 그때 의논하기로 함.

- 사망보상 등 보상절차 및 처리는 노무사에게 위임하여 처리하기로 하였으나 이 역시 유족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더 필요함. 사장의 귀책사유(강제노동 지시, 안전조치 미이행, 안전보조장구 미지급 등)가 명백하므로 산재사고로 처리된다 하더라도 사장의 유책보상을 요구해야 될 것임.

- 사장의 귀책사유 등이 명백하므로 2명이나 사망한 사업장의 고용허가 취소문제, 현재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거취문제, 계속 일을 하게 된다면 이후 재발방지대책, 생활환경 개선 등의 요구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음.

- 노동부를 통한 엄격한 현장조사와 재발방지대책 등이 이루어져야 함.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동지들을 위해, 군위 축산농장 사망사건의 발생경위와 대책활동 관련 간단한 경과보고 위와 같이 정리해 붙인다. 그리고 원래 다루고자 했던 밀양 깻잎밭 이주노동자의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는 부산 ‘이주민과 함께’ 그루 활동가의 글을 인용해 전하고자 한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밀양 깻잎 밭 이주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캠페인’에도 많은 동지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깻잎 좋아하세요?

 

우리가 먹는 깻잎의 다수가 밀양에서 생산됩니다. 누구의 어떤 노동으로 우리 밥상에까지 오르게 되는 걸까요?

한 평생 땅 파며 고단한 삶을 살아낸 농부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론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주민들의 노동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 농촌의 빈자리를 캄보디아, 네팔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업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법제도는 현실에 맞지 않고, 그나마 있는 법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관계기관에 문제를 제기해도 증거가 없다며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농산물 속에 이주노동자들의 고난과 절망, 원망이 서려 있습니다.

 

최저임금 위반, 장시간노동, 불법파견, 비닐하우스 숙소…

지난해 9월, 밀양 깻잎밭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말도 안 되는 저임금과 임금체불 때문에, 불법적인 파견근로와 비인간적인 숙소문제로 이주민상담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11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이틀밖에 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월급은 100~120만 원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따져 묻자 농장주는 3시간 동안 쉬는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8시간분의 임금만 주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매월 숙소비가 1인당 15~30만 원이었고 이를 임금에서 공제하기에 월급은 그리 적었던 것이었습니다. 기숙사는 좋은 경우 컨테이너이고 대부분은 비닐하우스에 패널로 칸막이 한 집, 아니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비닐하우스 지붕 위에서 비가 새 집안이 물바다였습니다. 방을 혼자 쓰는 경우는 없었기에 비닐하우스 원룸은 월 60~90만 원이었던 것이고, 농장주는 노동착취와 더불어 고가의 불법 임대사업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것도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가건물을 제공하면서 말이죠.

또한 계약한 농장주의 밭에서만 일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누구의 밭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습니다. 계약을 한 농장주의 작업지시에 따라 그 밭에서만 일하게 되어있는데 깻잎밭 근무하기로 한 사람이 딸기밭, 고추밭에 불려 다니며 일해야 했습니다. 어떤 노동자는 물류센터에서 물품 포장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불법적인 파견근로를 시켰던 농장주는 그날 밖에 나가 일했던 그 임금은 쏙 빼고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악랄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고용노동부, 문제해결은커녕 이주노동자 차별

고용노동부에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농장주보다 더 나쁜 게 노동부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문제해결 의지가 없었고 그저 농장주와의 합의를 종용할 뿐이었습니다. 양산지청의 조사는 불성실하고 불공정했으며 문제해결의 능력도 없어 보였습니다. 게다가 근로감독관이 출석한 이주노동자들에게 반말을 일삼고도 무얼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문제해결을 기대하며 찾아간 한국의 국가기관에서 그야말로 차별과 인권침해를 혹독히 경험했습니다.

농장주를 상대로 한 ‘최저임금 위반, 임금체불, 불법파견, 기숙사비 부당공제’ 진정사건은 모두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개선책 없이 행정종결 처리되었습니다. 진정을 제기했던 8명의 이주노동자들 모두 자신이 일한 시간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루 3시간씩 공짜로 노동력을 제공했던 셈입니다.

 

- 김그루, ‘밀양 깻잎 밭 이주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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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밭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출처: 필자]

 

 

또다른사각지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리를 지키기위한길_김헌주-질라라비201706.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