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8] 주얼리 노동자들의 ‘반짝반짝’ 권리찾기 / 김정봉

by 철폐연대 posted Aug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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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주얼리 노동자들의 ‘반짝반짝’ 권리찾기

김정봉 (금속노조 종로주얼리분회장)

 

 

축복과 사랑으로 선물되는 반지의 반짝임은 주얼리 노동자의 눈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건강해라, 행복해라’ 선물하는 돌반지도 관리되지 않는 화공약품 속에서 작업 중인 주얼리 노동자의 눈물로 만들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보석과 반짝이는 주얼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주얼리 현장의 시계는 1970년대에 멈춰 있습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몸에 불을 붙인 후 49년이 흐른 지금, 아직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청계천이 가로지르는 도심 한복판, 종로에는 800개 이상의 공장과 1,000개 이상의 매장들 그리고 수천 명의 주얼리 노동자들이 존재합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되 존재감을 느끼지도 발휘하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투명인간, 유령과도 같습니다.

 

40년 동안 고용보험 하나 없이 툭하면 해고를 당했고, 절단 사고를 당해도 산재처리 하나 없이 쫓겨나듯 공장을 떠났던 노동자들. 4대보험 미가입으로 청신가리와 같은 유해물질 범벅에도 특수건강검진은 꿈도 못 꾸는 것이 주얼리 산업의 현실이었습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일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으로 노동자들이 뭉쳤습니다. 지난해 4월, 우리는 금속노조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탄생하고 1년 3개월이 지났습니다.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노동조합과 약 50명의 주얼리 사업장 대표단체가 모여 실시한 ‘기초노동질서 점검 및 산업안전 실태조사’ 보고대회에서는 고질적인 탈법 관행으로 생긴 질 낮은 노동조건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밀집지역 20개소에 대한 집중 점검을 진행한 결과 전체 법 위반 48건, 적발률은 100%에 달했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노동자가 57명,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는 5명으로 금액은 총 7,137,339원이었고, 82명의 노동자가 경험한 임금 체불액은 총 37,122,000원이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교육을 실시하지 않았거나 취업규칙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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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1. 노동절대회 [출처: 분회]

 

 

하지만 1930년대부터 자리잡아온 종로 주얼리 현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2019년 5월 1일은 주얼리 노동자들에게 처음 맞는 노동절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서야 우리는 노동절을 노동자의 것으로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주얼리 산업 역사 80년 만에, 2019년 5월 1일 종로 대부분의 주얼리 공장들이 셔터를 내렸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은 처음으로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1년 동안 매주 꾸준히 주얼리 노동자들과 선전물을 나누며 소통하는 권리찾기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공짜노동을 강요하던 사업주들은 일한 만큼 받을 권리. 마음 놓고 쉴 권리를 이야기하는 노동조합의 목소리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또 노동조합에 가입한 첫 사업장은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공짜야근과 공짜노동에 반대하는 포괄임금 폐지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귀금속보다 더 귀한 자신의 노동 가치를 깨닫고 많은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주얼리 노동자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청계2가 전태일기념관에 ‘주얼리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의 사무실이 문을 열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깃든 이곳에서, 오랫동안 멈춰있던 주얼리 노동자들의 시계는 더욱 힘차게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부당함과 싸우며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주얼리 노동자들의 빛나는 삶을 위하여, 우리는 자신의 노동조건을 바꾸는 것을 넘어, 종로와 서울을 넘어, 전국의 주얼리 산업 현장을 바꾸겠다는 큰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것입니다.